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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발진'은 막고 고령운전 배려하는 일본, 이렇게 한다

안전장치 부착 의무화, 75세 이상 운전 기능 검사 강화... 면허 반납자 위한 제도도 준비

등록|2024.07.08 17:04 수정|2024.07.08 17:04
나는 일본에 15년째 살고 있다. 지난 4월, 둘째가 유치원에 입학한 뒤 발레 교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수강생은 20명 정도인데 연령대는 유치원생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나를 가장 반갑게 맞아주는 분은 미네라는 이름의 72세 여성이다. 그녀는 우리 집에서 불과 300미터 떨어진 주택에서 남편과 아들 내외와 함께 산다. 가끔 자택 앞에서 우리 가족과 마주치면 정원에 핀 꽃 이름도 알려주고, 아이들에게 간식도 쥐어주시는 친절한 분이다.

그런데 6월 들어 발레 교실에서 미네씨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6월 중순, 3주 만에 복귀한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부부가 연이어 코로나에 걸렸었다고 했다. 다행히 미네씨는 금방 회복이 됐는데, 폐렴을 앓은 적이 있던 남편 분이 증세가 악화돼 입원을 했었단다.

"아들은 출장 중이고 남편이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데, 병원에 가려니 택시가 안 잡히는 거야.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닐까 싶더라고. 우리가 둘 다 면허를 반납했거든. 그 전엔 집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코로나에 걸린 채로 버스를 탈 수는 없잖아?"

미네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면허가 없는 것은 불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는 고령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예 '안전장치 부착 의무화' 시작한 일본  

그로부터 얼마 지난 6월 28일. 자동차 안전장치 부착 의무화에 관한 뉴스가 발표됐다. 일본 교도 통신은 국토 교통성의 발표를 인용해 "자동차 페달을 잘못 밟는 사고를 막아주는 안전장치를, 자동 변속기 차량에 한해 의무화한다"라고 보도했다. 정확한 실행 시기는 올 11월 있을 유엔 국제회의의 결과를 반영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 안전 장치 의무화 관련 뉴스 화면. 페달에서 발을 떼라는 경고 메세지가 적혀 있다. ⓒ 테레토BIZ 유투브 캡쳐


해당 장치는 차량이 장애물에서 1~1.5 미터 떨어진 곳에서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아도 부딪히지 않거나, 시속 8킬로 미터 미만으로 속도를 억제해 준다. 차내에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 주세요'라는 경고 문구가 표시된다. "일본 국내 신차 대부분에 이미 오조작 방치 장치가 탑재돼 있기 때문에, 업계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실제 최근 나온 차량들은 대부분 이런 장치가 있다. 하지만 오래된 차라고 해서 꼭 새 걸 살 필요는 없다. 인근 자동차 용품점에 가면 누구나 간단하게 부착할 수 있는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들이 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격대도 1만 엔(한화 8만 5천 원)에서 10만 엔(한화 85만 5천 원)까지 다양하다.

가속 페달에 부착하면 바로 사용 가능한 장치들이다. 해당 제품은 차가 정차 중이거나, 혹은 시속 10km 미만으로 주행 중일 때 운전자가 갑자기 가속 페달을 세게 밟으면 경고음이 울린다. 이어 전자 신호를 엔진에 보내지 않게 해, 운전자가 페달을 계속 밟더라도 차량이 급가속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75세 넘으면 인지 검사 의무화... 면허 없으면 생활 어려운 고령자는? 
  

▲ 자동차 용품점에 진열된 페달 오작동 방지 장치 (출처: 중고차 관련 홈페이지) ⓒ carsensor.net


자동차 관련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고령 운전자들 중에는 신체적 혹은 심리적 이유로 면허를 반납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998년부터 '운전면허 자진 반납제'를 시행해오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면허증을 반납하면 '운전 경력 증명서'를 발급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시행 첫 해의 반납자는 2500여 명에 불과했다. 이후 꾸준히 반납자가 증가해 2019년에는 60만 1022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반납자 수가 정점을 찍은 배경에는 2019년 4월 일어난 '이케부쿠로 폭주 사건'이 있었다.
 

