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된 '박근혜 풍자화' 전,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다
[김성호의 독서만세 235] 황보람 <황보람의 저니>
2017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였다. 전년도 말 불거진 국정농단,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회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지 겨우 한 달여가 지났을 때였다. 초유의 대통령 직무정지 사태 속 국회 로비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 '곧, BYE'였다.
표창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한 이 전시는 그야말로 전국을 들끓게 했다. 특히 사전 공개 없이 전시 당일 로비에 도착한 그림 한 점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작품 제목은 '더러운 잠'.
에두아르 마네의 명작 '올랭피아'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중첩시켜 재창조한 것으로, 중심에 누운 여자의 얼굴을 박 대통령으로, 뒤에 선 하녀의 얼굴을 최순실로 합성해 놓았다. 창 밖에는 침몰하는 세월호의 모습이, 누워 자고 있는 박 대통령의 몸 위엔 사드(THAAD) 미사일과 박정희 대통령의 얼굴 초상이 올려져 있었다.
국정농단과 세월호 침몰참사 당시 대통령의 행적, 사드로 대표되는 현안 등을 두루 비판하고 풍자한 이 작품은 의외의 논란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의 얼굴을 여성의 나신 위에 합성한 것이 성적 모욕이라는 주장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진보진영에서조차 여성의 나체를 이용해 정치인을 비판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거세게 일어난 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비판과 논란에 더불어민주당은 윤리심판을 거쳐 당직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와 관련해 표 의원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지겠다"라며 사과의사를 밝혔다. 여기까지가 이 사건과 관련해 알려진 이야기다.
작년 말 발간된 <황보람의 저니>는 위 전시를 둘러싼 일련의 이야기와 관련해 미처 전해지지 않았던 사연을 전한다. 황보람은 당시 표창원 의원실의 보좌진이자 '곧, BYE' 전시의 기획자였다. 그리고 표 의원의 입장 발표 직후 의원실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당사자이기도 했다.
통보를 받고 그날로 의원실을 나와야 했던 그녀는 스스로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심정이었다고 말한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노동계의 말에 비로소 공감을 하였다는 이야기도.
황보람은 <머니투데이>와 <the300>을 거친 언론인 출신 국회 보좌관이었다. 앞날이 창창했던 그녀의 경력이 이 전시를 기획하고 그 여파로 해고통보를 받은 뒤 완전히 무너진다.
그녀는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고 말한다. 전시회 기획 당시로 돌아가 다시 결정을 내릴 수 있대도 같은 결정을 하리라는 그녀에게 나는 깊은 공감을 표한다.
작품을 창작한 작가가 수차례 말하였듯, 작품의 근간이 된 '올랭피아'는 인간 여성이 나신으로 정면을 응시함으로써 시선의 주체를 여성에게 돌려놓은 미술사적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상스럽다는 당대의 비난에 맞서 에밀 졸라가 이 작품을 옹호한 건 알려진 이야기다. 진실한 인간을 묘사하고 주체적 여성의 시선을 담았다고 말이다.
그녀가 전시장에 들어온 작품을 가려 받기라도 해야 했을까. 권력을 가진 정치인을 풍자할 수 있다는 건 민주주의의 힘이다. 표현의 자유는 예술의 본질이다. '올랭피아'는 인간 여성에게 주체성을 안긴 미술사적 걸작이라고 나는 본다.
그 모두를 알면서도 비판 앞에 무릎 꿇어야 했을까. 그로 인해 일순간에 직장을 잃었으나 그녀는 다시 돌아가도 그럴 수는 없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지지를 표한다.
<황보람의 저니>는 기자였고, 보좌관이었으며,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황보람의 기록이다. 수시로 소속팀을 옮기는 운동선수를 가리키는 '저니맨'이라는 말처럼, 수많은 명함을 가졌다가 놓아버린(때로는 잃어버린) 작가 자신의 '저니' 이야기를 담았다.
한 층 한 층 쌓아 올려 써내려간 저니의 어느 순간에 저 유명했던 전시의 뒷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나는 그 부당함을 목도하면서도 그저 침묵했던 나를 반성한다. 책임 있는 이들의 비겁과 무지성적인 비판 가운데서 더 나은 역할을 할 수 있었고 해야만 했던 귀한 이가 무릎 꿇고 마음을 다치는 과정이 안쓰럽게 보인다.
언론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거듭 책으로 펴내고 있는 '출판공동체 편않'의 '우리의 자리' 시리즈 네 번째 권으로, 황보람을 고른 건 꽤나 흥미롭다. 앞서 소개한 다른 기자들과 달리 황보람은 쭉 언론인의 길을 걷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써내려간 기록 가운데는 한국 언론사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또 오늘날 언론의 병폐라 불러도 좋을 이야기가 생생한 사례와 함께 담겨 눈길을 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그렇다.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뒷얘기
언론사에서 어떻게 기사가 검열되고 삭제되는지를, 언론인이 어떻게 깎여나가고 길들여지는지를 위 내용과 같은 구절이 가감 없이 드러낸다.
