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남편 잃고 어린자식 안고 모진 삶, 하늘이 알까"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사천 합동위령제 "소멸시효 배제법 등 국회 적극 나서야"

등록|2024.07.12 14:27 수정|2024.07.12 14:27

▲ 이날 합동위령제에 참석한 사천 유족들. ⓒ 뉴스사천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고생하며 살아온 우리의 삶도 삶이지만, 젊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어린 자식을 안고 모질게 살아온 우리 어머니의 인생은 하늘이나 알고, 땅이 알까..."

12일 경남 사천시 사남면 사천왕사. 제15회 한국전쟁 전후 사천지역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를 주최한 김유자 사천유족회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김 회장은 학살된 아버지를 비롯한 수많은 희생자들, 그 가족들의 삶을 돌아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74년 전 국가폭력의 비극이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제15회 한국전쟁 전후 사천지역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12일 오전 10시 사남면 소재 사천왕사(주지 능륜스님)에서 열렸다. 이날 위령제에는 유가족 40여 명을 비롯해 박동식 사천시장, 김복영 전국유족회장, 정연조 진주유족회장, 사천시의회 의장단(김규헌·전재석·임봉남·정서연·강명수), 임철규 도의원 등이 참석해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했다.
 

▲ 떨린 목소리로 추모사를 하고 있는 김유자 사천유족회장.  ⓒ 뉴스사천


이날 김유자 사천유족회장은 "우리를 이 땅에 남겨둔 채 눈 못감고 먼저 가신 영령들께 온 마음을 다해 추모하며 명복을 빌어드리는 오늘의 위령제가 되길 마음 모아 빈다"며 "오늘 행사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추도사에 나선 김복영 전국유족회장은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소멸시효란 있을 수 없다. 우리 유족들은 억울함을 널리 알리면서 정치적인 명예회복뿐만 아니라 법적 명예회복도 이뤄져야 한다"며 "진실화해위 활동 연장에 관한 법은 연장됐으나, 더 중요한 소멸시효 배제법, 배상과 보상에 관한 법 등은 21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가 폐기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 김복영 전국유족회장은 22대 국회를 향해 소멸시효 배제법과 배.보상 관련 법 제정을 촉구했다.  ⓒ 뉴스사천


김 회장은 "22대 국회에서 또 다시 풀어야 할 숙제다. 정부와 국회가 과거사정리법을 소홀히 한다면, 또 앞으로 공권력을 이용해 국민을 해치지 않는다고 누가 확언할 수 있겠냐"면서 "소멸시효법과 배보상법도 22대 국회에서 하루빨리 제정해야 한다. 여야가 따로 없고, 너와 나가 따로 없다. 사천지역에서 희생되신 영령님들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 추도사를 하고 있는 박동식 사천시장. ⓒ 뉴스사천


박동식 사천시장은 "진실화해위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지난 3월 25명이 추가적으로 진실규명 결정이 됐다"며 "이번 위령제를 통해 불행한 역사 속에서 고통을 겪으신 분들을 위로하고, 유가족 여러분들의 한을 덜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빈다"고 말했다.

김규헌 의장도 "이번 합동위령제가 역사적 진실을 밝혀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통해 희망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유족 여러분의 가슴 맺힌 상처를 조금이나마 어루 만 질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제15회 한국전쟁 전후 사천지역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7월 12일 오전 10시 사남면 소재 사천왕사(주지 능륜스님)에서 열렸다. ⓒ 뉴스사천

  

▲ 합동위령제에 참석한 유족들이 잔을 올리고 있다. ⓒ 뉴스사천

 

▲ 합동위령제에 참석한 유족들이 잔을 올리고 있다. ⓒ 뉴스사천

 

▲ 합동위령제에 참석한 박동식 시장이 잔을 올리고 있다. ⓒ 뉴스사천


1950년 사천지역 민간인 학살과 진실규명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에 따르면, 사천지역 보도연맹원과 예비검속자들은 1950년 7월경 경찰에 의해 삼천포경찰서와 각 지서에 소집돼 구금됐다.

각 지서에 소집된 보도연맹원들은 삼천포경찰서로 이송됐고, 이후 삼천포 노산공원과 고성군 하일면 질매섬에서 희생됐다. 당시 보도연맹사건으로 최소 수백 명 이상이 무고하게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기 진실화해위에서는 26명만 진실규명을 받았다.
 

▲ 합동위령제 추모 공연 모습. ⓒ 뉴스사천


2기 진실화해위가 사천·진주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 경남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등을 추가 조사한 결과, 올해 3월 사천지역 주민 25명이 추가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이에 7월 현재 국민보도연맹·예비검속 사건 51명, 적대세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1명 등 52명으로 늘었다. 미군에 의한 총격, 폭격 등으로 희생당한 경우(곤명면 조장리, 곤명면 마곡리 등)는 진실규명 결정을 받지 못했다.
 

▲ 삼천포 노산공원. 이곳에서도 1950년 7월 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 뉴스사천

 

▲ 용현면 석계리 야산. 이곳 산비탈에서 수십 명이 학살됐다. ⓒ 뉴스사천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한국전쟁 발발 직후 경남 사천지역 국민보도연맹원 등은 사천경찰서 및 관할지서 경찰에 의해 소집 또는 연행돼 예비검속된 후 사천경찰서 관할 지서 및 유치장 등에 구금됐다.

이들은 사천경찰서 소속 경찰에 의해 사천시 용현면 석계리 야산, 노산공원, 고성군 하일면 질매섬 등지에서 집단 살해됐다. 희생자들은 비무장 민간인들로 대부분 20~30대 남성이었고, 이들 중 상당수는 농업에 종사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기관인 국군과 경찰이 범죄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을 예비검속해 법적 근거와 적법절차도 없이 살해한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 추모사업 지원, 역사 기록 반영, 평화인권교육 실시 등을 권고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