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세계여행하다 한국 매력에 빠진 웨일즈 청년
보다 넓은 세계와 사람들 만나는 데 매력 느껴..."한국인 회복력과 강인함에 깊은 인상"
한국의 유기농 농장에서 농사 체험하며 일손 돕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듣는 새로운 한국 이야기를 싣습니다. [기자말]
▲ 제임스는 키가 커서 줄콩 끈 매주는 일을 사다리 없이 할 수 있었다. 오랜 여행자 답게 일을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 조계환
천체물리학을 전공하고 세계를 여행하는 기타 연주자 제임스가 봉사 신청 메시지를 보내왔을 때, 이미 예약한 봉사자가 취소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5년 째 여행하고 있고, 여러 농장에서 팜스테이를 해 봤다는 점, 뮤지션이라는 점, 한글을 공부했다는 점 등이 흥미로웠다. 장기 여행자를 많이 만났지만 5년째 여행중인 친구는 처음이다. 왜 5년이나 여행을 하는지, 무엇을 느끼고 배우고 즐기고 있는지, 어쩌다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메시지를 받은 후 며칠 후 정말로 미리 예약되어 있던 일본 친구가 취소를 하는 바람에 제임스에게 얼른 다시 메시지를 보냈고, 우리 농장에서 한 달 간 지내기로 했다.
▲ 음악하는 친구들과 연주하는 모습 ⓒ 제임스
경주역에서 만난 제임스는 긴 머리에 키가 2m 가까이 되는 거구였고, 낡은 배낭과 기타를 들고 있었다. 기타를 연주하는 음악가라고 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다는데 자연스럽게 간단한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따뜻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하루 함께 농사일을 하며 그동안 여행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웨일즈는 잉글랜드 근처에 있는 작고 비가 많이 내리는 나라입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웨일즈만의 언어와 민속음악, 문화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주변국들과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나라지요. 내가 태어난 이 작고 아름다운 나라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보다 넓은 세계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봤지만 웨일즈는 잘 모르던 나라였다. 부침이 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이어서인지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함께 웨일즈의 역사, 한국의 역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호빗'은 평범한 인물인 빌보가 자신이 사는 작은 마을 샤이어를 넘어서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의 이야기 속에서 제 자신을 보았고, 그들처럼 여행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자란 웨일즈는 샤이어와 비슷해요. 다른 곳들을 여행하면서 얻은 것은 무한한 자유와 제 삶이 확장되는 느낌입니다."
▲ 여행하며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거나 공동체 마을에서 작은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호주 바이런베이에서 버스킹하는 모습 ⓒ 제임스
어린 시절 제임스는 역시 세계를 여행하며 살아온 부모님과 종종 '프로젝터의 밤'을 즐기며 자랐다고 한다. 부모님이 젊은 시절 인도, 이집트, 네팔, 호주, 뉴질랜드, 이스라엘 등을 여행했던 옛날 사진들을 어두운 거실에서 상영하며 다양한 모험 이야기들을 들려주곤 했다. 그런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자연스럽게 여행의 꿈을 키워주었다.
11살 때부터 기타를 배워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웠고, 대학에서는 천체 물리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과학자로 일하며 여행 경비를 저축하고 5년 전에 드디어 세계 여행길을 떠났다.
"한 번은 네팔을 여행하며 아이들과 축구를 같이 했는데, 공기로 부풀린 비닐 봉지가 축구공이었어요. 공을 차다가 공기가 모두 빠져나가면 아이들은 다시 신나게 바람을 불어댔습니다. 모두들 환하게 웃고 있었지요. 비닐 봉지 하나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아이들을 보며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캠핑카를 타고 여행했다. 광활한 산과 강, 바다, 화산 등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졌다. 뉴질랜드에서 호주로 이동한 것이 2019년 10월, 앞으로 닥칠 재앙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때였다. 2020년이 되자 곧 호주는 코로나로 완전히 차단되었다.
엄청나게 비싼 비행기값을 치르고 웨일즈로 돌아갈 것인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돈의 시간이지만 호주에 남을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 남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결국 한국이라는 나라를 만나게 된 계기가 됐다.