사주가 있고 그가 편집에 개입하는 언론사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으로, 언론 바깥에 선 이가 좀처럼 닿을 수 없는 내용을 실명까지 밝혀가며 적시해 흥미롭다. 그간 언론인이 써내려간 많은 에세이가 알면서도 전하려 들지 않았던 내밀한 사정이 아프게 다가든다.
한때 꽤나 흥미롭게 보았던 매체인 <the300>이 꺾여나가는 과정 또한 얼마쯤 솔직히 묘사한다. 창립멤버 중 한 명으로 이 매체의 프로젝트에 상당한 애정을 드러내던 그녀의 기록은 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언론사적 의의를 갖는다 생각한다.
수많은 언론과 언론인이 출입하는 국회이지만, <the300>이 진행한 프로젝트만큼 지속적으로 정책을 심도 깊게 다룬 매체가 없었단 점에서 이들의 좌초를 아프게 여겼던 나다.
애독자로서 그 상실이 여전히 실망스럽지만 뒤늦게나마 어느 어른의 눈물이, 어느 기자의 고통이 있었다는 사실이 위로 아닌 위로로 다가오기도 한다.
다만 <황보람의 저니>를 훌륭한 책이라고 추천하긴 민망한 구석이 있다. 저니맨이란 성격과 꼭 맞게 실린 글들이 응집력 있게 모여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 발췌한 것과 같이 곳곳에서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대목이 있었단 건 기록할 만하다.
개중에선 아직 아물었다 할 수 없는 상처와, 그리하여 충분히 깊이 열고 따져볼 수 없었던 기억들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어느 기자, 또 보좌관의 절실한 발버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때가 있다. 곁에 선 이에게 관심을 갖고 좀 더 애정 담긴 시선으로 오래 바라보는 일, 때로는 손을 내밀고 때로는 고함을 치기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관심 갖고 보았던 어느 매체의 추락 가운데, 또 부당함을 알면서도 충분히 알아보지 않았던 어느 사건 가운데서, 거듭 분투하고 고투했던 황보람이란 인간이 있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미래를 응원한다.
표창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한 이 전시는 그야말로 전국을 들끓게 했다. 특히 사전 공개 없이 전시 당일 로비에 도착한 그림 한 점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작품 제목은 '더러운 잠'.
국정농단과 세월호 침몰참사 당시 대통령의 행적, 사드로 대표되는 현안 등을 두루 비판하고 풍자한 이 작품은 의외의 논란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의 얼굴을 여성의 나신 위에 합성한 것이 성적 모욕이라는 주장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진보진영에서조차 여성의 나체를 이용해 정치인을 비판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거세게 일어난 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비판과 논란에 더불어민주당은 윤리심판을 거쳐 당직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와 관련해 표 의원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지겠다"라며 사과의사를 밝혔다. 여기까지가 이 사건과 관련해 알려진 이야기다.
▲ 황보람의 저니책 표지 ⓒ 출판공동체편않
작년 말 발간된 <황보람의 저니>는 위 전시를 둘러싼 일련의 이야기와 관련해 미처 전해지지 않았던 사연을 전한다. 황보람은 당시 표창원 의원실의 보좌진이자 '곧, BYE' 전시의 기획자였다. 그리고 표 의원의 입장 발표 직후 의원실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당사자이기도 했다.
통보를 받고 그날로 의원실을 나와야 했던 그녀는 스스로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심정이었다고 말한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노동계의 말에 비로소 공감을 하였다는 이야기도.
황보람은 <머니투데이>와 <the300>을 거친 언론인 출신 국회 보좌관이었다. 앞날이 창창했던 그녀의 경력이 이 전시를 기획하고 그 여파로 해고통보를 받은 뒤 완전히 무너진다.
천직일 수도 있었던 기자직도 던져 버리고 선택한 길이었는데 의도도, 예상도 못한 채 졸지에 벼랑 끝에 섰으니 삶에 자신이 없었다. 너는 페미니스트는커녕 여자도 아니라고 낙인찍힌 것 같았다. 받아들일 수 없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외통수.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외통수였다. -96p
그녀는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고 말한다. 전시회 기획 당시로 돌아가 다시 결정을 내릴 수 있대도 같은 결정을 하리라는 그녀에게 나는 깊은 공감을 표한다.
작품을 창작한 작가가 수차례 말하였듯, 작품의 근간이 된 '올랭피아'는 인간 여성이 나신으로 정면을 응시함으로써 시선의 주체를 여성에게 돌려놓은 미술사적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상스럽다는 당대의 비난에 맞서 에밀 졸라가 이 작품을 옹호한 건 알려진 이야기다. 진실한 인간을 묘사하고 주체적 여성의 시선을 담았다고 말이다.
그녀가 전시장에 들어온 작품을 가려 받기라도 해야 했을까. 권력을 가진 정치인을 풍자할 수 있다는 건 민주주의의 힘이다. 표현의 자유는 예술의 본질이다. '올랭피아'는 인간 여성에게 주체성을 안긴 미술사적 걸작이라고 나는 본다.
