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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예산 복원됐지만... 여전히 우려스러운 이유

R&D 예산 논란... 남아 있는 문제와 과제들 ①

등록|2024.07.11 11:22 수정|2024.07.11 11:23
과학기술계를 뒤흔들었던 R&D예산 삭감 혼란 이후, 정부는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임기 중에 R&D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혁신적·도전적인 R&D는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2024년 연초 발언을 시작으로, 정부는 2025년 R&D예산 증액을 약속하였고, 마침내 2024년 6월, 전년 대비 증가한 24.8조원 규모의 2025년도 R&D 예산(안)을 발표하였다.

과학기술연구자 입장에서 정부 R&D 예산 복원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올해 과학기술연구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을지, 과학기술연구에 도움이 될지 등에 대해서는 의문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단순히 삭감된 예산의 복원으로는 우리 과학기술 분야의 중장기적 퇴보를 막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두 편의 기사를 통해 첫째,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R&D 예산 관련 그간의 혼란을 되돌아보고, 둘째, 2024년 R&D 예산 삭감이 불러온 연구현장의 어려움을 살펴보며, 셋째, 정부가 발표한 2025년도 정부 R&D 예산(안)의 투자 집중 전략이 초래할 수 있는 비효율이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윤석열 정부의 R&D 예산 관련 그간의 혼란

2022년 7월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에서는 'R&D 예산을 정부 총지출의 5%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는 과제가 제시되어 있다. 실제로 2024년 R&D 예산 삭감을 겪기 전까지, 2021년 이후 R&D 예산은 정부 총지출의 4.9% 수준에서 유지되었다.

정부 지출은 크게 의무지출과 재량지출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의무지출은 법령에 따라 지출 규모가 결정되는 법정지출 및 이자지출을 의미하고, 재량지출은 재정지출에서 의무지출을 제외한 나머지를 의미한다. 재량지출은 정부가 재정 여건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R&D 예산도 재량지출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정과제를 통해 정부 총지출 5% 수준에서 R&D 예산을 유지하겠다면서 R&D 예산을 의무지출처럼 명시했다. 비유하자면, 가계 경제에서 아이들의 교육비를 일정 규모로 유지하겠다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에서도 2023년 정부 R&D 예산은 정부 총지출의 4.87% 수준에 달했다.
 

▲ 기획재정부(2023.12.21.), “2024년 예산, 국회 의결.확정” 자료에서 <표>를 인용 ⓒ FOSEP


그런데, 2023년 6월 <2023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의 그 유명한 대통령의 발언("나눠 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후, 2024년 R&D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 2023년 12월 국회에서 확정한 최종(안) 기준으로 2024년 R&D 예산은 26.5조 원으로 2023년 31.1조 원보다 4.6조 원 감소하였고, 이에 따라 정부 총지출 대비 비율도 4.04%로 줄어들게 되었다. '정부 총지출 대비 R&D 예산 5% 수준'이라는 국정과제가 물 건너간 상황이 되었다.

2024년 R&D 예산이 삭감된 이후에 과학기술계가 직면한 어려움은 2024년 초부터 많은 언론에서 보도된 바 그대로이다. 예산 삭감은 연구 중단 및 축소로 이어졌고, 비정규직 연구원의 고용 불안정으로 이어졌다.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를 설명하기 위해 'R&D 카르텔'이라는 문제적 언어가 나타났고, '비효율'을 걷어내야 한다는 명분이 제기되었다. 졸지에 과학기술인들은 '카르텔'의 당사자가 되어버렸지만, 정작 정부는 그 실체에 대해 설명한 바 없다.

과학기술계는 이러한 상황을 우려했고, 나아가 분노를 표출하였다. R&D 예산 삭감을 우려하고 분노하는 목소리가 토론회, 학술대회, 성명서 등을 통해 표출되었다. 정부의 일방적 R&D 예산 삭감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도 높아졌다.

예상치 못한 과학기술계의 대응과 여론의 차가운 반응에 정부는 변화된 대응을 모색했다. 2024년 R&D 예산 삭감을 통해, 'R&D다운 R&D'로 개혁의 첫걸음을 뗐고, R&D 분야의 비효율을 걷어냈으니, 이제 AI, 첨단바이오, 양자 등 3대 게임체인저와 국가미래전략기술에 대한 R&D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변화의 방향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나타났다. 윤대통령은 2023년 11월 <대덕연구개발특구 50주년 기념행사>에서 "R&D다운 R&D에 재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앞으로 R&D 예산을 더욱 확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연구자들이 제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돈이 얼마가 들든지 국가가 적극 뒷받침할 것입니다"라며 R&D 예산 확대의 포문을 열었다.

이후 2024년 1월 <과학기술인·정보방송통신인 신년 인사회>와 2024년 3월 개최된 <국무회의>에서도 "재임 중 R&D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고 언급하였다. 급기야 2024년 5월 <2024년 재정전략회의>에서는 2025년도 R&D 투자 규모를 대폭 확충할 계획을 제시한다. 마침내 정부는 2024년 6월, 그간 1년의 혼란을 초래한 R&D 예산 삭감과는 정반대로, 2025년도 주요 R&D 예산을 전년 대비 증가한 24.8조원 규모로 편성한 정부 R&D 예산(안)을 발표한다.

이상의 내용이 2023년 6월부터 2024년 6월까지 만 1년 동안 R&D 예산 관련 윤석열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에 대한 요약이다.
 

▲ 대통령실(2024.4), “R&D 대폭 지원, 사실은 이렇습니다” 자료 및 언론보도 내용을 정리 ⓒ FOSEP

 
2024년 R&D예산은 얼마나 증액되었는가?

