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되고자 했던 인간 '프랑켄슈타인', 그의 나약함이란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10주년 맞은 <프랑켄슈타인> 한국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 보다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뮤지컬은 판권을 기준으로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판권을 소유한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내한하는 경우, 판권을 구매해 국내 제작사에서 선보이는 '라이선스' 공연, 그리고 제작사가 직접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선보이는 '창작 뮤지컬'.
국내 제작사가 선보이는 라이선스 뮤지컬과 창작 뮤지컬 모두 힘든 작업이겠지만, 그래도 창작 뮤지컬이 더 부담되지 않을까 필자는 짐작한다. 라이선스 뮤지컬의 경우 당연히 창작 뮤지컬에 비해 '창작' 자체에 대한 고민이 훨씬 덜하고, 해외에서 흥행한 작품을 엄선해 들여오는 것이므로 관객의 반응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창작 뮤지컬은 창작 과정의 어려움과 흥행에 대한 고민을 모두 해야 하며, 작품성과 시장성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창작 뮤지컬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개인적으로 더 마음이 쓰인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 10주년으로 돌아온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더 반갑게 느껴진다. 작품성과 시장성을 모두 확보하며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다른 창작자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란 기대도 있다(같은 맥락에서 얼마 전 개막한 <영웅> 15주년 기념공연도 반갑다).
<프랑켄슈타인>은 10주년을 맞아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앙리 뒤프레' 역을 모두 쿼드러플 캐스팅으로 구성했다. 초연 당시 류정한과 함께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연기하며 흥행을 주도했던 유준상이 같은 역에 다시 캐스팅되었고, 신성록과 규현, 전동석이 함께 한다. '앙리 뒤프레' 역에는 초연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작품에 참여해온 박은태가 또다시 캐스팅되었고, 뮤지컬 배우 카이와 이해준, 고은성이 같은 배역을 연기한다. 6월 5일 개막한 <프랑켄슈타인>은 8월 25일까지 한남동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된다.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둔하게 생긴 초록 괴물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메리 셸리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들어낸 과학자의 이름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 창조라는 신의 영역에 도전한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만들어낸 피조물, 즉 괴물의 이야기다. 애니메이션 등에서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괴물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원작 소설은 꽤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을 뮤지컬도 어느 정도 계승한다.
뮤지컬이 시작되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라는 제목을 가진 넘버가 등장한다.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아래 '빅터')의 누나인 엘렌이 빅터의 친구 앙리 뒤프레(아래 '앙리')에게 빅터의 비밀을 말해주는 넘버다. 이 넘버를 통해 관객은 빅터가 생명 창조에 천착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 필자는 전 시즌 통틀어 <프랑켄슈타인>을 총 세 번 보았는데, 이번에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프랑켄슈타인>을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라는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다고 말이다.
빅터와 앙리, 그리고 빅터가 만들어낸 괴물의 행위의 이면엔 모두 '외로움'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빅터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흑사병으로 잃는데, 어머니를 살리겠다는 일념에서 생명 창조의 꿈이 시작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머니를 살리겠다는 빅터를 손가락질하고, 일련의 사건으로 빅터의 아버지가 죽게 되자 빅터를 두려워한다. 모두의 외면 속에 빅터는 고립되었고, 시체를 이용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빅터의 연구는 계속된다.
빅터가 전쟁터에서 만난 앙리 역시 외로움을 간직한 존재다. 가족 없이 혼자 자라온 앙리는 빅터로부터 "친구"라는 말을 처음 듣는데, 이때 앙리의 삶이 바뀐다. 앙리에게 "친구"라는 호명이 얼마나 반갑고 따뜻했을까. 앙리는 빅터의 연구 동료가 되어 헌신한다. 그러던 어느 날 빅터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데, 이때 앙리가 빅터를 대신해 자백한다. 이런 앙리의 결정에는 명확한 신념을 가진 빅터를 향한 동경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처음으로 외로움이 아닌 감정을 느끼게 해준 빅터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앙리는 빅터를 대신해 사형을 당하는 순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넘버 '너의 꿈속에서').
"어차피 그날에 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다시 사는 내 인생도 없었을 거야.
너와 함께 꿈꿀 수 있다면 죽는대도 괜찮아 행복해."
빅터는 앙리의 시체에서 머리를 떼어내 실험의 도구로 활용하고,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바로 '괴물'이라 불리는 존재다. 빅터는 생명 창조를 해냈다는 생각에 기뻐하지만, 이런 태도는 금세 바뀐다. 빅터는 공격성을 보이는 괴물을 죽이려 달려들고, 괴물은 안간힘을 써 탈출한다. 자신을 탄생시킨 창조주로부터 위협을 받은 괴물은 이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받는다. 철저히 혼자가 된 괴물은 자신을 만든 창조주, 즉 빅터에게 복수를 다짐한다(넘버 '난 괴물').
