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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가 무섭다는 딸, 아빠는 네가 무섭다

[50대 아빠 두 꼬맹이 양육기⑭] 아들과 딸의 각기 다른 공포

등록|2024.06.23 11:47 수정|2024.06.23 11:47
"거미 무서워. 거미 무서워."(딸은 개미를 거미라 부른다.)

곤충생태원 야외 정원을 거닐던 6살 딸이 갑자기 발바닥을 '동동'거리며 울음 섞인 목소리를 낸다. 조금 전 흙바닥을 개미가 지나갔다. 여러 마리가 눈에 띄긴 했지만 '꽤 많네' 할 정도는 아니었다. 놀이터에서 놀다 보면 개미야 종종 만난다. 유치원 놀이터 앞엔 정원이 있고, 당연히 바닥은 흙이다. 개미를 한두 번 본 게 아닐 텐데 왜 이러나 싶다.

개미가 우서운 딸

딸보다 한 살 많은 아들을 바라봤다. '너는 이유를 알겠니' 하는 눈빛을 보냈다. 눈빛 메시지를 정확히 읽은 아들이 양 어깨를 으쓱한다. 자기 역시 이유를 모르겠단 뜻이다. 딸 손을 잡고 개미가 없는 쪽으로 이끌었다. 딸은 여전히 '무서워 무서워' 하며 발을 동동거린다. '휴' 한숨이 나온다. 살짝 짜증도 난다. 뜸을 들이며 감정을 가라앉힌다. 이럴 때 짜증을 내면 큰 일이다.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딸 손을 잡고 물가로 이끌었다. 시선을 돌려야겠단 판단에서다. "우와, 여기 호수인가. 강인가." "물에서 올챙이 찾아볼까. 개구리도 있을까." 1%도 효과가 없다. 딸은 여전하다. 조금씩 수위가 점점 더 높아지는 느낌이다. 10분이 지났다. 감정이 다시 올라온다. 이럴 때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지금 해내는 중이다. 한 발짝만 미끄러지면 '버럭' 한 바구니가 쏟아진다.

빨리 콘크리트가 깔린 포장길로 나서야 한다. 이 밟기 좋고, 보기 좋은 흙이 딸에겐 공포 그 자체다. 가장 빠른 길을 따라 다리까지 이르렀다. 다리는 쇠다리다. 딸은 여전히 우는 중이다. 눈물 '뚝뚝'이다. 다리만 건너면 된다. 30초만 지나면 드디어 우리 일행은 흙 한 줌 없는 콘크리트 땅에 발을 디딘다.

드디어 도착. '엥?' 딸은 여전히 발 '동동', '으엥으엥'이다. 주변을 정찰대라도 된 것처럼 수색했다. 살짝 뭔가 움직이는 듯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개미다. 따지고 보면 개미가 없는 게 이상하다. 아무리 주차장이라지만 바로 옆이 나무다. 개미가 있는 게 당연하다. 그러면 딸은 설마 저 보일 듯 말 듯한 개미 한 마리 때문에 우는 걸까? 그렇게 시력이 좋다는 건가? 아니면 아직도 여진이 남아서?

가까이서 웅크리고 봐야 겨우 보이는 개미 몇 마리 있는 곳에서 이제는 '발악울음'을 쏟는 딸을 보면서 이를 깨물었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끙' 소리가 절로 나왔다. 눈치 빠른 아들은 이럴 때 조용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알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오르막을 오르자 가게가 나왔다. 과자, 물, 라면을 파는 곳이다.

어라, 딸 울음소리가 낮아졌고, '동동'거리는 발소리가 약해졌다. 딸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기서 간식 하나씩 먹고 갈까?"

딸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에이, 안되겠다. 저기도 개미 있을 텐데."

딸이 황급히 반응한다.

"괜찮아. 들어갈 수 있어."
"아니야. 개미 있어서 안돼. 그냥 차로 가자."

"괜찮다니까. 이제 개미 안 무서워."
"진짜? 진짜 개미 안 무서워?"

딸은 아빠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까 봐 할 수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빠와 눈이 마주친 아들이 양 어깨를 올렸다 내린다. '뭐야, 이 바뀐 태도는...'이란 마음을 담은 어깨짓이다.

재차 확인했고, 딸은 발 '동동'을 멈췄고, 처절한 울음을 멈췄다. 조금 전까지 개미를 보고선 자지러질 듯했던 딸이었다. 옛말에 호랑이보다 무서운 게 곶감이라더니 딱 그 짝이었다. 허무했고 한편으론 어이없었다. 딸이 보인 행동을 거짓으로 보기엔 너무 열심이었다. 딸은 진심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져도 되는 건가.
 

