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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될 각오로 친 농성 천막, 유쾌통쾌한 라이브 토크

[이 사람 10만인] 세종보 천막농성 핵심 3인방 '슬기로운 천막생활'... "새들의 재잘거림"

등록|2024.06.27 17:28 수정|2024.06.29 07:45

▲ 공주보 상류 쌍신공원에서 '슬기로운 천막생활'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는 임도훈(좌), 박은영(가운데), 이경호(우) 환경운동가 ⓒ 김병기


"안녕하세요, 얼가니새 이경홉니다."(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저는 초췌은영"(박은영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전 나귀도훈이에요."(임도훈 보철거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 간사)


유튜브 라이브 방송 <슬기로운 천막생활>(이하 '슬천,' 김병기의 환경새뜸 채널)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새 박사' 이경호, '글 쓰는' 박은영, '노래하는' 임도훈이다.

슬기로운 천막생활 유튜브 라이브: https://www.youtube.com/@minifat96/streams

지난 5월 23일, 세종보 재가동 백지화와 물정책 정상화를 촉구하며 세종보 상류 300m 지점 하천부지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한 지 24일째 되던 날이었다. 3명의 환경운동가는 이곳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유튜브로 생중계하자고 의기투합했다. 보에 물 채우면 수장되는 곳에서의 한가한 이야기로 여길 수 있지만, 사실은 절박함의 표현이었다.

농성장의 라이브 방송... "새들이 재잘거리는 소리 같다"
 

이들이 결의하던 날, 그 자리에서 곧바로 라이브를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슬천'은 27일 현재 22회를 찍었다. 농성장 또는 국회기자회견 등 외부에서 진행된 다채로운 행사 라이브 방송 등을 포함하면 35회. 거의 매일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한 셈이다.

"좌충우돌, 갈팡질팡, 엉망진창이야~"

방송 중이 이런 말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사전기획은 물론 각본과 대본도 없는 그야말로 '날 방송'이었다.

많게는 2000회 이상을 기록한 조회수(국회 기자회견 생중계)도 있지만 대체로 100~200여회 정도이다. 지금까지 최대 동접 기록은 13명 정도. 그럼에도 방송을 이어가는 까닭은? 기자회견 등의 공식 행사 때의 구호와 날선 발언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들과 일상 언어로 소통하면서 공감하고 참여를 이끌어낼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나름대로 신선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4대강사업, 국가 물정책, 환경운동 등 일반인들의 삶과는 거리가 느껴지는 주제를 시민의 눈높이에서 가벼운 농담을 섞어가며 풀어내면서 친밀감을 높였다. 한 시청자는 거세게 흐르는 금강을 배경으로 한 이들의 유쾌통쾌상쾌한 수다를 이같이 평가했다.

"금강변에서 물떼새가 재잘거리는 소리 같아서 정겹다."

많은 면에서 부족했지만 내용은 알찼다. 농성장을 지키는 핵심 3인방인 이들은 세종보 현안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퇴행적인 물정책을 잘 꿰고 있었다. 또 환경운동의 최전선으로 전국 환경운동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의 붙박이들이기에 여타 환경 현안에도 밝다. 간혹 국회의원과 언론인, 전문가가 특별 게스트로 출연해 내용의 전문성을 보탰다.

[새박사 '얼가니새' 이경호] 간절한 까닭은... "세종보 담수하면 생태학살 현장"
  

▲ 이경호 처장이 합강습지에서 새를 촬영하고 있다. ⓒ 김병기


'슬천' 메인 사회자는 '얼가니새' 이경호 처장이다. 100종 이상의 새를 보면 별칭을 붙여주는 야생조류연구회가 정해준 아호이다. 갈매기와 비슷하게 생긴 새로 갈라파고스 제도를 포함한 태평양 쪽에 널리 분포하는 데, 진화가 덜 돼 행동이 미숙하고 사냥도 제대로 못하는 새이다. 때로는 좀 어리숙해 보이는 이 처장을 빼닮았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하지만 그는 '슬천'에서 운동권 유튜브 MC로 변신하고 있다. 임도훈 간사와 '티키타카'를 하다가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지르고, 곧바로 사과하는 쑥맥같은 면이 기본 유머코드이다. 농성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녹여내는 양념같은 진행이다. 운동권은 엄숙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쥔 채 구호만 외치는 별종이 아니라는 걸 그는 애써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재현하고 있다.