▲ 2019년 이케부쿠로에서 발생한 자동차 사고 ⓒ nhk


87세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잘못 밟아, 31세 여자와 그녀의 3살 된 딸이 사망하고 시민 10여 명이 다친 사건이다. 유족이 가족을 잃은 아픔을 언론에 호소하며 전 일본을 슬픔에 빠뜨린 이 사건은, 특히나 고령 운전자들에게 큰 심리적 타격감을 안겼다. 일본 정부 측에도 경각심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듬해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며 면허 반납률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일본 경찰청이 올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면허를 반납한 건수는 38만 2957건으로 전년도 비해 6만 5519건 감소, 2019년 이후 4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일본 정부는 다양한 제도적 보완 장치를 마련해 반납자의 숫자를 늘리려 하고 있다. 2022년부터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운전 기능 검사'를 의무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일본 경찰청의 포스터로, 2022년부터 고령 운전자의 운전 기능 검사가 의무라는 걸 알리는 내용(원문은 일본어,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어로 이미지번역을 거친 것이다). ⓒ 일본 경찰청


현재 일본에서는 70~74세 운전자에 한해 '고령자 강습'이라며 시력 검사가 이뤄지는데, 구체적으로는 야간 시력과 동체 시력 등을 측정하고 반응 속도, 판단력 등을 검사한다. 운전자가 75세가 넘으면 인지 기능 검사가 추가되고, 결과에 이상이 있는 경우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야 한단다.

만약 75세 이상 운전자가 교통 위반 이력이 있으면 실기 시험을 다시 봐야 하는데, 여기서 불합격되면 이후에 면허를 갱신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즉 75세 이상 운전자 중 최근 3년간 교통 위반 경력이 있는 고령자는 반드시 국가로부터 '운전 기능 검사'를 거쳐야 운전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둔 것이다.

시골 사는 시부모님 생각이 났다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면허를 포기하는 고령자는 많지 않다.

일본 경찰청이 65세 이상의 고령 운전자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면허 반납을 주저하는 이유를 묻자, 68.5% 응답자가 "(운전을 하지 않으면) 생활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특히 대중교통이 발달해있지 않는 지역 거주 응답자들은 "불편을 넘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라고 답했다.
 

▲ 일본은 2022년부터 고령 운전자의 운전 기능 검사가 의무화됐다. 인지 기능 검사 중인 일본의 고령 운전자들 모습.(BSN 방송 뉴스화면 캡쳐) ⓒ BSN NEWS


차가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고령자, 이건 우리 부부에게도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인인 내 남편은 인구 6000명 정도의 시골 출신인데 부모님은 아직 고향에 계신다. 70대인 시부모님은 두 분 다 운전대를 잡으신다. 가까운 슈퍼까지의 거리가 4km는 족히 되는 시부모님에게 차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본의 지자체들은 고령 운전자들이 안심하고 면허를 반납할 수 있도록 여러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 중소도시에서는 한국의 마을버스와 같은 커뮤니티 버스를 잦은 빈도로 운영한다. 어르신들이 무료로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승차권을 발행하는 지자체도 있다. 유통망이 확보된 대도시의 경우 어르신들을 위한 택배나 쇼핑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이동 판매 차량을 도입하기도 한다.

남편의 고향처럼 유통망이 부족한 시골이나 산간 지역 등에도 대기업이 운영하는 이동 판매 차량이 진출해 있다. '푸드 트럭'이라 불리는 이동 음식 차량을 지자체가 유치해 주민 생활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는 곳도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실시한 관련 조사에 따르면 일본 전체 지자체의 73.4%가 고령자들의 이동 편의와 관련된 대책을 실시하고 있고, 이런 지자체는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고 한다.
   
면허가 없어도 사용 가능한 시니어카도 고령자들의 선택지 중 하나다. 시니어카는 핸들형 진동 휠체어라고도 불리며 최고 속도는 시속 6km 정도다. 가정에서 충전이 가능하고, 한 번 충전하면 20~30km 정도 달릴 수 있다.
 

▲ 시니어카를 타고 있는 모습(자료사진). ⓒ photoAC


지자체들 중에는 시니어카 구입을 위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곳도 여럿이다. 실제로 내가 사는 동경 시내에서도 상점이나 공원, 넓은 보도에서 시니어카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남편과 나는 가까운 미래에 운전이 힘들어질지 모를 시부모님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을지 생각해보고는 한다. 기술이 극적인 속도로 발달해서 고령의 운전자도 안심하고 운전할 수 있게 될까? 아니면 생활 지원 제도가 충분히 보완돼 어르신들이 마음 놓고 면허를 반납할 수 있게 될까?

최근 한국 서울에서 난 사고를 뉴스로 봤다. 고령 운전자에 의한 차 사고가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남일 같지 않은 탓에 걱정스럽게 화면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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