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실패? 재평가 받는 여운 짙은 '이 영화'
[김성호의 씨네만세 759]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 '판' <무뢰한>
뢰(賴)라는 글자가 있다. 흔한 용례로는 '신뢰'에서 믿을 신(信)자 뒤에 붙는 뢰가 바로 이 자다. '의뢰할 뢰'라는 이 글자는 오늘날 그 쓰임이 몇 되지 않는데, 신뢰와 함께 무엇을 맡길 때 쓰는 '의뢰하다'는 말이 이 글자를 쓰는 대표적 사례다.
문자를 파자해보면 剌(어그러질 랄)자와 貝(조개 패)자가 합쳐진 모습으로, 과거 화폐로 이용했던 조개를 본래 뜻과 달리 쓰는 무절제한 광경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뇌물과 수뢰죄에 쓰이는 뇌물 뇌(賂)자는 의뢰할 뢰와 별도의 글자이고, 의뢰할 뢰가 저를 이룬 두 자와 반대되는 개념, 즉 신뢰며 의뢰를 뜻한다는 사실이 여러모로 흥미롭다. 신뢰와 의뢰 모두 믿음과 원칙, 즉 질서를 바탕으로 한 개념이 아닌가 말이다.
의뢰할 뢰자가 인상적으로 쓰이는 용례가 하나 더 있다. 무뢰한, 문자 그대로 '뢰'가 없는 놈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어사전에선 무뢰한에 대하여 '성품이 막되어 예의와 염치를 모르며, 일정한 소속이나 직업이 없이 불량한 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이라 적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뢰라는 글자가 긍정적으로 쓰였음을 알 수가 있다. 원칙 없는 인간, 예의도 염치도 모르는 못된 자가 바로 무뢰한이란 뜻이다.
신뢰소멸 시대, 무뢰한의 세계를 그리다
점차 쓰는 이 없어 사어가 되고 있는 '무뢰한'이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말의 중심을 이루는 의뢰할 뢰자가 사람들에게 명확히 다가서지 않는 탓이 아닌가 한다. 의뢰할 뢰자가 뜻해온 원칙과 신뢰의 영역이 갈수록 소멸해가는 이 시대상의 영향도 없지는 않으리라고 나는 내심 짐작해 본다.
<초록물고기> <8월의 크리스마스>의 각본가 출신으로 2000년 작 <킬리만자로>로 데뷔한 오승욱이 15년 만에 복귀작으로 선택한 영화가 바로 <무뢰한>이다. 점차 쓰는 이 줄어가는 이 말을 제목으로 뽑은 것이 어째서일까를 오래 생각하게 된다. 15년 만에 입을 연 어느 영화인, 그가 전도연과 김남길이란 명배우들을 통하여 펼쳐낸 무뢰한의 세계가 어떤 모양인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한다.
<무뢰한>은 꽤나 독특한 지위를 가진 작품이다. 2015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총 관객수 41만 명으로 그 상영을 마감했다. 제작비 35억 원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 위해 160만 명쯤은 들어야 했는데 그 사분의 일밖에 관객을 모으지 못했다. 말하자면 흥행에 참패했다는 얘기다. 한국에선 꽤나 장르적 선호도가 높은 누아르 영화로, 연기력과 흥행성 모두를 갖춘 배우들을 기용했단 점을 고려하면 아쉬움이 클 밖에 없다.
흥행참패, 그러나 여전히 회자되는
그러나 이 영화는 그저 그런 실패작처럼 사라지진 않았다.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가 주목받는 프로그램인 '판' 섹션, '토킹시네마'에서 이 작품을 선정해 소개한 것도 이를 증명한다. 9년 전 나온 흥행참패작을 다시 불러와 오늘의 영화팬 앞에 세우는 것, 그 패자부활전 같은 기회를 이 영화에 허하기까지 <무뢰한>이 가진 특별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단 건 분명한 일이다.
