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100분 내내 신체변형에 사지 절단까지, 80세 감독의 신작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미래의 범죄들>

등록|2024.07.19 16:22 수정|2024.07.19 16:22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돌아왔다."  

<미래의 범죄들>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다. 20세기 말, 비디오 가게 구석에 놓여 있던 보기에도 음침한 테이프 사이에서 어떤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그의 영화인 줄도 모르고 1950년대 할리우드 고전 크리쳐 장르의 걸작 <더 플라이(파리인간)>의 리메이크를 보았다.

인간이 텔레비전 속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비디오드롬>), 초능력자들의 전쟁에서 뇌가 알아서 퍽퍽 터져나가고 (<스캐너스>), 미래를 자기만 볼 수 있기에 예정된 파국을 막지 못해 속 터지는 초능력자의 애환을 엿보거나 (<초인지대>), 샴쌍둥이 형제의 기묘한 일상과 로맨스를 (<데드링거>) 숨죽여가며 봤다. 나중에야 그 기괴한 일군의 영화를 만든 이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라는 감독이라는 걸 알았다.

두 데이비드 감독의 차이

1990년대 한창 남들이 안보거나 차마 보지 못하던 기이한 영화들을 찾아다닐 즈음, 두 명의 데이비드를 헷갈렸다. 바로 '데이비드' 린치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다. 둘 다 상상력의 한계를 초월하는 기상천외한 영화를 만들어내 경탄했지만, 둘의 지향은 확연히 달랐다.

꿈속의 세계(대개 악몽으로 치닫던)를 마치 머리 뚜껑 열고 강제로 인도하는 것 같은 린치에 비해 크로넨버그는 마치 영화 속 사지 절단과 인체 내외부의 파괴가 전염되는 간접체험을 제공했다. 그런 그의 영화는 어느새 자동차 충돌에서 성적 흥분을 얻고 (<크래쉬>),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꿈틀대는 생체 게임기의 촉수를 직접 인체에 연결하는 (<엑시스턴즈>), 마치 <매트릭스> 시리즈의 단말기 접속을 그로테스크 버전으로 선보이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면서도 그저 선정적 공포영화 장르에 그치지 않고 예술영화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던 감독이 21세기에 일단 보려면 만만하지 않은 각오를 요구하면서도 외형상으론 훨씬 점잖은 영화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폭력의 역사>와 <이스턴 프라미스>는 시각효과로 충격을 주던 방식에서, 인간 내면의 복잡미묘한 묘사로 이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충격 수위는 심리적으로 더 강력해졌지만, 20세기에 선보였던 결코 잊을 수 없는, 마치 악몽에 재료를 제공하려는 것 같던 압도적 파괴력은 희미해졌다.

시원섭섭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과거의 날것 그대로의 감촉이 떠오르곤 했다. 그런 가운데 오랜만에 "우리가 알던 크로넨버그가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온 신작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만났다. 역시 이빨과 발톱을 숨겼을 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였다. 그 반가운 만남의 기억을 한번 퍼질러 보자.

인체 해부, 전위예술의 첨단 된 시대의 초상
 

▲ 영화 스틸 이미지 ⓒ 누리픽처스


행위예술가 사울 텐서, 그의 공연 파트너이자 전직 외과의 카프리스는 텐서의 인체를 이용한 전위적인 이벤트로 명성을 얻는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텐서의 행위예술은 인체 해부 쇼와 다를 바 없다. 그들이 살아가는 미래의 시공간은 외견상 현재 대도시 어딘가의 뒷골목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텐서의 퍼포먼스는 일상에서 유기체 기반 의료 장비의 첨단기술에 정점에 달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진보했다.

의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 사회이지만 환경 파괴와 그로 인한 돌연변이 발생은 인간 사회의 정체성을 뒤집어버릴 정도로 파괴적 양상으로 치닫는 중이다. 사람들은 고통을 겪어도 제대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열에 아홉은 고통을 무미건조하게 지나간다. 오히려 고통을 체감하는 소수가 선망의 대상이 된다. 환경 파괴와 합성식품 위주 식생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먹는다는 행위와 소화기관 장기는 진화인지 붕괴인지 해석을 내리기 힘든 급격한 변화에 직면한다.

