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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만 가면 사람들이 귀엽다면서 만져요, 무섭습니다"

[2024 공동리포트 - 국민휴가위원회]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여행

등록|2024.07.18 11:33 수정|2024.07.18 11:33
무더운 여름철을 맞아 친환경 여행, 도시 탐방, 반려동물과 함께 보내는 휴가, 오토바이 여행, 숨겨진 명소 등 다양한 형태의 여름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국민휴가위원회'가 나섭니다. 무더위와 고물가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휴가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편집자말]

▲ 저를 따라 와보세요. 알려지지 않은 멋진 길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 송주연


안녕하세요. 저는 1년 8개월 된 강아지 '라온'이라고 해요. 우리 엄마가 반려견과 함께하는 휴가에 대해 글을 쓴다고 해서 제가 나섰습니다. 제가 아직 어리지만 7개월 때 구조돼 지금의 엄마 아빠를 만난 후로 여행을 좀 많이 다녀봤거든요.

사실요, 저도 다 알아요. 엄마는 휴가 갈 때 짐을 싸면서 "아이고, 라온이 짐이 한 보따리네" 이런 말을 자주 하고요, 차 탈 때가 되면 "라온이가 잘 자야 할 텐데"하고 걱정도 해요. 여행 중엔 반려견 동반 식당을 찾기 힘들다고 투덜대기도 하고, 어렵게 찾은 식당에 가서는 저보고 얌전히 있으라고 야단을 치다가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 줄도 모르겠네" 이러면서 짜증을 부리기도 하세요.

제가 정확한 의미는 몰라도 기쁘고 편안한 건지, 힘들고 화나는 건지 그런 건 구분할 수 있거든요. 분명, 엄마 아빠는 나를 데리고 다니는 게 많이 힘든 눈치예요. 그런데도 굳이 왜 꼭 저를 데리고 다니시는 걸까요? 저와 함께 그 이유를 알아보실래요?

이동

우리 엄마는 여행 가는 날은 좀 이상해져요. 밥도 평소보다 조금 주고요, 차 타기 전엔 무조건 산책을 하래요. 차를 타면요, 저는 신이 나서 엄마한테 장난을 거는데 집에서는 잘 놀아주는 엄마가 차에서는 놀아주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좀 시무룩하게 있다 보면 잠이 솔솔 쏟아져요. 그럼 엄마는 아빠한테 이래요. "성공이다, 라온이 잔다."

근데 이게 다 이유가 있대요. 차 타기 전에 식사량을 줄이고, 산책을 하고, 차에서 푹 자는 게 제가 멀미 안 하고, 지루함도 덜면서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이라고 하더라구요. 아무튼 참 저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거 같긴 해요.

장거리 여행을 갈 때는 휴게소도 들르곤 하는데요, 이 역시 제 컨디션에 맞춰서 가요. 제가 푹 자면 깨지 않게 하려고 그냥 지나가구요, 제가 소변이 마려워 보이거나 답답해하면 바로 휴게소에 들르죠.
 

▲ 반려견 동반 가능 고속도로 휴게소 ⓒ 오마이뉴스


휴게소에서 식사할 때 엄마는 주로 야외나 차 안에서 먹을 수 있는 간단한 분식을 먹어요. 제가 식당 건물 안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인데요, 요즘엔 반려견 동반 식당이나 시설이 있는 휴게소들도 생겼다고 들었어요. 저는 아직 가본 적이 없는데 이런 곳이 많아진다면 엄마도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차를 타고 달리다 여행지에 가까워져서 잠이 깨면 저는 내리고 싶어서 좀이 쑤셔요. 그럴 땐 엄마가 운전하는 아빠한테 이렇게 말해요. "라온이 깼네. 우리 쉬엄쉬엄 가자" 그러면 아빠는 어딘가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산책을 하고 풍경을 보고 그러죠.

그런데 이게 바로 반려견과 함께하는 여행의 묘미 중 하나래요. 저 때문에 쉬엄쉬엄 가면서 걸었던 그 길이 알려지지 않은 명소였던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갑자기 내린 곳들이라 지명이 기억이 나진 않지만, 작년 여름휴가 때 강원도에서는 시원한 숲길을 만났고, 추석 때 거제도와 통영 여행 때는 정말 눈부시고 한적한 해변 산책로를 발견했어요. 지난 5월 충주 여행을 할 때도 강변을 따라 난 산길을 걸으면서 "멋지다"를 연발했었어요. 엄마 아빠가 이런 대화를 하더라구요.

"라온이 아니었음 우리 여기 내리지도 않았을 거고, 이런 곳 있는 줄도 몰랐을 거야. 고생스러워도 라온이 덕분에 이런 곳도 와보고. 아이구 우리 귀염둥이!"

이래서 힘들면서도 저를 꼭 데리고 다니시나 봐요.

머묾

여행 중 제가 가장 신나는 순간은 바로 숙소에 도착했을 때랍니다. 숙소에는 새로운 냄새가 가득하거든요. 게다가 제가 사는 곳은 아파트지만 여행지 숙소는 대부분 마당이 딸린 독채잖아요. 목줄 안 하고 마당 구석구석을 냄새 맡고 살펴보면 조금 더 똑똑해지는 느낌이에요.

