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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협박 시달린 평산 주민들,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 준비

경호구역 확대에도 시위 여전... 보수단체 집회로 병 드는 마을 "조용하게 살고 싶다"

등록|2024.07.16 10:03 수정|2024.07.16 10:03

▲ 양산시 평산마을 주민이 문재인 전 대통령 퇴임 초기 무분별한 집회를 일삼는 보수단체에게 욕설을 자제해달라며 항의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2년 이 넘도록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 경남도민일보 이현희


"평산마을은 외딴 섬입니다. 아무도 우리 고통에 더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퇴임 후 무분별한 보수단체 집회로 몸살을 앓아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주민들이 법원에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평산마을에서는 2022년 5월 문 전 대통령 퇴임 초기부터 보수단체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보수단체가 사저 앞 도로에서 확성기를 이용해 애국가와 국민교육헌장, 군가 등을 마을 방향으로 틀어대며 집회를 벌였다.

평온한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고령의 주민은 밤낮없이 틀어대는 소음에 시달리며 불면증과 스트레스는 물론 식욕 부진으로 말미암은 신체 이상까지 호소했다.

집회 도중 욕설을 일삼는 바람에 정신적인 충격도 컸다. 이 과정에서 일부 주민은 정신과 심리 상담을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에 시위자에게 욕설을 자제하고 과도한 확성기 사용을 줄여달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경호구역 확대에도 끝나지 않는 고통
 

▲ 대통령 경호처가 2022년 8월부터 경호구역을 확대했지만 보수단체 집회로 말미암은 주민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 경남도민일보 이현희


다행히 대통령경호처가 2022년 8월부터 사저 경호구역을 기존 사저 울타리에서 최장 300m까지 확대하면서 보수단체 집회는 마을 입구로 밀려났다.

경호처는 "평산마을에서 집회·시위 과정에 모의 권총, 문구용 칼 등 안전 위해 요소가 등장하는 등 전직 대통령 경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경호구역을 넓혔다. 더불어 구역 내 검문·검색, 출입통제, 위험물 탐지, 교통 통제, 안전조치 등 경호 활동을 강화했다. 당시 보수단체와 유튜버 등은 경호구역 확대가 집회 자유를 침해한다며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을 냈으나 기각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 퇴임 후 100여 일간 보수단체 집회에 시달려야 했던 평산마을은 예전처럼 새소리·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조용한 시골마을 모습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여전히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비록 규모는 줄었지만 여전히 보수단체들은 '집회 자유'를 앞세워 주민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 입구에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일부 시위자는 아예 인근 마을로 주소를 옮겨 매일같이 출퇴근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마을 입구에 천막과 펼침막, 성조기와 태극기 등을 설치하고 오가는 주민과 방문객에게 '빨갱이'라는 위협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기자회견을 핑계로 사실상 집회를 여는 등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일도 발생했다.

주민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확성기 소리다. 이들은 법에서 정한 주거지역 소음기준을 교묘하게 피해 가고 있다. 5분간 최고 소음을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을 악용해 2∼3분간 확성기를 틀었다가 잠시 중단하고 다시 트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저주와 혐오를 담아 울려 퍼지는 확성기 소리는 이미 일상이 돼 버린 지 오래다.

때론 주민과 시위자 충돌 상황도 생겼다. 올해 정월대보름 행사 때는 경호구역 안인 마을회관까지 시위자가 차량을 몰고 들어와 이를 제지하는 주민과 승강이를 벌이고 오히려 주민을 폭행 혐의로 고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더구나 문 전 대통령을 '간첩'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마을 사람 역시 '간첩'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욕설을 하거나 불법을 찾는다는 핑계로 마을 안을 돌아다니며 영상을 촬영하는 등 사생활을 침해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 부부를 혐오하는 현수막이나 욕설과 혐오를 담은 확성기 소리는 마을 평온을 깨트리고 평산마을을 찾는 전국 방문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파괴된 일상에 기댈 곳 없는 설움
 

▲ 양산시 평산마을 이장 등 주민 지도자들이 보수단체 집회로 말미암은 고통을 호소하며 법원에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준비하는 회의를 열고 있다. ⓒ 경남도민일보 이현희


평산마을 주민은 2년 넘도록 계속되는 보수단체 집회에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다. 최근 고령 주민 10여 명은 병원에서 정신과 진단을 받았다. 평생 마을을 지키며 살아온 주민은 처음 접하는 낯선 상황에 이렇다 할 대처 방안조차 찾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하루하루 멍들어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문 전 대통령 퇴임 초기 도를 넘은 보수단체 집회에 관심을 기울였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은 대처가 미온적이라며 양산경찰서를 항의 방문하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과 '대통령 경호법' 개정을 언급하는 등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듯했지만 경호구역 확대 이후 관심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집회를 담당하는 경찰은 집회 신고 때 시간·장소와 소음기준을 준수하도록 지도하고 욕설·모욕·명예훼손·협박 등 발언을 제한한다. 그러나 집시법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시위 방식 탓에 주민 불만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양산시 하북면행정복지센터도 시위자가 불법으로 설치한 시설물 등에 계고장을 보내 철거를 유도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바라는 주민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있다.

평산마을에서 출퇴근 집회를 펼쳐온 60대 시위자는 이미 두 차례나 특수협박 등 혐의로 구속됐으나 모두 보석으로 풀려났다. 최근에는 또다시 폭행 혐의로 검찰이 3년 6개월을 구형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집회를 벌이고 있다.

참다못한 주민 스스로 어렵사리 법률 조언을 받아 진단서와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호소하는 탄원서 등을 첨부해 법원에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려는 이유다.

박영설(74) 평산마을 이장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처음 당하는 일이라 경험이 없어 자꾸 사달이 벌어지는데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말 고통스러운 우리 마을 상황에 최대한 관심을 둬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 마을 주민들은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고 양산시민도 아니고 주워온 사람처럼 대우받고 있다는 불만이 크다. 행정과 경찰, 정치권 모두 우리 마을이 옛날처럼 조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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