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경력단절의 막막함, 이곳에서 덜어냈습니다
3개월에 걸친 진로 강사 양성 교육을 끝내고... '경단녀'에게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
4대보험 없는 주부들이 쓰는 '점을 찍는 여자들'은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그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 서약서 그리고 시작수업 첫 시간에 배부된 서약서와 교재, 내가 배우고 얻은 것은 책 한 권에 미처 담을 수 없는 분량이었다. ⓒ 구혜은
3개월간의 교육
수업 시작과 함께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변화는 등굣길 풍경이다.
아이들은 학교로, 나는 지하철역으로 몸을 돌린다. 내 발걸음이 아이들과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했다. 각자 갈 곳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를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여성인력개발센터를 알게 된 건 친구 덕분이다. 친구는 이곳에서 정리수납 과정을 수강하고 전문 자격증을 취득한 후 조합까지 설립하여 정리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친구의 변화가 놀라웠다. 25년을 봐왔지만 이렇게 추진력 있게 일을 진행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친구의 모습이 자극이 되었다. '나도 정리 컨설팅 일을 배워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곧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청소는 좋아하지만 정리는 잘하지 못한다. 정리도 재능이라 생각하는 1인이다. 재능 없는 일에 매달리기 보다 나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싶었다.
경력 단절 이후에도 지속해 온 일, 도서관 문화 강좌를 수강한 이력, 소소하게 따온 자격증, 돈은 되지 않지만 시간과 열정을 쏟았던 일... 그렇게 내가 찾은 일이 중고등학교 '진로 교육 강사'이다.
나는 계속해서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해왔다. 대학 시절 학원에서 국어 강사로 일했고, 교육 기업에서 7년을 일했으며, 퇴사 후 잠시 다녔던 직장도 교육기관이었다. 직장을 다니며 교육대학원에 진학해 중등교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나는 가르치는 일을 좋아한다. 나의 지도로 누군가 더 나은 모습이 되어 있을 때,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
강의 일이 체질에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출간 이후 도전한 책쓰기 강의에서였다. 북튜버 활동을 하면서, 창업 후 라이브 쇼핑으로 물건을 판매하면서 알게 된 재능이 말하기 능력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했던 일이 '직업'으로서 인정받을 일은 아니었지만, 내 흥미와 적성을 찾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본다.
진로 교육강사 수업을 받으려면 서류와 면접 전형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력서를 통해 왜 진로 강사가 되고 싶은지, 어떤 이력을 쌓아왔는지 어필하는 과정이다. 이 단계가 1차적으로 나의 직업에 대한 욕구와 가치를 확인하게 되는 절차가 되는 셈이다. 이력서를 쓰면서 가슴이 뛰었다. '드디어 내가 제대로 길을 찾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선발된 스무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공동의 목표가 있는 사람들
▲ 수업 초창기아직은 서먹한, 하지만 교실 속 기운만큼은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초창기 교실풍경이다. ⓒ 구혜은
4월 1일 처음 강의실에 들어서며 느꼈던 그 기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뭔가 여기 모인 사람들은 남달라 보였다. 면접이라는 절차가, 내가 들었던 강좌명 앞에 '고학력', '고숙련' 경력보유 여성 취업지원사업이라는 문구가 나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뭐 이런 걸로 자존심을 챙기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경력 단절 기간을 지나는 동안 나의 자존심은 바닥을 쳤으니까.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님들은 또한 우리와 같은 과정을 거쳐 간 선배님들이다. 경력단절 시기를 이겨내고 여성인력센터의 교육을 통해 강사로 발돋움하게 된 케이스다. 그래서일까? 강사님들과 우리 제자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이 깔려 있다. 이것이 서로를 이어주는 연대요, 끌어주는 힘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는 '강사'라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다. 많은 직업군 중에 '강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배움과 성장을 좋아하고, 남들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 부류이다. 외향형, 내향형 발산의 모습은 다를지라도 방향성은 비슷할 것이다. 공통의 목표는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해주었다.
여성인력개발센터는 여성들이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공기관이다. 이 센터를 발견했을 때, 외롭고 고독한 길에서 등대를 만난 기분이었다. 교육 수료 후 취창업 동아리 개설 자격조건이 주어지는데 이를 통해 사후 교육과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다.
그간 많은 사회적 지원이 워킹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점이 아쉬웠다. 워킹맘에 비해 전업맘을 위한 지원은 상당히 부족하다고 늘 생각했는데, 여성인력개발센터를 만나면서 이런 갈증이 모두 해소되었다. 센터를 중심으로 많은 인력이 교육생들의 재취업을 돕고 있었다. 상당히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교육 과정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나의 가능성을 확인한 시간
이 수업 덕분에 동료를 얻고, 함께 고민하며 나를 이끌어주는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 교육생들을 사회로 진출시키기 위한 센터 선생님들의 노력에 진심이 배어 있음을 안다. 석달의 시간 동안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정서적 지지와 사회적 지지 모두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혼자 할 때는 몰랐지만, 함께 하면서 잊고 있던 나의 재능도 발견할 수 있었다. 여러 사람들과 협동하며 나의 특기와 장점이 두드러지는 순간이 나타난다. 어느 순간, 어떤 상황 속에서 이런 능력들이 발휘되는지는 관계 속에서 더 명확히 알 수 있게 된다.
▲ 개인 과제 중간 점검총 세번의 강의 시연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 시연 모습이다. 가장 어설펐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좋은 수업이란 학생들과 호흡하는 수업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던 경험이기도 했다. ⓒ 구혜은
여기서 발견한 나의 장점은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는 것이다. 남 앞에서 이야기하고, 내 생각을 전달하며, 글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확실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발견 덕분에 어렵게 느껴지던 강의 기획서 작업도 음성 녹음을 활용하여 정리하니 한결 수월하게 다가왔다.
또한 나의 단점이자 강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나의 의견을 주장하고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좋은 장점이지만, 협동의 상황에서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의견이 맞지 않는 혼란 속에서도 의견을 조율하며 각자의 강점을 살려내는 과정 또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함께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이다.
3개월의 직업훈련 과정은 나의 발견이자 든든한 동료와 지원자를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경단녀'라는 꼬리표를 떼게 할 힘도 여기 있지 않을까? 함께 하는 가치, 함께 하는 동료 그리고 공적 네트워크 말이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우리들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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