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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끝나도 큰일... BBC가 소개한 그 집이 위험하다

[넥스트브릿지] 22대 국회를 향한 정책 제안 - 기후위기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입법 필요

등록|2024.07.15 07:15 수정|2024.07.16 15:32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공공정책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지속적으로 정책 칼럼을 연재해 온 공공정책네트워크 넥스트브릿지는 22대 국회 출범에 맞춰 '22대 국회가 해야 할 과제와 정책제안'을 기획하고 연재를 진행중이다.

폭염과 폭우로 기후변화로 인한 어려움은 취약계층이 더욱 많이 겪을 수밖에 없다. 이번 칼럼에서는 과연 22대 국회와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제안을 전한다.

 

▲ 10일 새벽 충남지역에 강한 비가 쏟아진 가운데, 이날 오전 논산시 강경읍 일부 저지대가 빗물에 잠겨있다. ⓒ 연합뉴스


장마 기간이다. 기상청은 매년 장마 기간을 예측하여 발표하는데, 우리나라의 장마 기간은 통상 6월 하순부터 7월 하순까지로 약 1달여 기간을 둔다. 다른 기간에 비해 비가 오는 날이 많고, 내린 양도 많은 기간을 장마 기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단시간에 비가 많이 내리는 국지성 호우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여름철이 되면 장마 기간이 함께 오는데, 1달여 시간이라는 긴 기간에 걸친 장마와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국지성 호우는 성격이 다르다. 이러한 변화는 모두가 한 번쯤 들어본 기후변화에 따른 것이다. 세계적으로 공통으로 확인되는 기후의 변화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장마 기간에 주로 침수 피해가 발생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장마기간이 끝난 후 내린 국지성 호우로 인한 침수피해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반지하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침수 위험은 예상치 못한 호우앞에 더욱 치명적이다.

2년 전 서울시 관악구 일대의 반지하 거주자들에게 발생한 침수 사례는 대표적이다. 당시의 사태로 4명이 숨지고, 침수 피해를 입은 거주자들은 이불, 옷가지, 살림살이 등이 모두 젖어버렸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칸영화제에서 반지하를 한국만의 독특한 공간으로 소개하였으며, 영국의 BBC 뉴스는 한국의 독특한 거주 공간인 '반지하(banjiha)'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서울을 비롯한 도시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이 반지하라는 주거 공간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고, 이들은 매년 여름철의 장마와 국지성 호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여름철에 발생하는 폭우와 폭염 등 기후의 변화는 모든 이에게 영향을 주지만, 이로 인해 삶의 어려움에 직면한 자들은 대부분 취약계층이다. 기후위기에 따른 취약계층은 기후위기의 현상별로 나타나는 다양한 재난·재해적 성격의 양상에서 평등하게 보호받지 못한다. 이들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하다는 이유로 폭염과 폭우 등의 기후위기 현상에서 더 큰 피해를 받는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사회경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 2022년 8월 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빌라 반지하방이 침수되면서 일가족 3명이 사망했다. 참사가 발생한 빌라 반지하의 9일 오후 모습. 고립된 주민 구조작업을 위해 창틀이 뜯겨져 나가 있다. ⓒ 권우성


취약계층은 기후변화를 일으킨 장본인이 아닌데도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 현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받는다. 즉, 기후변화를 일으킨 집단과 그 변화에 따라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집단은 일치하지 않는다. 기후변화의 책임을 지닌 집단과 피해를 보는 집단이 다르다는 주장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기후정의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가 단위의 논의에서 환경 오염을 발생시킨 국가와 그 오염에 따른 피해를 받는 국가는 다르기에 환경 오염 발생 국가는 책임을 지고 그렇지 않은 국가에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논의가 과거부터 활발하다. 이러한 기후정의는 이미 2015년 파리 협정(Paris Agreement)에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폭염 사회>를 저술한 뉴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함을 지적한다. 폭염은 매우 심한 더위를 일컫는다. 폭염이 미치는 범위는 아파트와 빌라, 단독주택 등 거주 공간을 아우를뿐더러, 우리 동네와 저쪽 동네, 저 멀리 있는 동네까지 지역에 두루 영향을 준다. 그런데 이 책(폭염 사회)에서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폭염으로 영향받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지역의 취약성 수준, 정부의 대응 등 사회구조적 차이에 따라 폭염으로 피해를 받는 수준이 상이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 책 <폭염 사회> 겉표지 ⓒ 글항아리



