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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새들의 떼죽음... 사체에서 발견된 충격적 흔적들

[서평] <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 (최정화/열린책들/2022년 7월)

등록|2024.06.15 18:36 수정|2024.06.15 18:36
한때 '명절 선물 포장'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선물 하나 포장하는데 종이며 플라스틱 재료 등이 너무 많이 쓰인다는 비판이 있었다. 선물에 흠집을 내지 않으려고 이중으로 포장을 하는 데다 선물을 실제보다 더 값지게 보이게 하려고 과대 포장을 하는 바람에, 포장용으로 쓰인 재료들이 그 안에 담긴 내용물보다 더 많은 부피를 차지했다.

명절이 지나고 난 뒤에는 집 밖으로 배출되는 명절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기사들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곤 했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상품 포장에 좀더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그런 뉴스가 나오면, 사람들 사이에서 자성의 바람이 불었다. 포장을 간소화하고, 쓰레기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다음해 또 명절이 돌아오면, 과대 포장에 이중 포장을 한 선물들이 집으로 배달됐다. 그래도 그때가 나았다. 그때마다 적어도 쓰레기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론화 되곤 했으니까. 그때는 또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까지 과하게 포장을 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 <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 책 표지. ⓒ 성낙선


'제로 웨이스트'에 도전하는 사람들

지금은 거의 매일 '명절 선물' 비슷한 게 집으로 배달된다. 자연히 사람들이 또 거의 매일 '명절 쓰레기'를 배출하면서 살고 있다. 세상에 '물건'이 넘쳐나는 탓이다. 그게 다 언젠가는 쓰레기가 될 물건들이다. 거기에 온라인 주문이 기름을 붓는다. 주문한 물건마다 종이 박스에 완충재가 들어가는 건 기본이다. 그 물건들이 일회용 비닐과 플라스틱 용기들에 싸여 날아온다.

신선식품의 경우에는 스티로폼 박스에 얼음이나 드라이아이스 같은 냉각재가 들어가는 걸 피할 수 없다. 과대 포장에 이중 포장이 당연시되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집안 구석 어딘가에 스티로품이나 비닐 같은 쓰레기를 쌓아두고 산다. 그걸 바라보는 기분이 상쾌하지 않다. 지금보다 가난했던 시절에도 그렇게 '더러운 꼴'을 보며 살지는 않았다.

버려지는 물건들이 너무 많다 보니, 세상이 온통 쓰레기 천지다. 바닷가에 가면 파도에 떠밀려온 플라스틱을 보게 되고, 산에 가면 등산로 주변 그늘진 곳에 누군가 몰래 버리고 간 비닐봉투를 보게 된다. 장마철에 큰 비가 내리고 나면 각종 생활 쓰레기들이 강변을 뒤덮는데, 그 쓰레기들이 우리 인간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사람들이 배출하는 쓰레기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쓰레기를 줄이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자신이 배출하는 쓰레기만이라도 '제로'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도전이 빛난다. 무모하지만 아름답다. 세상의 편의와 편리를 포기한 그들의 도전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쓰레기행성'의 불운한 거주자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를 쓴 최정화 작가 역시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다. 작가가 제로 웨이스트를 결심하게 된 건 2018년 여름 <알바트로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나서다. 그 다큐멘터리 영화에 무언가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게 분명하다.

이 다큐는 "야생의 동물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무인도"에서 새끼를 낳고 키우는 알바트로스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인간의 흔적"이 발견된다. 그 흔적은 알바트로스 사체와 함께 발견된 플라스틱 조각들이다. 기이하게도 알바트로스의 위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들이 쓰다 버린 플라스틱이 남아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알바트로스 아기새는 부모새가 가져온 먹이를 먹는다. 그런데 그 먹이에 플라스틱 조각들이 섞여 있다. 자라면서 플라스틱 조각을 너무 많이 받아먹은 아기새는 다 자라기도 전에 죽는다. 겨우 살아남은 아기새도 뱃속에 들어찬 플라스틱을 모두 게워내야만 하늘을 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앞서 죽은 아기새를 따라가야 한다.

그 섬에 플라스틱 조각을 품에 안고 잠든 아기새들이 지천이다. <알바트로스>를 본 작가는 충격을 받은 게 분명하다. 이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로 마음 먹는다. "플라스틱 월드"에서 플라스틱을 거부하는 게 쉽지 않다. 상당한 각오와 노력이 필요하다. 작가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그 의지가 결국에는 작가가 그때까지 유지해온 삶을 전부 바꿔 놓는다.
 

