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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납치실화, '하이재킹'에 담긴 기장의 책임감

[리뷰] 영화 <하이재킹>

등록|2024.07.04 18:04 수정|2024.07.04 18:04

▲ 영화 <하이재킹> 포스터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책임감은 단순히 의무를 다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깊이 고민하고, 그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나 비행기 조종사 같은 직업은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그들 결정 중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기에, 그들은 항상 최고의 판단을 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있다.

영화 <하이재킹>은 이러한 책임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부기장 태인(하정우)은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직업의식과 책임감을 끝까지 지키며, 희생자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그의 동료인 기장 규식(성동일)과 승무원 옥순(채수빈) 역시 마찬가지로 높은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 역시 승객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다. 비행기를 납치하는 용대(여진구)는 자기 가족을 지키려는 책임감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게 비록 잘못된 에너지가 되어 발산되지만, 결국 그의 행동도 책임감에서 비롯된 죄책감이 원인이었다. 이 영화는 각 인물의 책임감이 어떻게 충돌하고, 그것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첫 번째 감정] 태인의 책임감
 

▲ 영화 <하이재킹> 장면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부기장 태인은 과거 공군에서 납치된 여객기를 격추하라는 명령을 어긴 경험이 있다. 그는 승객과 승무원들을 살리고 싶었기 때문에 명령을 거부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비행기는 납북되었고 태인은 군에서 퇴출당했다. 이러한 과거가 그에게 큰 두려움을 안겼지만, 그가 여객기 조종사를 택하는 계기가 됐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그 일을 그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객기 조종사가 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승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영화에서 태인은 매우 조용하고 진지한 인물로 묘사된다. 특별히 실없는 말을 하지 않고 항상 침착한 태도로 상황에 대처하는 그는 이 영화 안에서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다. 비행기가 납치당했을 때도 감정적인 반응을 먼저 보이지 않고, 침착하게 그 상황을 대처하며 승객들을 안전하게 내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태인의 책임감은 단순한 의무감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사명감으로 보이기도 하고, 과거에 다른 여객기를 납북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처럼 보이기도 하다. 이 감정들은 그가 더 책임감을 갖게 한다. 그의 에너지는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강력한 힘이 된다. 그는 납북된 선배 조종사의 가족들까지 챙기는 등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간다. 그의 모습은 영화 전반에 걸쳐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다른 누구보다 태인의 서사가 중심이 된다.

[두 번째 감정] 용대의 분노
 

▲ 영화 <하이재킹> 장면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납치범 용대는 사실 억울한 인물이다. 북으로 넘어간 형 때문에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 가고 어머니는 혼자 집을 지켰지만, 지병으로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는다. 그는 가족을 살필 기회도 없었다. 감옥에서 출소해서 돌아온 집에는 숨이 멎은 어머니뿐이었다. 억울한 상황과 슬픔은 큰 분노가 된다. 그의 납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용대의 분노는 그를 비행기 납치로 이끌었고, 다른 무고한 승객들에게 큰 위협이 됐다. 결국 그의 잘못된 선택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거나 트라우마를 겪는다. 그는 침착하게 대응하는 부기장 태인을 보며 자신이 상황을 주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조금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용대가 가지고 있는 분노가 그의 판단력을 망가뜨렸기에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용대는 계속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북으로 가자는 그의 외침은 후반부로 갈수록 공허하게 들린다. 단지 그의 분노만 화면 속에서 전달될 뿐이다. 그의 서사 안에서는 그의 행위는 정당성이 있지만, 비행기 전체 승무원과 승객들의 서사까지 확대하면, 그 분노는 정당성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아무 의미 없는 분노가 된다.

[세 번째 감정] 규식의 믿음

 

▲ 영화 <하이재킹> 장면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기장 규식은 처음에는 태인을 믿지 않았다. 그런 태도는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담배를 피우며 태인과 규식의 대화에서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규식은 태인에게 이번 비행에서 착륙을 해보라고 이야기하면서, 태인의 실력을 살펴보려 한다. 태인에게 그 기회가 그의 경력에 꽤 중요한 기회였다.

비행기가 납치당했지만, 태인은 차분함을 유지한다. 그의 태도를 본 규식은 부기장으로서의 태도를 먼저 인정한다. 폭탄이 터지고, 비행기에 구멍이 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그 상황을 대처하고 승객을 안심시키는 모습은 충분히 규식에게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규식은 상황이 심각해지자 점차 태인에게 의지하고, 결국 그를 전적으로 믿는다.

중반부에 규식은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아 태인에게 완전히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결국 그는 마지막 순간에 태인에게 착륙을 맡긴다. 규식의 믿음은 태인이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외부의 판단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믿은 규식의 태도가 매우 감동적이다. 영화에서 기장으로서의 역할은 제한적이지만, 리더로서 가질 수 있는 품격은 충분히 보여준 인물이다.

영화 <하이재킹>은 과도하게 감동코드를 밀어 넣지 않으면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다. 부기장 태인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중심인데, 그의 우직한 모습이 끝까지 이 영화를 지탱한다. 그가 지닌 책임감,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믿음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든다.

분노에 가득 찬 납치범이 벌인 일이지만, 그를 달래고 설득하면서 좋은 상황을 만들려 애쓰는 모습이 긴장감 있게 담겨 있다. 영화는 실화의 힘이 장점이 된다. 비행기가 불시착한 모습도 실제와 같고, 납치범의 사연도 거의 비슷하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희생된 사람들의 구성도 실제와 동일하다. 실화가 좋았기 때문에 담백하지만 긴장감 있는 영화가 됐다.

이 영화는 유머가 전혀 없다. 성동일과 하정우가 등장하지만, 그들의 특유의 개그 연기가 전혀 없다. 또한 외부 비상 센터 같은 정부의 대처를 보여주는 장면도 없이, 온전히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일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점이 이 영화의 감정들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영화가 다루는 시기에 비행기 납치나 납북 사건이 많았다.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하지만 이때에도 누군가를 살리려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언제나 그런 사람은 사회에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단지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영화 <하이재킹>에는 그런 책임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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