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내가 딱 올해까지만 운전할게요"
인지선별검사 받으러온 노인의 고민... 시청역 역주행 사고 이후 퍼지는 노인혐오, 위험
치매안심센터에 인지선별검사를 받으러 온 철수(가명)씨는 굳은 얼굴로 자꾸만 내 눈을 피했다. 올해 만 76세인 그는 운전면허를 갱신하기 위해 경찰서에 인지선별검사 결과지를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2021년부터 개정된 도로교통법상 만 7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운전면허 갱신을 하려면 3년마다 인지선별검사(CIST: Cognitive Impairment Screening Test)를 받아야 한다. 고령운전자 의무교육도 필수이다. 인지선별검사는 지남력과 기억력, 주의력, 시공간 기능, 언어기능, 집행 기능 등을 포함한 인지기능을 평가하는 도구이다. 인지저하나 치매,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자는 병의원에서 발급한 의사 진단서나 소견서가 필요하다.
운전면허 갱신위해 인지선별검사 받는 어르신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지역사회의 치매 조기 발견, 치매 인식 개선, 치매 환자와 가족 지원, 치매 예방 사업을 한다. 매일 꽤 많은 어르신이 치매안심센터에 운전면허 갱신을 위한 인지선별검사를 받으러 방문한다.
인지 저하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으러 오는 분들과 처지가 다르다 보니 긴장감이 높고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반면에 '그까짓 거'라며 설렁설렁 검사를 받다 기준 점수를 넘기지 못해 '인지저하의심' 결과를 받고 병원으로 향하는 어르신도 있다.
운전면허에 먹고사는, 즉 생계가 달린 분들은 더욱 조심스럽다. 검사의 기준 점수가 나이와 학력에 따라 다르므로 어쩔 수 없이 학력을 노출해야 한다는 점은 대상자들을 더욱 예민하게 만든다. 실제로 학력 질문에 언짢아 하며 검사를 거부한 때도 있었다.
누군가는 원치 않게 학교를 어디까지 졸업했는지 까발리고 인지능력의 검증을 받아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훗날 노인이 된 나는 과연 이 모든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신 없다.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한 철수씨가 조금 더 편안하게 검사를 받았으면 하여 가볍게 날씨 이야기를 했다.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그의 안색이 한결 가볍다. 검사를 어렵지 않게 마친 철수씨에게 결과가 '정상'으로 나왔다고 일렀다. 조금 전까지 죄를 지은 듯 내 눈을 피하던 그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딱 올해까지만 운전할게요!"
"네?"
그는 몸이 불편한 아내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운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혀 그럴 이유가 없는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움츠러든 노인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에이, 필요하면 운전하셔야죠."
"아니야, 늙은이들 운전 그만해야지. 이번에 시청역 사고 봐요. 내가 젊은 사람들 볼 면목이 없어."
지난 1일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사고를 말하는 것이다. 나 또한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은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에 한동안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 아들인 피해자들을 보며 삶의 허망함을 느꼈고, 하루아침에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심정을 생각하니 감정이입이 되어 며칠 동안 기분이 가라앉았다.
참사 이후 언론에서는 '고령자 운전'이 뜨거운 감자이다. 비단 언론뿐일까. 점심시간 카페에서도, 퇴근 후 뛰어간 스케치 수업에서도 '급발진', '역주행', '고령운전'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다고 믿고 싶지 않은 험한 말도 날카롭게 귓가를 때린다.
"노인네들 운전면허 싹 다 뺏어야 해!"
무서운 사실이지만 한 사람에서 두 사람으로, 여럿의 입으로 전해지는 폭력의 말들은 자연스레 혐오로 이어진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는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
모든 노인은 사고를 낼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지닌 시한폭탄일까? 정말로 노인들의 운전면허를 빼앗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노인 혐오로 번지는 현재 상황이 우려스럽기만 하다.
면허 반납만 권유하면 될까
70대 중반의 아버지와 시아버지도 여전히 운전을 하신다. 아직도 건재하다 자신하지만 노화로 인한 시력, 청력 저하를 두 분 다 순순히 인정한다. 그 때문에 야간 운전은 하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원활하지 않은 곳에 살고 계시는 아버지는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정기적인 엄마의 병원 진료를 제외하고도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유로 운전을 포기하지 못한다.
시아버지 또한 집에서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 농사를 지으신다. 차가 없다면 매번 농기구와 무거운 농작물들을 무슨 수로 옮길 것인가. 반면 시어머니는 작년에 운전면허를 반납했다. 당신 스스로 자신을 믿지 못하겠다고 내린 결정이었다. 보란 듯이 멋지게 면허를 반납했지만, 현실은 불편한 것 투성이였다.
