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오조리 마을이 연안 습지를 지키는 법
[제주 해양보호구역 탐사기 ③] 오조리 편
당사자의 목소리로 말할 때
파란탐사대의 탐사 예정 구역 다섯 곳 중 첫 탐사지역은 우도권역이었다. 동쪽 권역 중 오조리 연안습지 보호구역은 제주 해안에서는 보기 어려운 습지와 갯벌을 가진 바다다. 갯벌 해안과 조간대가 연약한 해양생물의 피신처이자 먼 길을 이동하는 철새의 휴식처가 되는 것처럼, 오조리 연안습지 또한 많은 철새를 포함한 새들이 찾아온다.
특히 멸종위기종 1급인 저어새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제주의 대표적 철새 도래지다. 긴 이동으로 회복이 중요한 새들이 터를 잡는다는 것은 먹이를 구할 수 있고 쉴 수 있는 생존 조건으로서의 생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오조리 내수면은 조개류와 다양한 갯벌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는 새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지만 마을의 양식이자 자원이기도 했다. 서식지를 보호하는 것은 종 보호적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새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은 인간에게도 풍요로운 곳이다.
그럼에도 습지와 갯벌은 바다보다 손쉽게 땅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이점으로 개발의 대상이 되어왔다. 전국적으로 거대한 공항과 신도시의 다수는 과거 습지 생물과 수 많은 철새들의 터전 위에 세워졌다. 제주 또한 동부의 연안습지와 멀지 않은 곳에 제2공항과 관광개발 이슈 등이 계속 거론되고 있어 같은 과정을 밟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렇게 제주 동쪽이 생태 파괴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오조리 이장 고기봉 님을 만나 오조리가 마을의 생태를 지켜온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오조리에서 탐조대회가 열렸다. 오조리는 무려 280여 종의 새들이 서식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고 보호종도 스무 종이 넘는다. 대회의 취지는 참가자들이 멸종위기종 및 다양한 조류를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오조리 습지를 터전 삼아 살고 있는 새들을 모니터링하고 오조리 연안습지의 생태 환경 가치를 관찰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환경단체가 주축이 되거나 행정에서 주도한 행사가 아니라 오조리 주민들의 주도로 개최했다는 점이다.
오조리 마을 공동체의 자발적 움직임은 해양보호구역 지정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제주 바다는 오조리 연안습지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 전 7년 동안 해양보호구역 선정이 없었다. 마땅한 후보지를 찾는 조사 진행조차 없었다고 한다. 손을 놓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오조리 마을 주민들이 직접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해 지정된 상징적 사례다.
게다가 연안습지로는 최초의 보호구역이다. 해양보호구역에 대한 논의가 멈춰있던 시기는 제주 바다의 수온이 가파르게 오르고 해양생태계가 급격하게 변했던 때와 정확히 겹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위기의 종착점에서 마을의 주체가 해결점을 모색한다는 것은 많은 가능성을 가진다. 직접 발 딛고 살고 있는 곳을 지키겠다는 의지는 언제 폐기될지 모르는 불안하고 일시적인 행정적 정책보다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오조리 이장 고기봉님 또한 주민들이 서로 설득하고 의견을 모아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을 전체의 생태 감수성이 함께 성장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여기에서 나아가 주민들의 경험을 다른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느끼길 기대하며 오조리 바다의 아름다움을 직접 눈으로 살피고 모니터링으로까지 연결할 수 있는 탐조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빛을 머금고 마을을 품는 곳, 오조리 연안습지
제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마을이라고 하면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이름 자체가 '해가 뜨는 곳'인 성산 일출봉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성산리는 일출봉의 그림자가 마을에 드리워져 정작 햇살은 바다 너머 맞은편 오조리에 먼저 닿는다. 오조리 앞 바다 연안습지는 새벽의 여명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장소다.
오조리는 육지 안쪽까지 깊숙하게 들어오는 만 형태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그 해안 너머에는 수중 화산 분화로 생긴 성산리와 일출봉이 섬처럼 마주한다. 그리고 성산리와 연결된 길쭉한 육계사주 지형은 다리가 되어 오조리 남쪽을 연결한다. 그렇게 성산리와 성산일출봉 그리고 육계사주에 형성된 광치기해변은 오조리 바다를 포근하게 감싸는 형태다. 이런 지형은 오조리 바다 바깥쪽에서 제방의 기능을 하고, 물살이 강하게 도달하지 못하는 안쪽의 둥근 만과 만나 마치 잔잔한 호수의 형태를 만들었다.
