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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뜨거웠던 무주... 그것에서 다시 만난 '둘리의 대모험'

[김성호의 씨네만세 753]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 '판'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등록|2024.06.15 10:55 수정|2024.06.15 10:55
 

무주산골영화제포스터 ⓒ 무주산골영화제


올해로 12회를 맞은 무주산골영화제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한 번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는 영화제의 대표주자다. 극장 하나 없던 쇠락한 시골마을에서 시작해 어엿한 전국구 영화제로 거듭난 영화제의 성공사례다. 온갖 기자와 이름난 평론가들에게 지원과 선물을 안기며 홍보하는 거대 영화제와 달리, 순수하게 영화팬과 지역 주민들의 지지와 애정을 바탕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무주산골영화제가 가진 여러 장점이 있다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도 분명하다. 그중 가장 선명한 것은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시설이 빈약하단 것이다. 무주산골영화관이 생긴 건 그중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겨우 두 관에 불과하니 전국에서 몰려든 관객들을 수용하기엔 역부족이다. 영화제의 상징으로 자리한 야외 등나무운동장과 임시로 강당을 극장으로 개조한 시설 등에서 영화를 상영하긴 하지만 여타 유명 영화제에 비하면 상영관 수가 절대부족이다.

그래서 무주산골영화제엔 매년 진풍경이 빚어진다. 마침 날도 따뜻한 때 열리는 만큼 영화제 매표소 앞에 매트를 깔고 밤을 지새우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온라인 예매를 잡지 못한 이들이 현장표를 구하려 길게 줄을 늘어서는 건 일상이다. 매진에 매진 행렬, 일찍부터 줄을 서도 표를 구하지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무주산골영화제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 현장을 찾은 사람들이 표를 구하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 ⓒ 김성호


무주산골 성격 내보이는 다채로운 섹션

다른 여느 영화제가 그렇듯 무주산골영화제에도 여러 섹션이 있다. 창, 판, 락, 숲, 길이라 불리는 다섯 섹션이 무주산골영화제의 상징이다. '창'은 한국장편영화경쟁부문으로, 가장 인기가 있는 섹션이다. 출품된 작품만 100편을 헤아리는 가운데, 9편이 초청의 영광을 안았다. 무주산골영화제에만 출품된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하나하나가 주목받는 한국영화란 점에서 이 영화제가 얼마만큼 성장했는지를 알도록 한다.

그러나 창 섹션 티켓을 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여간 부지런한 이가 아니라면 일찌감치 매진된 화면을 마주하고 새로고침 버튼만 누르기 십상이다. 현장을 찾아도 일찌감치 매진이란 외침이 들려오니, 내년에는 올해보다 열심히 티켓팅을 해보자고 반성할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럴 때 택하게 되는 것이 '판' 섹션이다. 수준급 한국 신작 장편영화를 수급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보니 영화제 측이 별도로 시공간을 초월해 유의미한 작품을 추려 소개하는 것이다. 대체로는 근 몇 년 안의 작품을 중심으로 추리지만, 몇몇 작품은 제작된 지 한참 된 영화도 들여온다. 무주산골영화제가 아니더라도 만날 수 있는 작품이기에 창 섹션보다 인기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제의 들뜬 분위기 가운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단 게 어디인가.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포스터 ⓒ 무주산골영화제


무주의 매력, 다양한 야외상영 

판 섹션 작품 가운데 일부는 극장이 아닌 야외상영도 진행됐다. 영화제의 명소 중 하나인 한풍루 앞마당에 설치된 무대에서 영상을 공개 상영하는 것이다. '키즈 스테이지'라 이름 붙인 무대는 날 좋은 초여름, 가족단위로 영화제를 찾은 이들에게 눈높이에 맞는 작품과 만날 기회를 준다. 한국 작품 가운데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을 고심한 결과일까, 4K로 디지털 복원된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이 한 차례 상영돼 관심을 모았다.

