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볕의 도시 광양, 지나치면 아쉬울 오래된 나무
신대동여지도, 길따라 마을따라 빛과 볕의 도시 광양에 가다
광양(光陽)은 빛과 볕이라는 비슷한 뜻을 가진 낱말이 더해진 이름이다. 이런 이름은 해양(海洋)과 육지(陸地) 등에서 볼 수 있다. 빛과 볕의 도시 광양에 쇠 금(金)자가 들어가는 금호도에 제철소가 들어섰다. 땅과 마을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선견지명이 있는 이름이다. 광양제철소는 여수화학과 더불어 전라도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늘어나게 하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광양은 바다를 끼고 있어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영을 구성하는 5관이다. 광양현감 어영담은 물길에 밝아서 임진왜란 승리에 많은 공을 세웠다. 충무공 이순신의 어영담 현감에 대한 신임은 난중일기와 장계를 통해 알 수 있다.
"비가 쏟아졌다. 어 조방장(어영담)이 세상을 떠났다. 애통함을 어찌 다 말하랴."
광양에는 전라남도에서 가장 높은 1,222미터의 백운산이 우뚝 솟아있다. 백운산은 봄의 전령 고로쇠 물로 유명하고, 산이 크니 목장 등 산을 이용한 경제활동도 활발하다. 백운산은 백두대간 정기가 지리산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이라서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한다. 백운산 정기를 받은 인재(人才)에 대한 세 개의 정기에 관한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벼슬을 뜻하는 봉황 정기와 지혜를 뜻하는 여우 정기는 이미 나왔다고 한다.
정확히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광양 지역에서 장·차관 등 소위 출세 인물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재물을 뜻하는 '돼지 정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역의 효자 산업인 광양 제철이 만약 돼지 정기라고 한다면 광양과 금호도의 마을 이름에 더하여 신통방통한 풍수지리다.
광양은 섬진강을 따라 하동과 마주 보고 있다. 화개장터는 하동과 구례 사람이 장을 보는 얘기를 하는데, 전체적으로 섬진강을 두고 하동과 접하는 지역은 광양이다. 순천장 보러 몇십 리 길을 걷기보다는 배를 타고 강만 건너면 하동이다. 지금은 다리가 놓여 있어 광양시 진월면과 하동은 같은 생활권이고, 실제로 하동 택시가 운행한다. 반면에 광양에서 순천에 가려면 버스를 갈아타는 등 대중교통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섬진강 길을 걸으면서 체험했다.
그래서인지 광양 억양은 경상도 억양과 비슷하다. 젊었을 적 광양 친구에게 경상도 억양으로 "광양 넘어갈래?"하는 것이 헤어질 때 인사 겸 약간의 놀림이었다. 광양은 말 억양처럼 억세고 생활력이 강하다는 평이 있다. '고추 서말을 지고 개펄을 30리 기어서 간다'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광양 사람들이 나무가 많은 백운산에서 땔감을 만들어 광양과 순천보다 훨씬 먼 벌교장에 가서 팔았다. 그 돈으로 고춧가루를 사서 돌아오면서, 통행세를 아끼기 위해 진치재 등 길을 피하여 바닷가 개펄로 걸어간 것에서 유래한다. 한편으로 광양 사람이 몸에 사는 '이 스무 마리를 몰고 하동장까지 간다'는 말도 있다.
오래된 마을에는 오래된 나무가 있어야 제격이다. 광양에서 유당 근린공원과 인동 숲에는 매우 오래된 나무숲과 이팝나무가 있다. 두 곳은 조선 중종 때 광양 현감 박세후가 바람을 막는 용도와 풍수지리 차원에서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광양읍을 상징하는 나무(광양 읍수)는 이팝나무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만든 지 얼마 안돼서 이런 오래된 나무가 없다.
유당 공원에는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한 김천록 정려비, 광양민란 수반토평비 외에도 많은 선정비와 영세불망비가 모아져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개인 출세를 위해 일제에 협력한 사람의 비 앞에는 이들의 행적을 기록한 표지를 세웠다. 광양 시민은 현명하게도 비를 없애는 것보다 보존하면서도 이들의 위선을 고발하고 있다.
유당 공원에 있는 돌로 만든 선정비와 영세불망비는 아마도 박세후가 심은 나무보다 오래갈 것이다.
