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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욕' 고객 없지만..." 참아야 살아지는 서른셋 여성의 사연

[최저임금 여성노동자로 살아가는 이야기 ②] 국세청 콜센터 노동자 남미경씨

등록|2024.06.13 11:13 수정|2024.06.13 11:13
최저임금의 시간이 돌아왔다. 최저임금위원회는 5월 21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2025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논의를 본격화했다. 최저임금제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을 목적으로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데 기여할 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임금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최저임금이 본래의 취지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저임금을 받아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최저임금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노인돌봄, 마트, 학교비정규직, 콜센터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를 만나 일과 생활, 노후(미래) 준비, 최저임금의 적절성, 본인의 노동가치에 대한 보상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올해 최저임금이 2.5% 올랐지만 물가 폭등으로 실질임금이 하락해 생활이 점점 어려워진다고 하소연했다. 일상생활에서 포기하는 것도 많았다. 이들이 숨통을 좀 트고 살아가려면 최저임금은어떻게 결정돼야 할까. 실제 물가 인상률을 반영하고 가구 생계비를 기준으로 생활임금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의 이야기를 통해 최저임금이 갖는 의미를 짚어보려 한다. - 기자말 

 

‘최저임금’ ‘청년’ ‘여성’노동자 남미경씨. 미경 씨는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는 국세청 콜센터에서 상담 업무를 맡고 있다. ⓒ 서비스연맹


최저임금 직종 전담 경력자, 청년 여성

33세의 청년 여성노동자 남미경씨. 그는 노동 생애 전부를 거의 최저임금 노동자로 살았다. 2015년 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대부분 서비스업종이었고, 거의 다 최저임금 남짓 주는 곳이었다. 사업장 규모가 크든 작든 마찬가지였다.

미경씨는 주로 호텔 '알바'를 많이 했다. 호텔 식당이나 라운지에서 서빙을 하는 '알바'였다. 그러다 호텔 서빙 경력을 가지고 잠실 한강 선착장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되었다. 한강뷰 레스토랑이다 보니 프러포즈 이벤트를 하는 고객들이 자주 찾았고, 주말에는 웨딩 피로연 예약이 많은 흥미로운 직장이었다. 게다가 최저임금만 주던 호텔보다 월급을 더 챙겨주는 곳이어서 좋았다.

그런데 일하다 보니 힘든 게 많았다. 고객 밥 챙겨주는 식당인데, 정작 거기서 일하는 미경씨는 끼니를 못 챙겨 먹을 때가 많았다. 정해져 있는 직원 식사시간이 없었고, 어쩌다 주방에서 요리를 해주는 날 빼고는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중소 레스토랑이라 그랬을까요? 눈치 보다가 식사를 라면으로 후다닥 때워야 할 때가 많았어요. 제가 오후 3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일하는 조였거든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밤 늦게까지 내도록 서서 일하다 보니 죽을 맛이었어요. 하루종일 서 있으니 나중에 나이도 어린데 족저근막염이 오더라고요. 근데 연장근무도 거의 매일 있다시피 했어요."

몸도 축나고 일도 힘들어 미경씨는 한강뷰 레스토랑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데 더 큰 '배신'을 당했다. 최저임금보다 월급 더 쳐주는 데라고 해서 들어간 그 회사에서 미경씨의 4대 보험료를 떼가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의 회사처럼 그 레스토랑에서도 미경씨에게 4대 보험의 회사 부담액을 제하고 월급을 지급했는데, 퇴사할 때 확인해보니 회사가 보험료를 전혀 안 내고 있었다.

"이 때 마음 먹었어요. 다시는 서비스업 안 들어가야겠다."

돌고 돌아 서비스업… 국세청 콜센터도 최저임금

웨딩홀, 호텔, 레스토랑, 어쩌다 보험회사 접수직까지 여러 직장을 전전했지만 미경씨가 받았던 월급은 딱 최저임금이거나, 최저임금을 살짝 상회하는 정도였다. 4대 보험료까지 떼이는 경험을 하고 다시는 '서비스업 안 가겠다' 마음먹었지만, 2024년 현재도 미경씨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역시 최저임금 사업장이다.