"코로나 기간 동안 호주 퍼스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 40명이 함께 갇혀 지냈어요.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일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가 선생님이 되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기술을 교환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음악을 가르쳤고, 요가나 언어를 가르쳐주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곳에 한국 친구도 있었는데, 한글을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것이 씨앗이 되어 한국에 대한 관심을 키웠습니다."
▲ 호주에서 배 갑팝원으로도 일했다. 힘들고 위험했지만 인생공부가 많이 되었다. ⓒ 제임스
코로나 때문에 발이 묶였던 호주를 좋아하게 되어 결국 4년이나 지냈다. 열대 우림, 예술가 공동체, 호주원주민 농장, 사막 등 다양한 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40도가 넘는 날씨에 호박 농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배 갑판원으로 일하다가 하마터면 사고로 한 손을 잃어버릴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레스토랑에서 기타 연주자로 일하거나, 황야에서 캠핑을 하며 원주민 악기 연주를 배우기도 했다.
시간은 금세 흘러갔고, 여행하며 느낀 것을 자신의 음악으로 만들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거나 공동체 마을에서 작은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자신이 경험한 광할한 자연을 음악에 담았다. 제임스의 유튜브 채널에서 기타 연주를 들어볼 수 있다.
"한국의 음식 문화 정말 좋아"
호주를 떠나 필리핀을 잠깐 여행했다.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을 배웠다. 필리핀을 여행하다가 예전에 한글을 배웠던 기억이 떠올라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한국을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랜 세월 간직되어온 한국만의 독자적인 문화입니다. 특히 한국의 음식 문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서로의 관계를 구축하는 한국인의 식사 문화가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특히 김치는 정말 맛있습니다!"
▲ 제임스와 함께 감자, 당근, 비트 등 다양한 작물을 수확했다. 힘이 좋아서 무거운 것도 번쩍번쩍 들어올렸다. 감자 수확하는 모습. ⓒ 조계환
농장 부엌에서는 고추장, 된장, 김치가 금방 없어지곤 한다. 올해 들어 외국인 봉사자들이 유난히 김치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제임스의 아침식사 메뉴는 아예 매일 같이 김치와 달걀을 얹은 토스트이다. 많이 먹어도 좋다. 채소와 김치는 충분히 있으니 잘 먹는 친구들을 보면 즐겁다. 유기농사를 함께 공유하고 밭에서 직접 수확한 유기농 채소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맛보는 일이야말로 팜스테이의 큰 매력이다.
"한국의 기타리스트 정성하를 오랫동안 존경해왔습니다. 음악에 끌려서 한국 역사 드라마를 보기도 했고요. 우연한 기회로 국악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가야금과 아쟁 소리에 반했습니다. 최근에는 영화 '1987'을 봤는데 한국의 힘들지만 역동적인 역사를 알게 되어 놀랍고 흥미로웠습니다. 한국 여행을 하고 고난이 많았던 역사를 공부하면서 한국인의 회복력과 강인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 수확을 마치고 함께 불국사 석굴암에 다녀왔다. ⓒ 조계환
제임스는 찬찬히 여행하며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연주자다. 함께 농사 짓는 정토회 두북수련원 청년 모임에 가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잔잔하면서도 웅장한 기타 연주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중간 중간에 그동안 공부한 간단한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것도 재밌었다. 제임스에게 음악은 자신의 진정한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다리이다.
"여러 농장에서 일해봤지만 유기농장은 처음이에요. 지구를 아끼고 환경을 생각하며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단순히 화학적인 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에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더 깨끗한 세상을 위해 실천한다는 점이 좋아요."
제임스는 백화골에 머물며 한국의 전통 유기농사를 배우고 환경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서 보람있다고 했다. 이제 5년이면 집으로 돌아갈 때도 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제임스는 아직 여행이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야생동물, 풍경, 언어 등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일이 아직은 더 좋다. 여행을 통해 세상과 스스로를 날마다 점점 이해할 수 있다고. 오랜 여행길에서 만난 한국이라는 매력적인 나라와의 만남도 큰 기쁨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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