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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취업했는데, 이럴 줄은 몰랐어요'... 청년의 폭로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더 납작 엎드릴게요>

등록|2024.07.09 17:41 수정|2024.07.09 17:41

▲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스틸 이미지 ⓒ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동명의 에세이에서 비롯됐다. 원작자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영상화된 작업 크레디트에는 작가가 각본가로 기재돼 있다. 즉 거의 누수 없이 원작에 담긴 내용이 압축됐다는 것을 보증할 수 있는 셈이다.

작품의 홍보에서 가장 눈에 확 들어오는 부분, 즉 원작자가 5년여 시간 동안 사찰 부속 출판사에서 근무하며 체험한 온갖 소소한 일화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데다, 원작자와의 긴밀한 협조 과정을 담보한 덕분에 영화 속에 담긴 특수한 직장의 속사정에 호기심이 생긴 이라면 어렵지 않게 영화가 내민 손을 잡아줄 법하다.

하지만 '체험 삶의 현장'을 기대하며 들어온 이들 앞에는 '극한직업'의 소우주가 가득 펼쳐진다. 영화 속 사찰 출판사 역시 '직장생활'의 세계라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 관객은 잠이 확 깨듯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하는 탄식에 휩싸일 테다.

그래도 각박한 민간기업들보다는 조금 더 사람 냄새가 나겠지 하는 기대를 포기하지 않은 채 계속 내용을 확인할 것이다. 그런 이들에겐 49%의 독특한 지점들, 우리가 '절'과 '불교'에 기대하는 요소들이 다채롭게 포함된다. 반면에 엄연히 '직장', 그것도 소규모의 '출판사'라는 공통분모에서 오는 질곡이 나머지 51%를 점유한다. 그런 기본 구성요소를 하나하나 단계별로 경험하는 게 <더 납작 엎드릴게요>를 보는 방식이다.

단계별로 점점 심각해지는 사찰 출판사의 시간
 

영화는 동명의 에세이를 영상화 작업에 맞게 적절하게 각색해 놨지만, 기본 구성과 주요 캐릭터 및 사건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된다. 1시간 조금 넘는 분량 동안 이야기는 5개의 장으로 구분 아래 진행하는데, 초반의 적당히 직장인 일상 시트콤 같던 기조는 점점 판타지와 차가운 현실을 오가며 심각해진다.

첫 번째 장 '사찰 라이프'는 사찰 출판사의 일과와 업무에 대해 궁금함을 품었을 이들에겐 비밀의 세계가 열리는 기분일 테다. 기본적인 호칭과 용어부터 새롭다. 직장인이라면 매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한 문제일 점심 식사는 여기에선 '공양'으로 불리고, 주위에서 마주치게 되는 이들은 업무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지 않은 이들이라면 대개 '보살님'으로 불린다.

출판사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겉으로는 작은 출판사에서 정해진 일만 처리하고 회사의 한계는 있겠지만 그래도 바깥 속세보다는 조금 느린, 그리고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것도 같다. 어쩌면 '슬로우 라이프'의 현실 가능한 유형이 아닐까 기대를 품을 법하다.

하지만 환상은 늘 깨어지라고 있는 셈이다. 주인공에게 본격적으로 일어나는 첫 번째 사건의 진행과 결말을 통해 제작진은 속도감 있게 사찰 출판사 직원이 처한 상황을 관객에게 일깨워준다.
 

▲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스틸 이미지 ⓒ ㈜마노엔터테인먼트


곧이어 두 번째 장 '번뇌의 시그널'부터 '혜인'은 실존 위기에 본격적으로 시달린다. 군대라면 시간이 느리게 갈지언정 국방부 규정에 따라 때가 되면 제꺽 진급도 하고 처지가 향상될 희망이라도 품겠지만, 대리와 팀장이 버티고 있는 출판사 내에서 윗선이 나가거나 하지 않으면 혜인은 만년 막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겉으로는 상대적으로 일이 수월해 보이는 편이라 추가 인원 배정도 기대하기 어렵다. 마치 억겁의 반복이 형벌처럼 느껴질 유형지의 시간이다.