그 모두를 알면서도 비판 앞에 무릎 꿇어야 했을까. 그로 인해 일순간에 직장을 잃었으나 그녀는 다시 돌아가도 그럴 수는 없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지지를 표한다.
<황보람의 저니>는 기자였고, 보좌관이었으며,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황보람의 기록이다. 수시로 소속팀을 옮기는 운동선수를 가리키는 '저니맨'이라는 말처럼, 수많은 명함을 가졌다가 놓아버린(때로는 잃어버린) 작가 자신의 '저니' 이야기를 담았다.
한 층 한 층 쌓아 올려 써내려간 저니의 어느 순간에 저 유명했던 전시의 뒷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나는 그 부당함을 목도하면서도 그저 침묵했던 나를 반성한다. 책임 있는 이들의 비겁과 무지성적인 비판 가운데서 더 나은 역할을 할 수 있었고 해야만 했던 귀한 이가 무릎 꿇고 마음을 다치는 과정이 안쓰럽게 보인다.
언론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거듭 책으로 펴내고 있는 '출판공동체 편않'의 '우리의 자리' 시리즈 네 번째 권으로, 황보람을 고른 건 꽤나 흥미롭다. 앞서 소개한 다른 기자들과 달리 황보람은 쭉 언론인의 길을 걷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써내려간 기록 가운데는 한국 언론사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또 오늘날 언론의 병폐라 불러도 좋을 이야기가 생생한 사례와 함께 담겨 눈길을 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그렇다.
「"세월호 안 슬픈데 이상해?"... '공감 교육' 없는 사회의 비극」이라는, '공감 교육'의 필요성을 다룬 내용이었는데 당시 우리 회사에서 야심 차게 도입한 1면 '오늘의 기사'로 나가게 됐다. 다음 날 새벽, 신문을 본 <머니투데이> 홍선근 회장이 분노했다고 한다. 기사 말미에 인용된 정몽준 전 의원 아들의 트위터 내용이 화근이 됐다. 그 트위터를 사진으로 실은 편집기자는 감봉됐고, 기사는 즉시 삭제됐다. '오늘의 기사' 섹션도 폐지됐다. -43p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뒷얘기
언론사에서 어떻게 기사가 검열되고 삭제되는지를, 언론인이 어떻게 깎여나가고 길들여지는지를 위 내용과 같은 구절이 가감 없이 드러낸다.
사주가 있고 그가 편집에 개입하는 언론사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으로, 언론 바깥에 선 이가 좀처럼 닿을 수 없는 내용을 실명까지 밝혀가며 적시해 흥미롭다. 그간 언론인이 써내려간 많은 에세이가 알면서도 전하려 들지 않았던 내밀한 사정이 아프게 다가든다.
일련의 국지전 끝에 결과는 참패. <연합뉴스> 사태는 회사에 치명상을 입혔다. 홍 회장이 연합뉴스 사장을 찾아가 글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는 말이 돌았다. 뭔가 덜미를 잡혔을까. '정쟁'이 아닌 '정책'을 다루겠다며 야심차게 출범시킨 '한국 언론 최초 정책 전문 뉴스' <the300> (300이라는 숫자는 국회의원 정수에서 나왔다)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후배들의 독보적인 존경을 받았던 정치부장은 (일시적으로) 사표를 냈다. 어른이 그렇게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44p
한때 꽤나 흥미롭게 보았던 매체인 <the300>이 꺾여나가는 과정 또한 얼마쯤 솔직히 묘사한다. 창립멤버 중 한 명으로 이 매체의 프로젝트에 상당한 애정을 드러내던 그녀의 기록은 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언론사적 의의를 갖는다 생각한다.
수많은 언론과 언론인이 출입하는 국회이지만, <the300>이 진행한 프로젝트만큼 지속적으로 정책을 심도 깊게 다룬 매체가 없었단 점에서 이들의 좌초를 아프게 여겼던 나다.
애독자로서 그 상실이 여전히 실망스럽지만 뒤늦게나마 어느 어른의 눈물이, 어느 기자의 고통이 있었다는 사실이 위로 아닌 위로로 다가오기도 한다.
다만 <황보람의 저니>를 훌륭한 책이라고 추천하긴 민망한 구석이 있다. 저니맨이란 성격과 꼭 맞게 실린 글들이 응집력 있게 모여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 발췌한 것과 같이 곳곳에서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대목이 있었단 건 기록할 만하다.
개중에선 아직 아물었다 할 수 없는 상처와, 그리하여 충분히 깊이 열고 따져볼 수 없었던 기억들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어느 기자, 또 보좌관의 절실한 발버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때가 있다. 곁에 선 이에게 관심을 갖고 좀 더 애정 담긴 시선으로 오래 바라보는 일, 때로는 손을 내밀고 때로는 고함을 치기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관심 갖고 보았던 어느 매체의 추락 가운데, 또 부당함을 알면서도 충분히 알아보지 않았던 어느 사건 가운데서, 거듭 분투하고 고투했던 황보람이란 인간이 있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미래를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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