사울 텐서와 카프리스는 은밀한 전위예술 공연장에서 퍼포먼스로 명성을 날리는데, 그 쇼의 주요 구성은 경악스럽다. 텐서의 외관은 별 특색이 없는 중년 남자이지만, 그의 몸속엔 급속 성장한 돌연변이 장기들이 가득하다. 고도로 발전한 의료기계의 힘을 빌려 조수 역의 카프리스가 일정한 때가 되면 텐서의 몸 안에서 자라난 이 장기를 해부하고 끄집어내 해체한다. 사람들은 이 쇼를 통해 시대의 파괴적 징후와 인간 신체의 불가사의한 매력에 푹 빠진다. 텐서의 신체 내부 변화는 더욱 급속도로 빨라지고, 쇼의 간격도 나날이 짧아진다. 당연히 건강 상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때, 미래 사회 통제에 애를 먹던 정부 기구가 텐서와 카프리스를 주시한다. 마치 희귀생물 보전기관처럼 활동하는 신체 장기 등록소는 텐서가 퍼포먼스 과정에서 추출한 돌연변이 장기를 등록하라고 권유한다. 텐서는 제안을 수락한다. 등록소의 공무원들은 텐서에게 감사를 표하며 기존의 인간 신체와 동떨어진 여러 위험 사례를 공유한다. 한편, 사울 텐서의 영향력에 주목하던 일군의 지하 그룹이 그에게 접근한다. 이들은 텐서의 쇼를 통해 자신들이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는 음지의 진실을 공표하려 한다. 정부의 신종범죄 대응기구도 은밀히 나선다. 텐서와 카프리스는 이 물밑 대립의 한복판에 선다.

사지 절단 퍼포먼스가 보여주려는 진의
 

▲ 영화 스틸 이미지 ⓒ 누리픽처스


21세기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를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미래의 범죄들>은 꽤 당혹감을 줄 것이다. <폭력의 역사>나 <이스턴 프라미스> 같은 후반기 대표작들은 물론 물리적 폭력성이 상당한 작품들이긴 했지만, 정교한 액션 장면의 연장선에 가까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세련된 방식으로 감독의 전반기 개성이라 할 신체변형과 사지 절단의 지옥도를 오랜만에 펼쳐낸다. 대충 한두 장면 이러다 말겠지 하고 참아 보려던 이들이 눈 앞에 펼쳐진 건 이런 것이다. 관객은 눈에 보이는 강렬한 찰나의 이미지가 아닌, 파격적인 주제의식과 연결돼 작가의 의도를 극대화하는 데 최적화된 연쇄작용을 시간이 흐를수록 대적하기 힘에 부칠 수 있다.

사울 텐서가 아침에 눈을 뜬다. 그런데 그는 마치 지옥 또는 외계에서 온 것만 같은 괴물에게 사로잡혀 있다. 악몽 같은 풍경이라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영문을 알 수 없다. 관객의 당혹감에도 불구하고 정작 텐서의 표정은 오히려 편안해 보인다. 알고 보니 최첨단 생체기계 '난초 침대'로 고가에 정밀한 물건이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 워치가 유기체 재료로 이뤄진 침대로 형상화된 것 같은 가구다. 다만 그 형상이 에이리언 영화 속 크리쳐와 너무나 흡사하다.

텐서는 소화기관이 다 평범한 인간과 달라진 바람에 힘겹게 식사한다. 식사 도구도 평범하지 않다. 마치 중세 고문형벌을 위한 도구 마냥, 그로테스크한 형상의 '식사 의자'는 식사에 곤란을 겪는 텐서를 위해 모든 동작을 최적화한다. 의자라고 불리는 물건이 마치 '인간 가구'처럼 괴이쩍은 모습이지만, 찰리 채플린이 일찍이 <모던 타임즈>에서 고용주에 의해 작업장 효율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쓰던 자동식사 기계의 미래 판으로 보면 이해될 수도 있겠다. 정해진 순서와 목표에 따라 강제로 음식물을 부어 넣던 지난 세기의 금속 기계와 형상은 달라도 기능은 동등한 셈이다.

