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군인으로 성숙되지 못해..." 사망 훈련병 두번 죽인 국방부

[김형남의 갑을,병정] 관리감독 책임 피해가는 국방부의 이상한 '재발방지대책'

등록|2024.07.03 06:56 수정|2024.07.03 06:56

▲ 지난 6월 19일 오전 강원 인제군 인제읍 남북리 인제체육관에서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대 수료식이 열렸다. 체육관 입구에 최근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쓰러져 숨진 훈련병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 연합뉴스


군에서 잇따라 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5월 21일 육군 3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 중 훈련병이 사망한 사건, 5월 25일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얼차려 가혹행위로 훈련병이 사망한 사건, 5월 27일과 28일 양일에 걸쳐 장교 두 사람이 영외 독신자 숙소와 차량 내에서 각기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에 이어 6월 23일 또 육군 51사단에서 일병이 경계근무 중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이 또 발생했다. 불과 한 달 새 다섯 명의 군인이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군인권센터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군 사망자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 내 군인 사망자 수는 2019년 87명, 2020년 55명, 2021년 103명, 2022년 93명, 2023년 59명으로 총 397명이다. 이 중 자살이 308명으로 거의 80%에 달한다. 이외에는 대부분 차량, 항공, 함정, 추락, 익사 등 안전사고다. 신분별 사망자로는 부사관 170명, 병사 133명, 장교 64명, 군무원 29명, 생도 1명 순으로 많았고, 소속 군별 사망자로는 육군 256명, 공군 59명, 해군 49명, 국직부대 2명, 해병대 12명 순으로 많았다.

사망자 수는 연도에 따라 편차가 있는 편이지만 전반적 경향성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교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연평균 80여 명의 군인이 사망하고, 대부분이 자살자라는 것은 분명 문제다. 군이 조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모인 곳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겠으나, 빈도를 줄여나가기 위한 노력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사망자 수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건 이러한 노력이 제대로, 꾸준하게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대책

지난 6월 27일, 국방부는 차관 주관의 '신병교육대 사고 관련 재발방지 대책회의'를 열고 육군 12사단 훈련병 얼차려 사망 사건의 후속 대책을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향후 훈련병은 체력단련이 아닌 명상, 군법교육 등 정신수양의 방식으로 얼차려를 부여하고, 육군의 신병교육기관에서는 군기훈련 승인권자를 대대장급 이상 지휘관으로 높이기로 했다. 일반 기간병들에게는 체력단련 방식으로 군기훈련을 실시하되, 개인 소명 단계를 거치고 1일 최대 횟수, 반복 가능 횟수 등을 법령규정에 명시하고 진행 중 휴식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각군 규정은 법과 시행령이 위임한 바에 따라 얼차려 시행 시 1일 최대 횟수, 반복 가능 횟수 등을 아주 세세하게 정해두고 있다. 진행 중 휴식시간도 정해져 있다. 이처럼 국방부가 발표한 대책은 이미 실시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걸 알면서도 국민에게 뭐라도 한 것처럼 보이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그런 규정이 이미 있다는 걸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발표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무엇이건 문제다.

새롭게 추가된 내용도 제대로 된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신병교육기관에서는 얼차려를 정신수양의 방식으로 실시하고, 기간병은 그대로 체력단련 방식을 취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방부는 '아직 완전한 군인으로 성숙되지 못해 여러면에서 부족한 훈련병들의 시각에 맞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 논의의 결론이라 했다. 대체 사망 사건의 원인을 무엇으로 진단했길래 이런 발표가 나올 수 있는지 놀랍다. 국방부 결론대로면 사망한 박 훈련병이 '군인으로 성숙하지 못한 훈련병'이라서 얼차려를 받다가 사망했다는 말인가?

박 훈련병은 군인화가 덜되어서 사망한 것이 아니고, 대상이 누구든 견디기 어려울 가혹행위를 당하다 쓰러진 것이다. 완전군장을 멘 상태로 선착순 달리기, 팔굽혀펴기, 뜀걸음을 쉼 없이 시키면 훈련병, 기간병은 물론이고 군 생활을 오래 한 간부들도 견디기 어렵다. 사건의 본질과 전혀 관계없는 대책을 마련한 셈이다. 명령권자와 집행자가 규정을 위반해서 얼차려를 빙자한 가혹행위를 자행하여 병사가 열사병으로 사망했는데, 훈련병에겐 명상을 시키고 기간병에게는 체력단련을 시키면 문제없을 거란 이상한 대책을 발표한 데에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제대로 된 사건 진상 규명이 우선이다
 

▲ 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지난 6월 2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신병교육대 사고 관련 재발 방지 대책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행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의 군기훈련'(얼차려) 관련 조항에 따르면 부대의 장성급 지휘관은 군기훈련 실시에 관한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다. 군기훈련을 실시한 중대장 이상 각급 지휘관은 매년 2월 말까지 전년도 군기훈련 실시 결과를 장성급 지휘관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얼차려 실시 과정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자주 불거지니 이런 장치를 추가해 둔 것이다. 법률에 따라 보고를 받으니 장성급 지휘관에게는 당연히 관리·감독의 책임이 발생한다.

물론 해당 조항은 유명무실하다. 규정을 위반해서 문제적 얼차려를 실시한 지휘관이 스스로 규정 위반 사실을 사실대로 상부에 보고할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얼차려 중에 발생한 사망 사건의 책임으로부터 장성급 지휘관이 자유로울 순 없다. 참모들을 통해 예하부대에서 얼차려가 보고대로 실시되고 있는 것이 맞는지, 가혹행위가 발생하고 있지 않은지, 안전한 환경에서 훈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감독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육군 12사단장은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하였다는 질책을 피해 갈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직 사건 수사도 마무리되지 않은 마당에 국방부가 선제적으로 재발방지대책부터 서둘러 발표하고 나섰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육군 12사단 사망 사건의 원인은 '피해자가 군에 적응하지 못한 훈련병이라서', '훈련병에게 얼차려를 실시하면 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서'처럼 보인다. 규정 위반 얼차려를 실시한 중대장, 부중대장이야 경찰에서 수사받고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되겠으나, 국방부 내부적으로 사건과 관련한 관리·감독 책임은 묻지 않겠다고 정리한 것으로도 읽힐 수도 있는 결론이다. 하나마나한 대책과, 사건의 원인과 무관한 이상한 대책은 결국 지휘부의 지휘 책임을 면하기 위한 알리바이일 뿐이다.

재발 방지의 시작은 개별 사건의 진상규명이다.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그에 맞는 적확한 대책 마련이 가능하다. 역으로 얘기하자면 재발 방지가 안 되는 건 진상규명을 제대로  못했거나, 안 했기 때문이라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재발 방지'를 사건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알리바이로 쓰는 구태는 대체 언제쯤 사라질 것인가. 아무리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지만 소가 어느 구멍으로 사라졌는지 알아야 외양간 어디를 고칠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소 잃은 사실을 숨겨봐야 바뀌는 건 없고, 결과는 뻔하다. 고장 난 외양간에선 계속 소를 잃을 수밖에 없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