<표 3>은 2024년 6월 정부가 발표한 R&D 예산(안)의 내용이다. 정부는 '2025년도 주요 R&D 예산은 전년 대비 대폭 증가한 24.8조 원 규모로 역대 최대 규모'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재정 여력이 정말 없는데도 최선을 다해 큰 폭으로 증액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주요 R&D를 기준으로 볼 때 2025년도 예산은 2024년에 비해 약 2.9조 원 증가하였고, 2023년에 비해 약 0.1조 원 증가하여,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2024.6.27.), “2024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의 <표>를 인용 ⓒ FOSEP


다만, 2023년도 정부 R&D 규모에 대해서는 정부 스스로 혼란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표 1>과 <표 3>을 비교할 때 정부 R&D 규모가 각각 31.1조 원, 29.3조 원으로 약 1.8조 원 차이가 존재한다. 기획재정부는 2024년 예산 확정 당시(2023.12.21.)에는 정부 R&D 규모로 31.1조 원을 제시하였으나, 이후 보도설명자료(2024.5.24.)에서는 "2023년 R&D 예산은 2024년 예산편성시 OECD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재분류한 1.8조 원 사업군을 제외한 실질적인 R&D 사업군은 29.3조 원"이라고 설명하며, 2023년 정부 R&D 규모를 29.3조 원으로 수정하였다.

결국 수정된 수치를 기준으로 볼 때는, 2025년도 정부 R&D 예산과 주요 R&D 예산이 각각 2023년 수준을 다소 초과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다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R&D 예산을 정부 총지출의 5%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는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언급한 R&D 카르텔의 실체는 무엇인가?

2025년 R&D 예산 증액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나눠먹기식, 뿌려주기식 R&D 사업을 구조조정하여, 예산 증액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일방적 R&D 예산 삭감 외에 R&D 예산 구조조정이 어떠한 원칙과 기준으로 이루어졌는지 아직 충분한 설명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2023년 12월 조성경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제1차관은 강연을 통해 과학기술계 연구개발(R&D) 카르텔과 관련된 여덟 개 사례를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조 전 차관은 R&D 카르텔을 "국가와 공공의 이익 창출보다 개인과 특정 무리의 이익 확보를 위해 R&D를 기획하고 예산 배분·평가 등에 부당하게 개입해 실력과 열정이 있는 연구자의 기회를 훼손하는 행위 또는 그 결과"라고 정의했다.

조 전 차관은 과기정통부 공식 의견은 아닌 개인적 의견이라고 했고, 이후 이것이 논란이 되자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도 개인 의견일 뿐 정부 의견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2024년 R&D 예산 삭감의 주된 명분이 나눠먹기식·뿌려주기식 R&D 사업의 구조조정과 R&D 카르텔의 타파인데, 정부가 삭감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조성경 차관이 제시한 R&D 카르텔 사례
(출처 : HelloDD, 2023.12.12.)
1. 출연연이 기업체에 사업을 주고, 사업의 일부를 출연연이 지정한 교수에게 주는 편법
2. 출연연 등이 해당기관 출신 교수들에게 특혜 제공을 위해 과제를 주는 경우
3. 출연연이 수년간 내용은 동일하나 제목을 바꿔가며 연구를 지속하는 경우
4. 기술이전과 관련해 기술가치 평가 이전 기술이전료 협상을 한 후 일부 금액을 개인적으로 지원받는 경우
5. 뿌려주기식 용역확대로 인해 연구여력이 없는 교수들에게 연구비 지급
6. 예타기획이나 보고서를 쓸 수 있는 역량이 미비한 중소기업 브로커가 이를 대행해주고 성공보수와 착수보수를 받는 경우
7. 연구재단 등에서 과제 기획을 할 때 특정 분야 기술을 연구하는 집단의 수요를 받아 과제 제안서 자체를 그 연구실만이 할 수 있도록 작성하는 경우
8. 선정평가를 할 때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입을 맞춰 평가 분위기를 한쪽으로 몰아가는 경우

한편 윤석열 대통령이 R&D 예산 확대와 'R&D다운 R&D'를 언급한 후, 2024년 4월 대통령실은 정부가 말하는 'R&D다운 R&D'를 R&D 예산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발생한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한 연구지원방식의 혁신이라고 설명하였다. 적시·신속 / 신뢰·투명 / 경쟁·협력 / 혁신·도전이라는 'R&D다운 R&D'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과학기술 연구자들도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2023년까지 R&D 예산이 확대되면서 어떤 비효율이 발생하였는지, 2024년 R&D 예산 삭감이 어떠한 원칙과 기준으로 이루어졌는지, 2025년 R&D 예산 편성 과정에 어떤 비효율을 어떻게 제거했는지 여전히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언급한 나눠먹기식·뿌려주기식 R&D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했다는 주장이나, 구조조정 덕분에 2025년 예산을 증액할 수 있었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정부가 말하는 'R&D다운 R&D'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출처 : 대통령실, 2024.4)
□ 'R&D다운 R&D' 지원은 R&D 예산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제기된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한 연구지원방식의 혁신을 말함
ㅇ (적시·신속) 연구 기획에서 착수까지 시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연구비가 필요한 경우 제때 신속하게 지원
ㅇ (신뢰·투명) 연구자를 믿고 지원하되 국민께 투명하게 연구비 및 성과를 공개하는 것임
ㅇ (경쟁·협력) 부처 간, 기관 간 벽을 허물고 산·학·연·병 연구역량을 강화하며, 국내 울타리 속에 갇힌 연구생태계를 세계 우수연구자와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체계로 전환하는 것임
ㅇ (혁신·도전) 따라붙기식 쉬운 연구가 아닌 최초·최고 연구에 과감히 투자하며, 젊은 연구자가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선도국형 연구환경을 조성하는 것임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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