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가서 교회만 본다? 이러면 전혀 달라집니다
[라이프치히 워킹투어 2]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흔적을 찾아서
나는 대체로 유지비가 적게 드는 인간이다. 특히 여행할 때는 더 그렇다. 두 달 동안 뉴욕을 여행했을 때 하루 숙박비를 제외한 하루 경비는 약 7~8달러 정도였다.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나는 주로 걷는다.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우도 드물다. 속도가 빨라지면 보이는 것도 적고, 잊히는 것도 많아지기에 여행이란 모름지기 튼튼한 두 발로 걷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행하기에 좋은 인간은 못 된다.
대체로 내 여행의 목적은 식도락에 있지 않다. 내가 음식에 관한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맛있는 건 우리 동네에 다 있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둘째, 배고플 때 먹으면 뭐든 맛있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배고픔을 불편함 정도로 여기다 보니 무엇을 먹는지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뉴욕에 있는 동안 핫도그 빵과 소시지 그리고 콜라로 하루 세 끼를 해결하면서 두 달 동안 지냈다.
하지만 나에게도 요란한 사치가 하나 있는데, 그건 커피다. 커피는 간식도 되고, 식사 대용도 되고, 내가 앉은 공간을 카페로 만들어 주는 마법 같은 녀석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곳은 라이프치히의 시립도서관이다. 어느 도시든 도서관은 있다. 걷고 또 걷다가 틈틈이 도서관을 찾는다. 화장실 인심 사나운 서양이지만, 도서관에서 동전을 요청하는 곳은 지금까지 없었다.
아침에 나올 때 텀블러에 가득 채워 놓은 커피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열람실에 앉으면 세상 어디든 나의 사무실이 되고, 카페가 되고, 새로 이사한 스위트 홈이 된다. 그래서 혼자 여행할 때에도 커피 내릴 준비는 항상 한다. 뜨거운 물은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음... 다음 글에서 커피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라이프치히와 바흐
(아버지) 슐렌드리안 : "조용히 하거라, 떠들지 말거라, 내 말 좀 들어라. 커피를 그만 마셔야 한다!"
(딸) 리센 : "아버지, 저는 커피 없이는 살 수 없어요! 커피는 제 인생의 낙이에요."
(아버지) 슐렌드리안 : "이 커피 중독아, 커피를 그만 마셔라. 그렇지 않으면 집안일을 못하게 할 것이다!"
(딸) 리센 : "아버지, 저는 커피 없이는 살 수 없어요. 하루에 세 번은 마셔야 해요!"
라이프치히를 예술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일등공신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도 커피를 정말 정말 사랑했다. 커피를 얼마나 사랑했냐면, 바흐가 성 토마스 교회(St. Thomas Church)의 칸토르(Kantor)로 부임해 지휘자 겸 작곡가로 교회를 이끄는 동안에 하느님 대신 커피를 찬양하는 칸타타를 작곡했을 정도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를 들어보면 커피 없이 못 산다는 딸과 커피를 끊게 만들려는 아버지의 세속적인 대화가 바흐의 선율 위에서 유쾌하게 흐른다. 딸 리센은 결국 결혼을 시켜주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협박에 커피를 '끊는 척' 하는데, 바흐의 가정사와 완전 동떨어진 노랫말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라이프치히는 명실공히 양자역학의 도시지만, 클래식 애호가에게는 바흐와 멘델스존의 도시다. 라이프치히 음악대학은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클래식 음악 교육기관이다.
여행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공부
라이프치히의 랜드마크인 성 토마스 교회는 1212년에 처음 완공되었지만 현재의 모습은 15세기에 재건축 된 후기 고딕 양식이다. 초기에는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이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초기 교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호치민에서 미술사 강의를 할 때 고대 로마를 마치고 중세가 시작되면 꼭 강조하는 내용이 있다. "여러분, 중세는 암흑기(Dark Age)가 아니에요." 중세 미술을 보면 성경의 내용을 전달하는 성서(Icon)가 대부분이다 보니 교인이 아닌 경우에는 굉장히 지겹다. 하지만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이어지는 중세 건축을 설명하면 문화센터 회원들의 표정이 달라지고, 노트를 펼쳐 필기를 시작한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중에 '12시간을 날아가서 일주일 동안 똑같이 생긴 교회 건물만 실컷 보고 왔다. 나중에는 질려서 교회 건물은 아예 안 들어갔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는 게 생기면 보이는 게 많아지고, 보이는 게 많아지면 즐길 거리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는 전형적인 후기 고딕 양식이다. 석조 기둥이 직선으로 높게 솟아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회벽 대신 스테인드 글라스가 반짝인다. 높으면 높을수록 창은 커질 테고, 창이 커지면 빛이 많이 들어오고, 빛은 곧 성령이니 기둥을 더 높이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기둥 위에는 석재로 된 무거운 천장도 있다. 기둥이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고딕 중기에는 건축 기법이 발달하지 못해서 기둥 옆에 다시 기둥을 세우는 부연부벽(flying buttress)이 있어야만 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정문이 아닌 뒤에서 바라보거나, 하늘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 본관을 둘러싼 엄청 화려한 날개들이 바로 부연부벽이다.