작은 사건이 터지고 어찌 해결하거나 봉합된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혜인과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가 하나씩 정립돼 관객에게 각인된다. '달마가 내게 온 까닭'은 그런 롤러코스터 같은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그저 좌절과 절망만으로 치부하지 않고, 씩 웃어넘기거나 그래도 '최악'은 아니라며 긍정하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의 장이다.

그만이 아는 전화위복의 사건을 그리면서 요즘 한국독립영화의 젊은 주인공으로선 드물게 스스로 내 탓임을 인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초현실적인 존재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지만 그들의 권능으로 '데우스 마키나'가 일어나진 않는다. 오히려 혜인의 마음속 의식의 흐름을 극적으로 표현하는데 가까운 사용법이다.

알고 보니 다른 직장 선배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거나 혹은 플랜B를 준비하고 있었다. 혜인은 그런 선배들을 보며 역시 '짬밥'은 무시할 수 없구나 깨닫는다. 그리고 이곳에서 평생 직장장으로 눌러앉을 게 아니라면 자신이 원래 꿈꾸던 일을 위한 준비과정을 어려운 현실이지만 조금씩 진행하고자 다짐한다.

하지만 한국의 평균적인 말단 직장인에게 제2의 인생을 위한 포석을 준비하는 건 꿈에 불과한 일이다. 혜인은 카페에서 하루 10줄만 글쓰기에 도전하자며 포부를 내비치지만, 늘 가게 마감이 될 때까지 졸다가 겨우 일어나기 일쑤다. 그래도 희망은 포기할 수 없다. '온종일 일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기분'으로 그는 터벅터벅 밤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렇게 어찌어찌 지탱하던 직장생활에서 (영화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한) 조금 더 큰 사건이 결국 터지고 만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영화 전체와 같은 '더 납작 엎드릴게요'다. 작은 출판사를 넘어 한국의 대부분 직장인이 마주치는 현실의 지독한 풍자다. 그 결말에 감정을 이입하지 않을 이가 과연 이 영화를 보게 될 이들 중 몇이나 될까?

조금 낯선, 하지만 그리 특별하지 않은 직장 잔혹사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원작을 집필한 헤이송 작가의 자전적 경험담을 바탕으로 삼는다. 작가는 29살, 본격적인 첫 직장으로 작은 사찰 부속 출판사에 입사해 6년째 되던 해에 퇴사했다. 영화는 그 이후의 삶이 그려진 원작 도서와는 달리 출판사에서의 사회초년생 시절에 집중하는 구성을 택한다.

아마 관객에게 가장 흥미로운 초반부 장면은 우리에겐 그저 스님들이 조용하게 수양하는 풍경으로만 인식되던 사찰 안의 수많은 직원, 즉 노동자들의 존재일 테다. 법당 행사에서 그런 노동자들의 실체가 규명된다.

신도들을 상대하는 가장 큰 행사라 할 여러 '재'들을 담당하는 '재팀', 행정실무를 총괄하는 '종무소', 재정업무를 관장하는 '회계팀', 그리고 사찰 관련 회지 업무를 주관하는 '출판사' 직원들이 모두 모인다. 대규모 종단에서 왜 '종무원장'이란 직책이 실세로 분류되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물론 주인공이 속한 사찰은 그리 큰 곳이 아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형 사찰은 그야말로 중견기업 정도 견적은 나오겠구나 상상하게 만들 대목이다.

물론 요즘엔 여러 부대사업이 더 늘어나는 추세이니 이 영화 속 직원들은 그저 최소 규모 소개에 그칠 테다. 사찰음식이 인기를 끌면 공양간은 대규모 식당으로 확장될 테고, 템플스테이가 각광을 받으니 숙박업 분야도 커졌을 법하다. 그렇게 세속적 영역이 커지면 속세의 잡음도 따라서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티격태격 불화는 굳이 이 영화가 아니라도 미디어에서 심심찮게 튀어나오는 대목이다.

