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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포 세대라 불리던 90년대생의 '0원으로 간 호주'

더 주체적인 삶을 위한 여정과 고민... 왜 하필 호주였냐 물으면 이렇습니다

등록|2024.07.04 13:46 수정|2024.07.04 13:52
10여 년 전,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이었고 사회는 나를 N포 세대라 불렀다. 취업, 연애, 결혼, 출산 등 많은 것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당시 친구들은 어렵사리 취업해 신입사원 생활을 시작했던 반면, 나는 헬조선 탈출을 목표로 인턴십과 카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해외로 나갈 기회만 절치부심하며 알아보던 중이었다.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목표보다, 하루빨리 남들보다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했다.

그 절실함의 기저엔 무한 경쟁 사회인 한국에서의 삶에 대한 불안, 사랑하고 가정을 꾸릴 기본 욕구마저 박탈당한 좌절감, 다른 나라에 살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과 판타지가 깔려 있었다.

결국 2016년 졸업 전 목표를 이뤘다.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라는 북유럽 스웨덴에서 장학금을 받고 유학하러 떠난 것이다. 그런데, 정착을 목표로 떠났지만 2년 후 주어지는 졸업 구직 비자도 마다하고 자진해 귀국했다.

이유? 바로 '가족'이었다. 스웨덴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가족과 함께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소한 시간이 있었다.
 

▲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가족과 마주 앉아 밥을 먹은 적이 언제였나?'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10대 때는 학교나 학원 근처에서 식사를 때웠고, 서울로 대학 진학 후 10년 넘게 자취했다. 13년 전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서 자식 둘을 뒷바라지한 엄마와의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

나이 드는 엄마도 언젠가 내 곁을 떠날 테고 결혼하면 내 가족이 생길 텐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만으로 귀국 동기는 충분했다.

그래서 귀국한 뒤 엄마와 1년 반 동안 함께 살았다. 덕분에 시시콜콜한 추억도 많이 쌓았고, 특히 매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결혼과 동시에 이주를 고민하게 된 이유 
 

▲ 지난해 한 결혼은 주체적인 삶을 위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결혼 당시 사진. ⓒ Layer Gallery


그런데 지난해 영국인 남편과 결혼한 것과 동시에, 나는 또다시 해외 이주를 고민하고 있다. 한국보다 더 가족 친화적인 환경에서 미래 자녀의 정체성과 교육 및 양육 환경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을 찾고 싶어서다.

작가 유시민은 저서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자발적 이민은 존중해야 마땅한 삶의 설계이며,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실존적 선택"이라 주장하는데, 내가 해외 이주를 고민하는 이유도 '실존을 위한 주체적인 선택이자 생존 투쟁'에 가깝다.

나에게 '주체적인 선택'이라는 의미는 이 세상에 완벽한 곳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여러 나라의 장단점을 살피며 나와 우리 가족이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잘 실현되는 나라를 찾는다는 의미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의미는 한국에서 장기적인 희망을 발견하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편과 함께 해외 이주를 고민하며 관심을 가지게 된 나라는 바로 '호주'였다. "호주만큼 멋진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는 표어로 전 세계 관광객을 사로잡는 곳. 단순히 정부 기관이 만든 마케팅 문구라고만 치부하기엔 주변의 많은 호주인들은 자기 나라를 정말 자랑스러워했다. "호주는 정말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라면서.

다양한 글로벌 미디어와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삶 만족도는 매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 반해, 호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족 친화적인 국가이자 삶의 만족도가 높은 곳으로 손꼽힌다.

많은 한국인이 40여 년 전부터 호주에 정착하기 시작해 호주는 미국, 일본에 이어 재외동포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나라로도 꼽힌다. 한국인이 가장 이민하고 싶어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영국 국제 커플인 우리 부부에겐 호주가 다문화 사회라는 점이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 '한국인의 눈으로 본 호주' 대표 이미지. Chat GPT를 기반으로한 AI DALL-E 로 만들었다. ⓒ Scott Watkins


호주 통계청(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에 따르면, 현재 호주 인구의 약 31%가 외국에서 태어났으며, 부모 중 한 명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비율이 50%에 이른다. 이 때문에 단일 민족 사회인 한국에서 미래 자녀의 정체성과 교육 및 양육 환경에 대한 내 고민은 깊어졌다.

'한국에서 우리 아이들이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고 차별받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까?', '치열한 입시 경쟁으로부터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울 수 있을까?', '육아와 사회생활을 잘 병행할 수 있을까?'.

저출산, 입시 지옥 등 한국 사회가 당면한 과제 앞에서 나는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나만의 답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지난 10년간 38개국을 여행하고 4개국에 살면서 내가 보고 경험하는 것만큼 삶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학은 꼭 가야 할까?', '행복이란 뭘까?', '결혼해야만 가정을 꾸릴 수 있나?' 등 여행길 위에서 마주한 질문은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소위 인서울(in서울) 대학 진학, 대기업 취업, 브랜드 아파트 자가 마련 등 대부분의 사람이 달려가는 전형적인 삶의 트랙 위에서 처음으로 벗어난 시간이었다. 우리 세대는 취업, 연애, 결혼, 출산 등 미래의 희망을 포기하고 싶어서 포기한 것이 아니라, 획일화된 성공적인 삶의 기준 아래 '자발적 포기'를 강요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우리 가족의 행복뿐만 아니라 애증이 교차하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나는 한국 너머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 호주 역시 완벽한 나라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 우리 가족의 희망을 심을 수 있는 곳이지 않을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만큼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기에 호주로 2주간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물가 비싸기로 소문난 호주, 돈도 없는데 어떻게 가지? 내 돈 한 푼 안 들이고 호주로 떠날 수 있을까? 막연한 바람과 현실과의 괴리에 좌절할 무렵,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것을 믿기에 뜻을 먼저 품기로 했다.

이름하여, '한국인의 눈으로 본 호주' 프로젝트. 그렇게 0원으로 떠나는 2주간의 호주 대탐험의 막이 올랐다.

- 다음 기사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enerdoheezer)에 게재된 글을 보완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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