특히나 강한 바람이 잦은 제주 동쪽에서는 평온한 바다는 생경한 풍경이며 조류가 약해진 이곳에 습지가 형성되었다. 잔잔한 물에는 여느 호수가 그렇듯 주변의 풍경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어둠이 깔리고 달이 떠오르면 오조리 바다에는 달이 비친다. 새벽 여명을 가장 빨리 맞은 곳엔 밤이 되면 두 개의 달이 뜬다. 실제로 마을 주변을 밝게 비추고 주민들은 이곳을 쌍월동산이라 부른다. '오조(吾照, 吾나 오, 照비출 조)'라는 지명은 '해가 뜨면 가장 먼저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곳'이란 뜻이다.
평온하던 호수도 물이 빠지면 갯벌과 함께 퇴적된 모래 그리고 울퉁불퉁한 암반이 나타난다. 이끼가 덮인 암반은 거대한 화산활동으로 성산일출봉이 솟아오를 때 흐른 용암과 화산재가 물과 뒤섞이며 만들어진 신양리층의 지형이다. 단단한 암석 덕에 서해의 갯벌처럼 깊이 빠지지 않고 습지를 걸을 수 있다. 이곳은 바지락 등의 조개류가 서식해 한때 마을의 자원이 되기도 했고, 간조시간에 오조리에 방문한 관광객들은 긴 장화 같은 장비가 없어도 갯벌에 나가 일출봉과 오조리 바다 풍경을 감상하고 해양생물을 탐색한다.
과거 바닷물을 가두어 두기 쉬운 연안습지의 지형적 특징을 활용해 소금막(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얻기도 했고, 1960년대에는 양어장을 만들어 제주 최초의 양식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양어장의 경우 마을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청년회와 부녀회를 중심으로 주민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졌는데 오조리의 주민자치의 힘을 또 엿볼 수 있는 역사라 할 수 있겠다.
연안습지 주변에는 용천수가 올라와 목욕탕과 생활용수로 쓰던 곳인 족지물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현재 식수로는 사용하기 어려운 수질이라고 하지만 물살이들이 노닐 만큼 여전히 맑았다. 오조리 이장 고기봉 님에 의하면 용천수가 솟는 못이 무려 14개가 있었고, 제주 전체로 따져도 용천수가 네 번째로 많은 지역이라고 한다. 습지 주변의 단단한 지반은 여타 마을보다 물이 빠져나가지 않고 담수까지 풍부하니 제주에서 보기 드물게 벼농사를 지은 곳이기도 했다.
오조리 연안습지와 그를 둘러싼 생태적 환경은 단순히 보호해야 할 대상을 넘어 주민들의 생존에 중요한 배경 자원이었다. 생태계는 분절해 생각할 수 없고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며 유기적이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린다. 새와 해양생물이 위기에 내몰리는 곳에서 인간의 삶 또한 풍요로울 순 없다.
그런데 '태풍에도 물결 한번 흔들리지 않는 오조포구'라는 표현이 있는 것이 무색하게 2000년대 이후 집중호우가 있을 때마다 저지대의 도로와 주택지가 침수되기 일쑤였다. 특히 최근 기후가 급격하게 바뀌며 제주에 나타난 현상 중 하나는 강풍과 물폭탄을 동반한 태풍이 자주 발생한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침수 피해 규모는 더 커졌다. 급기야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후 오조리는 '자연재해위엄개선지구'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심각한 침수가 일어난 곳이 대부분 습지와 가깝고 과거 논 등으로 활용하던 기수지역이었다. 다만 현재는 땅을 다지고 올려 육상화한 후 도로를 깔고 집을 지은 곳이다. 오조리 주민들은 상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연안습지가 중요한 장소라는 걸 감각하고 있었지만, 마을의 재난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습지 보전 중요성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을 위한 논의까지 이어졌다.