누가 백성과 지역을 더 사랑했을까? 후세에 백성들이 어떤 목민관의 선정을 더 기릴까? 유당 공원에 있는 선정비와 영세불망비 몇 백 개가 있다고 해도, 이런 나무 한 그루와 가치를 비교할 수 있을까? 유당공원과 인동숲은 남파랑길 50구간에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반드시 들러 이팝나무를 볼 것을 권한다.
광양은 바다를 끼고 있어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영을 구성하는 5관이다. 광양현감 어영담은 물길에 밝아서 임진왜란 승리에 많은 공을 세웠다. 충무공 이순신의 어영담 현감에 대한 신임은 난중일기와 장계를 통해 알 수 있다.
광양에는 전라남도에서 가장 높은 1,222미터의 백운산이 우뚝 솟아있다. 백운산은 봄의 전령 고로쇠 물로 유명하고, 산이 크니 목장 등 산을 이용한 경제활동도 활발하다. 백운산은 백두대간 정기가 지리산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이라서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한다. 백운산 정기를 받은 인재(人才)에 대한 세 개의 정기에 관한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벼슬을 뜻하는 봉황 정기와 지혜를 뜻하는 여우 정기는 이미 나왔다고 한다.
정확히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광양 지역에서 장·차관 등 소위 출세 인물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재물을 뜻하는 '돼지 정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역의 효자 산업인 광양 제철이 만약 돼지 정기라고 한다면 광양과 금호도의 마을 이름에 더하여 신통방통한 풍수지리다.
광양은 섬진강을 따라 하동과 마주 보고 있다. 화개장터는 하동과 구례 사람이 장을 보는 얘기를 하는데, 전체적으로 섬진강을 두고 하동과 접하는 지역은 광양이다. 순천장 보러 몇십 리 길을 걷기보다는 배를 타고 강만 건너면 하동이다. 지금은 다리가 놓여 있어 광양시 진월면과 하동은 같은 생활권이고, 실제로 하동 택시가 운행한다. 반면에 광양에서 순천에 가려면 버스를 갈아타는 등 대중교통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섬진강 길을 걸으면서 체험했다.
그래서인지 광양 억양은 경상도 억양과 비슷하다. 젊었을 적 광양 친구에게 경상도 억양으로 "광양 넘어갈래?"하는 것이 헤어질 때 인사 겸 약간의 놀림이었다. 광양은 말 억양처럼 억세고 생활력이 강하다는 평이 있다. '고추 서말을 지고 개펄을 30리 기어서 간다'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광양 사람들이 나무가 많은 백운산에서 땔감을 만들어 광양과 순천보다 훨씬 먼 벌교장에 가서 팔았다. 그 돈으로 고춧가루를 사서 돌아오면서, 통행세를 아끼기 위해 진치재 등 길을 피하여 바닷가 개펄로 걸어간 것에서 유래한다. 한편으로 광양 사람이 몸에 사는 '이 스무 마리를 몰고 하동장까지 간다'는 말도 있다.
▲ 몇 백년 동안 광양을 지켜온 나무들광양 유당공원과 인동숲에는 중종 때 광양현감을 지내던 박세후가 심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이런 나무를 보면 주변에 있는 선정비가 무슨 가치가 있을까를 생각한다. ⓒ 이병록
오래된 마을에는 오래된 나무가 있어야 제격이다. 광양에서 유당 근린공원과 인동 숲에는 매우 오래된 나무숲과 이팝나무가 있다. 두 곳은 조선 중종 때 광양 현감 박세후가 바람을 막는 용도와 풍수지리 차원에서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광양읍을 상징하는 나무(광양 읍수)는 이팝나무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만든 지 얼마 안돼서 이런 오래된 나무가 없다.
유당 공원에는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한 김천록 정려비, 광양민란 수반토평비 외에도 많은 선정비와 영세불망비가 모아져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개인 출세를 위해 일제에 협력한 사람의 비 앞에는 이들의 행적을 기록한 표지를 세웠다. 광양 시민은 현명하게도 비를 없애는 것보다 보존하면서도 이들의 위선을 고발하고 있다.
유당 공원에 있는 돌로 만든 선정비와 영세불망비는 아마도 박세후가 심은 나무보다 오래갈 것이다.
누가 백성과 지역을 더 사랑했을까? 후세에 백성들이 어떤 목민관의 선정을 더 기릴까? 유당 공원에 있는 선정비와 영세불망비 몇 백 개가 있다고 해도, 이런 나무 한 그루와 가치를 비교할 수 있을까? 유당공원과 인동숲은 남파랑길 50구간에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반드시 들러 이팝나무를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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