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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님, 국민의 마음은 안녕하지 못합니다

[取중眞담] 국민 정신건강을 악화하는 참사와 퇴행 그리고 거짓말

등록|2024.06.27 11:38 수정|2024.06.27 11:38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윤석열 대통령, 정신건강정책 혁신위 1차 회의 국민의례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서울 광진구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열린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1차 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 대통령실


"여러분의 마음은 안녕하십니까?"

26일 열린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 질문으로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시민의 정신건강을 국가가 챙기는 정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먼저 저의 마음부터 얘기하자면, 안녕하지 못합니다. 어제 밤에 아내와 다툰 일 때문에 마음 한 구석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있지만,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 리튬 배터리 공장 화재로 대규모 인명 피해를 보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개발도상국도 아니고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나라에서 아직도 이런 참사가 일어나고 있다니, 믿기 어렵습니다.

저뿐만 아닐 것입니다. 비슷한 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아직도 '안전 제일'은 구호일뿐,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터로 향하는 이들과 그들의 가족들도 다시 한 번 마음을 졸이고 있을 것입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그런 현장과 관련이 없는 많은 시민들도 이번 참사에 가슴 아파합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각자의 가정이나 직장, 학교 등에서 일어나는 일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곳, 자신과 직접 연결되지 않은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정신적 고통을 받습니다. 이태원 참사, 세월호 참사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 일을 생각하면 이해되실 겁니다.

공공의 영역에서 무거운 책임과 권한을 맡은 사람들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할 때에도 사회는 정신적인 고통을 받습니다. 최근에는 대통령님의 배우자인 김건희씨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을 조사하고 처리해야 할 국민권익위원회가 사건을 종결하겠다고 한 일이 많은 이들의 조롱을 받았습니다.

권익위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300만 원 상당의 우리 전통 엿을 선물 드려도 문제가 되지 않을지 문의드립니다"라는 글은 문의가 아니라 조롱입니다. 조롱이지만 권익위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에서 일어난 울분에서 출발한 것이지요. 권익위가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이 없는 경우에는, 배우자의 금품 수수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것은 더욱 울화를 치밀게 하는 일입니다. '민주주의의 퇴보'를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국민권익위가 시민들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윤석열-김건희)대통령 부부 명품수수 면죄부 준 국민권익위 규탄 긴급기자회견’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민권익위 정부합동민원센터앞에서 참여연대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과 국민적 정신 고통

이보다 앞서서 작년 8월부터 많은 시민들의 마음을 괴롭혀 온 문제가 있습니다. 해병대 채 상병이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순직한 일과 이같은 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조사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이 갑자기 항명 혐의를 받게 된 일입니다.

조사결과의 경찰이첩을 국방부장관이 결재까지 했는데, 발표가 갑자기 미뤄지고 그 이유가 대통령님의 '격노'였다는 설이 제기됐지만, 대통령실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면서 유야무야 넘기려고 했습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국회의원선거에서 참패한 뒤인 지난 5월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연 대통령님은 '수사 결과에 대해서 질책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질문을 받고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저는 늘 군이나 경찰이나 소방관들에게도 어떠한 공무 수행 중에도 먼저 자신들의 안전을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우리, 당시에는 채 일병이었죠. 아직 추서가 되기 전이니까. 순직한 사고 소식을 듣고 저도 국방 장관에게 이렇게 좀 질책을 했습니다. 저도 그 현장에 며칠 전에 다녀왔지만, 어떤 생존자를 구조하는 상황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의 그 시신을 수습하는 그런 일인데, 왜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을 해서 이런 인명사고가 나게 하느냐, 또 앞으로 이제 여름이 남아 있고, 또 홍수나 태풍이나 이런 것들이 계속 올 수 있는데 앞으로 대민 작전을 하더라도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면 안 된다 이렇게 좀 질책성 당부를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대통령님 말씀대로라면, 해병대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한 사건기록을 국방부가 회수하는 것은, 더 철저하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여야 합니다. 하지만 국방부 조사본부는 혐의 대상을 8명에서 2명으로 줄었습니다. 국방부가 대통령님의 질책과는 반대되게 처리한 것 아닙니까?

해병대수사단의 사건기록이 이첩됐다가 회수된 2023년 8월 2일의 전화통화 기록도 보았습니다. 대통령님은 우즈베키스탄에 출장 간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과 통화를 여러 번 하고, 임기훈 당시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 신범철 당시 국방부차관과도 통화했습니다.
 

▲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채상병 특검(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입법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를 거부한 사유에 대해 소명한 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옆을 지나 자리로 향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에서 신범철 전 차관은 대통령과의 전화통화가 "회수 관련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가 잘못 말했다면서 "장관의 통화를 말한 것"이라고 주워 담았습니다. 그러나 26일 신 전 차관은 채상병 사건 회수날 2차례 더 대통령 개인번호로 전화한 것이 확인됐습니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임기훈 비서관이 전화해 '경북경찰청에서 사건 회수 관련 전화가 올 것'이라 했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님이 직접 전화해 사건기록 회수를 지휘하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이 들기에 충분한 정황입니다.

관련된 대통령실과 국방부 사람들이 일제히 대통령님의 의중을 거꾸로 이해했을 가능성은 적지요. 이쯤 되면 5월 9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무리한 수색작전을 질책했다'고 한 대통령님의 발언이 거짓이었다고 이해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에서 박정훈 대령은 "한 사람의 격노로 인해 모든 것이 꼬이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됐고 수많은 사람이 범죄자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채 상병 유가족의 고통이 가장 클 것입니다. 박 대령을 포함한 해병대수사단 구성원들, 사건을 이첩받아 수사하고 있는 경찰들은 물론 사건기록 회수에 관여한 이들도 현재 상황이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주변 상황이 급변해 자기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는 사람도 처벌을 각오했을 때가 오히려 마음이 더 편했을 것입니다.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을 지켜보는 시민들도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후보에게 투표를 했는데, 이런 불공정과 몰상식의 상황을 만든 이가 대통령일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 유권자들도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대통령님은 국민의 마음을 돌보는 문제를 매우 중요한 국정과제로 설정했습니다. 정신건강을 위한 이런 저런 정책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채 상병 순직사건에 대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결과 발표가 취소된 뒤부터 펼쳐진 '지옥도'를 보십시오. 대통령님의 마음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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