하지만 성 토마스 교회에는 이러한 부연부벽이 없다. 15세기 정도 되면 부연부벽 없어도 이정도 성당은 뚝딱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쌓이는 것이다. 후기 고딕 양식의 성당을 보면 나는 얼른 들어가 예배당의 천장이 궁금해진다. 부연부벽이 없는 대신 복잡하고 화려한 궁륭(Vault)이 천장의 무게를 분산시켜 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흐, 커피, 음악, 고딕, 궁륭 등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감동 받을 준비를 마쳤다. 세상에는 이렇게 재미있는 게 많고, 대단한 게 많고, 신기한 게 많다. 그리고 이런 즐거움은 누리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노력이 조금 들지만, 돈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혹시 우리 아이들이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또 그 말을 반복해야지.
"여러분, 공부는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누려야 할 공부의 즐거움을 어른들이 빼앗아 버려서 정말 미안합니다. 하지만 몰랐던 노래를 알게 되고, 몰랐던 게임을 알게 되었을 때 즐거운 것처럼 앎이라는 '공부'가 정말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안은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았고 단정했다. 95개조 반박문으로 종교 개혁을 시작한 마르틴 루터도 이곳에서 설교를 했는데, 청빈하고 금욕주의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을 받아서이지 않을까? 교회가 재건된 시기도 종교개혁이 시작된 16세기라고 하니 관계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그나저나 교회의 이름은 어떻게 짓는 걸까? 성인 토마스(St. Thomas)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아서 옆구리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던 제자인데 그를 기리는 교회라니. 카라바조의 <성 도마의 의심>에서 키아누 리브스를 닮은 그리스도가 약간 '아야...' 하는 표정이 자꾸 떠오른다. 내가 모르는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기셨겠지.
성당 안 바흐의 무덤
바흐의 무덤은 제단소 정중앙에 있었다. 주교좌에 성직자들이 앉으면 가운데에 바흐의 무덤이 있는 것이다. 바흐 평석의 위치가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독특했다. 성당의 제단소 정중앙에 예술가의 평석이 있는 곳이 있었나? 바흐가 교회를 위해 한 일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나아가 바흐가 라이프치히라는 도시에 어떤 의미를 갖는 사람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무덤이었다.
성당을 둘러보고 나가려던 그 순간, 거짓말처럼 오르간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바흐의 음악이 아닐까? 오르간 선율이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오르간이나 성가대의 선율은 천장에서 내려온다.
고대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은 나무 지붕이었고, 천장이 평평했기 때문에 소리의 울림이 적었다. 하지만 고딕 양식이 발전하면서 석조 천장이 보편화 되었고, 아치의 끝이 점점 뾰족해지는 첨두아치를 적용하면서 예배당 전체가 울림통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익숙한 경험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오래된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나 성가대 합창이 있다면 천장에서 시작해 공간 전체를 충만하게 채우는 소리의 울림을 꼭 느껴보는 걸 추천한다.
성당 앞 기념품 점도 바흐가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바흐의 이름을 딴 커피와 커피잔을 팔고 있었다. 창밖에는 시원한 여름 소나기가 내렸고, 바흐의 커피를 내려서 바흐의 커피잔에 한 잔 가득 채워 바흐의 커피 칸타타를 들었다. 아니, 그냥 그런 상상을 했다. 사치는 상상으로 충분하다. 잘가요, 나의 지름신.