앞에서 언급한 고가의 첨단 가구들을 점검하기 위해 대기업 '라이프 폼웨어'의 기술자들이 텐서와 카프리스의 집 문을 두드린다. 정기적인 일정인지 다들 당황하거나 놀란 기색은 없다. 단짝인 듯한 여성 기술자 둘은 텐서의 거처 한쪽에 놓인 마치 부화 직전의 번데기 같은 유기체의 형상을 띈 물건에 탄성을 지른다. 전설적인 명품이지만 단종되어 자신들도 직접 다뤄본 적 없다는 'sark' 해부용 장비다. 명품이라며 환호하고 감탄하며 구경하지만 원래 시체 부검용 첨단 기계였다는 내력이 언급된다. 장비는 테스트 과정에서 현대 외과의들이 탐을 낼 만한 놀라운 성능을 선보인다. 이 해부 장비를 믿고 텐서는 카프리스가 담당하는 자신을 산채로 해부하는 퍼포먼스에 임한다.

겉보기엔 흉측하지만 놀라운 첨단과학 진보와 그에 따른 급속한 파국적 변화에 직면한 근미래 사회, 정부의 관료제도는 그런 추세를 따라가기에 항상 뒤늦다. 미래범죄 담당 부서는 텐서를 이용해 은밀하게 이뤄지는 지하 세계의 여러 프로젝트를 사전에 적발하려 한다. 한편, 국립장기보관소 담당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업무상 접하는 급격한 인체 변화를 기록하고 입수하는 책무와 함께, 경이로운 급속 진화에 사적으로 매료되기도 한다. 결국 담당 공무원의 이중생활이 횡행한다. 근무시간에는 어떻게든 속속 발견되는 신종장기와 그에 따른 흐름을 파악하려 노력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방가르드 쇼에 탐닉하고 비합법적 경연대회를 주선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텐서의 팀과 팀린 조사관을 비롯한 보관소 팀은 계속 마주치며 엮인다.

모두들 인류 사회에 닥친 미증유의 돌연변이 창궐 혹은 신인류로의 진화 앞에 전전긍긍한다. 인간의 경계는 무엇인지, 속속 발견되는 기이한 진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하나, 여론이 양분된다. 정부 조직은 어떻게든 기존의 '인간'을 고수하려 한다. 하지만 이미 곳곳에서 튀어나온 사례를 주목하는 반정부 그룹은 미래를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한다고 정의한다. 오히려 발견된 예시들은 신인류 진화로의 연결고리라는 것이다. 사울 텐서는 두 진영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의 명망과 영향력 때문에 양쪽 모두 텐서를 끌어들이려 시도하고, 결국 그는 입장을 정해야만 한다. 그저 기이한 인체 쇼로 인기를 얻으려는 얄팍한 예술가로 보이던 그의 행보가 미래 세계의 윤리와 전망을 정하는 단서로 전환된다.

어둠의 B급 장르물과 작가적 주제의식이 만나는 순간

기록보관소 공무원이지만 개인적으로 텐서가 선보이는 'body is reality!' 주제에 매혹된 팀린은 선을 넘어 텐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의 신체를 재료로 카프리스가 집도하는 변형된 신체의 해부와 절단 과정이 곧 '새로운 섹스'의 형태가 아니냐는 도발이다. 팀린의 당황스럽지만 순수하게 본질을 구하는 질문에 텐서와 카프리스는 함께 기뻐한다. 그들이 단지 '프릭쇼'로 인기를 얻는 데 집착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퍼포먼스를 통해 혼란에 휩싸인 그들이 속한 세상에서 예술로 시대정신을 묻는 목적이 팀린에게 온전히 전달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영화는 중간중간 텐서의 인기와 위상에 도전하는 다른 퍼포먼스를 삽입한다. 그때마다 두 눈을 가리고 싶은 괴이쩍은 풍경의 향연이 펼쳐진다. 일본의 극단적 장르 애니메이션에서나 구현되던 신체변형이 상당한 강도로 화면에 등장하기에 이런 이미지에 익숙하지 않다면 비위가 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그로테스크하고 파격적인 이미지에도 텐서의 아성과 위상은 그리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몸을 캔버스 삼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묻는 고통을 감수하며 도전하는 텐서, 그리고 외관상으로는 파괴적이지만 정작 진화 도상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비주얼 쇼크에 그치는 도전자들 사이엔 확실히 '클래스' 차이가 두드러진다.