진행을 하다가 모르는 주제가 나오면 얼렁뚱땅 넘어가지만, 조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새 박사'로 불리는 그의 전문성이 빛난다. 농성장에 날아드는 새의 종류와 생태까지 꿰고 있다. 그는 최근 세종보가 재가동된다면 수몰이 되는 지점의 조류 생태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 4월 30일, 세종보 천막농성장을 설치하면서 연 기자회견 때 그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모래섬 두 곳과 육상지역 모래톱 2곳의 물떼새 번식 조사를 실시했는데, 멸종위기종 2급인 흰목물떼새 둥지 2곳과 꼬마물떼새 둥지 1곳 등을 포함해 30여개의 둥지를 확인했다. 이제 물떼새가 도래하기 시작하는 시기인데, 5월에 세종보 수문을 닫는다면 이곳은 수백 쌍의 물떼새가 죽는 제노사이드, 생태학살의 현장이 될 것이다."

얼가니 같은 그의 웃음 이면에는 이런 절박함이 있다.

[글쓰는 기록자 '초췌은영'] 기존 언론이 외면하는 '환경 특종' 낚는다
 

▲ 박은영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이 세종보 농성장에서 기사를 쓰고 있다. ⓒ 김병기


'슬천' 라이브 스튜디오는 금강이다. 세종보가 2018년부터 6년째 누워있기에 볼 수 있는 금강의 거센 물결이 배경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때로는 강물 위를 나는 민물가마우지 떼와 꼬마물떼새, 할미새, 삑삑도요도 출연한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는 효과음이다. 교각보호공 위에 놓인 3개의 간이의자 중앙에 박은영 사무처장이 있다. 갈수록 얼굴에 초췌함 더욱 짙어지는...

슬천은 그에게 휴식을 제공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농성장에서의 업무에서 잠시 벗어나는 시간이다. 따라서 초췌한 웃음과 박수 등의 리액션을 주로 하지만, 눈빛이 반짝일 때가 있다. 윤석열 정부의 비상식적인 물정책과 환경부의 앞뒤가 맞지 않는 행정의 문제 등을 지적할 때이다. 양쪽에서 두 출연자가 웃고 화내고 떠들 때, 그는 아주 차분한 어조로 토크의 맥을 짚는다.

그의 초췌함을 더욱 가중시키는 건 농성장 기록자의 역할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틈만 나면 간이의자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세종보 천막소식'을 <오마이뉴스>에 올리기 위해서다. 매주 2~3차례 열리는 농성장 기자회견에도 나타나지 않는 언론인들을 대신해서 그는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고 있다. 그가 문예창작과 출신인 게 다행이다.

작년에 국가물관리위원회 공청회장을 점거해서 수갑이 채워진 뒤 유치장으로 끌려가기도 했던 그의 기사는 제목부터 '운동권'이 아니다.

"너구리와 눈 맞출 수 있는 이곳을, 지키고 싶다" https://omn.kr/296ft
"앗, 수달이다!" 짜릿한 흥분 맛볼 수 있어야 진짜 '친수' https://omn.kr/28y7c
10m 교각 구멍에서 아기 박새가 태어났어요 https://omn.kr/28vgp

농성 60여일 동안 이곳을 다녀간 이는 2000여명이 넘는다. 이들과 응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그가 짬짬이 기사까지 쓰는 것은 기존 언론들이 외면하고 있지만, 바로 이곳에 생명이 가득한 진짜 환경뉴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세종보에 물을 채우면 영영 사라질지도 모를 산 강의 증언자를 자처했다.

[노래하는 환경운동가 '나귀도훈'] "흘러라 강물아"... 노래처럼 살고 있다
  

▲ 임도훈 보철거시민행동 간사가 세종보 농성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 김병기


'나귀도훈'은 세 사람 중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은 자이다. 슬천의 사회자인 얼가니새가 항의 차원에서 발언 분량을 비교했더니 실제로 더 많았단다. 슬천에서만 이런 건 아니다. 농성장에서 가장 많은 밤을 지새운 그는 이곳에서 열리는 모든 기자회견,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현황에 대한 경과보고를 한다. 그리고 이런 취지의 말을 한 마디씩 덧붙인다.

"세종보 수문을 닫으면 여러분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여기 깔린 자갈을 만질 수 없습니다. 강변에 가서 물도 만질 수 없고, 한가롭게 산책도 할 수 없습니다. 6년째 수문을 열어서 거세게 흐르는 이 산 강의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세종시는 매일 저희를 고발하겠다, 천막을 강제 철거하겠다고 협박을 해오고 있는데, 여러분 덕분에 하루라도 버틸 힘을 더 얻었습니다. 끝까지 이곳을 지키겠습니다. 이 강이 생각날 때마다 찾아주셔서 '내가 산 강의 증인'이라고 외쳐주십시오."(6월 8일 불교환경연대의 기도회 중 발언)


부드럽게 에둘러가는 얼가니새와는 달리 나귀도훈의 말은 직선이다. 물떼새와 함께 수장되겠다는 각오를 한시도 감추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나귀도훈일까? 그는 예수가 아무도 태우지 않았던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데, 그 때의 길들여지지 않은 천방지축의 순수함이란 의미로 본인이 직접 붙인 별칭이란다.

