급 해고통보, 심지어 '제사음식' 요구도... 무시받는 돌봄노동자들
[젠더+노동+건강 ON] 요양보호사 시장화 중단하고 공공성 확보해야
"운전할 차가 없다고 내일부터 나오지 말래요".
며칠 전 센터로 걸려 온 전화상담에서 내담자가 한 말이다. 요양보호사로 1년 넘게 일해왔는데, 최근 방문 요양 가구가 새로이 배정돼 돌봄 이용자 집에 방문했다. 돌봄 이용자 가족은 요양보호사에게 자기 차가 없어 어르신 이동이 불편하다며 재가노인복지시설(아래 시설) 기관장에게 민원을 제기했고, 이에 따라 기관장이 내담자를 하루아침에 해고한 것이었다.
그간 시설은 '어떤 상황에서도 차질 없이 돌봄 이용자에게 방문요양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당연히' 돌봄 노동자에게 요구해 왔다. 시설과 돌봄 이용자의 필요만 고려한 사이클 안에서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은 누군가의 편의에 의해 결정될 만큼 가벼웠다.
잦은 스케줄 변동, 적은 월급, 골병… 스스로 감내해야 할 몫
예정도 없이 갑작스럽게 돌봄 이용자가 스케줄을 바꿔 가던 길을 되돌아와야 할 때도, 이용자의 요청으로 근무일에 노동할 수 없게 될 때도 많았다. 방문요양서비스는 요양보호사와 돌봄 이용자가 일대일 매칭으로 서비스(노동)를 제공하고 이에 따라 급여를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불규칙할 때는 급여도 불규칙해진다.
기관장 결정으로 인한 매칭 중단, 돌봄 이용자의 입소·입원 등 월 근무시간이 줄어 월급이 적게 지급되는 이유는 많았고, 이는 요양보호사 스스로 감수해야 할 몫이었다. 인지능력이 부족하거나 거동이 어려운 돌봄 이용자의 이동을 돕고, 신체를 직접 들어 올려 씻기는 목욕 등으로 인해 얻은 골병도 마찬가지였다. 돌봄 이용자를 정성으로 돌보면서도 정작 요양보호사 자신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시간이 길어졌다.
매끼 밥을 제공하는 조리사도 또 다른 돌봄 노동자다. 하지만 요양보호사나 조리사 모두 사회적인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요양센터, 재활병원 등에서 10년 넘게 조리사로 일하며 매 끼니를 책임져 온 다른 내담자는 매년 최저임금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제껏 가사 노동을 비롯한 돌봄노동은 '최저임금', '1년 단위 쪼개기 계약', '부당한 사적 지시와 돌봄노동의 외줄타기'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법정 최저임금에 휴일근로 수당과 유급휴일 수당을 챙겨줬던 요양시설이 그나마 나은 곳이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다른 일보다 중요하지 않아서, '반찬값'만 벌면 된다고 생각해서... 돌봄 노동은 사회적 편견 아래 지속해서 저평가돼왔다. 이와 맞물려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과 노동조건 결정권은 등한시됐으며, 열악한 노동환경이 더욱 공고해졌다.
이는 올해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가 발표한 '4.30여성노동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아래 서사원) 요양보호사 김춘심씨는 돌봄 이용자 가족으로부터 "제사 음식, 자녀들 음식, 김장 등 다양한 요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요양보호사 천민숙씨는 "민간센터에 고용된 요양보호사는 돌봄 이용자의 집에 출근하지 못하게 되면 곧바로 일자리를 잃어버린다"며 돌봄 노동자에게 만연한 고용불안에 대해 토로했다. 이들은 시설에 이러한 고충을 전해봐도 어떠한 피드백도 들을 수 없었고, 몸이 아파 쉬고 싶어도 임금이 줄어들고 혹시나 다른 요양보호사가 새로 채용될까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다.