그렇게 조용하게 수양과 정진만 가득할 것 같은 사찰에는 속세의 오욕이 연일 침투하는 중이다. 그런 격랑 속에서 주인공과 출판사 동료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극락과 지옥을 오가며 '사찰 라이프'를 이어간다.
 

▲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스틸 이미지 ⓒ ㈜마노엔터테인먼트


 
직장 잔혹사를 다룬 한국 독립영화의 숱한 작업을 섭렵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 속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익숙할 법하다. 그러나 거룩하고 엄숙한, 속세의 물욕과는 뭔가 다를 것 같은 사찰 내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비실용적 행태를 목격하는 것은 차별화된 이미지로 각인되기에 필요충분한 충격을 제공한다.

불자 신도들이 보이는 갑질은 요즘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겪고 있는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다. 부유한 신자는 '내가 낸 돈으로 너희들 월급 받는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억지 요구를 철회하지 않는다. 단아하고 정중한 신자 역시 직원과의 관계 설정에선 '부처는 아니지만 직원이시니' 고객의 요구를 응해야 한다는 확고부동한 태도를 드러낸다.

중간관리자들은 어쩌다 가끔 자신들 전체에게 '선'을 넘는 신도들의 갑질에 일치단결해 맞서지만, 그건 동료를 보호하는 태도와는 동떨어져 있다. 그저 자기까지 피해가 오기 전에 '예방 행동'에 불과해 보인다. 나한테 불똥 튀는 걸 피할 수 있다면 주인공의 고통에 침묵해 버리지만, 경험에 입각한 판단으로 미리 불을 꺼야겠다 싶으면 '강철대오'를 결성하는 식이다. 하지만 찰나를 모면하면 원래대로, 그들 내부의 위계질서로 헤쳐모이는 건 순식간이다. 그런 일상의 전투에 지친 주인공은 불자로선 하면 안 될 말을 속으로 삭인다. '오늘은 성불 대신 칼퇴하고 싶다!'

그렇게 시달리면서도 인상적인 제목처럼 '더 납작 엎드려 드릴게' 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절대자의 잔인한 악의처럼 주인공을 짓누른다. 여기에서 제작진은 그들의 전작에서도 힘을 발휘했던 동화적 판타지 효과를 십분 활용해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묘사를 그려낸다. 후반부의 백미라 할 만하다. 순차적으로 에잇! 하고 당장 할 말 내지르고 속 시원하게 자기 발로 나갈 것 같던 주인공의 머릿속을 차례로 가로막는 이들은 의인화된 '공과금', '계비', '카드값', 그리고 결정타를 날리는 '대출'로 4연타를 날린다.

아무리 혜인이 단호한 의지를 다져봐야 2020년대 한국의 청년세대 평균치에서 이를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다. 화면은 화사하고 코믹하지만, 그 실체는 세태 풍자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리얼리즘이다. 해당 장면을 보고 나서 요즘 청년세대는 미래를 대비하지 않고 흥청망청이라는 소리를 감히 꺼내긴 어려울 테다.

수면 위로 올라오는 어떤 흐름의 선봉장


본 작품은 원래 웹드라마 형태로 출발한 것이 개별 에피소드를 모으고 재조합해 장편영화로 재탄생한 버전이다. 그런 경우 대개 일상의 반복이라 보기엔 무난하지만, 우리가 극장에서 영화를 체험할 때 기대하는 극적 클라이맥스 효과는 아무래도 약화되기 마련이다.

이 영화 역시 그런 구조적 한계에서 온전히 자유롭진 않다. 주인공과 주요 등장인물 캐릭터는 실제 경험치를 바탕으로 탄탄하게 잘 구축되돼 있지만, 몇몇 '빌런' 캐릭터는 (원작의 세밀한 묘사가 축약되다 보니) 평면적이고 도구적인 연기에 그친다. 개별 에피소드로 처음 작업한 분량들을 이어붙이는 과정에서 어떤 대목은 너무 압축되고 다른 대목은 늘어지는 질감도 종종 목격된다.