위기를 통해 무엇을 깨닫고 변해야 하는지 감염병과 기후재난을 겪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습지를 공유하는 고성리 또한 지대가 낮아 개발이 더 진행된다면 침수 피해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아가 해수면 상승과 지속적으로 침하되는 해안선 문제를 고려하면 제주 바다 전체의 미래이기에 오조리의 경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만든 구획이 생태계를 나누는 경계가 될 순 없다
고성리와 닿아있는 남쪽 습지에 기수역이 형성되어 갈대 등의 기수식물이 넓게 분포해 있는데, 이는 철새와 조간대생물이 편하게 은신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해양보호구역 지정 영역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이곳을 찾는 대표적 종인 저어새의 습성을 살펴보아도 성격이 아주 예민하고 경계심이 강해 갯벌에서 먹이활동을 한 후 인기척이 없는 곳으로 이동해 조용히 지내는데, 오조리 연안습지는 먹이활동과 은신처가 함께 형성된 최적의 장소이다.
그런데 현재 지정된 보호구역은 먹이활동을 하는 곳에만 한정되었다. 철새들이 자유롭게 대륙과 대양을 넘머 오조리 습지까지 도달하는 것처럼, 국경이나 마을의 행정적 구분은 철저히 인간중심의 경계다. 철새들의 은신처가 제외된 보호구역은 실질적으로 이곳에 터를 잡은 새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아쉬운 보호구역 지정 면적의 첫 번째 이유는 기수지역까지 지번이 부여된 사유지이기 때문에 소유주와의 논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 이는 개발과 보호 사이에서 자주 겪는 난제다. 전체 국토를 보아도 사유지 비율이 높은 편이고, 임야나 기수지역처럼 생태적 측면에서 규제해야 하는 곳까지 사유지 비율이 높은 것은 앞으로도 추가 보호구역 지정 과정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자체의 더 적극적인 사유지 매입이 절실한 이유이다.
게다가 성산리에는 성산일출봉이 고성리에는 광치기해변과 섭지코지가 있어, 많은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이 닿는 곳이다 보니 거대 자본이 관광개발에 집중하는 곳이다. 연안습지 남쪽 끝엔 이미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비롯 대형음식점이 포진해 있었다. 오조리 마을은 여러 경험과 실패 그리고 논의를 통해 연안습지를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주변 마을과의 긴밀한 협력과 논의가 확장되지 않는 한 오조리 해양보호구역의 면적 확대는 요원해 보인다. 이는 새로운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위한 기반 조사를 진행할 때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게다가 현재 해양보호구역의 보호 수준은 어떤 제한 조치도 없는 미미한 수준이다. 양식 채취 등 자원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기준이 불분명하다. 해양보호구역 확대를 위한 모색과 함께 현 제도의 한계점을 점검하면서 보호구역 지정이 실질적 보호장치가 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을 논의하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바다는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는다
바다는 지구가 흡수한 열의 무려 90퍼센트 이상을 흡수한다고 한다. 그리고 물의 흐름과 움직임으로 지구의 기온을 조절한다. 이런 바다의 강력한 힘이 온실가스의 열을 흡수하고 대기와 땅의 열을 식혀주며 기후재난을 그나마 유예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의 기능이 임계점에 다다랐다. 게다가 바다는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보호와 회복의 제도나 방법에 대해서도 더 미진한 실정이다.
바다의 보호를 위해 가장 강력한 규제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해양보호구역은 보호를 위해 제한할 수 있는 구속력이 충분치 않다. 또한 생태계 보호를 위해 실질적 대책이라고 제시되고 있는 '생태계서비스지불제'는 토지 소유자 중심의 보상과 일자리 창출 관점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환경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개발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는 보다 거시적인 제도가 시급하다. 바다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오조리 마을 공동체의 협업과 자치 활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 제도에 한계점이 있더라도 최대한 여러 제도를 활용하여 마을의 생태를 지키는 것에 적용하는 현장을 오조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오조리 마을은 해양보호구역 선정 요구 이후에도 '생태계서비스지불제'를 이용해 습지 정화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었고, 오조리 이장 고기봉 님은 오조리 침수 사례를 통해 매립 개발이 위험하다는 것을 기사 등을 통해 알리는 것과 동시에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지원 제도를 기반으로 피해 구역을 복구하는 것에 힘썼다. 마을의 생태를 보호하는 틀 안에서 행정에 요구하기도 하고, 행정적 제도에 기대기도 하면서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안위를 고민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으로 주민들은 마을의 생태 가치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졌고 환경 감수성도 성장했다.