<무뢰한>은 오늘의 관객에게 어째서 다시 보여져야 하는가. 그것이 오늘 '씨네만세'가 다루려는 바다. 이 영화의 들여다보고, 그것이 내포한 맛과 멋을 곱씹어 보는 일, 그리하여 무주산골영화제의 선택이 가진 의미를 풀어내는 것이 의미있는 작업임을 증명해 보려 한다.
정재곤(김남길 분)은 형사다. 서울 용산경찰서 소속 형사로, 살인사건 용의자를 쫓는 중이다. 용의자 박준길(박성웅 분)은 사건을 저지른 뒤 종적을 감췄다. 실마리는 그의 애인 김혜경(전도연 분) 뿐이다. 비슷한 사건을 수도 없이 해결해온 짬밥 있는 정재곤이다. 박준길은 반드시 김혜경 앞에 나타날 것을 확신한다. 정재곤은 김혜경의 주변을 탐문하는 걸 시작으로 그녀에게 접근해 박준길을 기다린다.
당신이 심연을 바라보면 심연도 당신을 본다
영화는 형사 정재곤이 어떤 인간인가를 내보인다. 흔히 생각하는 법의 수호자, 공명정대한 민중의 지팡이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그는 그런 인간이 아니니까.
정재곤은 시종 관객의 기대를 벗어난다. 함께 잠복하던 선배 문기범(곽도원 분)이 후배 형사들에게 재곤이 누구인지를 말하며 소개하는 일화는 그가 어떤 인간인지를 단적으로 내보인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재곤이 그를 멋지게 해결했단다. 도주한 용의자를 찾을 실마리는 딱 하나, 그의 애인뿐이었다고. 애인이 분명히 용의자의 소재를 알고는 있는데 어떤 수를 써도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재곤이 어떻게 했느냐고? 돼지발정제를 가져가 그녀의 음부에 펴발랐다고 한다. 그녀가 어떻게 제 애인의 행방을 술술 말했는지를 기범은 연기까지 곁들여서 실감나게 묘사한다.
재곤의 뒤를 따르다보면 정말 그가 그랬을 법 하다고 여기게 된다. 그는 합법적인 수단만으로 범인을 좇지 않는다. <범죄도시> 류의 영화에서 내보인 소위 '진실의 방' 정도는 약과다. 죄 없는 이를 묶어놓고 패고, 필요하다면 협박이며 도청도 불사한다. 그의 목표란 오직 범인을 잡는 것이다. 잔뜩 지친 표정으로 범인을 쫓는 그의 모습은 사파리의 깡마른 맹수처럼 간절하고 절실하다. 영양을 잡는 표범에게 도덕을 논하지 않듯이 그의 절실한 질주 앞에 법과 정의의 잣대 따윈 무용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
돌아보면 모두가 무뢰한인 세계
<무뢰한>이 흥미로운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결코 정의롭다 할 수 없는 형사를 주인공 삼아 그가 살인용의자를 검거하기까지를 보이는 것이 영화의 주된 얼개다. 영화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제목의 무뢰한은 재곤을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관객은 이내 알게 된다. 재곤과 혜경을 둘러싼 이들이 진짜 무뢰한이란 걸.
재곤이 한때 모셨던 전직 경찰은 지역 유지와 긴밀히 유착된 관계다. 뇌물을 받아 옷을 벗고도 재곤과 기범 같은 옛 부하들을 찾아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사장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사업가가 그의 뒷배다. 이사장 수하로 궂은 일을 맡아하는 민영기(김민재 분)는 또 어떤가. 혜경이 진 빚을 목줄 삼아 그녀를 협박하는 태도가 저열하기 짝이 없다. 재곤 같은 형사에게도 당당히 뇌물을 먹이는 모습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기범은 재곤에게 배운 솜씨라며 돼지발정제를 수사에 쓰려고 시도하고, 그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혜경의 이름으로 돈을 빌려 도주자금으로 쓰고, 심지어 온갖 거짓을 동원해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애인 준길도 마찬가지다. 살만큼 살면서도 술집에 진 빚을 갚지 않으려는 인간은 또 어떤가. 공직자, 사업가, 조직폭력배, 기타 온갖 인간들이 죄다 무뢰한이 아닌가 말이다.