<아기공룡 둘리>는 모르는 이 없는 시리즈다. '뽀로로'가 태어나기까지 한국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혔고,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다시 지상파 방영 기회를 얻었을 만큼 시대를 초월하는 인기를 자랑했다. 둘리를 비롯해 고길동과 희동이, 도우너, 또치, 마이콜 등 다채로운 캐릭터가 눈길을 사로잡고, 좌충우돌하는 에피소드가 보는 이의 관심을 붙드는 명작이다.

이 시리즈는 한국 애니메이션 가운데는 드물게 극장판 영화로도 제작돼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TV판이 나온 지 꼭 10년이 되는 1996년 작 <얼음별 대모험>이 바로 그 작품이다. TV에선 <드래곤볼>을 필두로 <세일러문> <슈퍼 그랑죠> 등 일본 애니메이션이 전성시대를 구가했고, 극장에선 <알라딘>부터 <라이온 킹>에 이르는 디즈니의 강세가 두드러졌던 1990년대다. <얼음별 대모험>은 일본과 미국이 주도하는 만화영화 판도에서 그래도 한국 애니메이션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내보인 의미 깊은 작품이기도 하다.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스틸컷 ⓒ 무주산골영화제


그 시절 한국 애니의 자존심, 둘리!

영화는 TV판 원작과 그 설정을 조금쯤 달리한다. 빙하에 갇혀 서울 한 복판으로 흘러든 둘리가 마침내 깨어나고, 철수와 영희에 의해 고길동의 집까지 흘러들어오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로부터 둘리는 원작에서와 같이 고길동과 갈등을 빚으면서도 악착같이 이 집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살아남기에 이른다.

좌충우돌하는 과정 가운데 둘리는 원작 시리즈의 여러 캐릭터를 하나둘씩 사귀게 된다. 또치를 시작으로, 일행을 우주로 이끄는 도우너, 옆집에 사는 가수지망생 마이콜 등이 그들이다. 고길동의 박대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이들이 도우너가 가지고 있는 타임 코스모스를 이용해 시간을 넘나들게 되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고길동의 어린 시절로 가서 어렵게 살던 때의 한반도 사람들과 만나는 게 그 시작이다.

과거로의 여정에서 고길동을 혼내주는 데 실패한 이들은 미래로 넘어가 다른 일을 도모해보기로 한다. 그러나 이런 류의 영화가 자주 그러하듯, 계획이 틀어지고 목적지는 예상한 미래의 어느 지점이 아닌 생뚱맞은 우주공간이 되는 것이다. 뼈만 남은 물고기가 유영하고 저주받은 유령들이 여행자를 사냥하며 독재자 바요킹이 폭압적으로 지배하는 그 땅에서 둘리 일당의 모험이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스틸컷 ⓒ 무주산골영화제


세대간 장벽 넘는 꼬리를 무는 상상

상상의 나래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영화다. 초능력을 쓰는 공룡과 독재자가 군림하는 우주공간, 시간을 넘나드는 타임 코스모스가 한 작품 안에 공존한다. 바요킹과 그 부하들이 지배하던 우주를 구원하는 것이 고길동이란 평범한 지구인이란 것도 놀랍다. 그 예정된 신화가 현실이 되는 순간은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이루는 전설적 모험처럼 멋스런 감상을 던진다.

<얼음별 대모험>의 해피엔딩인 세대와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오늘의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먹히는 이야기의 안정적 힘을 보여준다. 기성세대는 추억으로, 아이들에겐 신선한 모험으로 다가오는 이 작품을 판 섹션으로 관객 앞에 내보인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의 선택은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지난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극장 재개봉하기도 했던 영화는 세대를 넘어 통하는 명작의 힘을 확인시켜준 바 있었다. 아기공룡 둘리의 캐릭터 탄생 40주년을 기념하는 작업이었다.

무주산골영화제는 한국 대표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재개봉이 그저 일회적 작업으로 끝나지 않도록 힘을 보탠다. 한국의 주목받는 영화제로 성장을 거듭하는 이 영화제 복판에서 작품을 다시 상영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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