"내가 아팠던 만큼 당신께 돌려 드리리.
세상에 혼자가 된다는 절망 속에 빠뜨리리라."
외로움에 몸부림친 괴물이 선택한 복수는 자신의 창조주를 외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외로움에서 시작된 빅터의 생명 창조의 꿈, 앙리가 자신을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준 빅터를 향해 느낀 감정, 그리고 괴물이 느낀 외로움과 앞으로 빅터가 마주하게 될 외로움까지. 외로움이라는 인류사의 오래된 주제가 <프랑켄슈타인>을 관통한다.
나약함
"신과 맞서 싸워 난 정복하리라, 새 생명의 시대"라고 노래하던 빅터는 스스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이 되고자 했다. 창조주를 꿈꿨으며,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며 꿈을 이루는 듯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빅터의 야망이었고, 또 오만이었다는 게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괴물의 복수를 경험하는 빅터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후회한다(넘버 '후회').
"돌이켜보면 지난 세월들 모두 내 이기적인 욕심뿐
두 눈을 가리고 그림자처럼 내 야망을 쫓아왔네."
이후 빅터는 괴물이 기다리는 북극으로 향한다. 북극에는 빅터와 괴물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괴물은 빅터의 다리에 상처를 남기고, 빅터에게 죽임을 당한다. 빅터는 다리가 다쳐 아무데도 갈 수 없게 되고, 그렇게 영영 북극에 혼자 남게 된다. 괴물의 복수다.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고, 또 자신의 오만에서 비롯된 피조물로부터 복수를 당한 순간, 빅터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괴물은 앙리의 머리로 만들어졌으니 그에게서 앙리의 모습이 보이는 건 당연한 일. 실성한 빅터는 괴물을 "앙리"라고 부르며 끌어안는다. 그리고 노래한다. "차라리 내게 저주를 퍼부어라 신과 맞서 싸워, 나는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이 곡의 멜로디는 빅터가 생명 창조 실험을 하면서 불렀던 바로 그 넘버, 모든 일의 발단이 된 '위대한 생명 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의 멜로디와 동일하다. 빅터는 다시 신에 맞서겠다고 소리친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후회했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다시 그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의 나약함. 그리고 깨닫는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자 했던 빅터도 그저 나약한 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국내 제작사가 선보이는 라이선스 뮤지컬과 창작 뮤지컬 모두 힘든 작업이겠지만, 그래도 창작 뮤지컬이 더 부담되지 않을까 필자는 짐작한다. 라이선스 뮤지컬의 경우 당연히 창작 뮤지컬에 비해 '창작' 자체에 대한 고민이 훨씬 덜하고, 해외에서 흥행한 작품을 엄선해 들여오는 것이므로 관객의 반응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창작 뮤지컬은 창작 과정의 어려움과 흥행에 대한 고민을 모두 해야 하며, 작품성과 시장성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해야 한다.
<프랑켄슈타인>은 10주년을 맞아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앙리 뒤프레' 역을 모두 쿼드러플 캐스팅으로 구성했다. 초연 당시 류정한과 함께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연기하며 흥행을 주도했던 유준상이 같은 역에 다시 캐스팅되었고, 신성록과 규현, 전동석이 함께 한다. '앙리 뒤프레' 역에는 초연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작품에 참여해온 박은태가 또다시 캐스팅되었고, 뮤지컬 배우 카이와 이해준, 고은성이 같은 배역을 연기한다. 6월 5일 개막한 <프랑켄슈타인>은 8월 25일까지 한남동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된다.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연사진 ⓒ EMK뮤지컬컴퍼니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둔하게 생긴 초록 괴물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메리 셸리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들어낸 과학자의 이름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 창조라는 신의 영역에 도전한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만들어낸 피조물, 즉 괴물의 이야기다. 애니메이션 등에서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괴물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원작 소설은 꽤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을 뮤지컬도 어느 정도 계승한다.
뮤지컬이 시작되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라는 제목을 가진 넘버가 등장한다.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아래 '빅터')의 누나인 엘렌이 빅터의 친구 앙리 뒤프레(아래 '앙리')에게 빅터의 비밀을 말해주는 넘버다. 이 넘버를 통해 관객은 빅터가 생명 창조에 천착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 필자는 전 시즌 통틀어 <프랑켄슈타인>을 총 세 번 보았는데, 이번에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프랑켄슈타인>을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라는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다고 말이다.