돌봄노동 인식 개선과 사회적 최저선 보장, 지자체 공공 돌봄 확대해야
인간은 사회적 존재며, 누구나 삶의 어떤 시기에 다른 사람의 돌봄과 도움이 필요하다. 돌봄 노동은 누구나 겪는 과정이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노동이다. 이런 노동을 수행하는 요양보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돌봄 이용자 가족은 그동안 요양보호사에게 돌봄노동 외에 가사 노동까지 요구하며 '파출부'로 여겨왔다. 부당하게 가사 노동을 떠넘겨도 요양보호사는 묵묵히 일해야 했다. 이제는 돌봄노동에 대하여 정부가 전일제, 월급제로 노동조건을 설정하고, 요양보호사의 실질임금 인상과 정당한 처우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돌봄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고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앞서 설명한 일대일 매칭으로 요양보호사는 돌봄 이용자와 갈등, 성추행 피해, 고용불안 및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로 민간 개인사업자가 방문요양 서비스 등 돌봄 관련 기관을 운영, 우후죽순으로 민간 요양 시설이 늘어나며 이런 상황에 대한 관리·감독이 부재해 왔다. 민간 요양 시설은 돌봄 이용자를 '수입원'으로 여기기도 했고, 민간 운영으로 인해 재정 운용의 투명성, 요양보호사와 돌봄 이용자의 안전 확보도 어려워졌다.
이제부터라도 정부 차원에서 요양 시설을 관리·감독하고 시설의 수입 지출 등 경영 실태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돌봄의 시장화, 민영화를 추진하고, 서울시는 서사원을 폐지하는 수순에 이르렀다. 공적 돌봄의 성격을 띠던 서사원의 예산을 100억 원 넘게 삭감해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은 많은 요양보호사는 다시 시급제 노동자가 되고 있다. 공적 돌봄을 확대해도 부족한 시기에 오히려 시대착오적으로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또, 이주 여성 노동자를 통해 돌봄 노동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그저 외주화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돌봄 노동에 대한 인식 변화, 돌봄 노동자의 인권 신장 없이는 돌봄 노동의 사회적 편견과 저평가만 확산시킬 뿐이다. 요양 서비스의 질적 확보를 위해서도 효과성, 권한, 규모 등을 갖춘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를 수행하는 '공적 돌봄'의 확대가 절실하다.
이 글을 쓰며 여성학 수업에서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집안에서 항상 수행해야 하는 가사 노동을 하나 건너 옆집에서 하면, 셀 수 없는 시간과 비용이 발생하며 엄청난 노동량이 만들어진다"는 말이었다. 비단 가사 노동뿐만 아니라 돌봄 노동도 마찬가지다. 돌봄에는 누군가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임금노동만큼 중요하기에 눈에 잘 보이도록 가시화해야 한다. 진정한 돌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하여 인식 전환과 더불어 공적 돌봄이 더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다.
며칠 전 센터로 걸려 온 전화상담에서 내담자가 한 말이다. 요양보호사로 1년 넘게 일해왔는데, 최근 방문 요양 가구가 새로이 배정돼 돌봄 이용자 집에 방문했다. 돌봄 이용자 가족은 요양보호사에게 자기 차가 없어 어르신 이동이 불편하다며 재가노인복지시설(아래 시설) 기관장에게 민원을 제기했고, 이에 따라 기관장이 내담자를 하루아침에 해고한 것이었다.
잦은 스케줄 변동, 적은 월급, 골병… 스스로 감내해야 할 몫
예정도 없이 갑작스럽게 돌봄 이용자가 스케줄을 바꿔 가던 길을 되돌아와야 할 때도, 이용자의 요청으로 근무일에 노동할 수 없게 될 때도 많았다. 방문요양서비스는 요양보호사와 돌봄 이용자가 일대일 매칭으로 서비스(노동)를 제공하고 이에 따라 급여를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불규칙할 때는 급여도 불규칙해진다.
기관장 결정으로 인한 매칭 중단, 돌봄 이용자의 입소·입원 등 월 근무시간이 줄어 월급이 적게 지급되는 이유는 많았고, 이는 요양보호사 스스로 감수해야 할 몫이었다. 인지능력이 부족하거나 거동이 어려운 돌봄 이용자의 이동을 돕고, 신체를 직접 들어 올려 씻기는 목욕 등으로 인해 얻은 골병도 마찬가지였다. 돌봄 이용자를 정성으로 돌보면서도 정작 요양보호사 자신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시간이 길어졌다.
