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찬양하던 언론, 'OO타임' 없애자고 했다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어둡던 시절 1980년의 커피 문화
▲ 서울 돈의문박물관 음악다방 내부. 디제이가 음악을 틀어주던 뮤직박스가 보인다. ⓒ 성낙선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독립 협상이 막바지 고비에 이르렀던 1947년 4월, 영국의 총독 루이스 마운트배튼이 마하트마 간디를 총독 관저로 초대했다. '도티'라는 고유의상을 입은 반나체의 모습으로 초라한 봇짐까지 들고 총독 관저에 나타난 간디를 보고 총독을 비롯한 영국 관리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차려놓은 진수성찬을 마다하고 봇짐 속에서 염소젖과 레몬 수프를 꺼내 마시면서 간디는 말했다.
"나는 우리 음식을 먹겠습니다. 벌거벗은 듯하지만 이 '도티' 옷은 선조들이 지난 5천 년 동안 입어 온 것입니다. 독립을 목전에 둔 우리 인도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자기의 직분을 지키는 마음가짐입니다. '생각은 크게, 생활은 작게'라고 내 스스로 사람들에게 일러 왔답니다."
1980년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해 중 하나였다. 경제는 불안했다. 제2차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불황이 깊었다. 이 해에 소비자 물가가 무려 34.6% 올랐고, 경제성장률은 -5.7%를 기록하였다. 6.25 전쟁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던 국민소득이 처음으로 하락하였다.
전두환 시대, '코피타임' 없애자고 한 언론
▲ 대통령 재임 당시 국무회의 주재하는 전두환씨.1984.10.23 ⓒ 연합뉴스
정치는 더욱 후퇴하였다. 전년도에 벌어진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계기로 선포되었던 계엄령이 살아있었고, 대학생들은 계엄철폐, 병영집체훈련 폐지, 학원 민주화를 외쳤다. 시민들은 정권의 평화로운 교체를 희망하며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이른바 '서울의 봄'이었다. 길지는 않았다. 신군부 세력의 권력 찬탈 야욕에 저항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폭동과 내란으로 규정되어 잔혹하게 탄압당하였고, 공포정치 앞에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주춤했다. 언론은 "새 지도자의 여유 있는 미소" "새 역사 창조의 선도자 전두환장군" "전두환장군의 과업 한국민들 전폭 지지" 등을 외쳐대며 곡학아세를 서슴지 않았다.
오일쇼크는 수입 원자재의 가격 상승을 가져왔고, 생활물가 상승의 여파 속에 다방 커피 가격은 한잔에 170원에서 200원으로 인상되었다. 원가 상승을 이유로 다방 업자들은 추가 인상을 요구하였고, 정부는 커피 소비의 자제와 국산 차 마시기를 권장하였다.
위에 소개한 <동아일보> 기사는 우리 사회의 과분수, 즉, 분수를 넘는 생활 습관을 질타하며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그중 하나가 '코피타임'이었다. 이 신문 기사에 따르면, 당시 회사원들은 아침 출근 도장을 찍기가 무섭게 동료 3, 4명과 어울려 부근 다방을 찾는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입사 이래 '코피타임'이란 잡담 시간이 빼놓을 수 없는 일과의 하나처럼 돼버렸기 때문이었다. 4백 원짜리 짜장면을 먹고 난 후에는 2백 원짜리 커피 한 잔씩을 마셔야 한다.
과분수가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회교육을 통한 자발적인 자제 훈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 이 신문의 결론이었다. 권력을 잡은 신군부가 벌인 사회정화운동, 의식개혁운동, 국민정신교육은 이런 주장을 반영한 선동정책의 하나였다. 총독 앞에서도 염소젖을 먹던 간디의 '수분의 지혜' 즉, 분수를 지키는 지혜를 재음미할 때라고 외치는 언론인들에게 군인으로서의 본분, 분수를 지키지 않고 정치권력을 찬탈한 군인들의 과분수는 보이지 않았다.
이해 8월 27일 전두환은 '대통령의 산실' 장충체육관에 모인 통일주최국민회의 대의원 2천여 명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되고, 9월 1일에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투표장에는 휴게소가 마련되어 있었고, 빵과 커피가 제공되었다. 전국에서 올라온 대의원들은 주최 측에서 준비한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단일후보 전두환에게 표를 던지는 축제와 같은 선거에 참여하였다.
