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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위해 노후 포기... 베이비붐 세대의 현주소

[우리 시대의 은퇴 3] 삼중고를 안고 살아가는 베이비붐 세대

등록|2024.07.11 11:30 수정|2024.07.11 11:47
해마다 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회적 정년을 맞아 은퇴한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먹고 살기 위해 다시 노동시장으로 회귀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 은퇴 나이는 72.3세다. 정년은 비자발적 실업이며 경력 단절일 따름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나라다. 우리 시대의 은퇴란 무엇인가. 생애 후반부는 어떤 모양으로 조각해야 하나. 인생 곡선은 어떻게 그려야 할까. 이글은 퇴직과 정년, 은퇴와 수명이라는 변곡점을 통과하는 중년/장년/노년의 고령자들이 좋은 삶(good life)을 살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성찰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기자말]
후반부 가정경제의 핵심은 현금 흐름(cash flow)을 창출하는 것이다.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살림살이의 근간이지만, 후반부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수입이 줄거나 끊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달 필요한 돈을 '어디선가' 끌어다가 써야 한다. 현금 흐름을 만드는 방법은 7가지가 있다.

1. 소유한 부동산을 임대해 소득을 창출하는 방법
2. 주식 등 유가 증권의 배당금을 받는 방법
3. 금융 회사에 예치한 돈의 원금과 이자를 사용하는 방법
4. 연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방법
5. 사업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방법
6. 노동력을 제공해 임금을 받는 방법
7. 기타


1~3번은 누구나 바라는 희망 사항이지만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니다.
60세 이상 연령층 중 재산 소득과 예금/적금으로 생활비를 조달하는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4번인데, 이는 공무원이나 군인 등 직역 연금을 받는 일부 직업군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나머지는? 이 방법만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다.

5번의 대표적 직종이 자영업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 소상공인/자영업 생태계는 생존 확률이 희박한 정글이다. 진입 장벽이 높아서 특별한 경쟁력이 없으면 투입한 돈을 회수하기 전에 문을 닫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영업 이익도 낮다. 자영업의 대표 주자인 도소매업의 45%, 음식/숙박업의 50%가 1년에 1000만 원 이하의 이익금을 남긴다. 월 영업 이익이 100만 원이 안 된다는 뜻이다.
 

영업이익 규모별 소상공인 사업체 비율소상공인 실태조사 (2022, 통계청) ⓒ 문진수


6번이 밀도가 가장 높은 선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모이는 것처럼,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작용하면서 일할 곳을 찾아 헤매는 시니어는 계속 늘고 있다. 55~79세 인구 중 67%가 취업을 희망한다. 국민연금을 아예 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역부족인 장년층과 시니어가 이 선로 위를 걷는다.

그 외에 자녀/친지에게 의지하거나 주식이나 투기로 큰 수익을 노리는 방법, 국가의 도움을 받는 방법 등이 존재한다. 하지만 자녀에게 노후를 의탁하는 건 양쪽 모두 원하는 그림이 아니다. 투자/투기는 위험성이 크며, 국가의 지원을 받는 건 마지막 선택이므로 대안이 될 수 없다. 결국 4번과 6번을 병행하거나 5번 선로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는 길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나라 중장년층과 노년층의 월 소득은 얼마나 될까?
아래 그림은 40세 이상 연령층의 월 소득(2021년 기준, 단위: 만 원)을 나타낸 것이다. 왼쪽 막대가 평균 소득, 오른쪽 막대가 중위 소득이다. 40대와 50대는 비교적 완만하게 줄어들다가 60세를 기점으로 평균 소득이 뚝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적 노인인 65세를 넘어서면 월 평균 소득은 178만 원, 중위 소득은 126만 원으로 낮아진다.
 

40세 이상 연령층의 월 소득 (남녀 평균)연령대별 소득 수준 (2021, 통계청) ⓒ 문진수


2021년 기준 1인 최저 생계비, 즉 기준 중위 소득은 182만 7831원이다.
65세 이상 연령층의 평균 소득이 최저 생계비에 미달한다. 홀로 사는 노인들의 살림살이가 매우 곤궁하다는 뜻이다. 2인 최저 생계비(308만 8079원) 기준으로 보자. 60세 이상 연령층의 평균 소득이 최저 생계비에 미달한다. 정년을 맞은 부부가 '평균적인' 삶의 질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걸까?
베이비붐 세대가 누구인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높은 경제 성장의 혜택을 받은 '운 좋은' 세대가 아닌가. 외환 위기의 고난을 겪었지만, 자산을 축적할 기회가 어느 세대보다 많았다. 노후 위험에서 벗어난 이들을 살펴보면 이 의문을 풀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금수저로 태어났거나, 고소득 전문직이거나, 사업에 성공해 돈을 많이 번 경우가 아닌, 평범한 월급쟁이로 일하다 은퇴한 이들을 관찰하면서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했다. 삶의 질 측면에서 '아이를 낳은 부부와 그렇지 않은 부부의 차이'가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한 부부 중 딩크(DINK)족으로 산 부부는 경제적어려움이 없었지만, 아이를 낳고 기른 부부는 노후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두 그룹의 차이를 결정짓는 분기점은 '출산'이었다.
이 발견을 보편적 진리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사실은 중요한 사회적 함의를 담고 있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행위가 노후 빈곤의 원인이라면 안정된 노후를 보장받으려면 유전자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 선택이 사회적 조류가 되면 국가는 거대한 재앙을 맞게 된다. 우리가 지금 이 '덫'에 걸려 있다.

젊은 세대가 혼인과 출산에 부정적인 데는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부모, 삼촌, 이모 세대의 고단한 삶을 답습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는 출산 장려금 따위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젊은 세대가 짝을 맺고 아이를 낳게 하려면, 혼인과 출산의 결과가 빈곤으로 귀결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 아이를 낳고 길러도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가족의 틀로 보면, 베이비붐 세대의 상당수는 삼중고(三重苦)를 안고 살아간다.
삼중고란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양육하고, 노후의 삶도 책임져야 하는 짐을 말한다. 이 세대는 대학 간판이 성공의 보증 수표라는 사실을 삶으로 체험했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 노후를 희생하는 위험한 결정을 단행하는 이유다. 이 눈물 나는 노력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세 번째 토끼를 잡기란 역부족인 것 같다.

'자식에게 줄 돈이 있으면 차라리 자신에게 투자하라'는 말이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현실에선 실행하기 어려운 선택지다. 부모의 지원 여부가 자식의 앞날을 결정하는 살벌한 전쟁터에서, 어느 부모가 그런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겠는가. 자식에게 디딤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한, 이 땅의 부모들은 힘겨운 삶을 걸을 수밖에 없다. 베이비붐 세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문진수 시민기자는 최근 단행본 '은퇴의 정석'(2024.6.28/한겨레출판)을 출간했습니다. 이 기사는 책의 내용을 일부 인용, 재편집해 새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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