주민들이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위해 처음 요청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사유지 비율이 높아 민원 문제 등을 걱정하던 해수부가 이제 역으로 '성산읍 갯벌식생 복원사업' 을 오조리에 제안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사업은 순비기와 잘피 등을 이미 식재하기 시작했고, 오조리를 포함해 성산의 다섯 마을에 앞으로 5년간 갯벌을 자연 갯벌로 복원하고 갈대, 칠면초 등의 대규모 염생식물 군락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오조리 공동체는 계속 움직이며 제도 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고, 여러 시도는 한 마을의 생태 회복을 넘어 행정을 움직였다. 또한 외부 환경단체와 시민들에게도 닿아 함께 제주 연안 습지보호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이 장 안에서 펼쳐질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까. 올겨울 다시 한번 탐조대회가 열린다면 우리의 손으로 연안습지의 생태를 직접 기록하고 제주 바다를 지키는 감시자가 되어보길 제안한다.
[참고 문헌]
OECD Data Explorer, https://data-explorer.oecd.org/, Protected areas : Marine, Last updated: 04/03/2023 16:02:40
MPA Guide User Manual, https://marine-conservation.org/mpatlas/mpa-guide-assessments/, Marine Conservation Institute
제주도 해양보호구역 확대를 위한 후보지 조사 보고서, 2022
파란탐사대의 탐사 예정 구역 다섯 곳 중 첫 탐사지역은 우도권역이었다. 동쪽 권역 중 오조리 연안습지 보호구역은 제주 해안에서는 보기 어려운 습지와 갯벌을 가진 바다다. 갯벌 해안과 조간대가 연약한 해양생물의 피신처이자 먼 길을 이동하는 철새의 휴식처가 되는 것처럼, 오조리 연안습지 또한 많은 철새를 포함한 새들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습지와 갯벌은 바다보다 손쉽게 땅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이점으로 개발의 대상이 되어왔다. 전국적으로 거대한 공항과 신도시의 다수는 과거 습지 생물과 수 많은 철새들의 터전 위에 세워졌다. 제주 또한 동부의 연안습지와 멀지 않은 곳에 제2공항과 관광개발 이슈 등이 계속 거론되고 있어 같은 과정을 밟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렇게 제주 동쪽이 생태 파괴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오조리 이장 고기봉 님을 만나 오조리가 마을의 생태를 지켜온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오조리에서 탐조대회가 열렸다. 오조리는 무려 280여 종의 새들이 서식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고 보호종도 스무 종이 넘는다. 대회의 취지는 참가자들이 멸종위기종 및 다양한 조류를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오조리 습지를 터전 삼아 살고 있는 새들을 모니터링하고 오조리 연안습지의 생태 환경 가치를 관찰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환경단체가 주축이 되거나 행정에서 주도한 행사가 아니라 오조리 주민들의 주도로 개최했다는 점이다.
▲ 오조리 연안습지 해안에 쉬고 있던 쇠가마우지탐사 기간 중에도 오조리 연안습지에는 많은 새들을 만날 수 있었다. ⓒ 파란탐사대 돌핀맨(이정준)
오조리 마을 공동체의 자발적 움직임은 해양보호구역 지정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제주 바다는 오조리 연안습지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 전 7년 동안 해양보호구역 선정이 없었다. 마땅한 후보지를 찾는 조사 진행조차 없었다고 한다. 손을 놓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오조리 마을 주민들이 직접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해 지정된 상징적 사례다.
