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소주 이름에 찍힌 쉼표 하나,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전라남도 완도의 젊은 청춘들이여, 뭉치면 산다

등록|2024.07.12 10:42 수정|2024.07.12 10:45

▲ 다시마를 활용한 술 '다시, 마주' ⓒ 완도신문


금일 다시마를 이용한 소주 개발을 완도군이 제안했다. 보해소주는 다시마를 활용한 술을 만들어 상품으로 내놨다. 아이디어를 낸 완도군 홍보계 팀장은 그 성과로 우수공무원에 선정됐다. 모처럼 흐뭇한 소식이다. 음식점에서 소주를 주문해 놓고 술병을 들여다봤다. 다시마 소주 이름이 다시마 주가 아닌 '다시, 마주'였다.
 
그 속에 콤마가 들어있다. 참 신선하다. 한 박자의 쉼이 느껴진다. 업계 최고의 카피라이터가 고민해서 짜낸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편안한 쉼표의 느낌이거나 무한한 이중적 언어의 상상력을 불어 넣기 위해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 것이 분명하다. 단순한 언어의 유희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한 네이밍 작업과 현실 감각적 선택이라 하겠다.
 

▲ '완도 비파 사이다' 캔 디자인 ⓒ 완도신문


그것을 보고 '완도 비파 사이다'가 생각났다. 한주먹 움켜쥘 정도로 아담한 캔 음료의 표면에는 복고풍이 묻어난 디자인이 먼저 눈에 띈다. 요즘 유행한다는 레트로 감성이 박혀있다. 흡사 박카스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지만, 그와 비슷하지도 않다. 은연중에 느낌이 중첩될 뿐이다. 어디에서 본 듯하지만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 디자인을 가만 보고 있으니 학창 시절 소풍 갈 때 계란을 삶아 사이다 한 병 가방에 담아 갔던, 그리고 기차 안에서 찐 계란을 까서 한 입 베어 물고 칠성사이다를 나발 불던 그 시절의 감성을 자극한다. 디자인 하나가 입가에 미소를 머물게 한다.

광고 문구 하나에서, 상품 디자인 하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성을 읽어내는 것도, 그것을 기획해 낸 것도, 현대인의 삶의 방식을 표현하는 필수 아이콘이 됐다. 그런데, 지역을 홍보하는 관광 상품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

아쉬운 원교서맥깃발전 전시

반대로 감성 자극보다는 보는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는 경우도 있다. 이달의 우리 지역 워스트(WORST)다. 완도군이 사활을 건 사업인 해양치유센터를 보자. 지난주 지인이 자랑삼아 사진 몇 컷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그것은 해양치유센터 입구를 장식한 '원교서맥깃발전'이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몇 번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이것을 자랑이라고 보낸 것인지, 아무리 홍보를 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장(輓章)이 뭔 줄 아세요? 거기에 꽃상여 하나 놓고 살풀이 굿이라도 한판 벌일 모양이지요?" 좋은 소리가 나올 턱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완도군의 관광 홍보는 실패하기 딱 좋은 예다.

확인 결과, 남도 르네상스 공모사업에서 1천만 원을 지원받아 고작 해 놓은 것이 그것이다. 그런 시도를 한 것은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겠지만, 그보다는 부작용이 더 크다. 그것은 애써 작품을 창작한 작가에 대한 모독행위이며, 전시 감각이 뒤떨어지기에 그 정도의 기획력 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요즘은 적은 비용으로도 빛을 이용한 다양한 전시 방법이 활용되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전시기획자가 필요하다.
 

▲ 완도 해양치유센터 원교서맥깃발전 ⓒ 완도신문


원교 이광사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만 더 꺼내 보자. 지난해 지역의 모 의원이 SNS에 국제수묵비엔날레 본 무대에 참석했다며 올려놓은 소식통을 보고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다. 신지도에 원교 이광사가 있는데, 그 행사의 특별전이라도 유치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는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했다. 그가 전남의 관광정책을 담당하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국제수묵비엔날레가 추구하는 의미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가 국제수묵비엔날레 본 행사에 참석해 진도의 운림산방에서 소치 허련의 예술세계를 조금이라도 배워왔더라면, 해남 대흥사 일지암의 초의선사와 그의 벗 추사 김정희와 강진 다산초당의 정약용, 그의 아들 정학연과의 인연을, 그 주변 인물인 황상과 아암 혜장 선사의 인연을, 탐라로 유배 떠나기 전에 추사 김정희의 부탁으로 소치 허련을 길러낸 초의 선사의 사상을, 그로 인해 연계된 공재 윤두서의 사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었더라면, 신안 임자도의 우봉 조희룡과 조선의 예술세계를 이끈 남종문인화의 내력을, 그들의 사상으로 인해 18세기 조선의 변혁을 꿈꿨던 원동력을 제공한 원교 이광사의 사상과 그의 역할을 이해했더라면, 신지도의 원교 이광사가 지금 이토록 천대받아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엔 우리 역사와 인문학적 사고를 지닌 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교 이광사의 얼과 사상을 되찾는다'는 문구가 무색하게도 해양치유센터 입구에는 만장의 행렬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이것은 원교의 사상을, 18세기 조선의 사상 변화를 진심으로 공부한 사람이 지역 사회에 부족하다는 결론이다. 그들이 원교의 예술혼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표면만 보았기 때문이다. 예술의 경지를 이해하는 것은 관점의 차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금도와 신지도에 유배기념관을 짓겠다며 정치인들은 하나의 선거 공약처럼 남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교 이광사를 기념하는 문화공연 하나쯤 기획하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지어다가 어디에 쓸 것인가. 현실이 이러하니 원교 이광사의 서맥전이 열리는 신지도는 갈수록 사람들의 관심도가 떨어질 뿐이다.

우리 지역의 희망이 된 청년들
 

▲ 완도군관광협의회 모임 ⓒ 완도신문

 

▲ 완도 청년들이 만든 관광상품들 ⓒ 완도신문


이제는 지역 사회 청년들의 활동과 그들의 감성을 주목하시라. 지역 청년들의 활동이 다소 미약해 보이고 불안해 보일지라도 어찌됐건 그들은 유행을 좀 안다. 여러 차례 만나서 얘기를 나눴는데, 그들은 세계 여러 곳의 자유여행을 만끽하며 세상을 즐기는 방법을 이미 터득했다. 현실 감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다시마 소주의 이름에서 뿜어져 나오는 콤마 하나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그 감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층들이 그들이다.

레트로 감성의 디자인도 그들이 기획했다. 그들은 지역 사회에서 젊은 층의 문화를 꽃피우고 싶어 하는 갈망이 매우 높다. 그런데도 지역 사회는 그들의 자리가 없다. 그들은 날마다 모여서 지역 사회 관광 발전에 관한 아이디어를 내며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원도심의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골목축제를 기획하고, 잘 다듬어진 해변광장에 젊은 층의 문화를 형성해서 그곳에 활기를 불어 넣고 싶어 한다.

지난해 그들은 완도군관광협의회를 창단하고, 지금 100명 회원 모집을 진행 중이다. 다수의 청년이 모여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향토 상품을 공유하며, 지역 사회 알리기를 시도하는 그들이 우리 지역의 희망이다.

이제 지역 사회는 그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줄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세상은 언제나 미래세대의 것이다. 하여, 완도 청년들이 나서서 지역을 현실 감각에 맞춰 디자인하기를 바라며 그들의 활동을 응원하는 바다. 그들이 추구하는 캐치프레이즈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완도의 젊은 청춘들이여, 뭉치면 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