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타치즈, 포카치아 빵... 모두 직접 만듭니다, 이렇게
평범함 거부하는 레시피... 몸은 힘들어도 가족들에게 건강한 음식 먹이는 기쁨
▲ 주말을 다 바쳐야 한 주일치 양식이 생긴다. 내가 직접 만든 리코타치즈를 양파 조림에 얹어 만든, 근사한 브런치. ⓒ 고성희
가족들의 일주일 식단을 금요일 저녁부터 심사숙고한다. 각자의 선호도에 맞는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수라간의 상궁은 이 몸, 글 쓰는 나다. 때문에 이것저것 주문은 받지만 큰 고려대상은 아니다. 최대한 신경 쓰는 부분은 딸아이의 질환. 딸이 아토피라서 최대한 좋은 재료들로 만들어 먹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일주일 중 가장 바쁠 때는 주중이 아니라 주말이다. 퇴근 후에 요리하는 것은 '미션 임파써블', 거의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번엔 살짝 달게 만들기로 했다. 설탕은 비정제 사탕수수 원당과 저염간장, 그리고 올리브 오일 이렇게 세 가지 양념을 베이스로 한 첫 번째 요리에 돌입한다. 감자는 깨끗이 씻어 껍질째 쑹덩쑹덩, 양파도 깍둑깍둑 썰어서 볶았다.
중간에 간을 보니 짠 거 같아서 물을 부었다가 '간장 감자 양파 국'이 될 뻔했다. 다시 물을 조리는 사이 아침에 간단하게 먹을 빵을 만들어야 한다.
물 조리는 사이 빵 만들기... 양파 구출 대작전
▲ 발사믹 식초를 넣어 조려 만든 양파조림을 넣고 만든 포카치아 ⓒ 고성희
내가 가장 쉽게 만드는 빵은 포카치아(이탈리아식 빵)이다. 이미 미리 강력밀가루와 통밀, 이스트를 섞어 날가루가 보이지 않을 만큼만 대충 반죽을 해서 금요일 저녁에 냉장 보관했다. 그러면 적당히 저온 발효되어 그다음 날 아침에 찬기를 빼주고 구워주면 사 먹지 않아도 빵은 뚝딱 만들 수 있다.
집에 넘쳐나는 양파를 쓸 때다. '양파 구출 대작전'의 일환으로 '양파포카치아'로 노선을 살짝 변경한다. 그냥 생양파를 반죽에 넣어도 좋지만 발사믹 식초에 양파를 볶아서 반죽에 넣어 구우면 그냥 먹어도 맛있고, 슬라이스 햄 끼워주면 파리바게트 모닝빵이 안 부러운 포카치아가 완성된다. 바쁜 아침엔 포카치아에 우유 한잔이 최고다.
그리고 발사믹 식초에 볶은 양파 조림을 좀 덜어내어 내가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를 올려 곁들여 먹으면 그 맛이 또 별미다.
리코타 치즈는 원래 우유와 생크림 두 가지를 섞어 냄비에 넣고 가열하다가 끓어오르기 직전 식초를 적당량 넣어 덩어리지게 만든 다음 면 보자기에 걸러 수분을 짜주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생크림이 없으므로 우유와 요구르트를 만들고 나온 유청과 값싼 식초만 가지고 만들었다. 이건 요즘 유행인 그릭요구르트 만드는 것만큼이나 쉽다.
▲ 리코타 치즈 수분 면보에 빼주기 ⓒ 고성희
냉장고 야채칸을 보니 시들어가는 오이가 보인다. 오이는 이렇게 저렇게 요리해도 맛있지만 나는 그냥 생으로 먹을 때가 제일 맛있다.
다른 방법으로는 입에 넣기에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위에 모차렐라 치즈 한 덩이 쿰척 올려주고 발사믹 식초 세네 바퀴 휘휘 돌려 뿌린 뒤 우아하게 포크와 나이프로 썰어 얹어 먹는 것. 이렇게 먹으면 내 집이 브런치 식당이 된다. 이래서 밖에 나가 외식을 못 한다.
냉장고 파먹기, 내겐 쉬운 일이지만... 딸에겐 이렇게 말합니다
▲ 오이에 발사믹 식초를 뿌리고 치즈만 올려도 근사한 브런치 ⓒ 고성희
이번엔 냉동실 정리를 하다 보니 저번에 반죽은 해두고 너무 힘들어 넣어둔 블루베리 머핀 반죽이 보인다. 땅땅하게 얼어있어서 다시 해동시켜 머핀을 만들기까지 내 인내심이 기다려 주질 않는다.
그래서 그냥 몽땅 철판에 철퍼덕 엎는다. 비스코티(이탈리아식 쿠키)를 만들기로 방금 결정했다. 비스코티는 '두 번 굽는다'는 뜻으로, 통째로 한번 굽고 나서 한 김 식힌 후 잘라서 다시 구워 바삭바삭한 식감이 도드라지는 쿠키이다.
말이 쉽지 한번 굽고 나서 자르려니 다 부서지고 난리가 났다. 비스코티 두 번 다시 굽지 않으리라고 결심한다. 그래도 맛은 좋으니 다행이다. 커피에 폭 담가 먹으면, 유명카페에서 굳이 돈 주고 가서 먹지 않아도 될 근사한 맛이다.
고무장갑을 벗은 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땀이 차서 잘 벗겨지지도 않았다. 새벽에 러닝머신을 타고 와서 아침 7시부터 시작된 창작 요리가 정오를 넘어가도 끝나지 않는다. 그나마 빵 반죽도 미리 다 해놨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우리 가족 모두 점심은 스킵할 뻔 했다.
감자양파볶음을 밥이랑 줄 수도 있지만, 예전에 만들어둔 통밀포카치아와 곁들여 주니 식구들이 다 고개를 박고 먹어준다. 내게는 이때가 가장 큰 기쁨이다.
'먹는 게 곧 나 자신이라는 말'을 나는 강력하게 믿는다. 가능하면 우리 가족들의 뱃속에 좋은 것만 넣어주고 싶다. 맛이 없고 제멋대로인 내 요리를 맛있다고, 어떤 때는 갓 익힌 컵라면보다 맛있다고 칭찬해 주는 식구들에게 감사하다(내겐 엄청난 칭찬이다).
▲ 블루베리를 넣어 두번 구워 만든 비스코티 ⓒ 고성희
때로는 싱거워서, 때로는 맛이 조화롭지 않아서. 또 때로는 정체불명의 요리로 가족들이 당황하고 때론 식사를 거부한 적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포기하고 '오늘은 또 뭐야?'라며 궁금해한다. 심지어 내 요리에 입맛이 길들여졌다!(그래도 건강식이잖아, 항변해 본다).
요리하는 건 즐겁다. 내 손으로 다른 사람이 시도하지 않는 재료의 조합을 만들어 창작물을 접시에 내어 놓는 기쁨이 크다. 이럴 때면 몸은 고돼도 하늘을 날아갈 것 같다. 토요일, 일요일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는 부엌에 붙어있어야 일주일 치 음식이 완성되지만, 하고 나면 뿌듯하고 든든하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마지막에 딸에게는 이렇게 조언을 해준 뒤에 소파에 드러눕는다.
"딸, 근데 너는 돈 많이 벌어서 꼭 사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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