그렇지만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원작의 탄탄한 구성을 잘 살려 궤도를 이탈하지 않으면서 몰입감을 큰 무리 없이 유지한다. 거기에 시치미를 떼고 삽입한 초현실 판타지 장치가 자신의 현실을 대입하며 우울해지기 좋은 개별 관객의 집중력을 지속하는데 한몫한다. 화들짝 놀라게 하진 않아도 섬세하게 고려하고 배치한 연출 솜씨가 탄탄하다. 현실의 차가움을 중화시키는 제작진의 (이전 작업부터 정평이 난) 동화적인 미술과 소품 배치 같은 아기자기하게 공들인 장치도 일익을 담당한다.
 

▲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스틸 이미지 ⓒ ㈜마노엔터테인먼트


 
김은영 감독과 황영 PD는 경북 의성군을 본거지로 활동하는 팀이다. 이들은 대구에서 영화 작업을 하던 중, 과감하게 귀촌을 결심했다. 인구소멸 우려 지자체들이 제공하는 청년이주 지원책 덕분에 큰 탈 없이 자리를 잡은 뒤 이들은 영화/영상물 제작과 출판을 병행하는 '고라니북스'라는 명의로 꾸준히 자신들이 자리를 잡은 지역을 배경으로 삼고, 그들이 공들여 출간한 책과 영상작업을 연계하는 효율적인 작업형태를 선보이는 중이다.

남들이 앞을 다퉈 서울로 진입하려 할 때 정반대로 기초 지자체로 전입한 결단이 이들의 오히려 안정적인 작업환경과 다른 작품에서 보기 힘든 어떤 '풍경'을 주특기로 활용할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마침내 여러 편의 주목할 만한 단편영화 이후 첫 장편 개봉에 도달했다.

이들의 작업 목록을 되돌아보면 그저 개별 작업이 아니라 일련의 흐름과 방향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더 흥미를 더한다. 지역 밀착형 사례로도 흥미롭고, 책과 일러스트, 영화/영상물을 횡단하며 벌이는 이들의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도전도 주시해야 할 실험으로 언급하기에 손색이 없다.

아마 영화를 보고 나면 원작 에세이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을 테다. 이들의 영화 속 설정과 인물들이 현실을 초월하거나 대안적 전망을 수립하기엔 아직 힘이 부쳐도 할 말 하면서 색다른 풍경을 그려내는 솜씨는 수도권 과밀화 속에서 더 낯설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지금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는 로컬 영화 제작 붐의 생생한 사례다.

무엇보다 이들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청년세대를 조명하는 균형감각이 더욱 예리해졌다는 점이 반갑고 뿌듯하다. 찾아보면 제법 많은 편수의 작업을 이미 이들이 진행해 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이번 개봉을 계기로 과거 작품들도 재조명될 기회가 생기길 기대할 만하다.

'메이드 인 의성' 영화라 필자가 함부로 작명한 이들의 근래 작업은 현재 한국 청년세대의 현주소를 외면하거나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농촌 지역 청년들의 현주소와 그들의 고민을 녹여내고 '괜찮아 잘될 거야!'라는 대책 없는 낙관으로 뭉뚱그리지도 않는다. 그렇게 극단적 단면에 매몰되지도, 그렇다고 현실에서 도피하지도 않는 청년세대 조명작업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스틸 이미지 ⓒ ㈜마노엔터테인먼트


[작품정보]
 

더 납작 엎드릴게요
Will you please stop, please?
2023 | 한국 | 사찰 오피스 드라마
2024.07.10. 개봉 | 63분 | 전체관람가
감독 김은영
PD 황영
각본 헤이송
출연 김연교(송혜인 역), 장리우(윤팀장 역), 손예원(김대리 역),
임호준(안과장 역), 김금순(연화수 역)
제작/제공 고라니북스
공동제공/배급 ㈜마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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