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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조직으로 민생을 지킨다

노동공제로 노조 바깥에 노동자조직 실험하기, 중간 평가

등록|2024.06.20 13:17 수정|2024.06.20 13:17
걸핏하면 민생(民生)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일반 국민의 생활과 생계'는 항상 걱정이다. 올해 1분기 우리나라 GDP는 1.3% '깜짝 성장'을 했고, 1인당 GNI는 3만 6,000달러를 넘어 일본을 제치고 인구 5천만 이상인 나라 중에 6위를 차지했다나? 그런데 일반 국민은 도통 느껴지질 않는다. 나아졌다는 것이. 이게 무슨 귀신 곡할 노릇인가?

이제 돈의 흐름이 아니라, 사람을 주목해 보자

민(民)과 생(生)을 나눠서 보자. 민(民)=일반국민은 5,175만 명이고 경제활동인구 2,980만 명 가운데 취업자는 2,892만 명으로 이들이 '근로소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즉 '노동자'다. 생(生)=존엄한 삶을 지키기 위해 헌법에 국민의 기본권을 명시하고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노동권을 헌법에서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그 법률을 적용받는 노동자가 절반 정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노동법 체계는 고용‧피고용 관계가 특정되어야만-사업주를 특정할 수 있어야만 적용하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법을 적용받는 노동자라고 해도 언감생심 기업복지를 기대할 수 없는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적극적이지 않으며, 그러하니 사용자의 탈법과 불법이 통제될 수 없는 악순환을 겪는다. 이 지경이라면 현찰을 막 뿌려도 주워 담을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으로 갈려있는 형국이니 무슨 민생이 지켜지겠나.

그래서 우리는 주목했다. '노조 할 권리'를 계몽하기보다는 '노조 할 이유'를 만들자고. 노동공제는 조합원이 매월 일정한 공제료를 내어 적립금을 조성하고 조합원이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그 적립금을 이용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는 체계를 말한다. 노동불평등이 구조화 되면서 임금, 노동조건, 복지에서 양극화가 심화하고, '노조 바깥쪽 노동'이 굳어지면서 기존 노동전략으로는 더 이상 복지향상과 권리개선에 대해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권리가 있으니 하자'는 공허하다고 누구나 안다. 그래도 어떤 노동자들은 부조리함을 개선해보자고 업종별로 열심을 내어 조직하고 투쟁한다. 그런데 개선이 더디다 보니 지친다. 혹은 그 개선의 결과는 조합원에게만 주어지는 게 아니니 비조합원 동료에게 화가 난다. 회의가 인다. 그래서 먼저 해야 할 것이 '관계'를 맺는 것이다. 동료와의 관계, 내가 속한 조직과의 관계. 이 추상적인 구상을 현실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체계로 만든 것이 노동 공제사업이다. 그리고 지난한 교섭과 투쟁의 과정을 버티자는 것이다.

'공제회를 품은 노동조합' 그리고 노동공제연합 '풀빵'

이런 구상이 현실로 옮겨진 게 '봉제인공제회'다. 화섬식품노조와 시민사회단체는 전태일 열사의 후배인 도심 영세봉제공장 노동자 조직화를 '공제회를 품은 노동조합'이라는 구상으로 연결했다. 바로 위에서 말한 연유에서다. 이 시도는 다른 이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그래서 힘을 합쳐보자고 만든 것이 '풀빵'이다. 노동공제연합회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노동공제사업의 플랫폼 역할을 맡겼다. 단위 조직의 규모와 역량의 차이가 큰지라 공통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제 품목을 운용하기로 했는데, 월 6,000원의 공제료를 내고 명절선물, 재해사망위로금, 입원수당, 소액대출과 적립형공제 같은 것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조합원이 말하는 단비, 자존감, 든든함, 연대

우리의 구상은 현실에서 잘 작동이 될까? 시작한 지 2년 만에 30명을 한 명씩 인터뷰했다. 총 35시간 33분.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가정사, 사고에 충분히 대처할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겐 사회적 안전망 보완재였다. 이때까지 누가 아무도 안 쳐다 봐줬는데 '챙김'을 받게 되니 드는 자존감과 소속감. 같은 업종에 종사하지만, 경쟁자에서 동료, 가족 같은 관계로 변화. 조합원의 일상을 나누는 간부와 조직. 조직의 역량이 모래알에서 진흙으로 발전. 나는 공제품목을 이용할 일이 없더라도 내가 낸 공제료를 누군가 이용한다면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한편, 노동공제 사업을 도입한 노동조합 조직들이 총회에 제출하는 사업평가를 모아보더라도 조직확장과 안정, 활성화에 이바지한 바가 크고 따라서 이후에도 사업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로써 '노조 할 이유로서 노동공제', '관계-연대성 회복으로서 노동공제'는 의미 있는 시도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불안정 노동자가 조직 가지게 하는 것, 미조직 근로자 지원의 핵심

노동공제 사업을 도입한 이유와 배경은 다양하다. 노조 바깥에 노동자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들은 조직 노동이 대변하고 법, 제도개선으로 권리보호와 근로조건이 개선되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도 상당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불안정노동, 비정형 노동이라고 불리는 만큼 조직의 경로, 조직운영 원리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그 방안으로 노동공제 사업의 의미를 확인했고 이제 더 확장된 공론장이 필요하다. 그 논의를 토대로 기성 노조조직의 이른바 '미조직사업' '비정규노조에 연대·지원'의 전략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본격적인 노동공제 실험 2년, 불안정 노동자들의 조직화 실험은 '민생(民生)조직이 민생을 지킨다'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조 밖'이라는 시각은 어느 위치에서 바라보는 것일까?

노동공제연합 (사)풀빵은 오는 25일 오후 2시, '청년문화공간JU_다리 소극장'에서 이와 같은 내용의 성과공유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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