▲ 프랑크푸르트 Iron Bridge나에게 여행이란 그저 타박타박 걷는 것이다. ⓒ 한성은
대체로 내 여행의 목적은 식도락에 있지 않다. 내가 음식에 관한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맛있는 건 우리 동네에 다 있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둘째, 배고플 때 먹으면 뭐든 맛있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배고픔을 불편함 정도로 여기다 보니 무엇을 먹는지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뉴욕에 있는 동안 핫도그 빵과 소시지 그리고 콜라로 하루 세 끼를 해결하면서 두 달 동안 지냈다.
▲ 뉴욕 여행의 주식1달러 소시지와 1달러 핫도그 빵으로 식비 대부분을 줄일 수 있었다. ⓒ 한성은
하지만 나에게도 요란한 사치가 하나 있는데, 그건 커피다. 커피는 간식도 되고, 식사 대용도 되고, 내가 앉은 공간을 카페로 만들어 주는 마법 같은 녀석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곳은 라이프치히의 시립도서관이다. 어느 도시든 도서관은 있다. 걷고 또 걷다가 틈틈이 도서관을 찾는다. 화장실 인심 사나운 서양이지만, 도서관에서 동전을 요청하는 곳은 지금까지 없었다.
아침에 나올 때 텀블러에 가득 채워 놓은 커피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열람실에 앉으면 세상 어디든 나의 사무실이 되고, 카페가 되고, 새로 이사한 스위트 홈이 된다. 그래서 혼자 여행할 때에도 커피 내릴 준비는 항상 한다. 뜨거운 물은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음... 다음 글에서 커피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 라이프치히 도서관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든지 도서관은 항상 옳다 ⓒ 한성은
▲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도서관에 자리를 잡으면 세상 어디든 나의 사무실이자, 카페이자, 집이 된다. ⓒ 한성은
(아버지) 슐렌드리안 : "조용히 하거라, 떠들지 말거라, 내 말 좀 들어라. 커피를 그만 마셔야 한다!"
(딸) 리센 : "아버지, 저는 커피 없이는 살 수 없어요! 커피는 제 인생의 낙이에요."
(아버지) 슐렌드리안 : "이 커피 중독아, 커피를 그만 마셔라. 그렇지 않으면 집안일을 못하게 할 것이다!"
(딸) 리센 : "아버지, 저는 커피 없이는 살 수 없어요. 하루에 세 번은 마셔야 해요!"
라이프치히를 예술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일등공신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도 커피를 정말 정말 사랑했다. 커피를 얼마나 사랑했냐면, 바흐가 성 토마스 교회(St. Thomas Church)의 칸토르(Kantor)로 부임해 지휘자 겸 작곡가로 교회를 이끄는 동안에 하느님 대신 커피를 찬양하는 칸타타를 작곡했을 정도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를 들어보면 커피 없이 못 산다는 딸과 커피를 끊게 만들려는 아버지의 세속적인 대화가 바흐의 선율 위에서 유쾌하게 흐른다. 딸 리센은 결국 결혼을 시켜주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협박에 커피를 '끊는 척' 하는데, 바흐의 가정사와 완전 동떨어진 노랫말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라이프치히는 명실공히 양자역학의 도시지만, 클래식 애호가에게는 바흐와 멘델스존의 도시다. 라이프치히 음악대학은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클래식 음악 교육기관이다.
여행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공부
▲ 성 토마스 교회후기 고딕 양식이 두드러지는 교회의 외관 ⓒ 한성은
라이프치히의 랜드마크인 성 토마스 교회는 1212년에 처음 완공되었지만 현재의 모습은 15세기에 재건축 된 후기 고딕 양식이다. 초기에는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이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초기 교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호치민에서 미술사 강의를 할 때 고대 로마를 마치고 중세가 시작되면 꼭 강조하는 내용이 있다. "여러분, 중세는 암흑기(Dark Age)가 아니에요." 중세 미술을 보면 성경의 내용을 전달하는 성서(Icon)가 대부분이다 보니 교인이 아닌 경우에는 굉장히 지겹다. 하지만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이어지는 중세 건축을 설명하면 문화센터 회원들의 표정이 달라지고, 노트를 펼쳐 필기를 시작한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중에 '12시간을 날아가서 일주일 동안 똑같이 생긴 교회 건물만 실컷 보고 왔다. 나중에는 질려서 교회 건물은 아예 안 들어갔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는 게 생기면 보이는 게 많아지고, 보이는 게 많아지면 즐길 거리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 성 토마스 교회의 천장중세 건축은 시기에 따라 천장의 생김새가 다르다. ⓒ 한성은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는 전형적인 후기 고딕 양식이다. 석조 기둥이 직선으로 높게 솟아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회벽 대신 스테인드 글라스가 반짝인다. 높으면 높을수록 창은 커질 테고, 창이 커지면 빛이 많이 들어오고, 빛은 곧 성령이니 기둥을 더 높이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기둥 위에는 석재로 된 무거운 천장도 있다. 기둥이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고딕 중기에는 건축 기법이 발달하지 못해서 기둥 옆에 다시 기둥을 세우는 부연부벽(flying buttress)이 있어야만 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정문이 아닌 뒤에서 바라보거나, 하늘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 본관을 둘러싼 엄청 화려한 날개들이 바로 부연부벽이다.