▲ 무서운 게 많은 아이들, 어른 시각으로 보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아이들의 두려움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길게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금방 사라진다. ⓒ 김대홍


어둠이 두려운 아들

생각해보니 딸이 개미에 보인 공포심은 아들한테 기인한 것 같기도 하다. 아들은 작은 개미는 무서워하지 않지만 큰 모형개미나 큰 모형거미는 무서워한다.

한 달 전쯤 권정생 동화나라를 방문했을 때다. 폐교를 단장한 동화나라 안은 문학관과 아이들 놀이터였다. 아이들 손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갑자기 아들이 '악' 거리며 뒷걸음질쳤다. 아들 시선을 쫓아가 보니 아이 크기만한 개미가 벽에 가득했다. 모형 개미떼였다.

아들은 박물관이나 전시관, 놀이터에 갈 때마다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아들은 그 증상이 옅어지는 중이었는데, 왠 시소 이론인지 딸이 그 증상을 보였다. '오마이갓'이었다.

아들은 어릴 때 어둠을 무척 두려워했다. 실내 전시관에 들어갔다 완강히 저항하는 바람에 그냥 돌아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저녁에 잘 때도 꼭 불을 켜놓아야 했다. 불을 켜놓고 방문을 활짝 열어야 아들은 잠이 들었다.

아들은 야경증도 겪었다. 처음 발견한 건 4살 때다. 잠자리에 들고서 1시간 정도가 지나자 마구 울기 시작했다. 처음엔 깼나 싶었는데 꿈 속이었다.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무서워, 무서워', '저리 가, 저리 가'를 외치기도 했다. 아들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아들을 때로는 안고, 때로는 '둥개둥개'를 하며 달랬다. 말을 건네면 때로는 적절하게 대답했다. 아들은 꿈속에서 악몽을 꿨고, 항상 괴물이 나타나는 상황이었다. 5살이 되자 뜸해지더니 빈도수가 확 줄어들었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낮에 무언가 자극이 되면 다시 자다가 울었다. 7살인 지금도 가끔씩 야경증이 나타난다.

문제는 딸은 정반대라는 점이었다. 딸은 "밝아서 잠을 못자겠다"면서 엄마 아빠에게 민원을 넣었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난제였다. 두 아이는 한 방에서 자야 했고, 한 아이는 어둠이 무서웠고, 한 아이는 밝음이 싫었다. 결국 딸에게 안대를 씌웠다. 딸도 진화를 했다. 안대를 쓰고서도 밝다고 짜증을 냈다. 아이가 짜증을 내자 나 또한 몇 배로 짜증이 올라왔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를 몇 번이나 되뇌었다.

딸을 2층침대 1층에 넣고, 이불로 긴 커튼을 만들었다. 그렇게 평화가 찾아왔다.

아빠도 어릴 적엔 

돌이켜보면 나도 어릴 때 무서워하는 게 많았다. 어둠이 무서웠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부엌에서 씻지를 못했다. 부엌은 무척 어두웠고, 세수를 하려면 눈을 감아야 하는데 그게 참 두려웠다. 눈을 뜨고 얼굴에 비누칠을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 교통사고 현장을 보고선 불면증을 겪었다. 불 꺼진 저녁이 두려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불을 켜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 과거가 있기에 아이들이 어둠을 두려워하는 게 이해가 된다.

아들과 딸이 요즘 자주 하는 대화 중 '죽음'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누가 죽었다 하고, '너 죽었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엄마 아빠가 죽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언젠가 한 번은 아들이 "나는 이제 지구를 영영 떠납니다. 이 세상을 떠납니다"라고 말해서 기겁하며 입을 막았다. 아들 딸과 종종 만나는 또래 친구 한 명도 "나는 죽는다 헤헤헤"라고 몇 번이나 말하는 걸 들었다.

죽음이라는 건 살면서 평생 겪는 가장 큰 두려움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그 두려움을 밖으로 꺼내면서 이겨내는 게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두려운 게 많다. 나이가 들더라도 두려움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또다른 두려움들이 나타날 게 분명하다. 평생 두려움에 맞서고 견디는 힘은 지금 이 시기에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두려움에 잘 맞서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으로 아들딸을 바라보니 눈이 마주친 아이들이 '낄낄'거리며 다가온다. '헉' 저 아이들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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