몇 년간 꾸준히 다니셨던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에 지금은 나가지 않으신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야 하는 거리인데, 무릎이 좋지 않은 어머님은 강습을 빠지는 날이 늘었다.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너무 덥거나 추운 날도 패스다. 아버님께 태워달라 부탁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라며 눈치를 보시더니 결국 관두셨다. 대중교통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참석한 모임 후에는 심한 몸살을 앓으셨다.
어머님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가까운 거리라도 운전하고 다닐 걸 하며 후회하신다. 하지만 엎어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다시 운전하려면 필기시험부터 봐야 한다. 안타깝지만 그녀의 이번 생애 운전은 끝난 것으로.
대중교통이 미비한 지방 소도시에 사는 노인 이동권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노인들의 운전면허 반납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운전하지 않는 것은 일상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자체마다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을 권유하며 지원되는 서비스는 미비하다. 때문인지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자진 반납률은 2%로 매우 낮은 실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혐오할 것은 차별하는 세상
오래전 라식수술을 받은 나는 야간에 빛 번짐이 있다. 그래서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야간 운전은 피한다. 공인된 길치, 방향치이기도 하여 낯선 곳에 가야 할 때는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얼마 전 도로가 복잡하고 차량이 많기로 소문난 지역에 직무교육을 다녀왔다. 초행길에 운전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결국 나는 대중교통을 몇 번이나 갈아타는 고된 여정을 택했고 늦은 저녁 귀가하여 기절하듯 잠자리에 들었다. '차를 가져갈 걸' 하고 잠깐 후회했지만, 만약 그랬다면 또 다른 후회를 했을지도 모른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결국 스스로 자신의 운전 능숙도와 취약점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인과 젊은이를 떠나 나와 타인의 안전을 위해 누구라도 항상 조심하고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하는 것이 어떨까?
고령운전자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에 운전대를 잡는 노인들은 갈수록 움츠러든다. 근거 없는 낙인과 갈라치기는 우리 사회를 조금씩 갉아먹다 언젠가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정작 우리가 혐오해야 하는 것은 남자라서, 여자라서, 노인이라서, 학생이라서 혐오하고 차별하는 세상이 아닐까?
2021년부터 개정된 도로교통법상 만 7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운전면허 갱신을 하려면 3년마다 인지선별검사(CIST: Cognitive Impairment Screening Test)를 받아야 한다. 고령운전자 의무교육도 필수이다. 인지선별검사는 지남력과 기억력, 주의력, 시공간 기능, 언어기능, 집행 기능 등을 포함한 인지기능을 평가하는 도구이다. 인지저하나 치매,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자는 병의원에서 발급한 의사 진단서나 소견서가 필요하다.
▲ 2021년부터 개정된 도로교통법상 만 7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운전면허 갱신을 하려면 3년마다 인지선별검사(CIST: Cognitive Impairment Screening Test)를 받아야 한다. ⓒ pixabay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지역사회의 치매 조기 발견, 치매 인식 개선, 치매 환자와 가족 지원, 치매 예방 사업을 한다. 매일 꽤 많은 어르신이 치매안심센터에 운전면허 갱신을 위한 인지선별검사를 받으러 방문한다.
인지 저하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으러 오는 분들과 처지가 다르다 보니 긴장감이 높고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반면에 '그까짓 거'라며 설렁설렁 검사를 받다 기준 점수를 넘기지 못해 '인지저하의심' 결과를 받고 병원으로 향하는 어르신도 있다.
운전면허에 먹고사는, 즉 생계가 달린 분들은 더욱 조심스럽다. 검사의 기준 점수가 나이와 학력에 따라 다르므로 어쩔 수 없이 학력을 노출해야 한다는 점은 대상자들을 더욱 예민하게 만든다. 실제로 학력 질문에 언짢아 하며 검사를 거부한 때도 있었다.
누군가는 원치 않게 학교를 어디까지 졸업했는지 까발리고 인지능력의 검증을 받아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훗날 노인이 된 나는 과연 이 모든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신 없다.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한 철수씨가 조금 더 편안하게 검사를 받았으면 하여 가볍게 날씨 이야기를 했다.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그의 안색이 한결 가볍다. 검사를 어렵지 않게 마친 철수씨에게 결과가 '정상'으로 나왔다고 일렀다. 조금 전까지 죄를 지은 듯 내 눈을 피하던 그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딱 올해까지만 운전할게요!"
"네?"
