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한 용인시의 모습... 어쩌다 이렇게 됐나
[최병성 리포트] 주민 갈등 유발하는 난개발 정책, 개선이 시급하다
▲ 용인시 보라산. 능선을 따라 숲이 사라졌다. 집중호우가 이어지고 있는데 황토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2024년 7월 현재. ⓒ 최병성
▲ ⓒ 최주혜
숲이 도려낸 듯 왕창 사라졌다. 집중호우가 예보된 7월 초 장마철임에도 붉은 황톳빛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곳은 경기도 용인시 보라산 정상을 향해 시민들이 오가던 등산로였다. 그러나 능선을 따라 위치했던 등산로마저 막개발 앞에 사라졌다. 심지어 등산로 너머까지 나무를 베어내고 파헤쳤다. 전원주택을 짓겠다며 숲을 전멸시키는 일이 용인시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 시민들이 오가는 등산로까지 다 벌목해서 파헤쳤다. 지난 2022년 초 현장 모습 ⓒ 최병성
필자는 지난 2019년 용인시 난개발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난개발 방지를 위한 개선안을 마련하여 용인시에 제시한 바 있다. 산사태 등의 재난을 방지하기 위해 경사도 기준 강화를 비롯해 능선으로부터 최소한의 이격 거리 기준을 둘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용인시의 난개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난개발 방지를 공약으로 내세워 시장에 당선되었던 백군기 당시 시장에게 전화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최소 등산로만이라도 보전을 요청했다. 그러나 용인시장은 등산로 보전을 위한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오늘도 열심히 공사 중이다. 그가 내세웠던 난개발 방지 공약은 공염불이었음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마치 영화 <트랜스포머>가 연상되는 중장비들이 굉음을 울리고 있는 현장에선 베어낸 나무들을 트럭에 옮겨 싣는 중이다.
▲ 숲에 가득했던 나무들을 벌목한 후 트럭에 옮기고 있다. ⓒ 최병성
이곳은 숲속에 빌라가 위치했던 보라산 근처다. 예쁘게 지어진 건축물, 집 뒤에 초록 숲이 있기에 이곳 빌라로 이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지난 6월 12일, 갑자기 집 뒤 숲의 나무들이 모조리 베어졌다. 새들의 고운 노래 대신 중장비의 굉음이, 맑은 공기 대신 황톳빛 먼지가 날리고 있다.
▲ 빌라 뒤편 숲이 몽땅 사라졌다. 주민의 안전은 조금도 고려되지 않았다. ⓒ 최병성
중장비가 벌목한 나무들을 옮겨 싣는 바로 옆의 또 다른 전원주택 공사 현장. 뒤편 아파트를 건축하며 산지를 절토하여 만든 높은 옹벽이 있다. 바로 앞에 얼마 남지 않은 사면을 깎아내고 옹벽을 쌓다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경사면이 무너질 위험이 높아 보인다.
공사장 정문은 굳게 닫혀 있고, '유치권 행사 중이니 무단출입을 금한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유치권 행사 중'이란, 건축 공사를 작업한 업체가 의뢰한 사람에게서 공사 대금을 받기 위해 유치권을 행사하면서 공사를 중단한 것을 의미한다.
▲ 이미 공사가 중단되어 있는 현장 바로 곁에 새로운 공사가 진행 중이다. ⓒ 최병성
용인시에는 숲을 파먹는 난개발 벌레가 살고 있나
용인시엔 숲을 파먹는 난개발이라는 벌레가 사는 듯하다. 산 능선을 향해 서로 경쟁하는 듯 숲을 파헤치고 집을 지었다. 약간의 등산로만 남겨두었다. 이곳은 지속적으로 숲을 파먹는 난개발이 진행 중인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의 전원주택단지 모습이다. 장마철을 앞둔 지난 1일 현장을 돌아봤다.
▲ 등산로만 남기고 숲을 파헤치며 전원주택들이 들어섰다. ⓒ 최병성
위 사진 속에 벌겋게 속살을 보이는 현장 몇 곳이 보인다. 2019년 파헤친 후 지금까지 공사가 중단된 현장들이다. 심지어 2013년 파헤친 후 현재까지 방치 중인 곳도 있다.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현수막이 붙은 공사 중단 현장이 3곳이나 되었다.
가까이 내려가 살펴보았다. 급경사의 산을 깎아 계단을 만들었다. 2019년부터 지금까지 이런 모습이다. 관리용 컨테이너 박스와 견본으로 지어진 주택에도 '유치권 행사중'이라는 붉은 현수막이 붙어 있다.
▲ 전원주택을 짓겠다며 경사진 숲을 몽땅 도려냈다. 2019년 파헤친 후 지금까지 방치되고 있다. ⓒ 최병성
▲ 숲을 파헤친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유치권 행사중 현수막이 붙어있고, 공사는 중단되어 있다. ⓒ 최병성
숲을 전멸시키는 전원 주택
용인시 난개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현장이 있다. 산 정상부까지 숲을 파헤치고 전원주택들이 들어선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의 광교산 난개발 현장이다. 광교산 급경사지에 주택들이 들어서니 위태로운 현장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 경사진 숲을 파헤치고 전원주택들이 들어섰다. 무계획적인 집 짓기로 도로는 미로 찾기와 같고, 공공시설은 전무하다. ⓒ 최병성
필자는 고기동 광교산 난개발 현장을 처음 찾은 2018년 이후 지금까지 수시로 살펴보았다. 2019년과 2024년 사진을 비교해 보자.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위태롭게 방치된 현장들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새롭게 숲을 파헤치는 막개발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 위태로운 고기리 광교산 난개발 전원주택 공사 현장.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방치된 현장들이 흉물로 남아있다. ⓒ 최병성
지난 6월 17일 고기초등학교 학부모들은 피켓 시위를 벌였다. 도로가 좁은 지역에 급경사의 산을 깎고 들어서는 노인복지주택형 아파트 공사차량이 학교 앞을 통과하는 것에 대해 학부모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난개발에 더해 안전위험까지 제기된 곳이다.