"국세청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어요. 코로나 한창이던 2022년도 1월부터 일했어요. 다른 콜센터도 물론 상담사들이 많은 정보를 알아야겠지만, 국세청 콜센터는 특히 전문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요. 세금신고 안내를 해야 하거든요. 전화하신 납세자들에게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 설명해 드려야 하고, 납세자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까지도 상담사가 '캐치'해서 상담을 진행해야 합니다. '돈'에 관한 거니까 서로 아주 민감해요, 저희 안내에 따라 납세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매월 전문교육을 받아요. 세법이 바뀌면 관련 법령까지 다 이해하고 있어야 하거든요."
 

국세청 콜센터 노동자들의 총파업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국세청콜센터지회 노동자들이 2023년 7월 5일 세종시 기획재정부 앞에서 처우 개선과 인건비 인상을 요구하는 총파업 집회를 열었다. ⓒ 서비스연맹


전문지식을 갖춰 상담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공공기관의 콜센터이지만 여러 하청업체로 나눠 민간위탁 운영되고 있다 보니 직원들의 전문업무에 대한 가치인정은 전무하다. 국세청이 위탁한 업체에 사업비를 줄 때 인건비는 무조건 최저임금에 맞춰서 책정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세무서에서 공무원이 해야 하는 일 일부를 콜센터가 해주는 격이에요. 실제로 세무서에 직접 갔다가 거기서 '홈택스에서 신고하라'고 해서 홈페이지 접속했다가 어려워서 전화하시는 분이 정말 많아요. 매월 교육까지 시키는 어려운 업무인데도 국가가 이 노동에 대한 인정은 정말 안 하는 편인 거죠."

게다가 콜센터 노동은 익히 알다시피 고강도의 감정노동이 수반된다. 국세청 콜센터 상담사는 일반인이 잘 알기 힘든 내용을 정확히 안내해야 하는 전문성을 갖추면서도 친절한 응대까지 해야 하는 완벽한 슈퍼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일하다 우는 동료들이 꽤 많아요. 저도 이번 주에 한 번 울었네요. 요즘엔 통화녹음을 해서 그런가 막 상욕을 쏟아붓는 분들은 거의 없죠. 그보다는 무례하고 모욕적인 말을 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계속 하는 경우가 많아요. '국민세금으로 월급 주는데 제대로 못하냐' 이런 말들이죠. '국세청 직원이 왜 이런 것도 모르냐'라고 하시는 분도 있는데 그러면 '네, 저 국세청 직원 아니고 하청 직원입니다' 해요.(웃음) 고객 응대시 폭력상황 매뉴얼이 너무 별로예요. 현장 노동자가 전혀 보호될 수 없는 느낌? 납세자 컴퓨터에 접속하여 원격으로 홈택스 이용 안내해야 할 때가 종종 있는데 성인음란 사이트 같은 게 버젓이 띄워져 있는 경우도 많아요."

같은 공공기관 콜센터인 서울시 산하 120다산콜센터의 경우, 2014년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해 성희롱 등의 악성 민원에 대해서는 상담사들이 안내 후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게 한다. 이른바 '통화거절권'을 최초통화에도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하지만 국세청 콜센터는 악성 민원인에게 3회의 주의 조치를 완료하고 나서야 통화종료를 할 수 있다. 감정노동자 보호매뉴얼은 약한데, 존칭어를 잘 썼는지 등 상담사가 친절하게 응대했는지를 평가하는 QA(Quality Assurance, 품질 보증)시스템은 빡빡하다.

"사실, 국세청 콜센터 상담사가 갖춰야 할 것은 친절함이 아니라 정확함이라고 생각해요. 친절도 평가하는 자체도 이해가 안 가는데, 저희 같은 민간위탁 콜센터의 경우 평가를 매월 진행해요. 국세청 직고용 콜센터보다 훨씬 많이 하죠. 평가점수에 따라 성과급(인센티브) 차등지급하는데 그게 상대평가라 절반은 무조건 성과급 못받게 되어있어요."
 

