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게임의 맹획? 한동훈은 여포에 가깝다
[取중眞담] '맹획 플레이'에 어울리지 않는 서사...그는 과연 '동탁'을 찌를 수 있을까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위·촉·오 대신 맹획? '쉽지 않은 길'을 걷겠다?
▲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초선의원 공부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갑작스럽게 <삼국지> 게임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한동훈 후보가 최근 언급한 '맹획' 때문이다. 한 후보는 지난 6월 25일,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 미래세대위원회와 함께 피자 오찬을 진행했다. 6급 이하 2030세대 보좌진들과 대화를 하던 도중 게임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고, 게임 <삼국지>가 언급됐다.
제갈량의 남중(지연의에서는 남만) 정벌에 등장하는 맹획은 이른바 '칠종칠금' 일화로 유명한 인물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본격적으로 북벌에 나서기 전 후방의 토대를 안전하게 다지기 위해 남만 정벌을 단행하고, 이 과정에서 남만의 왕인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주어 감화한다. 이후 맹획은 제갈량에게 항복하고 촉에 충성하게 된다.
'삼국지'를 향한 정치권의 애정은 남다르다. 삼국지 관련 고사나 사자성어를 인용하기는 예사이고,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에 자주 대입되기도 한다. 당장 '비단 주머니'나 '출사표'가 언급되는 것도 그렇다. 제갈량의 라이벌이자 삼국지 후반부의 진정한 승자라 할 수 있는 '사마의'에 비유되는 이준석 개혁신당 국회의원(사마준석)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원전 <삼국지>를 넘어서 게임까지 언급되는 일은 드물다.
특히 맹획을 군주로 선택해 게임의 최종 목적인 '천하통일'을 이루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타이틀 넘버와 선택하는 시나리오 연도에 따라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보유하고 있는 장수의 풀도 다양하지 않고, 정착지의 생산력도 대단치 않다.
'엄백호'만큼의 최고난도 플레이는 아니지만, '맹획 플(레이)'로 <삼국지>를 한다는 것은 게임에 대한 깊은 이해도와 실력을 요구한다. 이날 한동훈 후보의 발언을 여의도에서는 '쉽지 않은 길을 가겠다'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한 후보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자리를 수락할 때도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다"라고 밝혔고,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할 때도 "당이나 정이 민심과 다른 길을 가면, 한쪽에서 견고하고 단호하게 민심의 길로 견인해야 한다"라고 외쳤다.
'맹획' 비유에 시큰둥한 정치권
▲ 맹획 일러스트KOEI(코에이) 게임 <삼국지> 시리즈 13탄과 14탄에 사용된 맹획 캐릭터 일러스트. 한동훈 후보가 몇 번째 타이틀을 주로 플레이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 KOEI
그러나 정치권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6월 26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영피프티 감성"이라며 "엄밀히 말해서 본인(한 후보)의 위치는 조조나 원술에 가깝다"라고 직격했다.
김 전 의원은 "사실 누가 장관을 시켜줬느냐? 대통령이 시켜줬고, 비대위원장이 자기 힘으로 됐느냐? 아니다. 대통령이 시켜준 것"이라며 "자기는 맹획이라고 꿈을 꾸고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후원자가 없었으면 그 자리로 올 수가 없었다"라는 지적이었다.
그는 "캐릭터 자체가 전혀 안 맞는다"라고 단언했다. 요약하면, 남쪽 지방의 호족으로 자신만의 거점과 세력을 구축한 자수성가형 남만왕과 윤석열 대통령의 '아바타' 혹은 '황태자'로 불렸던 한동훈 후보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한 것인지,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일찍이 한동훈 후보를 다른 인물에 비유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23년 12월 29일 페이스북에 "제갈량이 살던 방향으로 살고 싶냐, 동탁과 여포같이 살고 싶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제갈량의 삶을 동경하겠다"라며 "어차피 여포는 동탁 찌른다. 아주 황당한 사건으로"라고 꼬집었다.
이는 한동훈 후보가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당시 "우리 내부에서 궁중 암투나 합종연횡하듯이 사극을 찍고 '삼국지' 정치를 하지 말자"라며 "사극은 어차피 늘 최수종 것이고 제갈량은 결국 졌다"라고 말한 걸 받아친 것이다.
이후 6월 20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이준석 의원은 재차 '동탁과 여포'를 꺼내든다. 그는 "동탁이라는 사람이 뭔가? 오랑캐 좀 잘 무찌른다고 해서 중앙에 문제가 생기니까 사람이 없으니까 동탁을 불러다가 써보려고 한다. 그러고 이 사람이 장악해버린다"라며 "그 다음에 이 사람이 잘 아시는 것처럼 후계자를 세운답시고 여포라는 양자를 들인다. 그다음에 어떤 여인에 빠져서 큰일을 그르친다"라고 꼬집는다.
이어 "나중에는 그 여포가 본인을 배신해서 죽게 된다"라며 "제가 사실 작년 말에 이걸 언급한 이유는 본인의 후계자로 어떤 인물을 들였을 때 그 사람에 의해서 죽게 될 것이다를 예견하기 위해서 했던 말"이라고 말했다. "제 생각에는 국민의힘에서 그 동탁은 여포가 찌르려고 할 것 같다"라고도 덧붙였다.
