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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꽃과 노랑어리연꽃이 아름다운 한여름의 팔현습지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 예술가들과 함께 돌아보다... 삽질 대신 국가습지로!

등록|2024.06.22 15:59 수정|2024.06.22 15:59

▲ 노랑어리연꽃의 아름다운 자태. 대표적인 습지 식물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지난 20일 모처럼 팔현습지를 다시 찾았다. 무더운 여름날이지만, 여름날의 팔현습지를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습지의 서늘한 기운에 푹 빠져보는 필자만의 피서법이기도 하다.

이날은 특히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의 두 예술가들과 함께 팔현습지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보통 들르게 되는 강촌햇살교 우측 팔현습지뿐 아니라 좌측의 팔현습지도 둘러보았다.

한여름의 팔현습지를 찾다

강물을 헤치고 물억새가 어른 키 높이보다 더 자란 습지 구간도 통과해야 해서 가슴장화까지 챙겨 입고 길을 나섰다. 우선은 자주 찾게 되는 강촌햇살교를 기준으로 우측의 팔현습지를 먼저 찾았다.
 

▲ 갈풀이 아름답게 자라난 한여름의 팔현습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팔현습지의 명물. 한여름 왕버들숲의 아름다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식생이 무성히 자란 초입의 하천숲으로 시작으로 해서 수리부엉이 집이 있는 하식애를 지나 '개밀'과 '갈풀' 같은 습지 식물이 군락을 이룬 나대지를 지났다. 팔현습지의 명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들의 '숨은 서식처'로 명성이 높은 왕버들숲도 둘러봤다.

아침이지만 이른 시간부터 뙤약볕이 작열하는 날인지라 강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오로지 습지와 우리만 있을 뿐이어서 습지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안성맞춤의 시간이었다. 조용히 각자의 방식대로 습지와 교감을 나누었다.

강에 들어가기도 하고 왕버들을 끌어안기도 하고 야생의 흔적을 찾기도 했다. 딱따구리들이 파둔 10개가 넘는 구멍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딱따구리 아파트'를 한참 쳐다보았다. 이어 한들한들 갈풀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고요한 팔현습지 속으로 푹 빠져볼 수 있었다.

한편 낚시 금지구역인 이곳에 만들어둔 낚시터와 습지의 제일 안쪽까지 들어와 만들어둔 텃밭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마지막 야생의 공간인 이곳까지 인간이 침범해 들어오는 것 같아서 말이다.
 

▲ 삽질의 계획의 흔적인 공사용 깃발을 잡고 두 예술가가 나란히 섰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렇게 팔현습지 오른쪽인 하류를 둘러봤다면 이번에는 왼쪽인 상류로 이동했다. 이곳은 정말 정글과도 같은 공간으로 습지도 깊고 물억새 등도 한참 자라 이동조차 쉽지 않았다.

정글이 된 팔현습지의 깊은 아름다움

초입부터 물억새 군락이 빼곡히 자리를 잡은지라 강 안으로 들어가서 습지로 진입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물억새와 갈대가 너무 웃자라서 원래 있던 길도 모두 사라지고 온통 어른 키보다 더 높은 물억새 군락이 앞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었다.

겨우 고라니들이 드나드는 길을 찾아서 조금씩 행진을 시도했다. 그러자 군데군데 숨통과도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이런 곳은 갈대나 물억새 군락 대신에 갈풀이나 줄 같은 식물이 자리를 잡은 곳으로, 군데군데 웅덩이 형태로 남아 우리에게 그야말로 숨통을 틔워 주었다. 그곳에서 조금 쉬었다가 다시 갈대숲을 헤치고 이동하길 반복했다. 다행히 웅덩이가 군데군데 생겨나 그곳들은 그야말로 비밀의 정원 같았다.
 

▲ 물억새와 습지 식물이 군락을 이룬 곳을 겨우겨우 빠져나왔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노랑어리연꽃이 막 피어오르고 있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한 곳은 제법 규모가 큰 웅덩이였는데 노랑어리연꽃이 군락을 이뤘고 그 앙증맞은 노랑꽃을 막 피워올리고 있었다. 완전히 차단된 공간인지라 아무도 보지 않은 곳을 우리들만 독차지한 채 그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다.

그곳에 잠시 쉬었다가 그 공간도 뒤로 하고 또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이번엔 생각보다 물억새 군락지가 너무 길었다. 가도 가도 물억새였다. 어른 키보다 더 웃자란 녀석들을 헤쳐나가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특히 제일 앞에서 길을 개척하는 입장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긴 터널과도 같은 곳을 통과하고 나니 이번에는 마지 거짓말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자갈밭이었다. 이곳은 물억새나 갈대도 침범하지 않은 그야말로 팔현습지의 허파 같은 공간이었다. 그 물억새 군락지를 빠져나와 자갈밭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일행을 반겨주는 이들이 나타났다.
 