엄마도 숙소에서는 편안해 보여요. 저를 자유롭게 놔둘 수 있어서인 거 같기도 하고, 제가 워낙 신나 하니까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대요. 이런 말도 종종 하세요. "은이랑 다닐 때보다 정말 동반 숙소들이 많아지고 시설도 깔끔해졌어." (은이 누나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 아빠랑 오래 살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 있는 강아지랍니다.)

저도 숙소에는 대부분 만족해요. 유명 반려견 동반 리조트, 반려견 동반 펜션, 에어비앤비를 통한 독채 숙소, 캠핑장까지 가봤는데요 다 괜찮았어요. 하지만 아쉬운 점도 꽤 있어요. 몇몇 대형 리조트들은 '펫 프렌들리'라고 홍보했지만 객실 수가 너무 한정(어떤 곳은 딱 방 2개였다고 해요)되어 있어서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고, 터무니없이 비싼 보증금을 요구하기도 했어요.

반려견 위주로 된 펜션이나 캠핑장은 편하긴 한데요, 매너타임(늦은 밤 반려견들이 차분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시간)이 없는 경우 한밤중에 짖는 친구들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했어요. 가끔은 공용공간에서 간식을 주는 분들도 있어서 친구들이 흘려 놓은 걸 못 참고 꿀꺽해서 엄마한테 혼나기도 해요. 반려견과 함께 머무는 곳이라면 저와 친구들을 자극하지 않는 매너를 지키는 게 꼭 필요한 거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주로 독채 숙소를 이용해요. 다른 강아지 친구들과 뛰어놀 수 없다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정말 편하게 지낼 수 있거든요. 엄마는 숙소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다니는 저를 보면 정말 너무 행복하대요. 모든 걱정이나 근심들이 사라지고, 지금-여기에서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나.

"라온이 봐봐. 진짜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해. 우리도 라온이처럼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맛에 라온이랑 여행을 하지."

도시의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로운 저의 모습이 여행을 더 즐겁게 하는 것 같아서 괜히 뿌듯하더라구요.
 

▲ 잔디 깔린 마당서 실컷 뛰어다니다가 잠시 휴식 중. 엄마는 이런 제 모습만 봐도 너무 행복하대요. ⓒ 송주연


시선

여행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엄마와 저의 시선이 참 다르다는 거예요. 작년 여름에 강원도에 있는 반려견 동반 리조트에 갔을 때였는데요 엄마가 자꾸 이러는 거예요.

"라온아 땅만 보지 말고 여기 경치 좀 봐봐. 진짜 넘 멋지지? 저 산에 구름이 걸려있네."

그런데 저는 그런 건 잘 안보이구요, 길옆에 핀 꽃, 풀, 풀벌레들 이런 게 더 신기하고 냄새도 좋아서 코를 땅에 박고 다녔어요. 그러면 엄마는 또 제가 이상한 걸 맛볼까 봐 제 입과 코를 주시하는데요. 그러다가 한번은 아빠랑 이런 대화를 하시더라구요.

"와, 이 꽃 좀 봐봐. 처음 보는데 정말 예쁘다. 라온이 덕분에 꽃도 보네. 라온이랑 다니면 우리가 못 보던 것도 보게 되는 것 같아."

제가 엄마의 시선을 넓혀준 걸까요? 이것도 저와 함께 여행하는 이유 같아요.

참, '시선' 하니까 생각났는데 여행할 때 좀 난감한 게 하나 있어요. 요즘에는 강아지랑 다니는 걸 안 좋게 보는 시선은 많지 않은 거 같아요. 특히 전 몸집이 작아서 "아이구, 귀여워라" 이런 소리를 더 많이 들어요. 그런데요 무조건 다가와서 만지시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내색은 안 하지만, 저도 낯선 사람 손길은 좀 무섭거든요.

엄마가 이런 제 마음을 잘 알고 있어서 "만져도 되나요?"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에겐 "만지는 건 싫어해요"라고 말해주는데 어떤 분들은 묻지도 않고 막 쓰다듬으시더라구요. 갑작스런 손길에 강아지들이 불편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아무 데나 쉬야 안 하고, 대변도 잘 치울 수 있게 누고, 갑자기 짖거나 뛰어나가지 않으려고 노력하잖아요.
  

▲ 가끔은 엄마의 요청에 따라 이렇게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는 땅바닥 냄새가 더 좋아요. ⓒ 송주연


"라온이랑 다니면 우리 아직도 아기 키우는 거 같지 않아? 짐도 많고 먹을 것도 따로 챙기고. 젊어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요즘 엄마 아빠는 이런 말을 해요. 제가 아기처럼 데리고 다니기 힘들지만, 그만큼 행복하다는 뜻 아닐까 싶어요. 챙길 것도 신경 쓸 것도 많고, 제약도 따르지만, 저로 인해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고, 지금-여기를 더 충실히 즐기고, 사람이 보지 못하는 다른 것들을 보게 되는 것. 그러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뭔가 젊어진 느낌 드는 것. 이게 엄마 아빠가 늘 저와 함께 여행하는 이유 아닐까요?

참, 이번 여름엔 엄마가 강아지한테 수영을 가르쳐주는 리조트를 예약했다고 해요. 엄만 수영하는 모습이 기대된다면서도, 수영 후 목욕은 어찌 시키나 걱정을 하더라구요. 그런데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닐까요? 힘든 가운데 더 큰 기쁨이 있잖아요. 강아지와 함께하는 여행은 이런 삶의 묘미를 진정으로 느끼게 해 줄 겁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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