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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1년에 딱 한번, 국과수 밴드를 소개합니다

바빠 죽을 것 같은 하루 일과여도 연습 시간이 그저 좋습니다

등록|2024.07.16 14:47 수정|2024.07.17 08:00
'국과수밴드'는 우리 학교 교사 밴드 이름이다. 작년에 처음 결성되었는데 드럼은 국어, 기타는 과학, 건반은 수학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름이 국과수밴드. 작년에 퇴임하신 영어샘이 (곧 퇴직이니 기념 삼아) 한시적 보컬로 합류하셨고 올해 초 내가 그 자리를 물려 받았다.

소싯적 노래방에서 노래하던 내 모습이 인상에 남으셨는지 기타 치는 과학샘이 제안을 해 왔는데, 나는 또 흔쾌히 승낙했다. 내 실력이 진짜 좋아서가 아니라 재밌을 것 같아서, 그냥 노래하는 게 즐거울 것 같아서 승낙한 것이다. 해 보니까? 진짜 좋다.

호사(?)스러운 취미 생활

바빠 죽을 것 같은 하루 일과여도 지하 공연장에 내려가 1시간 동안(일과후 야자 시간이 되기 전까지만 연습을 한다) 밴드 악기 소리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오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일주일에 딱 하루라는 게 아쉬울 뿐이다. 아니다, 아쉽긴 하지만 적당하다. 업무와 육아를 생각하면 그마저도 호사스럽다. 객원 보컬이 한 명 더 들어와서 요즘엔 연습시간이 1/2로 줄어들었는데,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행이기도 하다.

▲ 드럼은 국어, 기타는 과학, 건반은 수학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름이 국과수밴드. 나는 보컬을 맡았다. ⓒ 정은영


연말에는 축제라 부를 만한 행사, 즉 학교 동아리 발표회가 있는데 작년 그 무대에서 찬조 공연을 한 게 국과수 밴드 공연의 전부다. 큰 문제가 없다면 올해도 연말 공연에 끼지 않을까 싶긴 하다. 우리는 매달 두 곡쯤 추가해 연습하는데 보컬인 내가 신곡을 골라 추천하는 방식이다.

그게 참 또 좋다. 어떤 노래를 부르면 좋을지 고민하며 많은 밴드 음악을 듣게 되니 일단 행복하고, 좋아하는 곡을 부를 수 있고 샘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게 또 뿌듯하다. 음색이 안 맞거나 기술이 부족해서 좋아도 부를 수 없는 곡이 있는 건 아쉽지만 곡을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까지 내가 골라 연습한 곡은 롤러코스터의 '습관', 브로콜리너마저 '앵콜요청금지',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이제 연습 시작한 너드커넥션의 '좋은 밤 좋은 꿈'이다. 아, 자우림의 '애인발견'도 있는데 이 곡은 내가 들어오기 전에 수학 샘이 노래하던 곡을 이어받은 것이다.

점점 듣는 귀도 생기겠지

처음엔 그냥 그날 노래만 하고 왔는데 다들 열심히 악기를 익히고 연습하는 모습을 보니 나만 공짜로 놀러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출퇴근 시간에라도 차 안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나아지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가사를 외우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베이스 샘이 가사 외우라고 장난스럽게 타박하던 게 이제는 사라졌다. 점점 국과수밴드의 보컬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물론 한 팀의 보컬로서의 길이 아직 멀긴 하다. 사실 베이스 치는 과학 샘은 처음 연습하는 날부터 나에게 전체 밴드 음이 잘 조화를 이루는지 살피라고 하셨다. 그걸 보컬이 들어줘야 한다는데, 나는 너무 막막했다. 원래부터 음악적 식견이 있는 게 아니어서 그런지 그저 좋게 들릴 뿐이어서 뭐라고 평할 수가 없었다. 그저 웃지요.

점점 듣는 귀가 생기겠지 하고 위안해도 되는 건지 늦게라도 악기 하나 배워야 하는 건지 고민이다. 아, 이 밴드 연습 시간을 내기 위해 피아노 수업 듣는 것을 관뒀는데 너무 아이러니하다.

그저 재밌고 즐겁게 참여해도 되겠지, 하면서도 더 잘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요즘은 시험 기간이라 일과가 일찍 끝나기 때문에 집중 연습의 날이다. 밤이 되어서야 할 일을 마무리하고 부랴부랴 노래들을 한 번씩 불러 본다.

옆에서 숙제하던 아이도 같이 흥얼거린다. 엄마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듣기 좋다고 하니 고마울 뿐이다. 그래,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국과수의 국2(국1은 드럼샘)로 행복한 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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