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 모은 재산 사회 기부, 이영희 선생님을 만났다
선배이자 동향, 인간문화재인 이 분 삶의 스토리 들어보세요
▲ 자택에서 찍은 인간 문화재 이영희 선생님 프로필 ⓒ 이영희
국가 무형문화재 23호인 인간문화재 이영희 선생님(가야금연주가)을 만났다. 김윤덕류 가야금산조 보유자 및 병창 보유자인 이영희 선생님은 전북 군산 출신으로 군산여고를 졸업하셨다.
올해 86세인 이 선생님을 내가 처음 만난 건 2년 전 여름이었다. 국악 제전에서 우연히 만난 선생님이 알고 보니 군산여고 동문이었다며 선생님, 정확히는 대선배님께 인사드리러 가자는 여고후배를 따라나서면서였다. 경기도의 선생님 댁은 자그마한 텃밭이 있는 한적한 곳에 있었다.
여전히 고운 모습으로 반갑게 맞아주시는 모습이 소녀 같았다. 문화 추적단의 탐사를 위한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받아주시며 아득한 여고 시절 추억과 가족들 얘기에 살아오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즐겁게 전해주셨다. 70여 년 전 군산 영동의 모습을 설명하시며 영동 10번지였던 자신의 고향집과 이웃들의 기억을 꺼내셨다.
"경찰서가 있는 그 길에 영동이 있었어. 우리 집 옆에 천양각, 한양사가 있었지. 공주여관, 일구 여관이 유명해서 그 집 딸들이 무용 배우는 걸 보고 엄마한테 말했지, 왜 난 무용 배우면 안 되냐고."
그 길로 구시장에서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며 그 시절과 사람들 기억이 생생 하다고 하셨다.
1930년대 군산의 경성고무를 운영했던 사장이 부친의 사촌이라며 그 덕에 당신의 모친은 만월고무표 신발가게를 운영하셨단다. 이 선생님이 3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4남매를 키운 어머니와 큰 터울이 진 두 언니들은 일찍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이 선생님이 대학 4학년 때 중앙방송국(KBS의 전신)이 주최한 국악 콩쿠르에서 수상하자, 그 대회 심사의원 추천으로 국악예술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절친이었던 이혜선이 같은 학교 수학교사로 오면서 운명처럼 재회했다며 두 사람의 진한 인연이 이어졌다 한다. 지금까지도 자주 만난다고 말하는 선생님의 표정이 영락 신이 난 여고생 같았다.
▲ 이영희 선생님이 후배들과 함께 웃는 모습(가운데) ⓒ 정미란
국악 예술학교 재직당시 함께 근무했던 박녹주, 박초희, 김소희 등 명창들과 거문고의 김영재 명인들을 나열하시며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선배 예인들과 함께 한 세월덕에 자신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말하신다. 겸손하신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평생 독신으로 살아오셨다. 그간 모은 재산을 재능 있는 예인들을 위해 아낌없이 쓰시겠다며 선생님은 무형 문화재 전승교육관 건립을 위해 지난 2022년 50억 상당의 1700평이나 되는 개인 토지를 문화재청에 기부하셨다.
향후 국악을 공부하려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국악을 하고자 하는 젊은 이들에게는 힘든 예인의 길을 권하고 싶지 않다"라고 하셨다. 대신 재능이 있는 예인들이 경제적 고민 없이 예술에 전념할 수 있는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요즈음은 딸 같은 후배들, 함께 활동했던 국악인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며 행복한 웃음을 지으셨다. 고향을 떠난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바쁜 활동으로 와보지 못한 고향을 향한 아쉬움과 꼭 와보고 싶다는 바람을 다시 보이셨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달 말, 고향 군산에서 우리는 선생님을 만났다.
▲ 인력거를 타시고 생각에 잠긴 이영희 선생님 ⓒ 정미란
오래전 군산을 떠나신 후 모교를 처음 찾으셨다며 감개무량하시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후배의 마음이 따뜻해졌다. 함께한 후배동문들과 여고시절 얘기와 그 시절 스승들의 추억으로 웃음꽃이 피는 흐뭇한 시간이 되었다. 군산의 골목골목을 보시며 진작 오지 못한 지난 시절이 아쉽다고 여러 번 말씀하는 모습에서 소녀와 백발의 선생님 모습이 교차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달라진 군산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영동을 돌아보며 회한에 젖었고 근대역사박물관에서는 어려서 정말 인력거를 탔던 경험이 엊그제 같다며 활짝 웃으셨다. 생전에 어머니가 운영하셨던 '만월표 신발가게'를 발견하자 깜짝 반가워하셨다.
고향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당신 사진을 찍는 후배들을 말리면서도 또 찍고나면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표정. 이 선생님은 여전히 소녀감성 젊은 모습 그대로였다.
모든 사람이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태어나진 않는다. 가진 능력을 발휘해 얻은 명성과 안위를 세상을 위해 보태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한평생 예술에 바친 선생님의 삶이 이제 또 다른 예인들을 위해 쓰이길 바라는 소망이 반드시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늘 건강하셨으면, 더 이상 안 늙으셨으면 좋겠어요"라 말하는 후배들에게 대 선배님은 살짝 웃으시며 대답하신다.
"걱정 마! 나는 백 살까지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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