매끼 밥을 제공하는 조리사도 또 다른 돌봄 노동자다. 하지만 요양보호사나 조리사 모두 사회적인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요양센터, 재활병원 등에서 10년 넘게 조리사로 일하며 매 끼니를 책임져 온 다른 내담자는 매년 최저임금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제껏 가사 노동을 비롯한 돌봄노동은 '최저임금', '1년 단위 쪼개기 계약', '부당한 사적 지시와 돌봄노동의 외줄타기'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법정 최저임금에 휴일근로 수당과 유급휴일 수당을 챙겨줬던 요양시설이 그나마 나은 곳이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다른 일보다 중요하지 않아서, '반찬값'만 벌면 된다고 생각해서... 돌봄 노동은 사회적 편견 아래 지속해서 저평가돼왔다. 이와 맞물려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과 노동조건 결정권은 등한시됐으며, 열악한 노동환경이 더욱 공고해졌다.
▲ 지난 4월 30일 2024 3.8 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아프면 쉴 권리와 돌봄 공공성을 보장하라’는 주제로 여성노동실태조사 최종 보고회를 주최하였다. ⓒ 비주류사진관
이는 올해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가 발표한 '4.30여성노동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아래 서사원) 요양보호사 김춘심씨는 돌봄 이용자 가족으로부터 "제사 음식, 자녀들 음식, 김장 등 다양한 요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요양보호사 천민숙씨는 "민간센터에 고용된 요양보호사는 돌봄 이용자의 집에 출근하지 못하게 되면 곧바로 일자리를 잃어버린다"며 돌봄 노동자에게 만연한 고용불안에 대해 토로했다. 이들은 시설에 이러한 고충을 전해봐도 어떠한 피드백도 들을 수 없었고, 몸이 아파 쉬고 싶어도 임금이 줄어들고 혹시나 다른 요양보호사가 새로 채용될까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다.
돌봄노동 인식 개선과 사회적 최저선 보장, 지자체 공공 돌봄 확대해야
인간은 사회적 존재며, 누구나 삶의 어떤 시기에 다른 사람의 돌봄과 도움이 필요하다. 돌봄 노동은 누구나 겪는 과정이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노동이다. 이런 노동을 수행하는 요양보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돌봄 이용자 가족은 그동안 요양보호사에게 돌봄노동 외에 가사 노동까지 요구하며 '파출부'로 여겨왔다. 부당하게 가사 노동을 떠넘겨도 요양보호사는 묵묵히 일해야 했다. 이제는 돌봄노동에 대하여 정부가 전일제, 월급제로 노동조건을 설정하고, 요양보호사의 실질임금 인상과 정당한 처우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돌봄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고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앞서 설명한 일대일 매칭으로 요양보호사는 돌봄 이용자와 갈등, 성추행 피해, 고용불안 및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로 민간 개인사업자가 방문요양 서비스 등 돌봄 관련 기관을 운영, 우후죽순으로 민간 요양 시설이 늘어나며 이런 상황에 대한 관리·감독이 부재해 왔다. 민간 요양 시설은 돌봄 이용자를 '수입원'으로 여기기도 했고, 민간 운영으로 인해 재정 운용의 투명성, 요양보호사와 돌봄 이용자의 안전 확보도 어려워졌다.
이제부터라도 정부 차원에서 요양 시설을 관리·감독하고 시설의 수입 지출 등 경영 실태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돌봄의 시장화, 민영화를 추진하고, 서울시는 서사원을 폐지하는 수순에 이르렀다. 공적 돌봄의 성격을 띠던 서사원의 예산을 100억 원 넘게 삭감해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은 많은 요양보호사는 다시 시급제 노동자가 되고 있다. 공적 돌봄을 확대해도 부족한 시기에 오히려 시대착오적으로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또, 이주 여성 노동자를 통해 돌봄 노동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그저 외주화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돌봄 노동에 대한 인식 변화, 돌봄 노동자의 인권 신장 없이는 돌봄 노동의 사회적 편견과 저평가만 확산시킬 뿐이다. 요양 서비스의 질적 확보를 위해서도 효과성, 권한, 규모 등을 갖춘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를 수행하는 '공적 돌봄'의 확대가 절실하다.
이 글을 쓰며 여성학 수업에서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집안에서 항상 수행해야 하는 가사 노동을 하나 건너 옆집에서 하면, 셀 수 없는 시간과 비용이 발생하며 엄청난 노동량이 만들어진다"는 말이었다. 비단 가사 노동뿐만 아니라 돌봄 노동도 마찬가지다. 돌봄에는 누군가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임금노동만큼 중요하기에 눈에 잘 보이도록 가시화해야 한다. 진정한 돌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하여 인식 전환과 더불어 공적 돌봄이 더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유경희 님은 노무사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 일터 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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