전문성과 친절함 겸비해야 하는 ‘슈퍼노동자’민간위탁으로 운영되는 국세청 콜센터의 상담사들은 전문성과 친절함 모두를 겸비해 업무를 해야 하지만 세후 월급 200만 원도 되지 않는다. ⓒ 서비스연맹

 
참아야 살아지는 삶, 세후 198만 원의 청년여성 최저임금 노동자

고객응대에는 인이 박힌 10년 경력 서비스 노동자, 특히 국세청 콜센터에서 약 2년 반 일하면서 꼼꼼히 세법을 익히며 성실하게 일해온 납세 안내 전문노동자 남미경 씨. 하지만 지금 그의 임금은 세전 220만 원, 세후 198만 원이다. 몇 년을 일해도 근속 수당도 없고, 기본급과 식대만 딱 최저임금에 맞춰 지급되었다.

"지난 교섭으로 기본급이 약간 올랐고요, 근속수당도 올해부터 적용되게 되었어요. 세후 200 넘게 받은 적이 없는데, 4월에 올해 1~3월 소급분까지 해서 인생 처음으로 240만 원을 받아봤어요. 와~ 진짜 행복하던데요. 그전에는 월급이 206만 원(세후 184만 원)이니 정말 통장에 여돈이 하나도 안 남았어요. 제가 가족 공동부담 생활비는 다 내니까요. 반전셋집 대출이자 20만 원이랑 월세 60만 원, 공과금 관리비 한 20만 원 정도를 다 내고요, 통신요금도 다 제가 내요. 부모님이랑 같이 살기는 하는데, 아버지가 바닥시공 일을 하시고 일이 들쭉날쭉 하니까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아서... 아버지 수입으로 식비 정도 부담해요. 그나마 동생이 최근 독립해서 다행이죠."

미경씨가 집안의 실질적인 주 소득원을 담당하고 있기에, 숨만 쉬어도 나가는 필수 생활비를 내고 나면 월급에서 출퇴근 교통비랑 점심 식대 정도가 남는 수준이다.

"이 일 하려면 커피가 당겨요. 제가 커피를 되게 좋아하기도 하지만요. 근데 그거 한잔을 밖에서 사 마시기가 부담스러워요. (직장 소재지인) 여의도 물가가 워낙 비싸다 보니 점심은 당연히 도시락 싸오고, 커피도 싸게 인터넷으로 원두 구해서 집에서 핸드드립으로 내려와요. 도시락도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생야채 이런 거 다듬어서 와요. 자의반 타의반 다이어트 식단이죠! 그리고 제가 MBTI 'E'인데요, 친구들 만나는 게 솔직히 부담되어 분기에 한 번 정도 만나려나..."

말이 쉽지,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 취향을 참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삶을 건조하게 하고 사람을 외롭게 하기 마련이다. 그나마 노동조합의 투쟁과 교섭으로 근속수당이 생겨 다달이 전에 없던 몇 만 원의 여윳돈이 생겼다. 하지만 이 청년의 취향과 욕구를 추구하는데 쓸 수는 없었다. 근속수당이 생기자마자, 적금을 들어 거기에 몽땅 붓는 중이다. 노후가 항상 걱정이었다는 미경씨는 적금을 들 수 있는 돈이 생겼다는 것에 안도한다.

청년 노동자가 최저임금 일자리에 머무르게 되는 이유

공공기관 필수업무이지만 원청인 국가가 나서서 외주 하청을 주는 문제 때문일까? 콜센터가 여성집중 산업이기 때문일까? 아니, 서비스업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편견 속에 고질적으로 저임금화 되어버린 게 문제일까? 찔끔찔끔 오르는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되고 있는 한국의 노동시장 현실이 문제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미경씨가 이 시대 여성으로 태어나 청년 시기를 살고 있기 때문일까?

이제는 모든 것이 너무 뒤섞여 버려 선후관계를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이 모든 것이 미경씨를 최저임금 노동자로만 머무르게 하는 이유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미경씨, 외향적이고 운동을 좋아하는 미경씨가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맘 놓고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맛있는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정하나 기자는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입니다. 이 기사는 <노동과 세계>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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