▲ 일회용 비닐봉지들. "한국 사람들이 버리는 비닐봉지의 개수가 하루 5천2백만 장이다." - <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 중에서. ⓒ 성낙선


많은 걸 포기해야 하는 제로 웨이스트

제로 웨이스트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작가는 "다양한 취미 활동과 문화 생활"을 누리며 "채우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알바트로스>를 보고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본다. 작가는 그때 자신이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을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인도에서 죽어가는 아기새들을 보면서 자신이 "마치 범죄자가 된 기분"을 느낀다.

제로 웨이스트에 발을 들여놓은 작가가 처음 시작한 것은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비닐봉지는 한국에서만 "하루에 5천2백만 장"이 버려진다. 알바트로스의 죽음이 결코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다. 비닐봉지는 "1960년대에 개발"됐다. 그러니까 작가는 비닐봉지가 없는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을 땐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 온갖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작가는 지혜를 짜낸다. 일상적으로 "가방 안에 얇은 면 소재의 에코백을 갖고 다"닌다. 비닐이 꼭 필요할 때는 이전에 사용하던 걸 다시 사용한다. 비닐 포장이 돼 있는 물건은 사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용기'를 가져가는 용기를 내서 거기에 필요한 만큼만 물건을 담아온다.

그런 일들이 "처음에는 쑥스럽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일"들이지만 곧 익숙해진다. 작가는 이어서 자신이 그때까지 사용하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바꾸기 시작"한다. 예전에 사용하던 물건들 중에서 지구 환경을 해치는 '보디 클렌저, 샴푸, 린스, 플라스틱 수세미, 일회용 생리대' 등을 없애고, 그것들을 '천연 비누, 진짜 수세미, 면 생리대' 등으로 대체한다.

제로 웨이스트가 가져다 준 행복

작가의 "고군분투"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쓰레기를 멀리하는 삶이 예전과 같을 수 없다. 작가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포기한다. 그 물건들을 포기할 때는 오히려 해방감마저 맛본다.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제로 웨이스트가 그런 식으로 점점 더 현실이 되어 간다. 그러면서 작가의 무모한 도전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작가가 물건을 대하는 의식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작가는 물건을 고를 때마다 "그 물건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그 물건들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배출"되는 것은 아닌지, "불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져 노동자들이 착취"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무자비한 동물 실험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꼼꼼히 따진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긴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에 옮기면서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갖게 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풍족한 삶은 지구 어딘가에 쓰레기로 가득한 세상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고 나서는 "만족과 행복이 뭔지"도 알게 된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만족과 행복이다.
 
"나는 물질적으로 풍족했던 시기보다 부족하고 불편한 지금, 오히려 더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낀다. 정작 물질적으로 풍족했을 때는 만족이 뭔지, 행복이 뭔지 알지 못했다. 풍요와 행복은 영영 함께 할 수 없는 단어다. 풍족한 삶에는 행복을 느낄 틈이 없다. 물질적으로 불편함을 감수했을 때 비로소 정신적인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생산과 소비를 줄이는, 절제하는 삶

인간이 내다버린 쓰레기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음식을 먹은 뒤에는 음식물쓰레기를 남긴다. 그 쓰레기가 메탄가스를 생산해 지구 온난화를 부추긴다. 전기를 쓸 때는 각종 대기오염물질과 핵쓰레기를 만들어낸다. 핵쓰레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인류가 만든 최악의 쓰레기다. 그 쓰레기들이 이제는 흉기가 돼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목숨을 노린다.

인류가 지구 생태계를 유지하는 건강한 일원 중의 하나였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 인류는 지구상에서 쓰레기를 양산하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그 쓰레기 때문에 지구의 운명이 위태롭다. 그런데도 별다른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 인류는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한다. 지금 만물의 생존 여부를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니,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 쓰레기는 계속 늘어난다. 이 모든 게 필요 이상으로 많은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됐다. 알바트로스의 죽음은 언젠가 우리가 맞이하게 될 끔찍한 세계의 한 단면이다. 도처에서 무해한 동물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 죽음을 멈추게 하려면, 인간들이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제로 웨이스트, 그것이 곧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최정화 작가의 본업은 소설가다. 작가는 이 책에서 타인이 쓴 소설 문구들을 가져다 썼다. 그래서 책이 얼핏 소설처럼 읽힐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소설'이 아니다. 작가는 생태 환경 문화 잡지사 <작은것이 아름답다>에서 일하다가, 2012년 창작과비평 신인소설상에 '팜비치'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6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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