맹획 보다는 여포에 가까운 한동훈
▲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로 나선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28일 부산 방문의 첫 일정으로 남구 유엔기념공원을 찾았다. 기념관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는 한 전 비대위원장. ⓒ 김보성
이준석 의원이 직접 언급은 피했지만, 힌트는 다 나왔다. 검찰 출신으로 적폐청산 수사를 기점으로 크게 쓰였다가 정권까지 장악하게 된 윤석열 대통령이 당시 부정부패의 상징이자 최고권력자로 한 황실을 농락한 동탁이다. 동의하지 않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여인에 빠져서 정사를 그르치고"라는 점에서 김건희 여사는 초선인 셈이다.
한동훈 후보가 여포라는 비유도 잘 들어맞는다. 여포는 당시 최고의 개인 무력을 자랑하며 동탁의 양자로 활약했다. '반동탁연합군'이 형성되었을 때도 앞장 서서 호로관을 지켜냈다. 그 칼로 무엇을 베었는지는 물음표이지만, 어쨌든 '조선제일검'으로까지 불리며 법무부장관으로 대야 전선 제일 앞에 섰던 한동훈 후보와 결이 비슷하다.
동탁과 여포가 갈라서게 된 계기가 '초선'이라는 점에서, 이른바 '윤한 갈등'의 시발점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이었다는 점도 유사하다. 그런 와중에도 한동훈 후보는 '김건희 특검'에는 거리를 두고 있다. <삼국지연의> 기준으로 여포 역시 초선을 굉장히 아꼈다. 여러모로 한동훈 후보와 캐릭터의 '싱크로율'은 맹획 보다는 여포가 높아 보인다.
주어진 상황도 다르다. 한동훈 후보는 누가 뭐라고 해도 여의도 정치 주류 내에서의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다. 변방에서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 맹획과는 다르다.
앞서 <중앙일보>는 이미 한 후보를 지지하는 현역 국회의원이 17명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중원에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려 한 여포에게는 그 아래에 진궁을 비롯해 장료, 고순 같은 '즉시 전력감' 장수들이 있었다. 상황적으로 보아도 '맹획 플' 보다는 '여포 플(레이)'로 <삼국지>를 하는 게 한동훈 후보에게 잘 맞아 보인다.
여포 플레이의 핵심, 동탁을 향한 반란
▲ 동탁을 처단하는 여포KOEI(코에이) 게임 <삼국지>에서 여포가 동탁을 처단하는 이벤트에 등장하는 일러스트. 이때 여포의 대사는 "역적은 바로 네놈이다, 동탁! 칙명을 받들어 널 처단하겠다!"이다. ⓒ KOEI
'천통(천하통일)'이 대통령 선거라면, 전당대회는 대선을 준비하기 위한 '천하삼분지계' 최소한 본인의 든든한 토대를 확보하는 것이다. 여기저기 몸을 의탁하던 유비는 입촉 전 형주를 확보해 거점으로 삼았다. 군웅할거 시나리오에서 '여포 플'의 핵심도 결국 빠르게 중원에 본인의 지역들을 확보하는 것이다. 원소나 조조, 유비 같은 다른 군웅들이 더 성장하기 전에 본인의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런데 전제가 있다. 실제 역사가 그러했듯 여포는 동탁을 찔러야만 존재할 수 있다. 여포가 독립 군주로 등장하는 것은 이미 동탁이 쓰러진 이후이다. 여포로 더 쉽게 천하통일에 가까워지려면, 동탁 세력 아래의 여포가 그대로 동탁의 세력을 흡수해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특히나 '장수제'를 택한 <삼국지> 시리즈라면 동탁 휘하에서 여포로 '반란'을 하는 플레이를 권할 만하다.
현실은 어떤가? '조선제일검'은 이번에도 검을 어정쩡하게 뽑아 들고 동탁을 찌르지도, 검을 다시 집어넣지도 못하고 있다. '해병대 채상병 특검법'을 꺼내 들며 '비윤'의 기조로 확연히 가는 듯했지만, 다른 후보들의 집중포화 속에 제대로 방어하지 못해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특검은 받을 수 없다'라지만, 한동훈 후보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대안'으로서의 특검법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민심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당심의 기준에는 너무 나간 듯한 사이에 끼어 버린 셈이다.
▲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로 나선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28일 부산 방문의 첫 일정으로 남구 유엔기념공원을 찾았다. 장동혁, 박정훈 의원 등과 함께 참배를 하고 있는 한 전 비대위원장. ⓒ 김보성
여포의 최대 정치적 자산은 '한 황실의 역적 동탁을 처단'했다는 것이었다. 여포가 몰락한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무력'이 아니라 본인의 '정치력'이었다. '명분'을 잃은 여포는 조조와 유비의 연합군에게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한동훈 후보가 갖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무엇인가? 한동훈 후보는 어떻게 명분을 만들 것인가? '황태자'이기를 포기한 그가 '명분 있는 배신'을 할 것인지, '명분 없는 충성'을 할 것인지 여론의 관심은 결국 여기에 쏠릴 수밖에 없다.
역사는 항상 승자를 위한 것이지만, <삼국지연의>가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이유는 '패자'인 유비의 '대의명분' 덕분이다. 그저 게임일 뿐인 <삼국지> 시리즈이지만, 플레이어는 각자가 선택하는 군주의 이상과 목표에 본인을 대입한다. 백성을 편안케 하고 천하를 안정시키겠다며 삼국통일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 시작을 위해 칼을 빼든 한동훈 후보가 과연 동탁을 찌를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그것이 여당 대선주자로서 가장 쉽지 않은 길이면서, 동시에 민심의 천하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일 테다. 여당 전당대회는 이제 막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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