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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과정이 곧 명상... 늘 있었는데 못 보던 게 보였다"

존재의 의미를 추적하는 김희정 작가...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전시

등록|2024.07.04 09:46 수정|2024.07.04 10:05
김희정 작가 인터뷰 1부("식물에 눈이 있다면, 사람들 행동은 달라질 겁니다")에서 이어집니다.

반복적인 작업은 명상과 다르지 않아
 

From the Mundane World to the Celestial Worldfabric, thread, plastic objects, pen, paper, 2024 (사진: 영은 미술관 전시뷰 직접 촬영) ⓒ 김현정


- 앞에서도 잠깐 불교적인 색채가 느껴진다는 말씀을 드리긴 했는데요, 작가님의 드로잉 작품이나 페인팅 작품을 보면 불교를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리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불교 신자는 아닙니다. 다만 불교의 내용이 제가 생각하는 인생철학과 많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종교 미술에 감춰진 코드를 푸는 게 참 재미있더라고요. 기독교 미술에도 많은 코드가 감춰져 있지만 불교 미술에는 더 많은 코드가 숨겨져 있어요. 그걸 찾아내고 푸는 재미가 있습니다.

제가 원래 우주를 좋아하는데 만다라가 우주의 지도라는 말을 듣고 관심이 더 생겼습니다. 만다라의 구조는, 위쪽은 부처와 보살이 사는 천상계, 중간은 우리가 사는 세계, 그 아래쪽은 지옥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만다라 그림은 지옥계를 제외한 나머지 세계를 위에서 본 모양입니다. 천상계는 가운데 네모의 형태로 그려져 있고, 인간계는 그 바깥쪽에 동그란 형태로 그려져 있습니다.

만다라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미술사를 공부할 무렵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당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있는 티베트관에 가서 만다라 그림을 하나 골라 논문을 쓰려는 계획을 세웠어요. 다각도로 접근하다가 '다키니'라는 존재를 공부하게 됐어요.

다키니는 천상계에 있는 존재 중 하나예요. 사실 그 그림은 미술사 공부를 하기 전에도 이미 수도 없이 본 거였죠. 그런데 그전엔 안보였던 다키니가 공부를 하고 나서 보니 거기에 버젓이 있었습니다. 늘 있었는데 제가 보지 못했던 거죠.

그때 그 다키니가 이런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이제 내가 보입니까?'라고요. 만다라 그림을 공부하다 보니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내 인생을 다 바쳐도 끝내 다 알아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논문 쓰는 건 포기했지만, 그래도 그때 공부했던 내용이 제 작품 소재로 많이 쓰이게 됐습니다."

-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서 명상을 하신다고 말씀하셨던 걸 기억합니다. 그렇다면, 마치 수행하듯 꾸준히 작업을 하다 보면 해탈의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을까요?

"작품을 만들다 보면 마치 명상을 하고 수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분명 수행자가 하는 명상과는 다를 겁니다. 그러나, 하루에 8시간, 12시간 계속 무언가를 꿰매거나, 나무를 깎거나, 점을 찍거나 하다보면 나 자신을 잊어버립니다. 이것을 명상이라 부른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제 작품 중에는 바느질이 된 것들이 있어요. 바느질을 할 때 마음이 급하면 실과 바늘이 막 엉켜요. 그런데 다른 생각은 다 내려놓고 실과 바늘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좀 나아요. 처음에는 엉키면 그냥 잘라버렸어요. 그런데, 이제는 원래 서로 엉키지 않고 곧게 펴져 있었던 것이니 얼마든지 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천천히 엉킨 부분을 풀어나갑니다."

- 하얀 천과 실, 바늘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십니다. 소재를 고르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어떤 작품을 만들지 생각하다 보면 떠오르는 소재가 있어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제 마음에 가장 와닿는 소재를 이용합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벽 한 면을 통째로 할애한 설치 작품 <From the Mundane World to the Celestial World>에는 대야, 접시, 그릇 등 다양한 소재가 사용됐습니다.

각 재료를 직접 천으로 싸서 꿰매고 눈을 붙인 거죠. 집에서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살림을 사는 일은 결국 육체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양분을 주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명력을 줌으로써 궁극적으로 천상에 닿게 하는 거죠.

눈동자는 가만히 보면 우주의 모습을 닮았어요. 그래서 눈의 형상으로 끌어낸 겁니다. 물건을 싸고 꿰매는 것은 살림살이를 통해 결국 다른 세계로 승화됨을 뜻합니다."

- <Come and Go>나 <From the Mundane World to the Celestial World> 같은 작품은 수십 개의 구성 요소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미 완성된 형태로 전시장에 오는 작품과 달리 이렇게 여러 개의 요소로 구성된 설치 작품은 설치하는 순간의 우연성이 작품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설치 작업(installation pieces) 자체가 모더니즘 시대에 많이 제작됐던 정형적인 조각과는 좀 다릅니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설치하는 공간에 따라 그 작품 형태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작품의 내용은 어느 공간에 설치되든 변하지 않습니다. 작품의 형태는 설치하는 방법에 따라 달라지지만, 콘텐츠는 항상 같습니다.

제가 만든 작품을 구조적으로 생각해보면, 모듈러 컴포지션(modular composition, 여러 모듈로 구성돼 있어 얼마든지 확장 가능한 구성 형태)으로 분류할 수 있어요. 그것이 아티스트 북이든, 설치 작업이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 외국에서 오랫동안 작업 활동을 하시면서 힘든 시간도 많으셨을 거 같아요. 고독 속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힐링이나 치유에 대해서 고민하시고 불교 미술에도 관심이 생기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고독감을 많이 느낍니다. 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그 사회의 일원이 돼서 살아가지만 아무래도 외국인이다 보니 달갑지 않은 시선을 받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작품 활동을 하다 보면 고독하다는 생각에 빠져들기보다 다 잊게 돼요. 나의 고독도, 외로움도, 고뇌도 모두 잊는 겁니다."
 

영은미술관 제2전시장 전경(사진: 영은 미술관 전시뷰 직접 촬영) ⓒ 김현정


-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그럼 이번 전시회를 간략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작년에도 영은 미술관 레지던스에 두 달 지내면서 작업을 했고, 올해는 5월부터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모든 작품을 새로 만들 수는 없었어요. 아티스트 북은 미국에서 다 갖고 왔고요. <From the Mundane World to the Celestial World>를 이곳에서 만든 겁니다.

그동안 미국에서만 개인전을 했고 한국에서는 개인전을 해본 적이 없어서 한국 관객들이 어떤 작품을 좋아하실지 가늠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인 아티스트 북을 여러 권 갖고 오게 됐어요.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는 아티스트 북 외에도 설치 작품, 평면 작품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회의 제목은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Transmuted Existence)>입니다. 제목에 함축된 것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얼마든지 있을 법한 세계를 만들어낸 겁니다. 제가 그리거나 만들어내는 모든 이미지는 무언가를 상징해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들을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작품 곳곳에 숨겨두었으니 그걸 찾아보는 재미도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 이번 전시회가 끝난 후에 두 번의 개인전을 더 진행하실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 좀 부탁드릴게요.

"먼저, 서울 강남에 있는 혜인 갤러리(서울 강남구 논현로 151길 58)에서 <땅, 하늘: From the Mundane to the Celestial>이라는 제목으로 7월 27일부터 8월 13일까지 개인전을 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한 건의 개인전을 더 합니다. 7월 30일부터 8월 10일까지는 종로에 있는 '갤러리 담(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에서 개인전을 엽니다. 많이 오셔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차후에 기자의 개인 SNS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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