텐서가 자신의 신체를 거듭 변형하는 바람에, 그의 신체는 '급속 진화 증후군'의 실험실 그 자체가 된다. 물론 그가 예술적 행위로 도전한 시도를 다른 그룹은 정치적으로 풀어가려 한다. 인간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온통 자신들이 재합성한 금속과 플라스틱 물질로 둘러싸여 살면서도 왜 식사는 굳이 자연산을 고집해야 하는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스스로 양산한 물질을 섭취해야 온당하지 않은가. 급진적 질문을 던지는 정치 그룹은 현생 인류와 외모는 같을지언정, 속사정은 전혀 다른 신인류로 진화하려 한다. 극단적 선택과 실험의 결과가 과연 완성될 수 있을까. 감독과 제작진은 그렇게 선정적이고 파괴적인 비주얼 이미지의 향연을 통해 미래 사회와 인류의 전망에 본질적 질문을 전달하려 한다.

따지고 보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호러 영화의 형식을 고스란히 살려내면서도 초창기 단편부터 그런 문명사적 질문을 한 번도 거둬들인 적이 없었다. 그런 SF 상상력의 정수를 펼친 덕분에 감독은 1970년대에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주기적으로 창궐하는 신종 전염병을 예언하고, 가상현실과 미디어의 급격한 발전이 초래한 정신적 증후군을 조명하는데 빠지지 않는 예시를 거듭 선보일 수 있었다. 21세기 이후 보다 은유적이고 좀 더 고전적인 형태로 구현되던 감독의 작업이 20세기 내내 선보였던 파괴력을 다시 점화하는 형태로 돌아온 셈이다.

호러 영화는 대개 적정 자본을 투자해 본전 대비 쏠쏠한 이익을 내는 중간 규모의 장르물, 또는 신인 감독의 등용문으로만 분류되어 왔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두 '데이비드'는 그런 선입견을 분쇄하고, 피 칠갑에 괴물들이 창궐하고 사지 절단이 난무하는 가운데, 혹은 아득한 무의식과 광기, 정신질환의 풍경을 통해서 철학과 윤리의 경계를 확장하고 심화하려 도전했다. 그 덕분에 21세기 들어 다양한 방면에서 장르 영화와 작가적 주제의식을 결합한 후대 감독들이 한층 더 존중받고 자신의 비전을 구현할 수 있었다. 이미 80대에 들어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이 오랜만에 선보인 옛날 스타일의 복고풍 신작은 그런 작가적 기원을 오랜만에 돌아보게 해준다.

미래를 향한 근심과 제언
 

▲ 영화 스틸 이미지 ⓒ 누리픽처스


물론 수많은 후대 작가들이 크로넨버그가 개척한 길을 따라 다채롭고 풍성한 결실을 속속 선보이고 있기에, 현재의 기준으로는 박물관에 기록될 역사적 성취일 뿐,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고 푸념할 수도 있다. '오리지널'이 후대에 거슬러 발굴되는 현상은 영화의 역사가 축적되면서 대세처럼 굳어지는 면모이기도 하다. 마치 <반지의 제왕> 속 불의 악마 '발로그'를 처음 본 이들이 그 캐릭터를 본떠 만든 인기 게임 캐릭터 '디아블로'를 닮았다고 평하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확실히 오리지널을 구축한 대가의 터치는 '급'이 다르다. 적재적소에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며 비위를 상하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홍보를 위한 선정적 효과가 아니라 작가가 말하고 싶은 주제를 전달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로 세심하게 역할을 구분해 배치한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 온 스태프들이 장인정신을 발휘해 실력을 뽐내 구축한 비주얼 장치와 디자인에 초호화판 배역진과 분야별 장인들도 힘을 보탠다. 그렇게 '오리지널', '클래식'의 향수를 자극하는 인상적인 복귀가 연착륙으로 당도한다.