그는 몸이 불편한 아내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운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혀 그럴 이유가 없는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움츠러든 노인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에이, 필요하면 운전하셔야죠."
"아니야, 늙은이들 운전 그만해야지. 이번에 시청역 사고 봐요. 내가 젊은 사람들 볼 면목이 없어."
지난 1일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사고를 말하는 것이다. 나 또한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은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에 한동안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 아들인 피해자들을 보며 삶의 허망함을 느꼈고, 하루아침에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심정을 생각하니 감정이입이 되어 며칠 동안 기분이 가라앉았다.
▲ 1일 밤 9시 27분께 서울 중구 시청역 7번 출구 앞 일방통행 도로에서 조선호텔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차량이 역주행하며,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입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낸 차량이 앞부분이 크게 부서진 채 견인차에 올려져 있다. ⓒ 권우성
참사 이후 언론에서는 '고령자 운전'이 뜨거운 감자이다. 비단 언론뿐일까. 점심시간 카페에서도, 퇴근 후 뛰어간 스케치 수업에서도 '급발진', '역주행', '고령운전'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다고 믿고 싶지 않은 험한 말도 날카롭게 귓가를 때린다.
"노인네들 운전면허 싹 다 뺏어야 해!"
무서운 사실이지만 한 사람에서 두 사람으로, 여럿의 입으로 전해지는 폭력의 말들은 자연스레 혐오로 이어진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는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
모든 노인은 사고를 낼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지닌 시한폭탄일까? 정말로 노인들의 운전면허를 빼앗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노인 혐오로 번지는 현재 상황이 우려스럽기만 하다.
면허 반납만 권유하면 될까
70대 중반의 아버지와 시아버지도 여전히 운전을 하신다. 아직도 건재하다 자신하지만 노화로 인한 시력, 청력 저하를 두 분 다 순순히 인정한다. 그 때문에 야간 운전은 하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원활하지 않은 곳에 살고 계시는 아버지는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정기적인 엄마의 병원 진료를 제외하고도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유로 운전을 포기하지 못한다.
시아버지 또한 집에서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 농사를 지으신다. 차가 없다면 매번 농기구와 무거운 농작물들을 무슨 수로 옮길 것인가. 반면 시어머니는 작년에 운전면허를 반납했다. 당신 스스로 자신을 믿지 못하겠다고 내린 결정이었다. 보란 듯이 멋지게 면허를 반납했지만, 현실은 불편한 것 투성이였다.
몇 년간 꾸준히 다니셨던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에 지금은 나가지 않으신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야 하는 거리인데, 무릎이 좋지 않은 어머님은 강습을 빠지는 날이 늘었다.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너무 덥거나 추운 날도 패스다. 아버님께 태워달라 부탁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라며 눈치를 보시더니 결국 관두셨다. 대중교통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참석한 모임 후에는 심한 몸살을 앓으셨다.
어머님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가까운 거리라도 운전하고 다닐 걸 하며 후회하신다. 하지만 엎어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다시 운전하려면 필기시험부터 봐야 한다. 안타깝지만 그녀의 이번 생애 운전은 끝난 것으로.
대중교통이 미비한 지방 소도시에 사는 노인 이동권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노인들의 운전면허 반납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운전하지 않는 것은 일상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자체마다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을 권유하며 지원되는 서비스는 미비하다. 때문인지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자진 반납률은 2%로 매우 낮은 실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혐오할 것은 차별하는 세상
오래전 라식수술을 받은 나는 야간에 빛 번짐이 있다. 그래서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야간 운전은 피한다. 공인된 길치, 방향치이기도 하여 낯선 곳에 가야 할 때는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얼마 전 도로가 복잡하고 차량이 많기로 소문난 지역에 직무교육을 다녀왔다. 초행길에 운전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결국 나는 대중교통을 몇 번이나 갈아타는 고된 여정을 택했고 늦은 저녁 귀가하여 기절하듯 잠자리에 들었다. '차를 가져갈 걸' 하고 잠깐 후회했지만, 만약 그랬다면 또 다른 후회를 했을지도 모른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결국 스스로 자신의 운전 능숙도와 취약점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인과 젊은이를 떠나 나와 타인의 안전을 위해 누구라도 항상 조심하고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하는 것이 어떨까?
고령운전자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에 운전대를 잡는 노인들은 갈수록 움츠러든다. 근거 없는 낙인과 갈라치기는 우리 사회를 조금씩 갉아먹다 언젠가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정작 우리가 혐오해야 하는 것은 남자라서, 여자라서, 노인이라서, 학생이라서 혐오하고 차별하는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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