하지만 성 토마스 교회에는 이러한 부연부벽이 없다. 15세기 정도 되면 부연부벽 없어도 이정도 성당은 뚝딱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쌓이는 것이다. 후기 고딕 양식의 성당을 보면 나는 얼른 들어가 예배당의 천장이 궁금해진다. 부연부벽이 없는 대신 복잡하고 화려한 궁륭(Vault)이 천장의 무게를 분산시켜 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흐, 커피, 음악, 고딕, 궁륭 등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감동 받을 준비를 마쳤다. 세상에는 이렇게 재미있는 게 많고, 대단한 게 많고, 신기한 게 많다. 그리고 이런 즐거움은 누리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노력이 조금 들지만, 돈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혹시 우리 아이들이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또 그 말을 반복해야지.
"여러분, 공부는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누려야 할 공부의 즐거움을 어른들이 빼앗아 버려서 정말 미안합니다. 하지만 몰랐던 노래를 알게 되고, 몰랐던 게임을 알게 되었을 때 즐거운 것처럼 앎이라는 '공부'가 정말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안은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았고 단정했다. 95개조 반박문으로 종교 개혁을 시작한 마르틴 루터도 이곳에서 설교를 했는데, 청빈하고 금욕주의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을 받아서이지 않을까? 교회가 재건된 시기도 종교개혁이 시작된 16세기라고 하니 관계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그나저나 교회의 이름은 어떻게 짓는 걸까? 성인 토마스(St. Thomas)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아서 옆구리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던 제자인데 그를 기리는 교회라니. 카라바조의 <성 도마의 의심>에서 키아누 리브스를 닮은 그리스도가 약간 '아야...' 하는 표정이 자꾸 떠오른다. 내가 모르는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기셨겠지.
성당 안 바흐의 무덤
▲ 바흐의 무덤성당의 제단소 정중앙에 예술가의 평석이 있는 곳이 있었나? ⓒ 한성은
바흐의 무덤은 제단소 정중앙에 있었다. 주교좌에 성직자들이 앉으면 가운데에 바흐의 무덤이 있는 것이다. 바흐 평석의 위치가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독특했다. 성당의 제단소 정중앙에 예술가의 평석이 있는 곳이 있었나? 바흐가 교회를 위해 한 일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나아가 바흐가 라이프치히라는 도시에 어떤 의미를 갖는 사람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무덤이었다.
성당을 둘러보고 나가려던 그 순간, 거짓말처럼 오르간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바흐의 음악이 아닐까? 오르간 선율이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오르간이나 성가대의 선율은 천장에서 내려온다.
고대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은 나무 지붕이었고, 천장이 평평했기 때문에 소리의 울림이 적었다. 하지만 고딕 양식이 발전하면서 석조 천장이 보편화 되었고, 아치의 끝이 점점 뾰족해지는 첨두아치를 적용하면서 예배당 전체가 울림통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익숙한 경험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오래된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나 성가대 합창이 있다면 천장에서 시작해 공간 전체를 충만하게 채우는 소리의 울림을 꼭 느껴보는 걸 추천한다.
▲ 성 토마스 교회 기념품점바흐와 커피의 깊은 관계는 상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한성은
성당 앞 기념품 점도 바흐가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바흐의 이름을 딴 커피와 커피잔을 팔고 있었다. 창밖에는 시원한 여름 소나기가 내렸고, 바흐의 커피를 내려서 바흐의 커피잔에 한 잔 가득 채워 바흐의 커피 칸타타를 들었다. 아니, 그냥 그런 상상을 했다. 사치는 상상으로 충분하다. 잘가요, 나의 지름신.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타박타박 아홉걸음(http://ninesteps.tistory.com)'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