공사 현장은 이미 오래전에 벌목이 끝났고, 용인시로부터 착공 허가는 물론 최근 실시계획인가까지 다 떨어진 상태였다.
▲ 정상부 까지 산을 파먹는 난개발이 가득한 고기리에 노인복지주택시설이 허가났고, 공사 차량이 고기초등학교 앞을 통과하게 된다. 좁은 도로에 학생들의 안전을 우려하여 학부모들이 나선 것이다. ⓒ 최병성
그동안 용인시는 도로와 학교 등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인허가를 내줘왔다. 이는 주민과 사업자 간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사업자는 공사가 조금 지연될 뿐이다. 대부분의 사업자들이 공사를 방해하는 주민들을 고발하고, 길고 지루한 소송전이 이어진다. 결국 사업은 완성되고 재판에 패소한 주민들은 소송비용 부담과 함께 전과자라는 상처만 얻는다.
난개발에 어린이 안전위험까지
▲ 지난 6월17일 열린 노인복지주택사업 공사차량 운행 방안과 학생 안전 대책 설명회에서 사업자가 학교 정문과 후문, 샛길 등 3곳에 신호수 배치를 설명하고 있다. ⓒ 최병성
지난 6월 17일 열린 사업설명회에 참석했다. 사업자는 학교 정문 앞 도로 대신 최근 개설된 학교 후문 도로로 우회하여 공사차량들이 이동하고,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학교 정문과 후문, 샛길에 신호수 3명 배치하겠다는 안전 대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사업자가 제시한 고기초 후문 쪽으로 우회할 경우 도로 길이만 1.8km에 이른다. 특히 아이들이 많이 오가는 학교 후문과 마을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이에 반해 학교 정문 앞쪽 도로는 350m다. 특히 고기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고기교 까지의 거리는 80m에 불과하다. 오히려 거리가 짧은 학교 정문 앞에 신호수를 집중 배치하는 것이 학생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최선책이 될 수 있다.
▲ 공사차량이 용서고속도로 아래 지점에서 고기초 후문 도로로 우회할 경우 아이들이 많이 오가는 학교 후문과 마을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주택가 사이를 통과해야 해서 주민 민원이 폭증하게 될 것이다. ⓒ 최병성
▲ 우회도로와 달리 학교 정문 앞에서 고기교 까지는 겨우 80m에 불과하다. 학생들의 안전 대책 마련이 우회도로 보다 훨씬 간단하다. ⓒ 최병성
고기초등학교 정문 앞 상황을 살펴보는 잠깐 동안에도 레미콘과 대형트럭들이 수시로 오가고 있었다. 고기초등학교 주변에 다양한 공사들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 아이 안전 타협없다며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공사 차량 통행을 반대하는 현수막 앞으로 레미콘과 대형 차량이 오가고 있다. 고기초 정문 앞 도로를 따라 하천이 흐르고 있다. ⓒ 최병성
결국, 애초에 무분별한 인허가를 내주고 학부모와 사업자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용인시의 무책임한 인허가 행정이 바뀌어야 한다.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첫째, 인허가 단계에서 좀 더 면밀한 기준들을 검토해야 한다. 쉽게 허가를 해 준 후 사업자에게 알아서 해결하라고 떠넘기면, 주민과 사업자 간의 갈등이 발생하고 결국 주민 피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둘째, 인허가 이후 발생한 갈등을 조정할 중재 기구가 시급하다. 그동안 용인시는 무분별한 인허가로 발생한 갈등에 대해 어떤 중재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필자가 용인시난개발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용인시의 많은 인허가 서류를 살펴보고, 찾아오는 피해 주민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가장 절실하게 느낀 점이 '중재기구의 필요성'이었다.
용인시의 잘못된 인허가로 인해 갈등이 발생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푸는 노력 역시 용인시가 감당해야 마땅하다. 인구 100만 특례도시가 되었으면, 그에 걸맞은 행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기후재난에 대비한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지난 2022년 8월, 경기도 여주의 전원주택과 고급차량들이 산사태로 초토화되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이런 엄청난 산사태가 발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많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산사태로 밀려온 토사와 나무 기둥들이 전원주택을 덮치고, 고급 차량이 휴지조각이 되었다. ⓒ 최병성
이제 어느 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다. 산사태로부터 안전이 건축 허가 단계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자연을 파헤친 결과로 발생하는 인재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홍수와 산사태와 산불과 지진의 강도가 커지고 있고, 이로인한 재난도 증가하고 있다. 난개발로 인한 주민들의 갈등을 줄이고, 도시 경관을 보호하고, 기후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도시가 되기 위해 좀 더 안전한 도시 계획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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