커피 아닌 코피
▲ 1980년 9월 6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커피 관련 기사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전두환의 취임 직후인 9월 6일 자 <조선일보>는 당시 우리나라의 커피 소비 실태, 커피와 관련하여 알아야 할 상식을 비교적 상세하게 보도했다. 이 신문에 실린 당시 커피 실태와 커피 상식 몇 가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979년 기준 1년간 우리 국민 한 사람이 소비한 커피 원두는 약 130g, 1인당 20~25잔의 커피를 마시는 셈이다. 커피 소비가 가장 많았던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에서는 국민 한 사람이 연간 2천 잔을 넘게 마시는 것에 비해서는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0.1% 정도를 소비하는 정도다.
커피 수요의 증대에 따라 국내 커피 생산 업체는 1970년에 동서식품이 출범한 이래 미주산업, 씨스코, 태양산업 등 4개 사로 증가했고, 커피 제품도 다양화되었다. 이들 회사를 중심으로 커피 생두를 수입하였는데 주로 브라질,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예멘, 에티오피아산이었다. 인스턴트커피는 동서식품에서만 생산되었고, 나머지 3개 사는 원두 생산업체다.
커피는 세계적으로 분류 기준이 단순하다. 브라질커피와 마일드커피로 나누는 방식이다. 브라질커피는 맛과 향기가 약간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하여 블렌딩커피의 기본이 되는 장점이 있다. 반면 마일드커피는 산지에 따라 맛과 향기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며 조금 비싼 편이다.
단일 품종으로 유명한 원두는 세계 최고급품이며 영국 황실용으로도 잘 알려진 '블루마운틴, 달콤한 모카의 맛이 나는 에티오피아모카, 향기가 높고 고급일수록 산미가 나는 브라질산토스, 스트레이트용인 킬리만자로, 남성에게 알맞은 콜롬비아 등이 있으며, 기타 과테말라, 자바로부스타, 멕시코, 만데링, 뉴기니 등의 원두가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커피는 원두커피가 60%, 인스턴트커피가 40%를 차지하고 있다. 원두커피는 주로 호텔이나 다방에서 소비되고, 인스턴트커피는 가정에서 많이 소비된다. 인스턴트커피를 만드는 방식은 크게 열풍건조식과 냉동건조식이 있다. 열풍건조식은 설비비용이 싼 장점이 있지만 제조 과정에서 원두 본래의 향기와 맛이 사라지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냉동건조식은 설치비용이 비싸지만 커피의 맛과 향을 유지할 수 있다. 동서식품에서 그동안 사용해오던 열풍건조식을 버리고 냉동건조식을 도입하여 이달 말(80년 9월)부터 '맥심'이라는 상표의 고품질 인스턴트커피를 생산한다. 동서식품에서는 탈카페인커피(디카페인커피) 생산 시설도 도입하여 이 해 말(1980년)부터 생산과 판매를 시작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커피 가격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비싼 편이다. 250g짜리 인스턴트커피의 소비자 가격은 한국이 6940원, 일본이 4970원, 미국이 3565원이다. 커피에 적용하는 세율의 차이가 심한 것이 문제다. 일본이 1.8%에 불과하나 우리나라는 무려 49.4%에 달하고 있다. 그것도 일본보다 거의 50%나 싼 저질 원두를 수입하기에 가능한 가격이다.
당시 언론은 정부정책에 호응해 국산 차 소비를 권장하는 데 앞장섰다. 태평양화학에서 설록차 시판을 시작한 것이 1980년 9월 하순이었다. 이를 보도한 <매일경제>는 그동안 커피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던 국산차, 피로회복과 이뇨작용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국산차를 소비하자고 호소했다.
12월 4일 자 <경향신문>은 겨울철에 어울리는 우리 민족 고유의 차로 유자차, 모과차, 오미자차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 또한 12월 7일 자에서 우리 농민이 피땀 흘려 생산한 국산차를 적극적으로 마셔달라는 한 농부의 호소문을 실었다. 그러나 1981년 이후 국민소득이 증가세로 돌아섰고, 언론의 권장이나 농민단체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국산차 소비가 커피를 능가하지는 못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커피의 한글 표기였다. 1980년 한해에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경제> 등 4개 일간 신문에 실린 커피 관련 기사는 총 455건이었다. 이중 커피를 '커피'로 표기한 것은 단 20건이고 나머지는 '코피'로 표기하였다. 커피의 표기가 '커피'로 정착된 것은 1992년이었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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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1980년 기사 일체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한국가배사. 푸른역사.
이길상(2023).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 역사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