게다가 연안습지로는 최초의 보호구역이다. 해양보호구역에 대한 논의가 멈춰있던 시기는 제주 바다의 수온이 가파르게 오르고 해양생태계가 급격하게 변했던 때와 정확히 겹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위기의 종착점에서 마을의 주체가 해결점을 모색한다는 것은 많은 가능성을 가진다. 직접 발 딛고 살고 있는 곳을 지키겠다는 의지는 언제 폐기될지 모르는 불안하고 일시적인 행정적 정책보다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오조리 이장 고기봉님 또한 주민들이 서로 설득하고 의견을 모아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을 전체의 생태 감수성이 함께 성장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여기에서 나아가 주민들의 경험을 다른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느끼길 기대하며 오조리 바다의 아름다움을 직접 눈으로 살피고 모니터링으로까지 연결할 수 있는 탐조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빛을 머금고 마을을 품는 곳, 오조리 연안습지
"성산 일출봉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 오조리가 있기 때문이에요. 오조리의 내수면이 일출봉을 받쳐주기 때문에 아름다움이 배가됩니다. 성산일출봉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풍경을 자랑하는데 오조리 내수면에서 볼 때와, 식산봉에서 볼 때가 다르고 물이 차 있을 때 보는 느낌과 조개 바당에 물이 빠졌을 때 보는 느낌이 달라요. 성산 일출봉이 아름다운 건 오조리에 있습니다." (오조리 이장 고기봉님 인터뷰 중)
제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마을이라고 하면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이름 자체가 '해가 뜨는 곳'인 성산 일출봉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성산리는 일출봉의 그림자가 마을에 드리워져 정작 햇살은 바다 너머 맞은편 오조리에 먼저 닿는다. 오조리 앞 바다 연안습지는 새벽의 여명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장소다.
오조리는 육지 안쪽까지 깊숙하게 들어오는 만 형태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그 해안 너머에는 수중 화산 분화로 생긴 성산리와 일출봉이 섬처럼 마주한다. 그리고 성산리와 연결된 길쭉한 육계사주 지형은 다리가 되어 오조리 남쪽을 연결한다. 그렇게 성산리와 성산일출봉 그리고 육계사주에 형성된 광치기해변은 오조리 바다를 포근하게 감싸는 형태다. 이런 지형은 오조리 바다 바깥쪽에서 제방의 기능을 하고, 물살이 강하게 도달하지 못하는 안쪽의 둥근 만과 만나 마치 잔잔한 호수의 형태를 만들었다.
특히나 강한 바람이 잦은 제주 동쪽에서는 평온한 바다는 생경한 풍경이며 조류가 약해진 이곳에 습지가 형성되었다. 잔잔한 물에는 여느 호수가 그렇듯 주변의 풍경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어둠이 깔리고 달이 떠오르면 오조리 바다에는 달이 비친다. 새벽 여명을 가장 빨리 맞은 곳엔 밤이 되면 두 개의 달이 뜬다. 실제로 마을 주변을 밝게 비추고 주민들은 이곳을 쌍월동산이라 부른다. '오조(吾照, 吾나 오, 照비출 조)'라는 지명은 '해가 뜨면 가장 먼저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곳'이란 뜻이다.
▲ 오조리 연안습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과 일대 풍경식산봉부터 오조포구까지 이어지는 오조리 연안습지, 습지 너머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 파란탐사대 박성준
평온하던 호수도 물이 빠지면 갯벌과 함께 퇴적된 모래 그리고 울퉁불퉁한 암반이 나타난다. 이끼가 덮인 암반은 거대한 화산활동으로 성산일출봉이 솟아오를 때 흐른 용암과 화산재가 물과 뒤섞이며 만들어진 신양리층의 지형이다. 단단한 암석 덕에 서해의 갯벌처럼 깊이 빠지지 않고 습지를 걸을 수 있다. 이곳은 바지락 등의 조개류가 서식해 한때 마을의 자원이 되기도 했고, 간조시간에 오조리에 방문한 관광객들은 긴 장화 같은 장비가 없어도 갯벌에 나가 일출봉과 오조리 바다 풍경을 감상하고 해양생물을 탐색한다.
과거 바닷물을 가두어 두기 쉬운 연안습지의 지형적 특징을 활용해 소금막(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얻기도 했고, 1960년대에는 양어장을 만들어 제주 최초의 양식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양어장의 경우 마을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청년회와 부녀회를 중심으로 주민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졌는데 오조리의 주민자치의 힘을 또 엿볼 수 있는 역사라 할 수 있겠다.
