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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협회와 홍명보 감독은 결국 K리그를 버렸다

[주장] K리그 팬이 바라본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 모두에게 상처만 남겨

등록|2024.07.11 15:27 수정|2024.07.11 15:27

▲ 10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된 울산 HD 홍명보 감독이 광주FC와의 경기 후 서포터스석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끝내 아름다운 이별은 없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새 사령탑을 맡게 된 홍명보 울산 HD 감독이 홈경기에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분노한 울산 팬들로부터 야유와 원성만 들어야 했다.

지난 10일 오후 7시 30분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울산 HD과 광주FC의 '하나은행 K리그1 2024' 22라운드 경기가 열렸다. 하지만 이날의 관심은 경기 자체보다 홍명보 감독 개인에게 쏠렸다.

대한축구협회는 사흘 전인 지난 7일 홍 감독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사령탑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울산 팬들에겐 한마디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홍 감독은 지난 2월부터 대표팀 차기 감독 후보로 여러 차례 물망에 올랐으나 그때마다 부인하며 울산 잔류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대표팀 감독 선임 불과 이틀 전인 5일 홍 감독은 대한축구협회 측과의 만남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이후 방문한 이임생 이사의 제안을 들은 뒤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려 5개월 만에 새로운 정식 감독이 선임됐음에도 여론 분위기는 썩 좋지 않다. 특히 울산 팬 사이에선 '현직 K리그 감독 빼가기'를 강행했다는 분노가 크다. 설상가상으로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에 참여했던 박주호 축구 해설위원의 폭로로 더욱 시끄러워진 상황.

이런 가운데 울산 구단은 지난 9일 입장문을 내고 '홍명보 감독을 멋지게 보내주자'고 했다가 도리어 성난 팬들의 원성만 자아내기도 했다.

홍명보 감독 기자회견에도... 돌아오지 않는 팬심

10일 광주전을 앞두고 문수경기장에 집결한 울산 팬들은 미리 준비해둔 걸개들을 여기저기서 펼쳐보이며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를 드러냈다. "피노키홍", "우리가 본 감독 중 취악" 등 대체로 비판 메시지가 담긴 내용들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울산의 리그 2연패를 이끈 영웅이었는데, 하루아침에 팬들의 '금지어'로 전락해버렸음을 보여준 씁쓸한 장면이었다.

마침내 홍명보 감독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울산 팬들은 일제히 야유를 퍼부었다. 홍 감독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착잡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령탑의 거취 문제로 팀 분위기가 흔들린 울산은 이날 안방에서 광주에 0-1로 패배하며 최근 3경기 연속 무승의 부진을 이어갔다. 경기가 끝난 후 울산 선수단이 운동장을 돌며 팬들에게 인사하는 동안, 홍 감독은 코치진과 함께 선수단과 조금 떨어진 뒤편에 서 있었다. 이어 관중석에 인사 없이 라커룸으로 발길을 돌렸다. 일부 팬들은 '홍명보 나가'를 외치며 격양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10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된 울산 HD 홍명보 감독이 광주FC와의 경기 후 자신을 비판하는 걸개가 내걸린 서포터스석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홍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는 2014년 대표팀 감독 시절 힘들었던 경험을 언급하며 "솔직한 심정은 대표팀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면서도 "이임생 이사가 집으로 찾아와서 몇 시간이나 기다린 것을 뿌리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축구 인생에서 마지막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 실패를 했던 그 과정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지만, 반대로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강한 승부욕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팀을 정말로 새롭게 만들어서 정말 강한 팀으로 만들어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홍 감독은 "밤새도록 고민하고, 고뇌하는 시간이 길었던 건 나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10년 만에 울산에서 재미있는 축구를 하고 선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결과적으로 나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난 나를 버렸다. 이젠 나는 없다.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 그것이 제가 팬에게 가지 않는다고 얘기했던 부분에 (있어) 마음을 바꾼 상황(이유)이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홍 감독은 "얼마 전까지 응원이었던 구호가 야유가 됐는데,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다시 한번 울산 팬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팬 입장에선, 돌연 피해를 입게 된 울산과 K리그에 대한 존중이 홍 감독의 해명에 빠져 있는 것처럼 느껴져 아쉬울 수밖에 없다. 또다시 현직 감독이 시즌 중에 소속팀을 버린 셈이 됐기 때문이다. K리그에 미칠 파장, 사령탑에 의지했던 선수와 팬들이 느꼈을 배신감 등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증명하듯 이날 울산 문수경기장 곳곳엔 홍 감독의 이름이 적힌 머플러와 유니폼 등이 찢어진 채로 나뒹굴었다.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 씁쓸한 이별식이었다.
 

▲ 10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 프레스센터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된 울산 HD 홍명보 감독이 광주FC와의 경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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