빅터와 앙리, 그리고 빅터가 만들어낸 괴물의 행위의 이면엔 모두 '외로움'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빅터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흑사병으로 잃는데, 어머니를 살리겠다는 일념에서 생명 창조의 꿈이 시작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머니를 살리겠다는 빅터를 손가락질하고, 일련의 사건으로 빅터의 아버지가 죽게 되자 빅터를 두려워한다. 모두의 외면 속에 빅터는 고립되었고, 시체를 이용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빅터의 연구는 계속된다.
빅터가 전쟁터에서 만난 앙리 역시 외로움을 간직한 존재다. 가족 없이 혼자 자라온 앙리는 빅터로부터 "친구"라는 말을 처음 듣는데, 이때 앙리의 삶이 바뀐다. 앙리에게 "친구"라는 호명이 얼마나 반갑고 따뜻했을까. 앙리는 빅터의 연구 동료가 되어 헌신한다. 그러던 어느 날 빅터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데, 이때 앙리가 빅터를 대신해 자백한다. 이런 앙리의 결정에는 명확한 신념을 가진 빅터를 향한 동경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처음으로 외로움이 아닌 감정을 느끼게 해준 빅터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앙리는 빅터를 대신해 사형을 당하는 순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넘버 '너의 꿈속에서').
"어차피 그날에 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다시 사는 내 인생도 없었을 거야.
너와 함께 꿈꿀 수 있다면 죽는대도 괜찮아 행복해."
빅터는 앙리의 시체에서 머리를 떼어내 실험의 도구로 활용하고,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바로 '괴물'이라 불리는 존재다. 빅터는 생명 창조를 해냈다는 생각에 기뻐하지만, 이런 태도는 금세 바뀐다. 빅터는 공격성을 보이는 괴물을 죽이려 달려들고, 괴물은 안간힘을 써 탈출한다. 자신을 탄생시킨 창조주로부터 위협을 받은 괴물은 이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받는다. 철저히 혼자가 된 괴물은 자신을 만든 창조주, 즉 빅터에게 복수를 다짐한다(넘버 '난 괴물').
"내가 아팠던 만큼 당신께 돌려 드리리.
세상에 혼자가 된다는 절망 속에 빠뜨리리라."
외로움에 몸부림친 괴물이 선택한 복수는 자신의 창조주를 외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외로움에서 시작된 빅터의 생명 창조의 꿈, 앙리가 자신을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준 빅터를 향해 느낀 감정, 그리고 괴물이 느낀 외로움과 앞으로 빅터가 마주하게 될 외로움까지. 외로움이라는 인류사의 오래된 주제가 <프랑켄슈타인>을 관통한다.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연사진 ⓒ EMK뮤지컬컴퍼니
나약함
"신과 맞서 싸워 난 정복하리라, 새 생명의 시대"라고 노래하던 빅터는 스스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이 되고자 했다. 창조주를 꿈꿨으며,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며 꿈을 이루는 듯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빅터의 야망이었고, 또 오만이었다는 게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괴물의 복수를 경험하는 빅터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후회한다(넘버 '후회').
"돌이켜보면 지난 세월들 모두 내 이기적인 욕심뿐
두 눈을 가리고 그림자처럼 내 야망을 쫓아왔네."
이후 빅터는 괴물이 기다리는 북극으로 향한다. 북극에는 빅터와 괴물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괴물은 빅터의 다리에 상처를 남기고, 빅터에게 죽임을 당한다. 빅터는 다리가 다쳐 아무데도 갈 수 없게 되고, 그렇게 영영 북극에 혼자 남게 된다. 괴물의 복수다.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고, 또 자신의 오만에서 비롯된 피조물로부터 복수를 당한 순간, 빅터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괴물은 앙리의 머리로 만들어졌으니 그에게서 앙리의 모습이 보이는 건 당연한 일. 실성한 빅터는 괴물을 "앙리"라고 부르며 끌어안는다. 그리고 노래한다. "차라리 내게 저주를 퍼부어라 신과 맞서 싸워, 나는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이 곡의 멜로디는 빅터가 생명 창조 실험을 하면서 불렀던 바로 그 넘버, 모든 일의 발단이 된 '위대한 생명 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의 멜로디와 동일하다. 빅터는 다시 신에 맞서겠다고 소리친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후회했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다시 그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의 나약함. 그리고 깨닫는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자 했던 빅터도 그저 나약한 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연사진 ⓒ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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