▲ 오조리 마을조선 정조 때 오조리 지역의 교육가인 오봉조 선생이 지역의 인재를 등용해 줄 것을 진정한 발문이 마을의 담에 적혀있다. ⓒ 파란탐사대 김화용
연안습지 주변에는 용천수가 올라와 목욕탕과 생활용수로 쓰던 곳인 족지물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현재 식수로는 사용하기 어려운 수질이라고 하지만 물살이들이 노닐 만큼 여전히 맑았다. 오조리 이장 고기봉 님에 의하면 용천수가 솟는 못이 무려 14개가 있었고, 제주 전체로 따져도 용천수가 네 번째로 많은 지역이라고 한다. 습지 주변의 단단한 지반은 여타 마을보다 물이 빠져나가지 않고 담수까지 풍부하니 제주에서 보기 드물게 벼농사를 지은 곳이기도 했다.
오조리 연안습지와 그를 둘러싼 생태적 환경은 단순히 보호해야 할 대상을 넘어 주민들의 생존에 중요한 배경 자원이었다. 생태계는 분절해 생각할 수 없고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며 유기적이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린다. 새와 해양생물이 위기에 내몰리는 곳에서 인간의 삶 또한 풍요로울 순 없다.
그런데 '태풍에도 물결 한번 흔들리지 않는 오조포구'라는 표현이 있는 것이 무색하게 2000년대 이후 집중호우가 있을 때마다 저지대의 도로와 주택지가 침수되기 일쑤였다. 특히 최근 기후가 급격하게 바뀌며 제주에 나타난 현상 중 하나는 강풍과 물폭탄을 동반한 태풍이 자주 발생한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침수 피해 규모는 더 커졌다. 급기야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후 오조리는 '자연재해위엄개선지구'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심각한 침수가 일어난 곳이 대부분 습지와 가깝고 과거 논 등으로 활용하던 기수지역이었다. 다만 현재는 땅을 다지고 올려 육상화한 후 도로를 깔고 집을 지은 곳이다. 오조리 주민들은 상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연안습지가 중요한 장소라는 걸 감각하고 있었지만, 마을의 재난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습지 보전 중요성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을 위한 논의까지 이어졌다.
위기를 통해 무엇을 깨닫고 변해야 하는지 감염병과 기후재난을 겪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습지를 공유하는 고성리 또한 지대가 낮아 개발이 더 진행된다면 침수 피해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아가 해수면 상승과 지속적으로 침하되는 해안선 문제를 고려하면 제주 바다 전체의 미래이기에 오조리의 경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오조리 연안습지오조리 연안습지에 물이 빠지면 화산활동의 흔적과 갯벌이 함께 나타난다. ⓒ 파란탐사대 김화용
▲ 오조리 연안습지오조리 연안습지에 물이 빠지면 다양한 조간대 생물과 염생식물을 볼 수 있다. ⓒ 파란탐사대 김화용
인간이 만든 구획이 생태계를 나누는 경계가 될 순 없다
고성리와 닿아있는 남쪽 습지에 기수역이 형성되어 갈대 등의 기수식물이 넓게 분포해 있는데, 이는 철새와 조간대생물이 편하게 은신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해양보호구역 지정 영역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이곳을 찾는 대표적 종인 저어새의 습성을 살펴보아도 성격이 아주 예민하고 경계심이 강해 갯벌에서 먹이활동을 한 후 인기척이 없는 곳으로 이동해 조용히 지내는데, 오조리 연안습지는 먹이활동과 은신처가 함께 형성된 최적의 장소이다.
그런데 현재 지정된 보호구역은 먹이활동을 하는 곳에만 한정되었다. 철새들이 자유롭게 대륙과 대양을 넘머 오조리 습지까지 도달하는 것처럼, 국경이나 마을의 행정적 구분은 철저히 인간중심의 경계다. 철새들의 은신처가 제외된 보호구역은 실질적으로 이곳에 터를 잡은 새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아쉬운 보호구역 지정 면적의 첫 번째 이유는 기수지역까지 지번이 부여된 사유지이기 때문에 소유주와의 논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 이는 개발과 보호 사이에서 자주 겪는 난제다. 전체 국토를 보아도 사유지 비율이 높은 편이고, 임야나 기수지역처럼 생태적 측면에서 규제해야 하는 곳까지 사유지 비율이 높은 것은 앞으로도 추가 보호구역 지정 과정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자체의 더 적극적인 사유지 매입이 절실한 이유이다.
