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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협회 논란에 정치권 개입? 실효성과 부작용 따져보니

[주장] 여론 편승한 정치권의 스포츠 개입, 부작용 경계해야

등록|2024.07.17 16:00 수정|2024.07.17 16:00
논란과 의혹의 온상이 된 대한축구협회(KFA, 이하 '축협')를 향하여 마침내 정부와 정치권까지 개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감사를 예고한데 이어, 국회에서도 축협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축협은 지난 2월 카타르 아시안컵 성적부진과 근무태만으로 해임된 클린스만의 뒤를 이을 감독 선임 절차를 놓고 정해성 위원장과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전력강화위를 구성해 5개월간 감독 선임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A매치 일정동안 임시 감독 체제만 두 번이나 거치고 정 위원장이 중도에 사임하는 등 여러가지 촌극을 겪기도 했다.

전력강화위가 선임한 약 10명의 최종 후보군을 거쳐, 지난 7월 7일 최종 선택을 받은 것은 홍명보 울산 HD 감독이었다. 하지만 홍 감독의 선임이 발표된 후에 논란은 오히려 더욱 커졌다.

홍명보 감독이 외국인 감독 후보를 제치고 낙점되어야만 했던 당위성, 면접이 아닌 추대 형식으로 이루어진 '특혜'에 가까운 선임 과정을 둘러싼 절차적 문제, 현직 감독 빼가기를 통한 K리그 무시, 대표팀 감독으로 가지 않겠다던 홍명보 감독의 말바꾸기 등 온갖 문제점들이 도마에 오르며 가뜩이나 축협의 전횡에 분노해 있던 여론을 폭발시키는 결과만 가져왔다.

또한 전력강화위원회에서 위원으로 직접 활동한 박주호 위원이 홍명보 감독의 선임을 비판하며 그간 전력강화위에서 벌어진 내부 상황을 모두 폭로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이에 축협은 박주호의 폭로가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일뿐이며, 오히려 내부에서 있었던 일을 밝힌 것은 비밀유지서약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하지만 비판에 눈과 귀를 닫은 축협의 대응은 오히려 여론의 역풍만 키웠다. 박지성, 이영표, 이동국, 김영광, 조원희 등 국가대표 레전드와 축구 선배들이 연이어 박주호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며 축협 비판에 동참했다. 또한 K리그 서포터즈들은 경기장에서 박주호를 응원하는 걸개를 내걸기도 했다. 온라인에서는 축구협회와 홍명보 감독을 둘러싼 다양한 풍자와 패러디가 등장하기도 했다.

급기야 관망하던 정부와 정치권도 심상치 않은 여론을 의식한 듯 축구협회 사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6일 축협의 운영 전반을 들여다보고,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자세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체부 측은 그간 축협의 독립성을 존중하여 개입을 자제해왔지만, 현재의 상황은 한계에 도달했다는 진단이다. 축구협회에는 현재 300억 원 규모의 국민세금이 국가지원금으로 투입된다. 문체부는 이를 근거로 주무부처로서 공직유관기간의 행정적인 부분에 대한 사무감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현재 문체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에는 이미 약 일주일전 홍명보 감독 선임 절차와 관련한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체부는 기본적 절차에 따라 조사에 착수겠다는 입장이다.

국회의원들도 '국정감사' 가능성을 거론하며 축협 사태에 대하여 연이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은 절차적 하자가 명백한 만큼 반드시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번 감독 선임 사태에 대해 축협의 명확한 해명과 책임 있는 조치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축구협회에 홍명 감독 선임 절차에 관한 전력강화위 회의록 제출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축협 측은 회의 내용 중 연봉 등 협상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위원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 보장을 이유로 들어서 회의록 공개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에 전 의원은 "축협이 회의록을 제출하지 못하는 것은 절차가 합리적으로 운영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직격하면서 "공익 발언을 한 박주호 위원에 오히려 축협이 법적 대응을 언급한 것을 개탄한다"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축구협회가 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축협에 지원하는 국가 예산 전액을 모두 삭감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도 나온다. 물론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정부조사나 예산삭감 가능성 만으로도 사회적 공론화를 통하여 축구협회를 상당히 압박하는 효과는 높을 전망이다.

축구협회 측은 예상대로 이러한 정치권의 개입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축구협회가 내세우는 것은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강조하는 스포츠의 독립성이다. 각국 축구협회의 연합체인 FIFA는 산하 협회의 독립적인 운영을 중시하는 만큼 정관에도 이와 관련한 조항이 여럿 포함돼 있다. 대표적으로 14조 1항에는 "회원 협회는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제삼자의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15조에서는 '모든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조항을 통하여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기도 했다.

만일 산하 협회가 이를 위반할 경우, FIFA는 이를 위반한 협회에 대해 자격정지 등의 징계를 내릴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월드컵 등 국제대회 출전권 박탈로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애꿎은 피해는 고스란히 죄없는 축구대표팀 선수들과 팬들에게만 돌아가는 셈이 된다.

여론에 편승한 정치권의 섣부른 스포츠 개입이 오히려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현재 축구협회에 대한 정부 조사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큰 게 사실이다.

협회는 축구인들과 축구팬들의 거센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홍명보 감독의 선임을 강행하는가 하면, 정몽규 회장은 아무런 입장표명도 없이 침묵만을 지키며 요지부동이다.

축협은 "(정치권이 축구에 개입하는) 이런 나라가 전 세계에 없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정작 축구팬들은"(여론과 팬들을 무시하고 독단적인) 이런 협회도 전 세계에 없다"며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과 축구협회를 둘러싼 수많은 논란들은 이미 축구계를 넘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상황이다. 협회와 정몽규 회장-홍명보 감독이 이를 회피하려할수록 상황은 오히려 악화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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