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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찾는 세종시민들... '산 강'과 '죽은 강' 증언자들

[세종보 천막 소식 84일차] 7년 땅속 세월 벗고 매미 날다… 오늘도 천막한다

등록|2024.07.22 16:52 수정|2024.07.22 17:56

▲ 물이 빠지고 드러난 천막농성장 자리 ⓒ 대전충남녹색연합


"어머, 여기 있는 줄 몰랐어!"

세종에 사는 환경단체 회원이 지나가다가 우리를 보고 깜짝 놀라며 인사했다. 왜 여기 있냐고 물으며 반려 앵무새 루카와 함께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이곳에 살지만 세종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며, "이걸 왜 닫느냐"고 묻는다. 그간의 농성 과정을 설명해 주니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라며, "아직도 이러고 있는 줄은 몰랐다" "관심을 더 갖겠다"고 말했다.

반려 앵무새 루카는 시종일관 주변을 둘러보며 먹이를 받아먹었다. 투명한 새장 안에 넣고 밖을 보게 해서 산책을 시킨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파프리카를 받아먹으며 주변을 둘러보던 루카에게 이 천막농성장은 어떻게 보였을까 궁금했다. 여기에 사는 다른 새친구들이 낯설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루카도 행복하리라 생각하면서도, 제 본성대로 살면서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삶이 복을 받는 일이 아닐까. 너른 금강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면서 자기 본능대로 알을 낳고 살아가는 친구들의 복을 차버리려는, 환경부와 세종시가 모든 이들과 자연의 권리를 뻔뻔하게 빼앗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세종시민의 일갈 "고물보 고치는 것… 내 세금 낭비하는 일"
 

세종보 천막농성장을 찾은 시민들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환경단체 요구사항에 대해 듣고 있다 ⓒ 임도훈


"사막을 걷는 느낌이겠다."

한두리대교 자전거연습장에서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던 아빠가 매미를 관찰하던 딸에게 말했다. 말매미 몇 마리가 연습장 주변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것을 관찰하던 차였다. 나무에 있어야 할 친구가 삭막한 시멘트 바닥에서 헤매고 있으니 안타깝다는 생각에 던진 말인듯하다.

아이의 아빠가 텐트 근처로 와서 "바람이 센데 괜찮냐"고 물으며 말을 건넸는데, 그가 말한 이야기의 요지는 이렇다.

"2012년부터 세종에 살고 있고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있다. 처음 이사를 와서 자전거 타는데 물비린내가 엄청 심했다. 보 개방하고 2년째부터 냄새가 사라지고 강물이 맑아진 게 눈에 보였다. 그런데 또 수문을 닫는다니 환경부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일 년에 두세 번씩 세종보를 수리하는 것 지켜봤는데 내가 낸 세금을 허투루 낭비하는 것 같다. 이번에 환경장관 후보도 기재부 출신이라니 왜 그런지 모르겠다. 죄지은 사람들은 50년은 사면권 주지 않도록 법을 고쳐야 할 것 같다."

또, 세종시민 2명은 멸종위기종 1급 야생생물인 수염풍뎅이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단다. 이렇듯 농성장을 찾아오는 세종시민들은 친절했고, 모두들 자연을 사랑했다. 우리에게 말을 걸고 안부를 전하면서 지금의 금강이 좋다고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세종시는 이런 시민들의 속삭임에는 귀를 닫고 제 주장만이 맞다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있다.

7년의 시간을 벗고 매미 날다
 

탈피한 매미탈피한 매미가 날아가기 직전의 모습 ⓒ 박은영


"이게 이 친구가 탈피한 거예요."

밤새 매미 한 마리가 탈피한 뒤 천막농성장 근처에 앉아 몸을 고르고 있다. 유진수 사무처장(금강유역환경회의)이 이 친구를 발견한 것은 새벽 5시 30분 경이었단다. 의자바닥에 붙어있더니 어느 순간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파다닥 텐트 위로 날아올랐다. 텐트 위에서 가만히 몸을 정비하던 매미는 6시간 동안 젖은 몸을 말리다가 파다닥 하고 하늘로 올라갔다.

"와~~"

순간,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잘가라고, 잘 살다가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날아가는 매미의 뒷모습은 급하지 않았다. 겁에 질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제 때가 됐다' 하면서 날아올라 제 속도로 바람을 타고 나무 틈으로 들어갔다. 매미 유충은 7년여 동안 땅속에서 나무뿌리의 수액을 먹고 자란다. 지상으로 올라와 탈피를 한 뒤, 살아가는 시간은 고작 한 달 남짓이다.

그래서였다. 7년 동안의 오랜 기다림의 끝인 6시간을 지켜본 이들은 매미의 비상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견디는 세월에 비해 살아가는 시기는 너무 짧은 매미지만 그 삶을 온전하게 지켜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비바람을 비롯해 어떤 어려움이 와도 생명의 편에 서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는 의지를 다잡게 되는 것이다.
 

모습을 드러낸 벽화물이 빠지면서 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 임도훈


"엄마, 이제 손들고 있는 아이가 보여."

킥보드 타겠다고 농성장에 놀러 온 둘째 아이가 아빠를 따라 원래 천막이 있던 자리를 다녀온 뒤 한 말이다. 한두리대교 교각에 새긴 벽화를 눈여겨 본 듯했다. 그 벽화 속 "아이도 보이고 새도 보이는데 아직 물은 조금 있다"며 "강물에 돌을 던져보고 왔다"고 속닥거리며 이야기 한다. 장대비가 주춤거리고 햇살이 비추자 농성천막이 있던 하천부지도 조금 모습을 드러냈다. 반가운 일이다.

금강 산책길을 매일 아침 달리는 시민이 농성장에 와서 안부를 묻는다. "80일이 넘은 것 같은데 어려운 데는 없냐" "괜찮냐"고 묻는 인사가 또 반갑다. 그는 "첫마을 아파트 산다"며 "지난 정부에서 철거했어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이 정부가)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말했다. "처음 천막 들어올 때부터 보고 있었다"면서 아침 달리기를 하며 농성장을 한 번씩 보고 간 모양이다.

천막농성을 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평범하고 재미있는 시민들을 만난다. 농성장에 와서 만난 시민들은 찬성이든, 반대든 모두 농성하는 이들을 걱정하는 마음은 같았다. 여기 있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귀한 인연들이다.
 

▲ 천막농성장이 있던 자리를 살펴보는 가족들 ⓒ 임도훈


거세게 흐르는 금강처럼, 한편으로는 80여 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물에 잠긴 하천부지에서 올라와 둔치에서 농성을 하니, 세종시민들과의 접촉면이 넓어졌다. 하지만 장마가 그치면 우리는 또다시 물속에 잠겼던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세종보를 닫는다면 수장되는 그 곳.

그때가 되면 세종시민들과 만날 일이 적어지겠지만, 소중한 모든 인연들을 기록하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 만남 자체로도 귀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세종보 수문이 닫혔을 때의 '죽은 강'과 개방된 뒤의 '산 강'에 대한 증언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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