게다가 성산리에는 성산일출봉이 고성리에는 광치기해변과 섭지코지가 있어, 많은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이 닿는 곳이다 보니 거대 자본이 관광개발에 집중하는 곳이다. 연안습지 남쪽 끝엔 이미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비롯 대형음식점이 포진해 있었다. 오조리 마을은 여러 경험과 실패 그리고 논의를 통해 연안습지를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주변 마을과의 긴밀한 협력과 논의가 확장되지 않는 한 오조리 해양보호구역의 면적 확대는 요원해 보인다. 이는 새로운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위한 기반 조사를 진행할 때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 오조리 주변지도오조리 연안습지 주변 지역의 옛이름이 표기된 지도가 오조리사무소에 걸려있다. ⓒ 파란탐사대 김화용
게다가 현재 해양보호구역의 보호 수준은 어떤 제한 조치도 없는 미미한 수준이다. 양식 채취 등 자원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기준이 불분명하다. 해양보호구역 확대를 위한 모색과 함께 현 제도의 한계점을 점검하면서 보호구역 지정이 실질적 보호장치가 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을 논의하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 오조리 연안습지올레길 2코스를 따라 오조리에서 고성리 방향으로 걸으면 더 넓은 연안습지를 만날 수 있다. ⓒ 파란탐사대 김화용
바다는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는다
바다는 지구가 흡수한 열의 무려 90퍼센트 이상을 흡수한다고 한다. 그리고 물의 흐름과 움직임으로 지구의 기온을 조절한다. 이런 바다의 강력한 힘이 온실가스의 열을 흡수하고 대기와 땅의 열을 식혀주며 기후재난을 그나마 유예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의 기능이 임계점에 다다랐다. 게다가 바다는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보호와 회복의 제도나 방법에 대해서도 더 미진한 실정이다.
바다의 보호를 위해 가장 강력한 규제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해양보호구역은 보호를 위해 제한할 수 있는 구속력이 충분치 않다. 또한 생태계 보호를 위해 실질적 대책이라고 제시되고 있는 '생태계서비스지불제'는 토지 소유자 중심의 보상과 일자리 창출 관점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환경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개발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는 보다 거시적인 제도가 시급하다. 바다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오조리 마을 공동체의 협업과 자치 활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 제도에 한계점이 있더라도 최대한 여러 제도를 활용하여 마을의 생태를 지키는 것에 적용하는 현장을 오조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오조리 마을은 해양보호구역 선정 요구 이후에도 '생태계서비스지불제'를 이용해 습지 정화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었고, 오조리 이장 고기봉 님은 오조리 침수 사례를 통해 매립 개발이 위험하다는 것을 기사 등을 통해 알리는 것과 동시에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지원 제도를 기반으로 피해 구역을 복구하는 것에 힘썼다. 마을의 생태를 보호하는 틀 안에서 행정에 요구하기도 하고, 행정적 제도에 기대기도 하면서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안위를 고민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으로 주민들은 마을의 생태 가치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졌고 환경 감수성도 성장했다.
주민들이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위해 처음 요청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사유지 비율이 높아 민원 문제 등을 걱정하던 해수부가 이제 역으로 '성산읍 갯벌식생 복원사업' 을 오조리에 제안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사업은 순비기와 잘피 등을 이미 식재하기 시작했고, 오조리를 포함해 성산의 다섯 마을에 앞으로 5년간 갯벌을 자연 갯벌로 복원하고 갈대, 칠면초 등의 대규모 염생식물 군락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오조리 공동체는 계속 움직이며 제도 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고, 여러 시도는 한 마을의 생태 회복을 넘어 행정을 움직였다. 또한 외부 환경단체와 시민들에게도 닿아 함께 제주 연안 습지보호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이 장 안에서 펼쳐질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까. 올겨울 다시 한번 탐조대회가 열린다면 우리의 손으로 연안습지의 생태를 직접 기록하고 제주 바다를 지키는 감시자가 되어보길 제안한다.
[참고 문헌]
OECD Data Explorer, https://data-explorer.oecd.org/, Protected areas : Marine, Last updated: 04/03/2023 16:02:40
MPA Guide User Manual, https://marine-conservation.org/mpatlas/mpa-guide-assessments/, Marine Conservation Institute
제주도 해양보호구역 확대를 위한 후보지 조사 보고서, 2022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제주투데이에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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