오늘(6월 27일)로 천막농성은 60일째이다. 장기농성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데, 농성장을 최장 시간 지켜온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타를 든다. 지지방문을 한 사람들 앞에서, 흐르는 강물을 배경으로 노래를 한다. 감미로운 선율로 팍팍한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주고, 때로는 찜통같은 더위와 싸움에 지친 사람들의 힘을 북돋아준다.

이런 그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이기도 한 그는 20년 동안 음악을 해 온 가수이다. 지금도 밴드 프리버드의 메인 보컬로 활동을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4대강 사업에 맞서면서 전국 투어 공연도 했다. 4장의 앨범도 냈는데, 4대강과 관련한 곡도 있다. 강에 대한 서정이 빛나는 <흘러가 강물아>이다.

"동글 동글 동글 돌멩이~ 사각 사각 사각 모래알~ 데굴데굴 자갈밭~ 반짝 반짝 반짝 모래섬~ 꽃피는 강녘에 물고기 뛰어올라~ 강물아 흘러라~ 흘러라 강물아~"

그는 노래처럼 지키고 있다. 노래처럼 살고 있다.

[10만인클럽] "생생한 현장 소식 전달... 후원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 지난 4월부터 수문을 닫은 공주보 ⓒ 김병기

  

▲ 지난 6월 21일 찾아간 공주보 상류 고마나루 앞 금강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녹조 ⓒ 김병기


지난 21일, 세 사람은 처음으로 농성장을 나와 공주보 상류 쌍신공원에서 라이브 방송을 했다. 예상대로였다. 지난 4월부터 수문을 닫은 공주보 상류에서 녹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수문을 지금처럼 닫아둔다면 7~8월이 되면 시퍼렇게 창궐할 것이다. 수문이 전면 개방됐던 지난 6년 동안 이곳에선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죽은 강의 표식. 이보다 더 과학적인 검증이 있을까.

이곳이 세 사람에게 각별한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작년 9월 10일, 대백제전을 앞두고 환경단체들은 공주보 고마나루에 농성천막을 쳤다. 공주시 공무원 100여명이 달려와 강제로 천막을 철거하면서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 부상자가 생기기도 했다. 그 뒤 노숙농성, 7시간 동안의 수중농성... 그 자리에도 세 사람이 끝까지 함께했다.
 

▲ 2023년 9월 공주보 수중농성 장면 ⓒ 김병기


이날 40여분 동안 라이브 방송을 한 뒤 <오마이뉴스>를 후원하는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한 이들에게 공통 질문을 던졌다. 현장에서 싸우는 당신들은 왜 오마이뉴스를 후원하나?

"4대강이나 보문산 등에서 환경 활동을 하면서 정확한 환경 정보를 균형있게 다뤄주는 언론에 목말라했다. 오마이뉴스는 지금 금강에서의 싸움도 그렇고, 항상 현장에 나와서 국민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주려고 애를 쓴다. 정치나 경제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균형있게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이다. 이런 언론이 살아야 우리나라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임도훈)

"나의 첫 기사는 4대강에 대한 것이다. 답답함이 있었다. 2천억원을 들여 만든 세종보를 세우려고 40억을 들여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보를 허물었다. 어느 언론도 다루지 않은 이 소식을 오마이뉴스 첫 기사로 썼고. 이를 받아주는 오마이뉴스가 고마웠다. 그 뒤에도 현장에 가면 한 개의 기사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존 언론이 외면해도 현장 소식을 전해주는 오마이뉴스는 후원받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이경호)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소설을 썼었던 내가 기사까지 쓸 줄은 몰랐다.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오마이뉴스의 모토에 따라 나도 충남 서원산 골프장 문제를 기사로 썼다. 생나무였다. 하지만 그 뒤에도 기사를 계속 썼다. 환경운동을 하는 우리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 공간을 제공하는 오마이뉴스가 귀하다. 지금도 세종보 천막농성장의 소식을 올리고 있다. 무엇을 쓸지 항상 고민이지만, 지나가면 잊혀질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을 남길 수 있기에 고맙다."(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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