잘못 피어나 짓밟히는 들꽃을 보듯
<무뢰한>은 섣부른 답을 내놓지 않는다. 신뢰와 질서가 사라진 세계에서 피어나는 어느 좋은 것이 어떻게 더럽혀지는 지를 보일 뿐이다. 혜경을 향해 피어나는 재곤의 마음, 그에 조금씩 젖어드는 혜경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형사와 그가 쫓는 살인자의 애인이라는 상황이 둘 사이가 진전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지만, 그럴수록 재곤은 혜경에게 더한 끌림을 느낀다.
호감, 사랑, 공감, 연민, 그밖에 피어나는 온갖 좋은 것들이 무참하게 무너지는 광경이 안타깝다. 누아르의 방식으로, 즉 나쁜새끼의 사정을 이해하도록 하는 이 장르 특유의 문법으로 영화는 관객에게 제가 보는 세계를 펼쳐낸다. 그와 같은 세상이 우리가 사는 현실 가운데 없다 할 수 없기에 관객은 진한 감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 자리가 아닌 곳에 피어나 짓밟히는 들꽃을 보는 듯한 감상을 일으킨다. 정작 무뢰한 이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 잘못 피어난 한 떨기 들꽃의 불행을 지켜보는 일이 고되다. 무뢰한이 되지 않고선 제대로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 끝끝내 무뢰한이 될 수 없었던 이의 허망한 손짓을 끝으로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무뢰한>의 가장 큰 힘은 영화가 일으키는 그 진한 감상에 있다. 악이 선을 압도하는, 악이 선인 양 떵떵거리는, 선이 악을 흉내내는, 그러나 마침내 선이 악이 되어가는, <무뢰한> 속 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감상을 더욱 진하게 만든다.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가 이 작품을 토킹시네마 프로그램에 내걸었다는 건 이 영화가 여전히 유효하단 걸 알아보았단 뜻이겠다.
문자를 파자해보면 剌(어그러질 랄)자와 貝(조개 패)자가 합쳐진 모습으로, 과거 화폐로 이용했던 조개를 본래 뜻과 달리 쓰는 무절제한 광경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뇌물과 수뢰죄에 쓰이는 뇌물 뇌(賂)자는 의뢰할 뢰와 별도의 글자이고, 의뢰할 뢰가 저를 이룬 두 자와 반대되는 개념, 즉 신뢰며 의뢰를 뜻한다는 사실이 여러모로 흥미롭다. 신뢰와 의뢰 모두 믿음과 원칙, 즉 질서를 바탕으로 한 개념이 아닌가 말이다.
▲ 영화 <무뢰한> 포스터 ⓒ 무주산골영화제
신뢰소멸 시대, 무뢰한의 세계를 그리다
점차 쓰는 이 없어 사어가 되고 있는 '무뢰한'이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말의 중심을 이루는 의뢰할 뢰자가 사람들에게 명확히 다가서지 않는 탓이 아닌가 한다. 의뢰할 뢰자가 뜻해온 원칙과 신뢰의 영역이 갈수록 소멸해가는 이 시대상의 영향도 없지는 않으리라고 나는 내심 짐작해 본다.
<초록물고기> <8월의 크리스마스>의 각본가 출신으로 2000년 작 <킬리만자로>로 데뷔한 오승욱이 15년 만에 복귀작으로 선택한 영화가 바로 <무뢰한>이다. 점차 쓰는 이 줄어가는 이 말을 제목으로 뽑은 것이 어째서일까를 오래 생각하게 된다. 15년 만에 입을 연 어느 영화인, 그가 전도연과 김남길이란 명배우들을 통하여 펼쳐낸 무뢰한의 세계가 어떤 모양인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한다.
