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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전 경찰국장 '밀정' 논란, 경찰의 엉뚱한 수사

경찰, '김순호 존안자료' 유출 혐의 시민단체 압수수색..."민간인은 공무상비밀누설 해당없는데"

등록|2024.06.14 09:38 수정|2024.06.14 10:10

▲ 2022년 8월 18일 김순호 초대 행안부 경찰국장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김순호 파면, 녹화공작 진상규명국민행동'(국민행동)은 13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이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추모연대)를 압수수색한 것에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항의 서한을 전달하러 경찰청으로 들어가다 이를 막아서는 경찰과 한때 맞서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12일 아침, 김순호 행정안전부 초대 경찰국장(김순호 국장은 경찰국장을 지낸 뒤 지난해까지 경찰대학장으로 일하다가 퇴임했다)의 '존안 자료'(공안사건 연루자와 단체에 대한 정보를 담은 공안사범자료)가 유출된 경위를 조사한다며 추모연대 사무실과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상규명대책위원회' 관련자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행안부 초대 경찰국장 과거 '밀정' 의혹

김순호 전 국장은 2022년 8월 행정안전부 내에 경찰국이 신설될 때 초대 경찰국장으로 임명되면서 논란의 중심이 됐다. 그는 모교인 성균관대학 동문을 비롯해 자신이 속했던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인노회) 동지들로부터 "밀정 노릇을 했다"고 지탄받았다.

김순호 전 국장과 같이 활동한 인사들에 따르면 그는 인노회 활동을 하던 1989년 4월 갑자기 사라졌다. 연락이 두절된 그는 그해 8월 대공업무를 담당하는 경장으로 특채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가 행방불명된 시기에 인노회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었고 6월에는 인노회 회원 15명이 구속되었다.

김 전 국장은 경찰이 된 후 대공 업무를 맡으면서 4년 8개월 만에 경위로 승진해 간부급에 올랐다. 이런 점 때문에 김 전 국장은 밀정 노릇을 한 것으로 의심받았으며 경찰국장에서 파면하라는 '국민행동'이 만들어지고 시민단체 227개가 여기에 참가했다.
  

김순호 파면 국민행동 발족 기자회견 모습 전국의 시민·사회·노동·종교 227개 단체들이 2022년 9월 7일 ‘김순호 파면, 녹화공작 진상규명 국민행동’을 발족했다. ⓒ 유성호

김 전 국장은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홍제동 대공분실을 찾아가 자수하고 치안본부 대공3부 홍승상 경감에게 인노회 활동을 자백했다. 하지만 동료들의 구속에 영향을 끼칠 만한 진술은 하지 않았다"라고 자신의 행적을 설명하며 "프락치 의혹은 프레임 씌우기"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압수수색에서 문제가 된 김 전 국장의 존안 자료는 옛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가 작성한 것이다. 김 전 국장이 강제 징집된 후 보안사의 지시에 따라 성균관대 운동권 동향을 파악해 보고한 내용이 자세히 담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MBC는 김 전 국장이 2022년 경찰국장으로 임명되고 밀정 논란이 일자 이 존안 자료를 입수해 표지와 일부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김 전 국장은 이때 '자료 유출 경위를 수사하겠다'고 했는데 1년 만인 2023년 8월 국가기록원에 있는 자신의 존안 자료를 유출한 사람을 '공무상 비밀 누설죄'로 처벌해 달라고 직접 고발장을 작성했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이 고발을 접수하고 2023년 9월 1일 김 전 국장의 성균관대 81학번 동기 박00씨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고 핸드폰을 빼앗았다. 경찰은 박00씨가 공무상비밀누설을 할 수 있는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이며 참고인 신분인데도 수사협조 요청 한 번 없이 강제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12일 압수수색을 당한 추모연대와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상규명대책위원회' 관련자도 역시 시민단체이고 민간인이어서 '공무상 비밀 누설죄'의 혐의자가 될 수 없는데도 경찰은 박00씨의 사례처럼 강제수사를 벌인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밀정 행각 여부
 

▲ 서울경찰청은 김순호 전 경찰국장의 존안 자료 유출 경위를 조사한다며 추모연대 등을 12일 오전 압수수색했다. 이에 항의하는 '김순호파면, 녹화공작 진상규명 국민행동'의 기자회견 모습 ⓒ 추모연대제공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13일 기자회견에서 "경찰은 공안통치의 부역자가 경찰 고위직까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그 비극을 자성하기는커녕, 도리어 김순호의 어두운 이면을 세상에 알렸던 공익 제보자와 시민 단체를 압수수색했다"며 ​무리하고 위법하게 공권력을 휘두르는 윤희근 경찰청장의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한편 민주노총의 장석우 변호사도 발언에 나서 "영장에 적시된 죄명이 '공무상 비밀 누설'인데도 경찰이 디지털 포렌식에서 입력한 키워드는 상당수가 언론사와 기자의 이름이었다"라며 "이 압수수색이 언론사와 시민단체 옥죄기가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 이미 대법원에서 민간인은 '공무상 비밀 누설죄'의 공범조차 될 수 없다고 판결했는데도 법원이 이 판례를 어기면서까지 영장을 발부했다고 성토했다.

경찰이 김순호 전 국장의 고발을 접수하고 현재까지 참고인에 대해서만 압수수색을 했는데 앞으로 피의자에 대한 수사가 어떻게 이뤄질지 주목이 된다. 이 사안의 핵심은 개인정보 유출이나 공무상 비밀 누설 문제가 아니라 김순호 전 국장의 밀정 행각여부다. 그렇기에 경찰이 근본적으로 의혹을 해소하려면 애먼 수사를 할 것이 아니라 김순호 전 국장이 홍제동 대공분실에서 진술한 내용, 그가 대공업무를 맡으면서 담당했던 사건을 모두 공개하면 해소될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의 주구 노릇을 했다는 오명을 받는 경찰의 자세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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