시종일관 긴장을 유지하고 괜히 관객의 심리를 불편하게 자극하는 인상적인 사운드트랙은 하워드 쇼어의 솜씨다. 우리에겐 <반지의 제왕>의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OST로 익숙한 영화음악 거장이지만 사실 청소년 시절부터 크로넨버그와 절친한 사이에 감독의 초기작부터 대부분의 배경음악을 담당했다. 호흡도 척척 맞는 데다가 산전수전 솜씨를 제대로 다듬은 거장의 터치로 미래 SF 디스토피아 풍경에 어울리는 불길한 청음이 관객의 귓가에 전염된다. 자극적 충격보다는 오히려 고전 비극이 미래적 형태로 구현된 것에 가까운 작업이다.

저예산 장르영화 체급에 어울리지 않게 캐스팅은 초호화판이다. 팀린 수사관 역에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카프리스 역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 레아 세두가 활약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21세기 크로넨버그 감독의 작업에서 '페르소나'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영혼의 단짝이 된 텐서 역 비고 모텐슨의 이미지가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가 양 진영 중간에서 '언더커버'로서 겪는 갈등과 선택은 뻔한 액션 히어로와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인류의 미래를 건 무게감으로 손색이 없다. <반지의 제왕>에서 시련을 딛고 왕좌를 되찾는 '귀환한 왕'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오히려 배우로서의 진가는 크로넨버그의 영화들에서 더 잘 구현된다는 하마평이 허명이 아니다. 훗날 비고 모텐슨의 연기자로서의 평가는 크로넨버그 영화에서의 이미지로 기억될 것이라 단언해도 좋겠다.

21세기 이미지와 콘텐츠의 범람 속에서 <미래의 범죄들>이 선보이는 이미지와 이야기는 서브컬쳐에 정통한 이들이라면 그리 낯설지 않은 것들일지도 모른다. 확연히 20세기 크로넨버그를 뒤늦게 발견하는 21세기 크로넨버그 영화의 팬들도 제법 있을 법하다. 그만큼 감독의 구력이 장대하고 작품 활동 목록이 길기 때문이다. 워낙 영화의 흥행 차원을 초월해 현대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감독과 작품세계를 자랑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엔 쉽게 정리가 잘 안되지만, 하나하나 분석하기 시작하면 확실히 급이 다르다. 인간의 경계란, 진화를 수용하는 정도란 과연 어떤 기준과 척도로 평가되어야 할지 우리는 사실 합의된 공론장을 만들지 못한 채, 그저 기술만능주의 혹은 상업적 수요에만 떠밀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빨려 들어가는 중이다.

그런 불안한 근미래에 대한 근심이 신화적 혹은 우화적 터치로 이 영화에는 마녀의 가마솥 속 온갖 재료가 펄펄 끓다 분출하는 중이다. 그런 장면을 처음에 눈이 동그랗게 응시하다 어느 순간 그 진의를 이해하게 된다면 일정한 성찰에 도달할 수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슈나 피테르 브뤼겔의 '무서운 그림'들이 어떤 의도와 효과로 작업한 것인지, 그리고 감독의 영화가 그런 반열에 얼마나 근접한 도전인지 공감하게 될 테다.

<작품정보>

미래의 범죄들
Crimes of the Future, Les Crimes du futur
2022 | 캐나다, 그리스, 프랑스, 영국 | 공포/SF/드라마
2024.07.17. 개봉 | 108분 | 청소년관람불가
감독/각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주연 비고 모텐슨(사울 텐서 역), 레아 세두(카프리스 역), 크리스틴 스튜어트(팀린 역)
출연 스콧 스피드먼(랭 도터리 역), 월켓 분게(코프 형사 역), 돈 맥켈러(위펫 역),
타나야 비티(베르스트 역), 나디아 리츠(대니 라우터 역), 리히 코르노우스키(듀나 역),
요르고스 카라미호스(브렌트 보스 역)
음악 하워드 쇼어
수입/배급 누리픽처스

2022 75회 칸영화제 경쟁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