<무뢰한>은 꽤나 독특한 지위를 가진 작품이다. 2015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총 관객수 41만 명으로 그 상영을 마감했다. 제작비 35억 원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 위해 160만 명쯤은 들어야 했는데 그 사분의 일밖에 관객을 모으지 못했다. 말하자면 흥행에 참패했다는 얘기다. 한국에선 꽤나 장르적 선호도가 높은 누아르 영화로, 연기력과 흥행성 모두를 갖춘 배우들을 기용했단 점을 고려하면 아쉬움이 클 밖에 없다.
▲ 영화 <무뢰한> 스틸컷 ⓒ 무주산골영화제
흥행참패, 그러나 여전히 회자되는
그러나 이 영화는 그저 그런 실패작처럼 사라지진 않았다.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가 주목받는 프로그램인 '판' 섹션, '토킹시네마'에서 이 작품을 선정해 소개한 것도 이를 증명한다. 9년 전 나온 흥행참패작을 다시 불러와 오늘의 영화팬 앞에 세우는 것, 그 패자부활전 같은 기회를 이 영화에 허하기까지 <무뢰한>이 가진 특별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단 건 분명한 일이다.
<무뢰한>은 오늘의 관객에게 어째서 다시 보여져야 하는가. 그것이 오늘 '씨네만세'가 다루려는 바다. 이 영화의 들여다보고, 그것이 내포한 맛과 멋을 곱씹어 보는 일, 그리하여 무주산골영화제의 선택이 가진 의미를 풀어내는 것이 의미있는 작업임을 증명해 보려 한다.
정재곤(김남길 분)은 형사다. 서울 용산경찰서 소속 형사로, 살인사건 용의자를 쫓는 중이다. 용의자 박준길(박성웅 분)은 사건을 저지른 뒤 종적을 감췄다. 실마리는 그의 애인 김혜경(전도연 분) 뿐이다. 비슷한 사건을 수도 없이 해결해온 짬밥 있는 정재곤이다. 박준길은 반드시 김혜경 앞에 나타날 것을 확신한다. 정재곤은 김혜경의 주변을 탐문하는 걸 시작으로 그녀에게 접근해 박준길을 기다린다.
▲ 영화 <무뢰한> 스틸컷 ⓒ 무주산골영화제
당신이 심연을 바라보면 심연도 당신을 본다
영화는 형사 정재곤이 어떤 인간인가를 내보인다. 흔히 생각하는 법의 수호자, 공명정대한 민중의 지팡이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그는 그런 인간이 아니니까.
정재곤은 시종 관객의 기대를 벗어난다. 함께 잠복하던 선배 문기범(곽도원 분)이 후배 형사들에게 재곤이 누구인지를 말하며 소개하는 일화는 그가 어떤 인간인지를 단적으로 내보인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재곤이 그를 멋지게 해결했단다. 도주한 용의자를 찾을 실마리는 딱 하나, 그의 애인뿐이었다고. 애인이 분명히 용의자의 소재를 알고는 있는데 어떤 수를 써도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재곤이 어떻게 했느냐고? 돼지발정제를 가져가 그녀의 음부에 펴발랐다고 한다. 그녀가 어떻게 제 애인의 행방을 술술 말했는지를 기범은 연기까지 곁들여서 실감나게 묘사한다.