▲ 흰목물떼새가 일행을 주시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삑삑 삑삑 ~~

환영이지 경계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으면서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가 저 앞에서 우리를 주시하는 것이 아닌가. 이미 산란도 끝이 난 상태라 알집이 있을 시기도 아닌데도 그 특유의 소리를 내면서 마치 대치라도 하는 것인양 서 있다. 그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다.
 
자갈밭은 제법 넓은 면적으로 자리잡고 있고 그 너머는 제법 긴 수로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 수로를 따라 한참을 이동하면 제방을 만나게 되고, 지금 그 제방을 넓히는 공사를 한참 진행중이었다.
 

▲ 아름다운 물길이 나타나고 그 길을 따라서 제방으로 향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제방공사 현장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섰다. 공사 규모가 짐작이 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기존 폭 5미터를 7미터나 되는 이른바 '슈퍼제방'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0억원이나 들여서 이렇게 넓은 제방을 왜 만들어야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홍수 방어를 목적으로 한다는 '고모지구 하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토건 공사다.

환경부발 '삽질'의 딜레마

그런데 지금의 슈퍼제방 공사가 끝이 나면 문제의 보도교 공사가 시작될 것이다. 팔현습지에서 아니 금호강 전체에서 가장 자연성이 높은 핵심 생태구역 바로 앞으로 산책길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산과 강이 잇닿아 있어서 자연성이 특히 높고 그로 인해 생물다양성이 금호강 대구 구간에서 가장 풍부한, 멸종위기종들의 '숨은 서식처'에 해당하는 이곳에 산과 강을 분리시키는 교량형 산책로를 내겠다는 것이다. 기어이.

이 일은 원래 대구시의 제안으로 국토부에서 시작돼 지금은 환경부가 이 사업을 맡고 있다. 하천관리권이 문재인 정부 시절 국토부에서 환경부로 이관된 탓에 말이다. 그러니까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고 그 서식처를 보전해야 할 환경부가 이를 도리어 파괴하는 '삽질'을 계획하고 있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딜레마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가닥 희망이라면 설마 환경부가 이런 미친 '삽질'을 계속 고집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국토부와 환경부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니 입장 또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말이다.

그래서 지금 지역의 환경과 사회단체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금호강 난개발 저지 대구경북공동대책위원회'에서는 팔현습지를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팔현습지를 국가습지로!"란 기치를 내걸고 이참에 팔현습지를 그 가치에 걸맞게 국가습지로 지정하게 해 누대로 보전해나가자는 것이다.
 

▲ 노랑어리연꽃이 핀 습지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예술가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엄청나게 자란 물억새군락. 사람 키보다 더 높이 자랐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날 팔현습지를 구석구석을 돌아본 결과도 팔현습지는 정말 국가습지로 지정되어도 손색이 없는 곳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도심 가까이서 이만큼 자연성이 살아 있는 구간이 없다. 또 이만큼 야생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이 좁은 팔현습지 2~3킬로미터 구간에서 금호강 대구 구간 42킬로미터 구간(14종)보다 더 많은 18종에 이르는 법정보호종이 살고 있다.

"이런 곳에 환경부가 어떻게 '삽질'을 한다는 말인가요? 만약 정말 환경부가 이곳에 삽질을 강행한다면 그 앞을 드러누워서라도 막고야 말겠어요."

이날 동행한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의 장혜진씨의 말이다. 이는 이곳은 찾아본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내뱉는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팔현습지는 아름다운 곳이란 방증이다. 이제 다시 돌아 나올 차례. 물억새 군락지를 벗어나 이번에는 강물 쪽으로 길을 바꿔 걸어내려왔다.
 

▲ 갓꽃에 나비들이 무리를 이뤄 찾아왔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팔현습지에서 만난 고라니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한참을 물길을 따라 걷는데 저 앞에 갓꽃이 무더기로 폈다. 유채꽃과 흡사한 갓꽃은 많은 나비를 불러 모으고 있었다. 그 모습 자체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마침 고라니 한 마리도 출몰해 낯선 이방인인 우리를 살펴본다. 그렇게 우리는 그 아름다운 길을 따라서 돌아나왔다. 한여름의 더위도 잊은 채 팔현습지에 흠뻑 취한 시간이었다. 참 귀한 시간이었다.

부디 환경부가 제발 자신의 본분에 맞는 결정을 내려주길 간절히 바라보면서 이날의 탐방을 모두 마무리했다
 

▲ 산과 강이 자연스레 연결돤 필현습지. 이곳이 팔현습지에서도 가장 자연성이 높은 구간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강 안에서 팔현습지를 기록하고 있는 필자 ⓒ 장혜진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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