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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함이 만들어낸 '살리는 힘'... 아이들도 그렇기를

[서평] 그림책 <벌새 하나가 작은 날개를 펼칠 때>를 함께 낭독하면서

등록|2024.06.21 17:12 수정|2024.06.21 17:17
고운 그림책 <벌새 하나가 작은 날개를 펼칠 때>를 켰다. '폈다'를 잘못 쓴 것이 아니다. 그림책을 바이올린을 켜듯이 했다는 말이다. 내가 일하는 꼬마평화도서관, 그곳 사람들은 여럿이 둘러앉아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그림책 켜기' 또는 '그림책 연주'라고 부른다.
   

▲ '벌새 하나가 작은 날개를 펼칠 때'를 연주하는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 ⓒ 변택주


며칠 전 함께 모여 '연주'한 그림책 가운데 하나, 델핀 자코가 짓고 생태동화작가 권오준 선생이 번역한 <벌새 하나가 작은 날개를 펼칠 때>였다. 남미 안데스산맥에 사는 케추아족 사이에 이어 내려오던 이야기를 프랑스 그림책 작가 델핀 자코가 살려낸 이야기다. 이미 알던 이야기인데도 새롭다.

요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나눠 봐야 할 얘기 같기도 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숲에 번개가 내리쳐 불이 났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새들과 덩치가 큰 짐승들은 '활활' 타오르는 불을 바라만 보며 발만 동동 구른다. 그때 작디작은 벌새 한 마리가 부리에 물을 머금고 불길에 뛰어들어 물 한 방울 떨어뜨리고 돌아와서 다시 물을 머금고 오가기를 거듭한다.

그러나 몸집이 큰 아나콘다, 재규어, 나무늘보, 꼬리 감는 원숭이, 개미핥기 같은 짐승들과 화려한 새들은 "고작 물 몇 방울로 저 불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하고 어림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래도 벌새는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라면서 붕붕거리며 연못과 불이 난 숲을 오간다. 얼마나 지났을까? 딱새 한 마리가 힘을 보태고 새들이 잇따라 나선다.'

 

▲ 함께 독 연주하고 느낌을 나누는 그림책연주뒷마당 ⓒ 변택주

 
다들 고개를 저을 때 몸길이가 6.5cm밖에 되지 않는 작디작은 벌새 한 마리가 팔 걷어붙이고 나선다. 날개가 짧은 벌새는 본디 날 수 있는 몸이 아니다.

1초에 90번이나 날갯짓해야만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는 작은 벌새가 불을 끄겠다고 나선 까닭이 어디 있을까? 살려고 그랬다. 벌새는 꿀을 먹지 않고 두 시간이 지나면 죽는단다. 그런 벌새에게 숲이 불탄다는 말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이다. 불을 서둘러 끄려고 한 이유다.

다른 짐승들이라고 달랐을까? 견디는 시간 차이는 있을지언정 숲이 사라지면 살아남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른 짐승들은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행히 불을 끄겠다고 종종거리는 벌새를 보며 늦게나마 다른 새들이 어울린다. 나를 살리려던 날갯짓이 남도 살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얘기다.

어렸을 적, 내가 힘들게 오랜 병치레를 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똥구멍이라도 불어서 살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면서 나를 업고 겅중겅중 여기저기를 뛰어다니셨었다. 어머니는 나와 당신을 하나로 받아들였던 거다. 이처럼 벌새도 숲과 저를 하나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너 따위가 나서야 숲에 난 불을 끄기에 어림없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야!"라고 외쳤을 테다.

나를 살리든 너를 살리든, 살리는 힘은 절박함에서 나온다. 그렇더라도 다 뒷짐을 지고 있는데 홀로 나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벌새 하나가 작은 날개를 펼칠 때>를 지은 델핀 자코도 번역가 권오준 작가도, 아이들이 벌새처럼 썩 나서서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테다.
  

▲ 연주하고 느낌을 나누는 오리(활동명) ⓒ 변택주

 
그림책은 그림을 잘 살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글도 여러 번 곱씹어가며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글이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을 느끼려면 그래야 한다.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야."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야."


이 같은 말이 되풀이해 나오는 데 눈으로 읽을 때 올라오지 않던 느낌이 소리 내어 읽을 때 새록새록 다가온다. 이번 연주도 참으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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