네덜란드나 미국 등 해외에서는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보상 주체가 정부에게 있다는 판례가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와 인권침해 소송(박시원,2019)'이라는 논문에서 네덜란드의 우르헨다(Urgenda) 소송을 소개하는데, 해당 소송의 핵심은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피해가 유럽인권협약이 보호하고자 하는 생명권과 사생활권을 침해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정부는 공적·사적 행위자가 야기하는 피해, 환경오염 및 기후변화로부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생명권, 특히 존엄하게 살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라고 명시한 것이다. 이는 기후변화에 따른 자국민에 대한 국가 주의의무를 논한 주요 사례이다.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대응은 어떠한가? 탄소중립법에 의거하여 제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대책을 마련하여 강화된 적응대책을 구상하였다. 다만, 아직까지 법적으로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못하고,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도 없다. 그리고 기후위기 취약계층의 지원책이 기존의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은 우리나라가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대응하기 위한 법·제도가 초보적인 수준이라는 부분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본법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아래 탄소중립기본법)에는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서 국가 기후위기 적응대책에 관련 사항을 포함할 것을 의무규정으로 명시한다(동법 제38조). 그리고 동법 제2조에 "정의로운 전환"을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을 보호하여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방향"으로 정의한다. 기후위기 취약계층 지원에 관한 논의가 탄소중립기본법에 있으나, 이들이 누구이고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부재하다.

22대 국회에서 '기후재난으로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개정안(대표발의 -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기후약자에 대해 전기요금을 감면할 수 있는 기후약자 폭염대처법(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 대표발의 -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가 이어지는 등 기후재난으로 피해를 많이 보는 취약계층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기후위기 취약계층의 개념을 도입하여 법적인 보호장치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빠른 논의와 입법을 통해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대한 제대로 된 실태파악과 지원정책이 실시되기를 기대해 본다.

기후위기, 시민공동체가 생존을 보장한다
 

▲ 2023년 6월 5일 환경의 날을 맞아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빅웨이브, 기후변화청년단체GEYK,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며 국회에 계류 중인 기후변화 관련 법안의 통과를 촉구했다. ⓒ 유성호


다시 <폭염 사회>로 돌아가 보자. 이 책의 저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미국 시카고 웨스트사이드의 지역에서 발생한 폭염으로 인한 사망률을 비교한다. 인구통계학적으로 유사한 지역들을 비교하면서 폭염 사망률의 차이를 밝히는데, 저자는 이 차이의 원인을 '사회 하부 구조'의 차이로 지적한다.

사회 하부 구조라 함은 "인도와 상점, 공공시설, 친구와 이웃 사이를 연결해 주는 공동체 조직"을 총칭한다. 이웃 간 친밀하게 지내는 수준 혹은 만나는 빈도, 반상회와 교회 활동에 참여하는 수준이 달랐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폭염 기간에 누가 혼자 살고, 누가 나이가 들었으며, 누가 아픈지 알았고, 서로 격려한 점이 폭염에 따른 사망률의 차이를 결정짓는 요인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지역 사회의 문화나 환경은 극심한 어려움을 견딜 수 있으면서도 그 어려움을 포기하게끔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서로 돌보는 문화나 환경이 있는지 의문이다.

코로나19 시기를 벗어나 한국 사회는 서로 단절되고 고립된 문화가 공고화되었다. 내 친구가 어떻게 지내는지, 이웃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등을 알 수 없어도 우리는 큰 문제 없이 잘 지낼 수 있는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있다. 돈만 있으면 집에서 편히 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있고,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몇 시간 동안 친구나 애인을 대행해 주기도 한다.

스마트폰 어플을 손가락으로 켜서 클릭만하면 온라인에 들어가 다양한 정보를 쉽게 취득하고 타인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삶의 일부분도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를 만드는 근간인 진정한 인간관계는 어느덧 우리 삶에서 멀어지고 있다. 우리는 고립이 일반화된 사회에 접어들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보다 공동체의 부재로 인한 피해를 더 걱정해야 하는 시대에 사는 것 같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정부의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내가 사는 동네에서 어떻게 이웃을 받아들이고 돌보는지에 대한 사안도 중요하다. 정부의 책무와 함께 시민의 책무가 필요한 시대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공공기관 연구원입니다.

참고문헌
기후변화와 인권침해 소송-Urgenda 고등법원 판결을 중심으로 (박시원, 2019)
22대 국회 기후약자 보호 법안 발의 “기후위기 취약계층 개념 도입”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2024.06.27.)
폭염 사회_폭염은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에릭 클라이넨버그 저, 홍경탁 옮김,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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