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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가서 나비를 실컷 봤네요

등록|2024.07.08 09:46 수정|2024.07.08 09:46
역시 오기를 잘했다. 비가 억수 같이 쏟아부으면 어떠랴. 제주도 비는 냄새도 다르다. 제주도 무한 동경녀인 나는 장맛비 소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행기를 탔다. 예보가 틀린 날씨가 얼마나 고맙던지.

제주도 하늘은 형용하기 힘드리만치 맑은 빛깔이었다. 음… 그냥 파랗다 말고 더 좋은 표현이 뭐가 있을까? 힙한 파랑이 좋겠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는 사려니 숲 등받이 벤치에 누워 책을 여한 없이 읽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제주에서 작가처럼 글을 쓰는 것이다. 내가 작가로 성공해서 돈을 번다면 제주도에 작업실을 하나 사는 것이 꿈이다.
 

▲ 제주도의 하늘 ⓒ 정혜진


밤바다는 아름답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지고 멀리서 보이는 불빛과 파도 소리에만 집중하게 된다. 제주에 살고 싶은 첫 번째 이유다. 물멍을 원 없이 할 수 있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요의 시간에 나를 만나고 글을 만난다. 사유와 성찰은 내 안에서 조용히 잠을 깬다. 아름답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다에 물이 꽤나 빠졌다. 자러 가야겠다.

이튿날이다. 사려니 숲에서 소원 하나를 이루고 두 번째 목적지인 아부오름으로 향했다. 아부오름은 어느 블로거가 10분이면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다며 올린 사진에 홀딱 반해 이번 여행의 목적지에 넣었다.

내가 오름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정각이었다. 비는 무슨. 햇빛이 너무 뜨거워 밖에 나갈 엄두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내가 봤던 사진의 인상이 정말 강렬했다. 선크림을 덧바르고 차에서 내렸다.

12시 4분 출발. 정말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정상에서 보는 풍광은 사진보다 더 아름다웠다.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오름 둘레를 걷는 둘레길 이정표를 보고 만 것이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사람이 없었다. 가자.
 

▲ 아부오름 ⓒ 정혜진


이정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수국길이다. 빨강에 가까운 진보라의 수국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앞으로 나가자 작은 숲길이 나왔고 바닷소리인지 바람소리인지 알 수 없는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새소리도 들렸다.

그냥 놓치기가 아까워 카메라를 켜고 동영상으로 소리와 바람을 담았다. 나비가 어찌 그리 많은지. 나비 본 지가 한참이라 반갑기도 하고 나비도 살 수 없는 아래 세상에 사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 아부오름에서 만난 호랑나비 ⓒ 정혜진


자연은 계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하나를 뺏어가면 반드시 우리 것도 뺏어간다. 사람들은 도시와 편리함을 얻은 대신 나비와 새소리를 빼앗겼다. 뭐라 반박할 수 없는 정확함이다.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뺏기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나비와 새와 꽃과 공존하는 계산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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