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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앗아가는 기후위기 :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이재경의 행복연구] 기후위가 인간의 행복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가

등록|2024.07.10 15:38 수정|2024.07.10 15:38
기후 위기와 행복

이번 글은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13년 전 이맘때쯤 늦깎이 군인이 경기 북부의 어느 부대에서 휴가를 나와서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초여름이라 더운 날씨였는데 서울역에서 갑자기 예고 없는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갑자기 내린 폭우가 얼마나 심각했냐면 약 30분 남짓에 배수구에 물이 넘치고 도로가 일부 잠기는 상황까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30분 정도 지나니 갑자기 비가 그쳤고 맑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개인적으로 너무 특이한 날씨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이런 이상한 또는 특이한 날씨가 일상화되고 있는 요즘을 봅니다. 우리는 어쩌면 기후변화에서 기후 위기로, 지구온난화에서 지구 열대화로 기후 관련 용어가 변했듯이 지금 기후변화의 어떤 임계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기후위기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 Pixabay / Rosy etc


기후 위기는 행복하지 않다

기후 위기와 행복에 관계를 시론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기후 위기로 인한 폭염, 폭우, 폭설 등은 그 자체로 인간의 생존 조건을 위협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습니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울 때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것이 인간 생존을 위해 필요한 먹거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른바 애그플레이션으로 불리는 물가폭등, 물자 부족 등을 야기하며 취약 국가나 집단의 경우에는 대규모 아사라는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 기후 위기로 인해 폭염, 수해 등의 거대한 자연재난이 발생할 경우 인명피해 등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웃과 친구, 가족의 고통과 죽음 앞에 당연히 인간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비단 같은 인간에게만 연민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재난 영상에서 강아지, 고양이, 소, 돼지 등 여러 동물이 물에 쓸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며 심지어 어떤 가족에게 삶의 보금자리였던 집이 불타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즉, 우리는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비인간 존재의 고통에 무관할 수 없습니다.

셋째, 기후 위기는 현재의 삶에 불안정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꺾고 불확실성을 높이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습니다. 기후 위기가 본격화되고 있는 오늘날 미래에 대한 비관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지구는 더 끓어오를 것이고 자연재난은 더욱 거대한 강도로 우리를 위협할 것입니다. 더욱이 인간이 만든 사회경제 시스템은 최소한 현재로서는 이를 해결할 능력이 거의 또는 전혀 없다고 판단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외신 보도에 따르면 유럽의 청소년들은 기후 위기로 인한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기후 위기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행복을 위해 기후 위기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하고 실천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행복은 기후 위기의 중요한 대안의 하나인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만나야 합니다. 어떤 학자는 폐기물을 예로 들면서, 분리배출을 하지 않고 문 앞에 쉽게 버리는 방식을 시민들이 더 선호하며 그래서 행복은 지속가능발전목표와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합니다.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속가능성을 잃어버린 지구에서 인간의 행복 추구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분리배출에 소요되는 5-10분의 불행보다 우리의 생존권을 확보하고 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 것입니다.

행복이 기후 위기에 중요한 대응 방안이 될 수 있다!

기후 위기에 관한 현재의 주요 논의 중에 하나가 바로 감축(저감)과 적응입니다. 전자는 탄소 배출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것(탈탄소)이며 후자는 기후 위기로 인해 변화하는 지구에 적응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주로 감축이 주요 의제였으나 최근에 들어 점차 적응론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기후 비상시대로 불리는 현 시기에는 어떤 방향이 맞는지 갑론을박하기보다는 감축과 적응이 모두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행복은 감축과 적응이라는 양 측면에서 모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에 맞서기 위한 중요한 대안으로 언급되는 것이 바로 탈성장입니다. 탈성장에 대한 방대한 여러 논의가 있지만 개인과 가계 차원의 탈성장의 열쇠는 무엇보다도 탈소비, 저소비에 있습니다. 즉, 우리는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여러 연구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소비는 행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행복한 사람보다는 불행한 사람이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소비를 선택하고 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때 '응답하라 1988' 같은 드라마가 히트를 친 것처럼 우리는 힘든 경제적 상황에서도 가족과 친구, 이웃이 있어 행복했고 견뎌낼 수 있었다는 개인적 경험을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스토리는 단순히 "가난해도 행복했다"가 아니라 신뢰할 만한 풍부한 관계가 소비 이상의 행복을 준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관계에서 오는 상호의존과 행복이 소비의 대안이 될 수 있으며 당연히 소비가 줄면 탄소 배출이 줄어듭니다.

행복은 기후 위기로 인한 여러 가지 어려움에 맞서고 적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행복은 관계 더 나아가 공동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행복연구의 고전인 <행복의 함정>에서 레이어드 교수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7가지 요소로서 ① 가족관계, ② 재정, ③ 일, ④ 공동체, ⑤ 친구, ⑥ 개인의 자유, ⑦ 개인의 가치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가족관계, 공동체, 친구처럼 바로 관계와 공동체와 직결되는 요소가 확인되며 일과 개인의 자유 및 가치관의 요소도 공동체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행복하려면 좋은 공동체를 만나거나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공동체는 기후 위기 상황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폭염사회>(2018, 글항아리)라는 책에서는 보다 단단하고 끈끈한 관계망을 가진 공동체가 폭염 재난 앞에서 다른 약한 공동체에 비해 훨씬 강력한 대응능력을 보여주고 있음을 잘 밝히고 있습니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2012, 펜타그램)에서는 다양한 재난 상황에서 자발적인 연대와 돌봄이 만들어지고 공동체성이 발현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즉, 기후 위기의 고통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으며 반드시 공동체와의 연결이 중요합니다. 행복한 공동체가 기후 위기 적응력의 핵심이 됩니다.

종합적으로 행복은 인류가 기후 위기에 맞서는 중요한 수단과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행복은 보편적 인간의 권리인 동시에 생존을 위한 보편적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를 비롯한 복합위기 시대, 행복은 결코 한가한 이야기가 아니며 위기를 돌파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후 위기 시대 행복이 더욱 중요한 이유입니다.
 

▲ 글 · 이재경 | 국민 총행복 정책 연구소장 ⓒ 국민총행복전환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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