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천 황현, '오애시' 지어 면암 격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면암 최익현 평전 21] "살아있는 최익현에 격려의 글"
▲ 황현 선생과 '매천 야록'전라도 광양에서 태어난 황현 선생은 한말 4대 시인으로 꼽히며, 젋은 시절 한양으로 올라와 과거를 보고 성균관 유생이 되기도 했으나 과거제도의 부패를 목격하고 낙향했다. 오른쪽 사진은 선생이 남긴 편년체 역사서 ‘매천 야록’ ⓒ 매천황현선생기념사업회
을사늑약은 매국노·친일파들에게는 '새로운 주인'의 탄생이지만, 백성과 올곧은 선비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참변이었다. 누대에 걸쳐 국가의 녹봉을 많이 받은 자들일수록 국가 위난시에는 매국에 앞장서거나 동족을 배신하는 데 헌신적이었다.
포식동물이 사냥을 할 때이면 어김없이 사냥감을 무리로부터 떼어내고 목줄을 사나운 이빨로 끊듯이, 일제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함으로써 조선을 고립무원의 상태로 만들었다. 고종 정부는 1882년 3월 일본의 조선진출을 막고자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의 알선으로 미국의 슈벨트 제독을 상대로 전문 14조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또 러시아와는 1884년 <한·로수호통상조약>을 맺고 최혜국 대우, 치외법권 인정, 선박왕래와 관세에 관한 규정 등을 명시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조선과 통상우호조약을 맺고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이 조선에 대한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러·일 전쟁의 논리적 귀결이며, 극동의 평화에 직접 공헌할 것으로 인정한다."라는 황당한 뒷거래를 하였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지 17년 만의 일이다. 미국은 조선을 철저하게 배반한 것이다.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면서 외교권부터 박탈한 것은 우선 얼룩말을 무리에서 떼어내고 공격하는 수법 그대로였다. 그리고 을사늑약으로 목줄을 끊었다.
을사늑약 소식이 알려지면서 조약체결에 대한 반대운동과 반일항쟁이 전국에서 일어나고 순절자들이 속출하였다. 시종무관장 민영환을 비롯하여 특진관 조병세, 법부주사 송병찬·전참정 홍만식, 참찬 이상상, 주영공사 이한응, 학부주사 이상철, 병정(兵丁) 김봉학·윤두병·송병선 등이 자결 순국하였다.
때를 같이 하여 충청도에서는 전참판 민종식, 전라도에서는 전참찬 최익현, 경상도에서는 신돌석, 강원도에서는 유인석이 각각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고 을사오적인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외부대신 박제순 등을 척살하려는 운동이 몇 갈래로 전개되었다.
▲ 매천 황현 선생 ⓒ 매천기념사업회
매천 황현은 을사변고의 소식을 듣고 <오애시(五哀詩)>를 지었다. 순국한 민영환·홍만식·조병세·이건창·김봉학과 살아있는 면암을 그리는 시다. 다음은 <살아있는 최익현에 격려의 글>이다.
그 옛날 왕염오(王炎五, 송나라의 절의지사) 라는 사람은
살아 있는 문신국(文信國, 송나라의 애국자 문천상)을 제사 지냈지
염오더러 맹랑한 사람이라 못할지니
사람을 아낀다면 참으로 덕을 권해야지
올곧기도 하여라, 저 최 상서여
일양(一陽)이 잠식되는 때(군자가 소인, 임금이 신하에게 핍박을 당한 때)를 만나니
바른 언론은 대궐을 놀라게 하고
높은 명망은 팔도를 숙연케 했네
향리에 폐고(廢錮) 됨도 불사하였고
먼 곳에 유배됨도 겁내지 않았네
견줄 데 없는 산두(山斗, 태산북두의 준말) 같은 의표여
이제 어느 길을 택하려 하는가
소식이 서쪽에서 들려왔는데
한 자의 상소가 곧기가 화살 같네
하지만 천백 통의 상소를 올려 본들
종이와 먹만 낭비하는 것일 뿐이라네
기다리는 바가 있어서라고 핑계해도
어긋나기 쉬울 뿐, 때를 얻기는 어려우리
주뇌(周雷, 명나라 말기의 충신 주표와 뇌연조)의 옥사를 보지 못했는가
참소하는 무리가 교묘하게 얽었었지
송나라에는 강고심(江古心, 송나라의 학자·정치인)이 있었으니
나라가 망하도록 기다리지 않아
천년토록 그 안색이 늠름하였네
인물이 어쩌면 이리도 적은지
장대한 기상이 날마다 사그라드네
원컨대, 공께서는 어서 자애(自愛, 스스로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말고 자결하라는 의미)하시어 소자의 의혹을 조금이라도 풀어주소서. (주석 1)
주석
1> 김삼웅, <매천 황현평전>, 247~248쪽, 채륜, 2019.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면암 최익현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