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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받고 군사반란 가담한 사람들, 다 여기 묻혀있습니다

[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 5공화국 주요 인사 15명은 어떻게 현충원에 묻혔나

등록|2024.06.24 12:04 수정|2024.06.24 12:04
12.12 군사반란으로 군을 장악했던 전두환 신군부는 5.17 내란으로 5.18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했을 뿐만 아니라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1980년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한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을 사실상 강압적으로 사임시키고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를 장충체육관에서 실시하고 27일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 제11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전두환의 모습 ⓒ 대통령 기록관


이 선거를 통한 대통령 임기는 서거한 박정희 대통령의 잔여 임기인 1984년 12월 26일 까지였고, 이에 전두환은 7년 단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개헌하고 1981년 2월 25일 제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제5공화국이 시작되었습니다.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제5공화국 헌법은 지금의 헌법으로 개헌됐고, 1987년 12월 16일에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부터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5공화국의 대통령은 전두환 단 한 명이었고, 따라서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을 제5공화국이라 흔히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7년에 걸친 제5공화국이었기에 정부 요직을 거친 인물은 지금에 비해 아주 많습니다. 6명의 국무총리, 111명의 국무위원(장관), 그리고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직속기관장(감사원장, 안전기획부장, 방송위원장, 대통령비서실장, 대통령경호실장)이 19명으로 총 136명에 이릅니다. 직을 옮겨간 인원을 제하면 총 110명의 인사들이 거쳐갔습니다.
 

▲ 제5공화국 주요 인사 사망자 안장 현황 ⓒ 정성일


제5공화국과 관련된 인물들은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5년에 준공된 대전현충원에 많이 안장되어있습니다. 제5공화국 주요인사 110명 가운데 24명이 군인 출신이었기에 이들 가운데 7명은 장군의 자격으로 서울현충원에 1명, 대전현충원에 6명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3명은 국가유공자의 자격으로 서울에 1명, 대전에 2명이 안장되어 총 10명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비군인 출신 인사의 경우 대부분 국가유공자 자격으로 안장되어 있으며 서울현충원에 10명, 대전현충원에 7명이 안장되어있습니다.

사회공헌자묘역은 국립묘지법 제5조 제1항 제1호 파목을 근거로 훈장을 받은 사람이 안장될 수 있고, 심의를 통해 안장 여부가 결정됩니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장관들은 대부분 훈장을 수여 받았고, 이에 대전현충원 사회공헌자 묘역에는 상당수의 국무총리 및 장관들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비군인 출신의 제5공화국 주요 인사들은 이렇게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을 일괄해서 군부독재 부역자라고 욕할 수는 없습니다. 전두환의 독재와 별개로 본인의 위치에서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된 이들
 

▲ 제5공화국 주요 인사 대전현충원 안장자 정보 ⓒ 정성일


대표적으로 체신부 최순달 장관과 윤석중 방송위원장이 있습니다. 최순달 장관은 1992년 우리별 1호 발사 책임자로 '대한민국 우주개발의 아버지'로 불립니다.(관련기사: 한국 과학기술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 이곳에 있습니다 ) 윤석중 방송위원장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새 신', '똑같아요', '나란히', '우산' 등 우리들이 어린시절 즐겨 불었던 수많은 동요가 그가 작사한 노래로, '동요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상호 체육부 장관은 중령 예편 군인 출신으로 장병묘역에 안장되어야 하지만, 서울올림픽 유치의 공으로 체육훈장 청룡장 수여 받았고, 이후 체육부 장관도 역임하면서 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될 수 있었습니다. 황인성 농림수산부 장관 또한 소장 출신으로 장군묘역에 안장될 수 있었지만, 사회공헌자묘역을 선택하여 안장되었습니다.

그 외 6명의 장성 출신 주요 인사들은 장군1묘역과 장군2묘역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국립묘지법 제5조 제1항 제1호 마목에 따르면 장성급 장교는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다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국립묘지법 제5조 제5항 제3호는 안장 제한에 관한 내용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군형법 제5조 반란죄, 형법 제87조 내란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 제2조 뇌물죄로 금고 1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경우 안장자격이 박탈됩니다.

12.12 군사반란을 무기력하게 지켜보았고 반란을 용인했던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은 제5공화국에서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였습니다. 제5공화국 당시 박희도, 박준병과 함께 '쓰리박'이라 불렸던 육사12기 체육부 장관 박세직은 하나회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반란죄로 처벌 받은 바 없기에 장군묘역에 안장될 수 있었습니다.

전두환의 선배로 신군부의 반란과 내란에 앞장섰고 초대 안전기획부장을 역임했던 유학성의 경우 고등법원에서 군형법 제5조 반란죄와 형법 제87조 내란죄로 징역 6년을 선고 받았으나 대법원 확정판결 2주전 사망함으로써 형이 확정되지 못했고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습니다.

육사17기 하나회 멤버였던 안현태 대통령경호실장은 5공 비리로 1997년 대법원으로부터 특가법 제2조 뇌물죄로 징역 2년 6개월에 추징금 5000만원의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형이 확정되었기에 안장자격이 박탈되었으나, 1998년 8.15 특별사면으로 사면·복권되었다는 이유로 2011년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현태 경호실장의 묘 바로 뒤편에는 전두환 신군부의 반란을 저지하고자 했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 안현태의 묘 뒤로 보이는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의 묘 ⓒ 임재근


국립대전현충원은 14만여 위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영면해 계시는 보훈의 성지입니다. 이러한 곳에 확정판결 이전에 사망을 이유로, 사면을 이유로 반란과 내란을 일으키고 공직을 이용하여 뇌물을 수수한 자들이 함께 있음으로써 성지에 얼룩이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립묘지법의 개정으로 성지가 성지답게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덧붙이는 글
[참고자료]
국립묘지법 제5조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8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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