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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집 사장인데 밥 하기가 싫어요

남이 차려 준 밥 먹고 싶은 주인의 하소연... 이해가 안 가시겠지만 그런 날도 있어요

등록|2024.07.05 08:14 수정|2024.07.05 08:17
지난 17년간 나는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20년 전만 해도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아이들 돌보고 상황에 따라 맞벌이도 하면서 그렇게 지냈다.

지금은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지만 IMF금융사태(1997년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고 통과하면서 남편은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야만 했다. 졸지에 우리집에 실직자가 둘이 되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냥 있을 수만은 없는 현실이었다. 뭔가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떠오른 것이 20대부터 막연하게 꿔오던 꿈이었다.

남편은 결혼 전 연애 시절에 종종 도시락을 싸주곤 했었다. 막내딸이고 사회 활동을 좋아했던 나는 밥 한 번 안 해 봤기에 남편의 도시락은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근무하던 회사에서 워크숍을 가면 새벽부터 싸온 도시락을 건네면서 나를 놀래켰었다. 도시락 안에는 알록달록한 샌드위치며 앙증맞은 과일로 채워져 있었다.

농활을 들어보았는가? 나의 20대는 뜨거운 여름마다 시골 어느 작은 교회에 찾아가곤했다. 새까만 피부의 아이들과 놀아주고 간혹 농사일도 거들었다. 마지막 날에는 몇 안 되는 동네주민과 아이들을 모아 마을잔치를 열어 음식을 대접했는데 남편의 활약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100여 명의 삼계탕을 거뜬히 끓여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하이라이스를 비롯 스파게티까지 만들어 주위를 기분 좋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연애 시절 내게 잘 보이려고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에 도달했다. 신혼 초에 남편이 내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밥집을 하고 싶어~ 누구라도 편하게 식탁에 모여 앉아 밥도 먹고 대화도 나누는 즐거운 밥집."

기계 설계가 전공인 남편이 하는 말을 그때는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었다. 남편에게 그때 일을 떠올리며 고용보험 받는 기간에 조리학원에 가서 조리사 자격증을 따길 권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속에 우리의 도시락 사업은 자영업 경험이 전무한 상태로 조금 떠밀리듯 시작되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어설프기그지없었다.

사람들이 내게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남편이 요리를 잘해서 좋으시겠어요~ 매일매일 맛있는 음식만 먹으니 얼마나 행복해요?"

지금 생각해보니 남편이 요리를 해서 설렜던 건 결혼 전 뿐이었던 것 같다.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놀이가 아닌 일로 요리를 하는 남편은 퇴근하면 모든 요리에서 손을 뗐다. 하기야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 하루종일 도시락 배달하고 수거하다 보면 녹초가 되어 밥을 하고 싶겠나 싶다.
 

▲ 도시락 만틀기-행복한만찬 ⓒ 임경화


10년이 넘게 어깨너머로 배운 내 음식도 맛이 없지는 않다. 요즘은 주객이 전도되어 남편은 배달을 주로 담당하다보니 내가 요리를 더 많이 한다. 그렇게 하루종일 서서 반찬을 만들고 도시락을 포장하다보면 퇴근 무렵의 내 몸도 과부하가 걸린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당장이라도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나의 일이 기다리고 있다. 모여 있는 빨래를 세탁기에 털어놓고, 재빨리 청소기를 남편에게 들려 주면서 드는 생각.

'나도 누가 해 주는 저녁 밥 먹고 싶다.'

점심을 내가 만든 음식을 먹었으니 저녁은 남이 해 준 밥을 먹고 싶다. 그러나 남편은 눈치가 없게도 시켜먹는 음식을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다. 그런 남편 덕분에 주중에는 주로 낮에 남은 반찬으로 저녁을 먹는다. 나를 보면 늘 밥 먹었냐고 물어 보셨던 엄마의 밥상이 너~무 그립다.

"나는 당신 밥을 먹어야 속도 마음도 편해~."

남편의 속없는 말에 오늘도 무거운 몸을 움직여서 저녁을 차린다. 그동안 남편은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린다.

꾀를 내었다. 아이들 핑계대고 금요일 저녁은 치킨데이로 정했다. 치킨 좋아하는 아이들 일찍 오라 하고 배달 음식으로 저녁을 대신한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나도 밥에서 해방되고 싶다. 덕분에 제각각 바쁜 아이들이랑 대화도 나누고 제법 훈훈한 저녁이 된다.

주문받은 도시락을 쌀 때는 아무리 피곤해도 정성을 다하는데 정작 수고한 우리에겐 너무 대충인 것 같아 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다. 이해 안 되겠지만 나도 밥하기 싫은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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