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장관리 기분 나빠" 중학생과 대화하다 웃었습니다
관계를 시작할 때 우리가 하는 말들... 나는 '사귀자'가 필요한 사람
"어제 어장관리 하는 남자애가 말 걸어서 기분 나빴어."
느닷없는 아이 말에 웃음이 터지면서 내가 다시 물었다. "어장 관리가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소리야?"
내가 스물 몇 살에 처음 알았던 단어를 요새는 중학생이 쓰고 있었다. 나는 어장관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을 바꿨다. 아이는 '재수없긴 한데 내가 그사람을 짝사랑하지 않는 한 상관없다.'는 답이 왔다. 얘가 이렇게 똑똑했나.
나 20대 시절, 알고 지내는 동생이 연애를 시작했다. 어쩌다보니 사귀었다길래 그게 말이 되냐고 하니 "우리 오빠는 사귀자는 말 같은 거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더라고."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중요하지 않으면 해도 되는 거 아냐?"라고 묻지 못했다.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가 정식으로 사귀는 관계는 아니잖아?"라는 말과 함께 오빠, 아니 그녀석은 3년 사귄 여자에게 돌아갔다. 한 달 내내 엉엉 울면서 그를 욕하고 그리워하는 동생의 술잔을 나는 별말 없이 채웠다.
'사귀자'라는 말을 하지 않은 건 관계를 쉽게 끝내버릴 단서가 됐다. '사귀자'는 일종의 족쇄이고 책임감이다. 안정적인 관계를 위해서는 이 말을 뱉고 시작해야 된다. 물론 단어 하나 따위로 안 통하는 바람둥이도 있긴 하지만 안 그런 사람이 더 많다고 믿고 싶다.
"만일 어장관리하던 애가 말없이 너한테 진도 나가려고 하면 어떻게 할거야?"라고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대답이 없다. 애초에 답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둘 다 호감 있는 상태이긴 한데 남자가 '사귀자'라는 말을 안하는 건 그 말을 할 정도로 너한테 반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니가 김태희인데 그리 애매한 태도이겠냐고 했다. 애가 시큰둥하게 듣길래 '김태희 취소, 장원영!'이라고 했더니 그제야 눈이 반짝거린다. 내가 예시를 잘못 들었네.
결혼 전에 선을 본 적이 있다. 세 번째 만나던 날, 그가 차에서 키스를 시도했다. 나는 정해진 거 없는 상태에서는 싫다고 했고, 그는 사귀자는 말은 인위적이고 촌스러운 도장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도장이 필요한 사람이라면서 차에서 내렸다. 그는 나를 잡지 않았다. 내가 김태희여도 안 잡았겠니. 그는 내게 반하지 않은 거였다.
그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두번째 만난 날, 그는 그 인위적이고 촌스러운 도장을 쾅쾅 찍었다.
중학생 아이에게 엄마 결혼 전 연애 스토리는 잘 먹히는 소재다. 말을 듣는 아이 눈가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휘어진 김에 나도 도장을 하나 더 찍었다.
'사귀자'고 해놓고도 상대방이 너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든다면, 그건 아직 너를 덜 좋아하는 거라고. 진짜 좋아한다면 절대 헷갈리게 할 수가 없다고. 그러니 사귀자라고 했어도 헷갈리게 해서 힘들다면 미련없이 돌아서도 된다고 했다. 아이는 '응'이라고 대답은 했지만 그새 시작한 닌텐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대답했으니 아이 마음 어딘가에 들어갔을 거라 믿고 나도 방을 나왔다.
아이가 아가일 때, 뒤로만 가는 배밀이를 하다가 어느날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가더니 어? 하는 감탄사와 함께 혼자 까르르 웃었다.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아이가 별탈 없이 자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게 새삼 고마웠다. 사춘기 호르몬이 날뛰는 어느날에 배밀이와 어장관리를 동시에 떠올리려 한다. 그 기억으로 호르몬 농간에 넘어가지 않고 그저 너그러이 봐주려 한다.
느닷없는 아이 말에 웃음이 터지면서 내가 다시 물었다. "어장 관리가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소리야?"
나 20대 시절, 알고 지내는 동생이 연애를 시작했다. 어쩌다보니 사귀었다길래 그게 말이 되냐고 하니 "우리 오빠는 사귀자는 말 같은 거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더라고."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중요하지 않으면 해도 되는 거 아냐?"라고 묻지 못했다.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가 정식으로 사귀는 관계는 아니잖아?"라는 말과 함께 오빠, 아니 그녀석은 3년 사귄 여자에게 돌아갔다. 한 달 내내 엉엉 울면서 그를 욕하고 그리워하는 동생의 술잔을 나는 별말 없이 채웠다.
'사귀자'라는 말을 하지 않은 건 관계를 쉽게 끝내버릴 단서가 됐다. '사귀자'는 일종의 족쇄이고 책임감이다. 안정적인 관계를 위해서는 이 말을 뱉고 시작해야 된다. 물론 단어 하나 따위로 안 통하는 바람둥이도 있긴 하지만 안 그런 사람이 더 많다고 믿고 싶다.
"만일 어장관리하던 애가 말없이 너한테 진도 나가려고 하면 어떻게 할거야?"라고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대답이 없다. 애초에 답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둘 다 호감 있는 상태이긴 한데 남자가 '사귀자'라는 말을 안하는 건 그 말을 할 정도로 너한테 반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니가 김태희인데 그리 애매한 태도이겠냐고 했다. 애가 시큰둥하게 듣길래 '김태희 취소, 장원영!'이라고 했더니 그제야 눈이 반짝거린다. 내가 예시를 잘못 들었네.
결혼 전에 선을 본 적이 있다. 세 번째 만나던 날, 그가 차에서 키스를 시도했다. 나는 정해진 거 없는 상태에서는 싫다고 했고, 그는 사귀자는 말은 인위적이고 촌스러운 도장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도장이 필요한 사람이라면서 차에서 내렸다. 그는 나를 잡지 않았다. 내가 김태희여도 안 잡았겠니. 그는 내게 반하지 않은 거였다.
그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두번째 만난 날, 그는 그 인위적이고 촌스러운 도장을 쾅쾅 찍었다.
▲ 사랑이 시작되다아이랑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재미있다 ⓒ 미드저니
중학생 아이에게 엄마 결혼 전 연애 스토리는 잘 먹히는 소재다. 말을 듣는 아이 눈가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휘어진 김에 나도 도장을 하나 더 찍었다.
'사귀자'고 해놓고도 상대방이 너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든다면, 그건 아직 너를 덜 좋아하는 거라고. 진짜 좋아한다면 절대 헷갈리게 할 수가 없다고. 그러니 사귀자라고 했어도 헷갈리게 해서 힘들다면 미련없이 돌아서도 된다고 했다. 아이는 '응'이라고 대답은 했지만 그새 시작한 닌텐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대답했으니 아이 마음 어딘가에 들어갔을 거라 믿고 나도 방을 나왔다.
아이가 아가일 때, 뒤로만 가는 배밀이를 하다가 어느날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가더니 어? 하는 감탄사와 함께 혼자 까르르 웃었다.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아이가 별탈 없이 자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게 새삼 고마웠다. 사춘기 호르몬이 날뛰는 어느날에 배밀이와 어장관리를 동시에 떠올리려 한다. 그 기억으로 호르몬 농간에 넘어가지 않고 그저 너그러이 봐주려 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SNS에도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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