재곤의 뒤를 따르다보면 정말 그가 그랬을 법 하다고 여기게 된다. 그는 합법적인 수단만으로 범인을 좇지 않는다. <범죄도시> 류의 영화에서 내보인 소위 '진실의 방' 정도는 약과다. 죄 없는 이를 묶어놓고 패고, 필요하다면 협박이며 도청도 불사한다. 그의 목표란 오직 범인을 잡는 것이다. 잔뜩 지친 표정으로 범인을 쫓는 그의 모습은 사파리의 깡마른 맹수처럼 간절하고 절실하다. 영양을 잡는 표범에게 도덕을 논하지 않듯이 그의 절실한 질주 앞에 법과 정의의 잣대 따윈 무용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
▲ 영화 <무뢰한> 스틸컷 ⓒ 무주산골영화제
돌아보면 모두가 무뢰한인 세계
<무뢰한>이 흥미로운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결코 정의롭다 할 수 없는 형사를 주인공 삼아 그가 살인용의자를 검거하기까지를 보이는 것이 영화의 주된 얼개다. 영화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제목의 무뢰한은 재곤을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관객은 이내 알게 된다. 재곤과 혜경을 둘러싼 이들이 진짜 무뢰한이란 걸.
재곤이 한때 모셨던 전직 경찰은 지역 유지와 긴밀히 유착된 관계다. 뇌물을 받아 옷을 벗고도 재곤과 기범 같은 옛 부하들을 찾아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사장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사업가가 그의 뒷배다. 이사장 수하로 궂은 일을 맡아하는 민영기(김민재 분)는 또 어떤가. 혜경이 진 빚을 목줄 삼아 그녀를 협박하는 태도가 저열하기 짝이 없다. 재곤 같은 형사에게도 당당히 뇌물을 먹이는 모습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기범은 재곤에게 배운 솜씨라며 돼지발정제를 수사에 쓰려고 시도하고, 그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혜경의 이름으로 돈을 빌려 도주자금으로 쓰고, 심지어 온갖 거짓을 동원해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애인 준길도 마찬가지다. 살만큼 살면서도 술집에 진 빚을 갚지 않으려는 인간은 또 어떤가. 공직자, 사업가, 조직폭력배, 기타 온갖 인간들이 죄다 무뢰한이 아닌가 말이다.
▲ 무주산골영화제 포스터 ⓒ 무주산골영화제
잘못 피어나 짓밟히는 들꽃을 보듯
<무뢰한>은 섣부른 답을 내놓지 않는다. 신뢰와 질서가 사라진 세계에서 피어나는 어느 좋은 것이 어떻게 더럽혀지는 지를 보일 뿐이다. 혜경을 향해 피어나는 재곤의 마음, 그에 조금씩 젖어드는 혜경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형사와 그가 쫓는 살인자의 애인이라는 상황이 둘 사이가 진전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지만, 그럴수록 재곤은 혜경에게 더한 끌림을 느낀다.
호감, 사랑, 공감, 연민, 그밖에 피어나는 온갖 좋은 것들이 무참하게 무너지는 광경이 안타깝다. 누아르의 방식으로, 즉 나쁜새끼의 사정을 이해하도록 하는 이 장르 특유의 문법으로 영화는 관객에게 제가 보는 세계를 펼쳐낸다. 그와 같은 세상이 우리가 사는 현실 가운데 없다 할 수 없기에 관객은 진한 감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 자리가 아닌 곳에 피어나 짓밟히는 들꽃을 보는 듯한 감상을 일으킨다. 정작 무뢰한 이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 잘못 피어난 한 떨기 들꽃의 불행을 지켜보는 일이 고되다. 무뢰한이 되지 않고선 제대로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 끝끝내 무뢰한이 될 수 없었던 이의 허망한 손짓을 끝으로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무뢰한>의 가장 큰 힘은 영화가 일으키는 그 진한 감상에 있다. 악이 선을 압도하는, 악이 선인 양 떵떵거리는, 선이 악을 흉내내는, 그러나 마침내 선이 악이 되어가는, <무뢰한> 속 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감상을 더욱 진하게 만든다.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가 이 작품을 토킹시네마 프로그램에 내걸었다는 건 이 영화가 여전히 유효하단 걸 알아보았단 뜻이겠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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