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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 '개인전 그랜드슬램' 노리는 펜싱 에이스

[2024 파리올림픽 기대주 ④] 그랜드슬램까지 올림픽 금메달만 남은 펜싱 오상욱

등록|2024.07.23 10:09 수정|2024.07.26 11:32
대한민국 스포츠는 전통적으로 투기종목에서 강세를 보였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에게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던 종목이 레슬링 자유형(양정모)이었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는 레슬링에서 2개, 유도에서 2개, 복싱에서 1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 선수단의 금메달 6개 중 83.3%에 달하는 5개를 투기종목이 책임졌다. 투기종목의 강세는 12개 중 절반에 해당하는 6개의 금메달을 따냈던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한국의 투기 종목은 1980년대에 비해 다소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대신 무기를 들고 출전하는 종목에서 두드러진 약진이 시작됐다. 사격에서는 여갑순과 이은철, 강초현 같은 스타선수들이 꾸준히 배출되다가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진종오라는 레전드 스타가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를 휩쓸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효자종목 양궁은 따로 강조할 필요도 없다.

유럽의 귀족스포츠로 알려진 펜싱은 사실 1990년대까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선수들에겐 취약종목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꾸준히 발전한 한국펜싱은 2010년대 이후 침체된 투기종목을 대신하는 새로운 효자종목으로 떠올랐다. 특히 2020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이자 남자 사브르 세계랭킹 4위 오상욱은 파리올림픽을 통해 한국선수 최초로 펜싱 개인전 그랜드슬램에 도전한다.
 

▲ 21일(현지시간) 오전 프랑스 퐁텐블로 프랑스국가방위스포츠센터(CNSD)에 마련된 대한민국 선수단의 사전 캠프 '팀코리아 파리 플랫폼'에서 열린 공개 행사에서 펜싱 오상욱 선수가 선수단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0년대 이후 메달 13개 휩쓴 새 효자종목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까지 올림픽 무대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했던 한국펜싱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남자 에페의 이상기가 동메달을 수확하면서 최초의 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리고 같은 대회에서 남자 플뢰레 개인전의 김영호가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스포츠 팬들을 놀라게 했다. 김영호는 1997년 세계선수권대회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은메달을 땄지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거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친 한국 펜싱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땅콩검객' 남현희의 여자 플뢰레 개인전 은메달을 통해 다시 메달행진을 이어갔다. 그리고 2000년대 많은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세계와의 격차를 점점 줄여나간 한국펜싱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다. 베이징 올림픽까지 통산 메달이 3개에 불과했던 펜싱 종목에서 런던 올림픽 한 대회에서만 무려 6개의 메달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여자 사브르 개인전의 김지연이 깜짝 금메달을 따낸 가운데 남자 사브르 단체전의 원우영, 오은석, 김정환, 구본길도 금메달을 추가했다. 여자 에페 개인전 준결승에서 '흐르지 않는 1초' 때문에 억울한 눈물을 흘렸던 신아람도 동료들과 함께 단체전 은메달을 따내며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은퇴 후 뛰어난 입담으로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했던 '괴짜검객' 최병철 역시 남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추가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메달 2개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남자 에페 개인전의 박상영이 금메달을 따내며 스포츠 팬들에게 기쁨을 줬다. 박상영은 헝가리의 백전노장 임레 게자와의 결승전에서 4점을 뒤진 가운데 마치 주문을 외우듯 "할 수 있다"라고 대뇌이더니 거짓말처럼 연속 5점을 획득하면서 기적 같은 역전 금메달을 차지했다. 박상영의 "할 수 있다"는 종목을 막론하고 대회 기간 내내 한국선수단을 응원하는 구호로 쓰였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한국펜싱이 다시 5개의 메달을 수확하면서 펜싱강국의 위용을 과시했다. 개인전 메달은 남자 사브르의 김정환이 따낸 동메달 하나가 유일했지만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과 여자 에페 단체전 은메달, 여자 사브르 단체전과 남자 에페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수확하며 좋은 성적을 남겼다. 한국 펜싱은 시드니 대회부터 도쿄 대회까지 6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와 은메달 3개, 동메달 8개를 따내는 성과를 올렸다.

단체전 3연패와 개인전 그랜드슬램 도전

2020도쿄 올림픽 금메달 멤버였던 구본길과 김정환도 182cm로 훤칠한 신장을 자랑하지만 오상욱은 192cm의 독보적으로 큰 키를 가진 '장신검객'이다. 고교 시절 역대 최연소 사브르 국가대표에 선발된 오상욱은 2016년 아시아선수권대회 단체전 금메달을 땄지만 국내랭킹 2위 안에 포함되지 못해 2016년 리우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을 따지 못했다(리우 올림픽에서는 남자 사브르 단체전이 열리지 않았다).

2018년 세계선수권 단체전 2연패를 달성하며 세계랭킹 5위까지 오른 오상욱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고 개인전에서는 구본길에게 14-15로 패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정상에 오른 오상욱은 세계랭킹 1위에 등극하며 도쿄올림픽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1년 연기되고 말았다.

오상욱은 1년 늦게 열린 도쿄올림픽 개인전 8강에서 조지아의 강자 산드로 바자제에게 13-15로 패하며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단체전 금메달을 통해 아쉬움을 달랬다. 202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 8강,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오상욱은 작년 서울에서 열린 그랑프리 대회에서 도쿄올림픽 1,2,4위를 연파하고 우승하며 '왕의 귀환'을 알렸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구본길에게 리벤지에 성공하면서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에 올랐다.

도쿄 올림픽은 물론이고 작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까지도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막내였던 오상욱은 어느덧 구본길에 이어 대표팀의 둘째 형이 됐다. 물론 개인전 그랜드슬램 달성도 중요하지만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최우선 목표는 단체전 3연속 우승이다. 자신의 역할을 해주고 형들에게 다음 차례를 맡겼던 과거와 달리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동생들을 이끌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책임감도 생겼다는 뜻이다.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그랑프리,월드컵을 합쳐 국제대회 개인전에서만 13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오상욱의 기량은 두 말 할 필요 없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그 많은 국제대회 금메달도 올림픽 금메달이 주는 무게감에 미치진 못한다. 대표팀 생활을 마감한 김정환과 김준호 대신 합류한 도경동, 박상원과 '뉴 어펜져스'를 구성한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과 에이스 오상욱은 파리올림픽에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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